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사라진다 - OTT에서 영화제까지, 산업의 눈으로 본 한국영화 이야기
이승연 지음 / 바틀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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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소년기를 거치던 1980년대 중후반은 그야말로 홍콩영화의 전성기였다. 그 시기를 경험한 세대들이라면 어두운 영화관 좌석에서 갑자기 둥~~~, 빰빰빰빰~하고 빨간색 로고가 나타나던 골든하베스트(1980~1990년대 아시아를 석권하던 홍콩 최대 영화사로 성룡, 홍금보, 원표 등 액션배우들의 영화를 제작했다)와 주윤발을 페르소나로 느와르 영화 전성기를 연 오우삼의 영화등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홍콩의 중국반환과 자기복제에 가까운 특정장르에 집착한 영화 제작의 고집으로 무너진 홍콩영화는 이제 회생 불가 판정을 받은지 오래며 늙은 성룡이 중화권 매체에 나타나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회고하며 한국영화의 발전과 전세계적인 인기를 부러워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한국영화는 무사할까?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비영미권 작품으로는 세계 최초로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석권하고 OTT플랫폼으로 유명한 넷플릭스에서 제공되는 <오징어 게임><글로리>는 전세계 넷플릭스 이용자라면 누구도 알 수 있을 정도로 K-한류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시점에 한국영화의 위기를 언급하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영화가 사라진다>를 읽고 나면 심각한 국면에 접어든 한국 영화계에 조종(弔鐘)이 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결코 기우가 아님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미 관객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상승한 관람료를 부담스러워 하며 작품 선택에 있어서 더 냉철하고 보수적으로 판단하는데 관람료 상승을 이유로 들고 있다. 영화만 고집하던 자존심 강하던 S급 배우들도 어느 순간 슬금슬금 드라마에 모습을 들이밀고 있다. 천만을 훌쩍 넘었던 영화 명량의 후속작 한산은 절반 가까이 관객이 줄어들었으며 시리즈 마지막 편인 노량의 흥행도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영화가 발전하고 양질의 영화 제작이 지속되려면 극장의 수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미 많은 극장들이 문을 닫고 있는 형국에서 어떻게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해법으로 우선 해묵은 폐단의 척결에 있다고 강조한다. '스크린 독과점''수직계열화'로 대표되는 멀티플렉스가 영화 콘텐츠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한국영화산업의 가치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이미 과거에도 나왔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데서 한숨부터 나온다. 저자는 극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서 정체성을 찾고 다양성과 연결되는 좋은 영화, 콘텐츠를 승부를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OTT성장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한국 영화산업과 넷플릭스가 상생하는 대원칙의 도출이 그 어느때보다도 시급하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공급처이자 문화산업의 핵심분야이기도 한 영화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국내 출판가에 거의 처음 출현한 책이 아닐까 싶다. 많은 영화인들과 대중문화 관련 정책당국 관계자들도 함께 읽고 고민해야 할 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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