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의 가능성  

            - 안현미 

스물 두 살 때 나는 머리를 깍겠다고 전라도 장수에 간 적 있다. 그곳엔 아주 아름다운 여승이 있었고 니와 함께 그곳에 머물던 경상도 아가씨는 훗날 운문사 강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돌아왔다 돌아와 한동안 무참함을 앓았다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되려는 중이었는데 내겐 거울도 지도도 없었고 눈물뿐이었다 나는 나를 꺼내놓고 나를 벗고 싶었으나 끝내, 나는 나를 벗을 수 없었고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하려는 중이었는데 나는 감히 요절을 생각했으니 죄업은 무거웠으나 경기장 밖 미루나무는 무심으로 푸르렀고 그 무심함을 향해 새떼들이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다른 차원의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 업은 무거웠으나 그런 날이 있었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의 가능성을 기다리고 있나. 

기다림이 없어야 지금 거울을 볼 텐데, 기다림도 불안도 다 죄가 되어 나를 잡아먹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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