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살아가는 데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의 목적을 정하라고 한다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지. 이제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안 바뀐다는 걸 알았지만. 내가 그만큼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고여 있지 않으려면(?) 나와 정치적 관점이 다른 사람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얘기를 나눠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어차피 이 세상은 내개 생각하는 가치와는 정반대로 돌아가는 일들 투성이이기에 굳이 그런 사람을 찾지 않아도 되던걸요.

어릴 땐 불공정한 걸 보면 너무 화가 났는데,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걸 보면서 속에서 열이 나고 인간이 조금 더 편하고 즐겁자고 다른 존재를 해치는 걸 보면서 그게 내가 된 것처럼 고통스러워서 울었는데 이제 지친다는 생각뿐이다.

자신의 안위만 보장된다면 다들 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데에 불만이 없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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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콜리는 민주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투데이가 빠른 속도로 달릴 때 콜리는 한 번 더 고삐를 놓고 투데이의 등에 손바닥을 얹었다. 당근을 먹었던 순간보다 더 빠르고 강렬한 진동을 만났다. 콜리가 말 등에앉아 경주를 진행하도록 만들어진 것처럼 이 생물도 달리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투데이가 행복해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콜리는 투데이가 행복하다면 자신도 행복한 거라고 정의 내렸다. 갈기가 물처럼 흐르고, 기쁨의 떨림이 몸을 감쌌다. 투데이의 빠른 박동을 콜리는 오롯이 전달받고 있었다. 투데이, 행복한가요? 그럼 저도 행복한 거예요.

연재가 말했을 때 민주는 애써 항변하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여기가 얼마나 과학적으로 설계됐는데, 벽은 방풍이랑 방수다 되고 발길질에도 발굽에 충격이 없도록 완충재까지 다 붙여놓는다고.지붕도 방열 기능이 있어서 열기와 냉기 다 차단해주지, 환기와 채광을위해 창문도 우리 집 창문보다 크다니까. 여기는 전부 말을 위해 과학적으로 지어진 곳이라고, 이곳의 주인은 말이니까. 말이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민주가 숨 가쁘게 말을 마치자, 연재는 무심히 반박했다.

"그래도 갇혀 있는 거 맞잖아요."

"왜 말을 타다가 하늘을 바라본 거야?"

"하늘이 그곳에서 그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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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기 짝이 없는 업계 용어들을 나 같은 머글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한국어로 바꾸어 보는 시도! 사전을 옆에 두고 읽으니 더욱 흥미롭다. 작가의 제안과 반론 자체보다도 읽을수록 모호vague했던 개념들이 명료clear해지는 경험이 즐겁다. (ㅋㅋ)


서론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읽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꽤나 공감이 간다. '객관적'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다.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이 단어를 사용했던 걸까? '객관적'과 '객체'의 관계를 연결지어 본 적 없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이 지금까지 접해 왔던 문장 속의 쓰임만으로 대충 그 의미를 짐작한 후 관성적으로 사용해왔다.


내가  '추상적인 것'에 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머릿속으로 그릴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린다. 이것이 먹고사는 문제였다면 꽤나 힘들어했겠지만 이것은 취미의 영역이기에 오히려 내가 더 나아질 여지가 이만큼이나 남았다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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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다. 다른 차들은 달리는데, 나 혼자 멈춰 있을 수는 없으니 끙끙 밀며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느낌. 정말 아무런 원동력이 없다. 나는 어쩌다 이 길에 서 있는가? 대체 왜 앞으로 가야 하는가? 하는도움안되는 잡생각을 집어치우고 그냥 뇌 빼고 하자는 다짐을 한 지가 한 달 정도,,, 그러나 아무 소용없다.


하고싶지도 않고 잘 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내 인생을 갈아넣어야 되는 이유는

'이미 몇 번이나 진로를 바꿨으니까'

'들인 시간이 아까우니까'

'다시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하기엔 늦었다'

'사회 나가면 수요가 많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 일을 재미로 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 버티는거야 세상 사람들 다들 하는데 너도 그 정도는 해야지 왜 이렇게 철이 없냐 어릴 때 하고 싶은 거 다 시도해봤으면 된 거 아니야? 좀 참아 너가 뭐가 그렇게 특별한데'


다 같잖은 이유들이네


난 정말 내가 이럴 줄 몰랐다,,, 난 항상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배우고 싶은 게 있었고, 되고 싶은 모습이 있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하고 싶은 것도 삶을 이어가고 싶은 욕망도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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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공감가는 글을 몇 편 봐서 기록해둔다.

1.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한 정보를 요청할 때, 출신 지역과 학교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 그가 누구든 ‘알려줄 수 없습니다’ ‘출신지와 학교는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용기. 어떤 일이든 학연과 지연을 동원하면 그러지 않는 것보다 수월할 것이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 것에서 더 나아가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출신을 밀어주는 관습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지 않기로 한 것. 이런 어른이 많아지길.

2. 토론 주제가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가령 ‘유색인종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가?’라는 주제가 있다면 이에 대해 찬반토론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실현되었을 때 어떤 개인 혹은 집단에게 심각한 권리 침해가 발생하는 의견은 그리 가치있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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