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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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치매로 인해 노망이 나신 할머니를 5년간 수발하시면서 고생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대소변을 못가리시다 보니 아무리 잘 수발하셔도 어쩔수 없이 집 마당에 들어서면 풍겨오는 악취는 물론 예전의 할머니가 아닌 듯 헛소리를 연발하시는데서 느꼈던 어린 시절의 공포는 죽음에 대한 이질감 자체였다. 하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우리들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바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아닐까? 게다가 날 낳아 주시고 키워주시며 우리들의 삶으로 인해 희노애락을 느끼셨던 부모님의 죽음은 그 어떤 슬픔보다 더 큰 상실감과 후회, 회한으로 작아져만 가고 침몰해 가는 자신을 느낄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머님의 별세는 이러한 크나 큰 상실감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별다른 효도도 못해드렸고 그렇다고 속을 썩이지도 않았지만 늘 가슴 졸이게 했던 못난 막내 아들이 처자식을 돌 볼 나이가 됐음에도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못내 걱정이셨는지 처연히 바라보시던 마지막의 모습은 지금도 사회생활에 찌들어 매정해 진 내 가슴속을 사정없이 휘몰아 친다.

 

돌이켜 보면 세상과 이별하는 어머님이 시간동안 병간호하던 우리 형제들에게도 숱한 슬픔과 인생에 대한 한층 성숙해진 사유, 그리고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아픔 속에서 또 한분을 언젠가 보내야 할 때가 돌아올 경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서로 말하진 않아도 마음속으로 차분하게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82세의 현재까진 정정하시지만 언젠가 또한번 우리에게 다가올 그 순간을...

 

그래서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을 떠나 보내면서 느꼈던 심적 동질감을 확인하고 또한 아버지의 운명을 언젠가 맞이해야 할 우리에게 이 책의 저자가 가졌던 회한과 슬픔, 이별의 시간들을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생명의 마감을 따뜻하게 돌봐주지 못하는 우리 의료체계의 문제점으로 인해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직접 돌보려는 한 소시민의 고민도 담겨져 있는 것을 말이다.

 

높아만 보였고 넓디 넓다고 기억했던 아버지이 어깨가 점차 축처지고 인생의 깊은 고뇌와 함께 깊어진 주름이 선명해 지면서 나타나던 질병, 고통, 죽음은 이 땅의 모든 자식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주며 저자 또한 예외는 아니었으리라.

 

자식들이 느끼기에 행복한 운명이란 없을테지만 의료환경의 허점속에서 무너져가는 아버지의 모습과 병간호를 담당하는 이들의 지극히 속물적인 행태 속에서 부모를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속상하고 죄스러운 일인지 이미 우리가 느꼈을 법한 일들을 예외없이 저자 또한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히고 만다. 이 책은 아버지의 운명에 대한 감상에서 더 나아가 이처럼 현실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상처들을 돌아보며 독자들과 공감을 이끌어 낸다.

 

시기의 차이일 뿐 언젠가 우리 모두 떠나보내야 하고 떠나야 한다. 처연한 마음도 들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릴 수 없음에 우리가 떠나보내야 했던 부모님과의 그 시간들을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좀 더 사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뜻하게 가져간다면 그분들이 주신 훌륭한 유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슬픔 속에서 이성이 자리잡기 어렵겠지만.... 개인적으로 내겐 지금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불거지곤 하는 어머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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