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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읽는 CEO ㅣ 읽는CEO 인물평전편 4
량룽 지음, 이은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동서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시대를 초월해 사랑을 받는 삼국지.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펼쳐내는 전쟁과 암투, 배신이 난무하는 가운데 통일국가를 세우고자 풍찬노숙을 마다않는 등장인물들의 열정과 신념은 삼국지를 안 읽어 본 이들이 있을지 몰라도 읽었다면 결코 한번에 그친 사람들은 없을 정도로 소설로서 역사적 사실로서 그 매력의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국지의 등장인물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뤘으면서도 후대에 간웅으로 비하되며 악의 화신으로 묘사되고 평가되었던 인물 조조....
근대 들어 조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고 최근에는 재평가되고 있어 거의 복권 수준에 이르고 있다지만 우리가 아는 조조의 업적과 능력, 개인적인 면모는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그에 대한 묘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조조 읽는 CEO>은 삼국지를 근거로 한 조조 재평가임과 동시에 조조의 업적과 인간 조조의 면모를 들여다 보는 책이다.
저자는 다중인격이며 워낙 음모와 배신이 횡행하는 시대인지라 남을 늘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혼란기에 정치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잔혹하게 주변 인물들을 숙청하고 정권을 키워 나갔던 부분에 대한 그간의 혹평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훗날 사마씨가 일궈낸 진이라는 통일왕조의 기틀이 되었던 위나라를 세우기까지 다재다능한 전략가였으며 시와 부를 그 누구보다도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감정을 담아 지어내면서 당시 대표 문인이었던 건안칠자 중 최고로 꼽힐 정도였던 문학가였던 그가 군주로서 위를 세우는데 겪었던 과정들을 되짚어 보면서 그의 성공이 훗날 당태종 이세민이나 명태조 주원장등에 비해 전혀 과소평가될수 없는 공적을 가졌음에도 필요 이상으로 비하되는 것이 안타까움을 책 곳곳에서 내비친다.
"조조의 가장 큰 공으로 꼽는 것은 훗날 중국의 새로운 통일에 탄탄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위나라는 사마씨에게 전복되었지만 조조가 시작한 대업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없었다면 중국 통일은 아마 훨씬 훗날로 미루어 졌을 것이다. 역사는 참으로 알 수 없다. 조조는 천하통일에 명백하게 공헌했는데도 비난을 짊어졌고, 유비는 오직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데만 힘썼는데도 한 왕실의 부흥을 주창했다는 이유만으로 나관중의 글을 통해 영웅으로 거듭났다.(본분 139페이지 중)"
이러한 큰 틀에서 조조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이 책에서는 그의 성공요인을 분석한다. 한나라의 황제인 헌제를 모시고 황제의 명에 따라 지역 군벌들을 하나씩 척결하는 천시(天時)를 가졌었고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절감하여 순욱, 정욱, 곽가, 장요, 서황, 장합 등 수많은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함으로서 관중을 손에 넣음으로서 손권, 유비보다 먼저 삼국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리고 병참의 중요성과 민중의 경제적 안정을 염두에 두고 둔전제를 널리 정착시키고 활용함으로서 상대방에 비해 우수한 보급과 후방의 안정을 꾀하여 장기적으로 원소, 유표 등 각기에 퍼져있었던 영웅들을 제압하고 조조의 기치아래 하나 하나 단일화된 중국을 만들어 나갔다는 그의 업적을 꼽는다.
간웅이자 찬탈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던 조조지만 저자는 조조가 처음 정계에 발을 내딛었을때는 한을 부흥하고자 노력했던 충절이 깊은 소장 신료였음을 주목한다.
"조조가 갓 20세를 넘었을 때 조정에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오색봉 사건은 그 화살을 권문 귀족에게 직접 겨눔으로서 그가 당시의 사회 모순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모르는 담력과 용기를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제남상을 지내던 시절에는 온갖 잡귀를 일소하여 호족과 권세가를 제압하고 풍속을 바로잡았으니 조조 치세 아래 그 일대의 정치가 바로 서면서 백성의 삶이 편안했다."(본문 270페이지 중)
그러나 중앙 정계에 등장하였을 때 조조는 더이상 한 왕실이 자신만의 노력으로는 부흥할 수없는 외척의 발호와 환관의 농간 등 근본적 모순을 접하고 절망하게 된다고 한다.
"황제가 환관에 의지하여 권력을 되찾아도 궁궐 깊은 곳에 칩거해 있던 황제가 대신을 알리 없었다....(중략) 황제는 하나같이 단명했고 그러는 사이 황권은 점차 환관의 손에 넘어갔다. 마지막 순간 황제는 환관을 부모로 삼아야 했을 정도니 환관의 횡포와 무능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만하다. 대세가 이러하니 뜻있는 신하들도 국면을 전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조 역시 능력있는 신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당초 낙양 북부위, 돈구령, 제남상을 지낼 때 마음을 다해 현신, 능신이 되고자 했지만 황제는 정권을 통제하여 현신에게 능력을 펼 기회를 줄 힘이 없었다.(본문중 207페이지)"
이러한 중앙 정치의 모순에다 동탁의 전횡을 단죄하기 위해 모였던 제후들의 동상이몽을 통해 더이상 한을 부흥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음을 깨달은 조조는 진궁의 반역으로 자신의 부친 등 일가친척 대부분이 몰살 당하면서 훗날 간교하고 냉혹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정도로 힘을 숭상하는 난세의 패자로 철저히 거듭나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젊은 시절의 충의는 이제 냉혹한 약육강식의 중원에서 살아남는 자가 강함을 추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듯 강자가 되기 위해 조조는 늘 인재를 구했고 인재를 아끼고 목말라 했다고 한다. 조조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삼국지의 또다른 인물 제갈량은 후대에 충절과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추앙받고 있지만 촉이라는 국가가 가진 국력의 한계와 인재풀의 협소함으로 결국 위의 한 지방(기산)조차 경략하지 못했던 것은 위에는 제갈량의 능력에 견줄 인재들이 넘쳐났으며 이 인재들은 결국 조조의 노력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간웅으로 평가받으며 평가절하됐던 조조에 대해 저자는 위가 통일왕조가 되지 못하고 사마씨에게 찬탈 당하면서 위나라를 깎아 내리기 위해 그의 공과가 무시당했기 때문임을 안타까워 한다.
"돌아보면 훗날 조조 이후 벌어진 수많은 황위 찬탈 사건 중에 살육의 피비린내 없이 세워진 새 왕조가 있었던가? 사마씨의 위나라 찬탈, 남송에 번갈아 나타난 송제양진 네왕조, 수문제의 양위, 송태조의 황포가신(신하들이 억지로 황제의 복식인 황포를 입혀 황제로 추대)등 그 어떤 사건이 조조보다 덜 잔혹했다고 할 수 있을까? 명태조 주원장은 걸핏하면 정적과 대신을 죽여 수만명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고, 명 성조는 10족을 멸하는 피비린내 나는 도륙을 자행하며 자신의 정권을 유지했다.(본문중 310페이지)"
충의를 가진 개혁을 갈망하였으면서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잔혹함도 버리지 않았던 현실과 타협하는 인물이었던 조조는 분명 모순도 내재한 복잡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냉정히 판단할때 조조는 결코 간교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조조는 야심가이자 천하를 종횡무진했던 호걸이었으며 훌륭한 문학가로서 다재다능한 인물로서 역사의 발전을 추진한 영웅이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