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여신 이은주 문화 다 스타 산책
박명진 외 지음 / 문화다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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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돌아가신 어머님은 일산에 위치한 C추모공원에 모셔져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휴일을 기해 꼭 찾아 뵙고 어머님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이 끝나면 추모공원을 떠나기 전 어머님이 모셔진 안치실 맞은 편 건물에 있는 기독교관을 찾는다. 우연이지만 필연이라고 믿는, 지금도 안타깝고 그리워하는 한 여배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여배우는 와이프가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수재지만 까칠한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여학생이었으며 <불새>에서는 천방지축에 버르장머리 없는 부잣집 딸네미였지만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생계를 위해 가난했고 오해로 인해 헤어졌던 첫사랑이 성공한 후 귀국하면서 가정부로 들어가면서 재회하는 비운의 여주인공을 맡았었다. <불새>를 통해서 외모는 물론 다양한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아우라가 비범한, 제대로 된 배우를 만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은주,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정확히 부르자면 이은주는 그렇게 배우로서 내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해서 팬의 가슴에 간직되면서 잊을 수 없는 배우가 되었다. 지금도 비오는 날이면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처럼 불현듯 나타나 혼자 쓰고 가는 내 우산 속에 불쑥 뛰어들 것 같은 아련한 여인같으며, 첫사랑의 순수함은 물론 섹시한 모습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버거워하지 않고 맡겨진 곳에서 영롱하게 빛을 발할 것 같았던 여배우이자 한국 영화계에 큰 복으로 자리매김할 그녀였건만... 서럽게도 그녀는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야누스의 여신 이은주>는 그녀가 배우로서 살아갔던 짧지만 강렬했고 또 안타까웠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발행된 책이다. 그리고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듯 점차 옅어져만 가는 여배우 이은주에 대한 우리들 기억의 소멸을 방지해 줄 발자취이다.

 

이 책은 배우 이은주의 삶과 예술에 대해 평론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바를 정리한 책이다. 비록 그녀의 영화는 대박난 적 없고 드라마 역시 크게 히트치진 못했으며, 국제영화제서 수상한 바도 없지만 요절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큰 발자취를 남겼을 매 력넘치고 성장가능성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였던 배우 이은주에 대한 가치를 재조명함은 물론 자연인 이은주에 대한 팬들의 애착을 기리기 위해 발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천의 얼굴을 소화해 낼 수 있었고 자신이 맡은 배역에 절대로 버거워하지 않으며 대중의 기대이상으로 소화해 냈던 배우 이은주.

세련된 도시형의 외모를 가졌지만 그렇다고 이미지에 갇혀 연기의 스탠스를 도시적 이미지로만 절대로 가둬둘 수 없었던, 풋풋함과 순수함도 충분히 구현해 낼 수 있었고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그녀였기에 우리는 그녀의 이러한 측정불가한 매력에 더욱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연애소설>에서 이은주가 보여준 모습은 남성이 바라보는 여자로서의 모든 면,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성장하고 발랄함과 슬픔이 교차하며 보이시한 이미지에서 청순함으로 발전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그려냈고 주인공이자 청순함의 대명사였던 손예진을 오히려 넘어서는 존재감을 보였다. 아직도 <연애소설>을 성장기 풋풋한 첫사랑을 대표하는 영화로 주저하지 않고 손에 꼽는 이들이 많은 것은 손예진은 물론 이은주가 그 역할을 120% 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찬사는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씀은 바로 배우 이은주를 다시 마음속에 불러내서 함께 하는 소중함이 있기 때문이지만 개인적인 선호도를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아직 그녀에 대해 잘 모른다면 이 책을 통해 필모그래피에 있는 영화(워낙 짧은 배우생활을 했기에 출연작이 8편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를 보면 왜 이은주를 안타까워하고 배우로서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 야속한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억측을 낳고 세상을 떠난 원인이나 배경에 대한 설왕설래가 분분하지만 그 어떤 쪽에도 심증을 두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충분히 펼쳐 보이기도 전에 이은주라는 여자를 소진시키고 황폐화시키는데 관련이 된 영화 <주홍글씨>는 지금도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영화 속 재즈바에서 매혹적인 모습으로 재즈곡을 부르던 장면은 그래서 기억 속에서 선명하지만 그녀의 비극적 운명과 연결고리이기에 이내 한숨이 터져 나온다. 재즈싱어의 모습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소화해 냈고 누구라도 그녀에게 흠뻑 빠져들 만큼 매력적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그녀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앞으로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은주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이 책은 소중한 기록이자 내 책장에 항상 있을 것이다. 추모공원을 찾을 때마다 늘 순수하고 환한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반기는 그녀가 때론 야속하다.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때 조금만 더 강인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억지도 부리고 싶다. 그녀 이후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젊은 여배우를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현실이 그녀를 더욱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 수정>의 수정보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를 선택했고 태희가 되었다. 그리고 나와 그녀를 지금도 기억하는 팬들은 평생 그녀를 기억하며 때론 마음 아파하는 인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태희가 현빈으로 환생한 듯 인우를 흔들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쓸쓸하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우리는 영원히 그녀를 만났다는 것에 행운임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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