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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90년 10월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는 소련의 체제 변화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공산당 1당체제가 붕괴되는 격변기로 돌입하였다.
미국 등 서방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인들은 물론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제의 승리요 자본주의가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유용한 경제체제라고 부르짖었다. 미국 단일패권의 세계 질서는 ‘팍스 아메리카나’로 대변되며 20여년을 군림해 왔다.
당연히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어왔던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의 종말을 내다본 <자본론>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시대에 뒤처진 이론과 주장이 되었다.
역사책 속에서나 등장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그들의 영예도 20년을 넘지 못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되었던 미국 경제위기와 이로 인해 지금까지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하는 세계경제 위기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그의 저서 <자본론>을 통해 주장되었던 공황론이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고 왜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했던 위인 중 하나였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칼 마르크스-그의 생애와 시대>는 <자본론>의 저자이자 ‘행동하는 주체’를 강조했던 칼 마르크스의 생애를 다룬 전기이다.
이 책은 1997년 작고한 라트비아 출신의 영국 지성사(知性史) 작가이자 회의론적 자유주의자인 아이자이아 벌린(1909∼1997)의 첫 번째 저서다.
24세 되던 1933년에 사학자 피셔 교수에게서 마르크스 평전을 쓰라는 제의를 받았던 그는 당초 정치학자 라스키 등에게 의뢰했으나 연거푸 사절하는 바람에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라고 회고했다.
자유주의자인 그가 마르크스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 <자본론>은 대학 4학년때 치른 시험의 대상 도서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무척 고생했던 것으로 저자는 회고한다.
자유주의자이다 보니 마르크스에 우호적이거나 편향된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의 생애를 평가하는 점이 인상깊다.
“그는 보기 드물게 어린 시절에 좌절을 겪지도 않고 억압을 받지도 않은 혁명가 중의 하나다”라는 표현을 통해 그가 부유하지는 않았더라도 변호사이자 자유주의적 사상에 영향을 받은 아버지의 후원과 특히 그와 나이 차이를 떠나 깊은 정서적 교감을 유지해 왔던 장인어른인 베스트팔렌과의 인연이 그의 일생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언급한다.
저자는 경제사 측면과 현대 사회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오직 마르크스라고 주장하며 반대론 자들의 주장, 즉 마르크스의 이론적 주장이 헤겔, 포이에르 바하, 생시몽, 바보프 등 자신과 동시대거나 그 전의 공산주의적 이론에 경도된 부분도 있지만 독창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완벽하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매력도 없고 늘 증오에 빠져 있었지만 남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시대 상황에 대한 폭넓고 탁월한 분석에 적들조차도 매료되었다고 기술한다.
대학시절 <자본론>을 분명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낭패감에 사로 잡혔던 기억이 난다. 그당시 <자본론>은 번역본으로서 한계가 있다는 일부의 평에 내 자신의 이해력 부족을 애써 위로해 가며 강신준 교수의 <자본론> 재발행본을 지난해 구입하고 진도는 나지 않더라도 조금씩 읽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자본론>에 대해서는 도전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정작 저자인 칼 마르크스의 생애를 통한 접근은 간과했다는 생각이 이 책을 펼치게 한 동인이었었다. 그의 삶을 통해 사상을 확립해 나가는 배경과 <자본론>이 출간될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상을 알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