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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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교사들은 교직에 들어서기 전에는 예기치 못했던 책임을 떠안아야 합니다. 이 책임 가운데 하나는, 제 생각입니다만,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교사로서의 직업윤리’로 간주되는 것들을 기꺼이 버리고, 아무리 수줍고 자기 주장에 서투르더라도, 정의를 위해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투사로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쳤다는 이유로 투쟁의 장을 떠날 권리가 없습니다.…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즐겁게 채울 수 있는 권리를 지켜내려고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어렵고 큰 과제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다정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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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중을 긁적거리며
심보선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뱃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잊고 있었다.
뱃사람의 울음, 이방인의 탄식,
내가 나인 이유, 내가 그들에게 끌리는 이유,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을 잊고서
어쩌다보니 나는 나이고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여인일 뿐이라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믿어왔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어쩌다보니, 로 시작해서 어쩌다보니, 로 이어지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쩌다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옛 연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옛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져 다친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시고
그때 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는 듯
인중을 긁적거리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쓰기로 옮겨온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삼일, 오일, 육일, 구일……
달력에 사랑의 날짜를 빼곡히 채우는 여인.
오전을 서둘러 끝내고 정오를 넘어 오후를 향해
내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기는 여인. 그녀를 사랑하기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
기억 없는 죽음, 무의미한 죽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일랑 잊고서
인중을 긁적거리며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전생에서 후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뿐인 청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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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유(臥遊)

 
                                               - 안현미(1972~ )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 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 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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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의 가능성  

            - 안현미 

스물 두 살 때 나는 머리를 깍겠다고 전라도 장수에 간 적 있다. 그곳엔 아주 아름다운 여승이 있었고 니와 함께 그곳에 머물던 경상도 아가씨는 훗날 운문사 강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돌아왔다 돌아와 한동안 무참함을 앓았다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되려는 중이었는데 내겐 거울도 지도도 없었고 눈물뿐이었다 나는 나를 꺼내놓고 나를 벗고 싶었으나 끝내, 나는 나를 벗을 수 없었고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하려는 중이었는데 나는 감히 요절을 생각했으니 죄업은 무거웠으나 경기장 밖 미루나무는 무심으로 푸르렀고 그 무심함을 향해 새떼들이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다른 차원의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 업은 무거웠으나 그런 날이 있었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의 가능성을 기다리고 있나. 

기다림이 없어야 지금 거울을 볼 텐데, 기다림도 불안도 다 죄가 되어 나를 잡아먹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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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날 전 일은 묻지 않겠다 - 도영 스님의 불교산책
도영 지음 / 호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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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무기특 평상심시도別無寄特 平常心是道” 

평상심을 지키는 게 도이다. 가장 어려운 말을 가장 쉽게 건네는 스님의 말씀이 곡진하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엔 달이 밝네  

여름엔 시원한 바람  겨울엔 흰 눈 

부질없는 일로 가슴 졸이지 않으면  

인간의 좋은 시절 바로 그것이라네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춘유백화추유월    하유량풍동유설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약무한사괘심두    변시인간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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