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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ㅣ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에 버금가는 20세기 최고의 소설이 있다. 바로 바실리 그로스만이 지은 <삶과 운명>이다. 이 소설은 저자가 2차세계대전 중 가장 비극적이고 극한의 전쟁터로 유명했던 스딸린그라드 포위전에 종군기자로 참여하면서 겪은 일들을 소설 속 인물을 설정해 그려냈다. 이 소설이 기념비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실제 경험한 전쟁이라는 살육과 절망이 교차하는 스딸린그라드의 참극 속에서 전체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등 이데올로기를 맹종하는 독일과 소련을 냉철하게 분석해 모순과 비리 측면에서 두 국가는 차이가 없음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통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 소설은 스탈린과 체제에 대한 비판 때문에 반소비에트 작품으로 금서가 되버렸고 구 소련체제하에서 10년(1950~1960)에 걸쳐서 완성한 노력도 허사로 돌아가, 자신의 책이 출판되는 것은 지켜보지 못했다. 흔히 의식적으로 20세기의 '전쟁과 평화'로 평가돼 온 이 불굴의 대하소설은 스딸린그라드 대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한 가족이 겪은 비극적 삶을 묘사한다.

지난 2007년 월스트리트저널은 <삶과 운명>을 20세기 걸작 소설의 하나로 꼽기도 한 소설은 1942년 가을부터 1943년 봄까지 반년간을 배경으로 모스크바에서 카잔으로 피난 온 물리학자 시트룸과 그 가족들,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를 세 축으로 삼아 전개된다.
저자는 소련군이 폴란드로 진격할 때는 탈환하는 도시로 들어가 트레블링카 등지에서 나치가 저지른 끔찍한 만행의 결과도 두 눈으로 생생히 목격했으며 소련군의 베를린 함락과 소련군이 전쟁에 패배한 독일인들에게 저지른 만행들까지도 그는 꼼꼼한 기록으로 남겼다. 두 전체주의 세력인 나치즘과 스탈린 체제 공산주의 정권의 대중동원, 강제노동, 대학살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폭력성과 인간성이 사라진 시기에 저자는 일개 개인이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을 잃지 않은 채 행하는 선(善)을 강조한다. 그리고 소설속 에피소드를 통해 충실히 구현해 낸다. 이 책이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점에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전체와 집단의 이익을 내세워 개인을 억누르고 자유를 말살하려는 세력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고 또 출현할 수 있기 때문에도 나치즘과 스탈린주의가 사라졌다고 해도 우리와 같은 독자들이 '삶과 운명' 같은 작품을 여전히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