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의 설계자들 -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메디치 WEA 총서 8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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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는 국력을 시험받는 각축장이자 약자는 설움 받는 신세를 넘어 국가의 존망마저 위협받게 되는 비정한 정글과 같다. 강대국은 밀림의 왕 사자이며 약소국은 하루하루 자신의 목숨을 이어나가야 하는 영양과도 같은 신세가 된다.

특히 전쟁을 거치면서 강대국간 승패가 갈리고 여기에 따른 전리품을 나눠 갖는 시기라면 약소국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물며 국력을 잃은 식민지 신세면 오죽할까? 근현대들어 약소국의 설움을 겪었던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36년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왔지만 분단과 좌우익의 극렬한 대립으로 한국전쟁의 참화도 겪었고 여전히 분단의 고통 속에서 하나된 민족으로 역량을 보이지 못하니 말이다.

 

돌아보면 <종전의 설계자들>을 읽게 된 이유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나라의 운명을 갈랐던 그 시기에 전쟁 당사국이었던 미국, 소련과 패전국인 일본의 국제관계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물론 이 책은 지금까지 알려진 일본 항복선언의 배경이 미국 주류 역사학계의 견해인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인한 더 이상의 항전은 무의미하다는 일본 내 입장을 반박하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실제로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선언 후 종전일로 기억되는 1945815일 이후에도 소련은 만주국을 침공하는 등 궁극적으로 일본을 침공할 계획을 착착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소련의 움직임이 일본을 서둘러 종전을 위한 협상장에 불러 나오게 했다고 한다. ‘벚꽃처럼 지더라도 일왕을 위해 죽겠다고 부르짖는 군부와 달리 외무부는 최대한 천황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항복하기를 원했고 이러한 기저에 소련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 협상하려던 것이 소련의 태평양전쟁 참전 선언과 일본 본토 공격을 전해듣고 서둘러 미국에 항복한 것이 정설이라는 것이다. 미국 학계와 일반인들이 갖고 있던 기존 역사관과 전혀 다른 주장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이러한 당시 막후의 사정을 저자는 다양한 사료와 증언을 통해 재구성하고 신뢰성을 높였다. 특히 소련의 일본 분할(북해도 분할 및 도쿄를 베를린처럼 4개 구역으로 연합국이 나눠 갖자는 제안) 의견에 미국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그 대신 한반도 38도 이북을 소련이 신탁통치하는 것으로 협상했다는 것은 결국 전쟁 패전국인 일본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애꿎은 우리나라만 남북분단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떠안게 되었다는 점은 분노하고 또 울분을 쌓게 만든다.

 

일본이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없이 이 책의 제목처럼 종전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승전의 전리품에 혈안이 된 미국과 소련의 야합이 빚어낸 물타기에 지나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일본인들에게 패배에서 나타나는 반성과 늬우침 보다는 전쟁을 마무리했을 뿐 그 어떤 죄악과 악행도 반성할 것이 없다는 뻔뻔함으로 무장하게 된 배경이 미국과 소련의 막후 정치적 계산과 타협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우리 역사와 연계하여 들여다 봐도 되지만 굳이 그런 부분을 연관짓지 않고 읽더라도 이 책은 2차세계대전의 종료 과정에서 어떤 결정과 협상이 이뤄졌는지 소상하게 알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많은 분량이지만 읽는데 큰 어려움 없다. 역사의 진실을 명확히 알고 있는데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우리의 방향설정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행태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책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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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2019-04-22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세가와 쓰요시의 책과 관련된 도서인 『8월의 폭풍』의 역자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하세가와의 책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둘러싼 당시의 국제정치적 상황을 심도 있게 고찰하고 있다면, 『8월의 폭풍』은 하세가와 책이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서 소련군이 수행한 군사작전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8월의 폭풍』은『종전의 설계자들』의 참고문헌이기도 합니다.

『8월의 폭풍』을 『종전의 설계자들』과 같이 읽으신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번역한 『8월의 폭풍』도 언젠가 소개해주시고 서평을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