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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하는 날
최인석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여기 불륜이 있다. 어릴 적 돈도 없이 먹을 것을 사오라던 철없는 오빠의 횡포에 눌려 울먹이며 장사를 나간 엄마를 기다리던 때국물 묻은 여자아이와 이를 보고 오빠를 혼내주던 말끔하게 생긴 사춘기 남학생.. 어린 여자아이의 눈엔 ‘키다리 아저씨’가 별거 있겠는가? 이 학생이 바로 그 역할이었을 듯 싶다.
이 둘은 어느덧 자라 서로의 가정을 갖고 더 이상의 인연이 없는 듯 싶었지만 늦은 결혼식을 올리게된 장성한 여자아이의 피로연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둘의 삶의 궤적은 전혀 달랐었지만 불륜에 빠지고 만다. 수진과 장우로...
하지만 우리가 보는 불륜이 그들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받아 들여진다. 전형적인 블루컬러 노동자인 상곤과 결혼한 수진은 사랑이 뭔지도 모른채 이른 나이에 결혼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장우와 불륜에 빠지면서 연애감정을 통해 어느 새 장우를 사랑하게 된다. 반면 장우는? 그에게 있어 수진은 늘 있어 왔던, 그저 거쳐 가는 여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오히려 그다지 미모도 몸매도 볼것 없는 수진과 육체적 탐닉을 하는 모습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이 둘을 들여다보는 독자들에게도 생경함을 준다. 과거의 인연만으로는 장우의 감정을 이해하긴 힘들지 않을까?
결국 <연애, 하는날>은 수진과 장우의 관계에 대한 둘의 감정을 드러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서민의 삶을 살고 있지만 행복을 느끼며 때 묻지 않은 환한 미소를 지닌 수진의 감정은 아직 조건이나 환경을 따지지 않던 풋풋한 청춘을 오롯이 가진 ‘연애’로 표현되고 정신적인 교감과 플라토닉한 사랑이 단 한뼘조차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는 장우의 육체에 집착하는 섹스와 여성편력은 ‘하는날’로 표현된다. 결국 대립되는 개념을 지닌 이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부담스러움은 치열한 리얼리즘을 통해 각 등장인물의 모습을 바로 현실 속 우리 주변의 인물들과 치환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제부인 장우에게 들어붙어 오로지 돈만 밝히며 기생하는 두영, 허세만 남은 장우의 장인,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지만 아들의 자살로 무너져 가는 자신을 회생시키기 위해 애쓰는 장우의 아내 서영, 영화감독 대일의 애인이었다가 역주변 작은 화장품점 하나 갖고 싶은 욕망에 기꺼이 장우의 섹스파트너가 되는 연숙...그리고 영화가 망한 후 한 푼 없는 대일에게 연숙이 보내는 장우가 준 용돈은 오로지 돈으로 모든 것이 해제되어 버리는 도시의 쓸쓸한 삶을 보여준다.
수진과 장우의 불륜 또한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아버지에게 기업을 물려 받은 장우는 기업을 매각하고 그 돈으로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들어오는 돈으로 여자를 사고 또 애인을 만들어 하루하루를 쾌락으로 도시의 삶을 채워 나간다. 부족하지만 나름 행복하게 살던 수진은 장우와 사랑으로 차츰 물욕에 허물어져간다.
단순히 아들의 자살이 장우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정신적인 지체부자유자인 장우는 수진의 임신에 매몰차게 그녀를 자신의 영역에서 내몰아 버린다. 떠나간 자식에 대한 상처를 새로운 생명을 통해 속죄받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장우는 저버린다.
마치 이 책을 읽는 내게 ‘임마! 이건 현실이야..아마추어같이 뭔 소리야??’
<연애, 하는날>은 불륜과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기반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가정의 붕괴 등 현재 우리 주변을 관통하는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아 물질적이고 감각적 쾌락에 몰입하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모습을 담담히 그려낸다. 인생의 목표나 삶의 가치관은 자기계발 서적 속에나 있는 것일뿐 현실은 그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이 벌이는 갈등은 극한까지 치닫다가 어느 순간 뭔일이나 있었냐는 듯이 일상으로 되돌아 온다. 당혹스럽다. 하지만 현실이 또한 그렇지 않을까? 인생은 비극이란 것을 저자는 장우와 수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을 통해 깨닫게 해준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게 인생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