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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박광수 지음 / 청림출판 / 2014년 7월
평점 :
때로는 누군가에게 크나 큰 인연도 없으면서 끝 모를 애정과 지지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특히 대상에 대한 선입견이 오해로 드러나고 이를 바탕으로 호의로 전환되면 그 애정과 지지의 진폭은 스스로도 설명하기 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하기사 평생 내 자신조차 잘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을 텐데... 꼭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메스를 들이 댈 필요가 있을까?
일러스트레이터 박광수는 그런 의미로 내게 수용되던 인물이다. 다르다면 출발점이 호의가 선입견으로 바뀌었다는 것 뿐. 그가 십수년전 <광수생각1, 2, 3>시리즈를 선보였을 때 허술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속에 녹아든 따스함과 나이를 거스르는 재기발랄함,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함에 빠져들었고 금새 읽어 내려가는 책임에도 계속 다시 앞 페이지를 펼쳐 보면서 짐짓 근엄함과 진지함 속에 피로감을 주는 텍스트 위주의 책들에게서 찾지 못하던 저자와의 거리감을 박광수는 뒤엎어 버렸었다.
하지만 세속적인 성공의 여파일까? 불미스러운 일(?)로 일신상에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는 저자에 대한 소식들은 진위여부를 떠나 세상은 선명한 색깔을 탈색시키고 인간을 이도저도 아닌 회색으로 몰아 버린다는 자조 속에 그 또한 변했음에 서글펐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아니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겠지만 내 불편한 시각을 잠재울만한 진정성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느꼈을 무렵... 그가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책은 전작 <광수생각>시리즈에 비해 한결 성장하고 부쩍 깊어진 내면의 성숙함을 드러내며 과거에 대한 회한은 물론 전작에 이어지는 삶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에서 나타나는 그의 시선은 수동적으로 세상에 부대껴서 둥글둥글해진 모습의 투영이기 보다 짙은 페이소스 속에 개인사와 언젠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리를 스스로 감내하면서 자신을 다듬어 가는 인고의 눈물을 안고 있다
전작에 비해 유머스러움도 재기발랄함도 긍정적인 시선도 덜하지만 지나온 십수년이 깨닫게 한 인생의 진리를 여전한 일러스트레이트 속에 차곡차곡 채워 놓았다. 그리고 비슷한 시대를 살았고 누구나 가슴 한켠 아련한 부모님을 떠나 보낸 공통점이 그에 대한 그간의 무심함을 털어 내게하며 있는 그대로 만화가 박광수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지나간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오랜 세파 속에서 또렷해진 나이테가 늘어가면서 커가는 한 그루 큰 고목이 되어 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만화가 박광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간 나는 물론 대학입시에 구속되어 경쟁만을 강요받는 10대들과 지금 인생의 찬란한 시기를 보내는 20대들이 저자의 저작들을 접하면서 그가 겪어왔던, 언젠가 그들도 겪게 될 지독한 감기를 저자의 책으로 힐링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