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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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흘러 들었던 얘기들...그리고 시큰둥해 하던 말들.... 어느새 라때는 말야로 치부되지만 그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삶을 이어 오면서 차츰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어선 지금 자연스럽게 생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도 점차 비중이 커지기 마련인가보다. 난 행복한 세대다. 태어나 어릴때부터 지금 5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내 가족과 가족을 둘러 싼 사회, 국가는 발전을 거듭했다. 소박한 소시민의 자식이었지만 성실하시기만 한 아버지와 돌아가셨지만 늘 유머를 잃지 않았던 어머님의 미소 속에 충분하진 않더라도 부족하게 살진 않았다고 되돌아 본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때라 인지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임종과 달리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을 보내신 어머니와 생존해 계시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치매로 힘겨운 아버지, 사위와 딸의 속삭임에 눈물을 흘리시던 장인어른의 마지막은 정말 지랄(?)같이 밝은 햇살이 스며들던 아름다운 봄날의 병실... 그리고 술을 마신 후 터벅거리며 돌아오던 늦은 밤 귀갓길에...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누님, 형을 보내고 난 후 내가 세상을 뜰 거라는 두려움...사랑하는 내 두 딸과 아내를 놔두고 먼저 갈 가능성이 높다는데서 오는 걱정... 죽음은 이제 차츰 나한테 다가오는데 거부하거나 외면하진 못해도 이젠 죽음에 대해 좀 더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과정중에 읽은 책이 <죽음이 물었다-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냐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을 보살피는 완화병동(우리 표현으로는 호스피스병동)의 의사인 저자는 많은 이들이 죽은 것처럼 살아가지만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멋지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한다. 그렇다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난 태어났다지만 내 인생의 마무리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어야는게 합당하지 않을까? 그래서 최근 인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의 마지막은 한 국가를 짊어질 정도로 큰 기업을 이끌었던 시절에 비해 초라하기만 하다. 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한 자들은 의미 있는 죽음을 가질 기회도 가망도 없다는 표현에서는 죽음이 물었다는 실체가 삶에 충실했는지 여부일지 모른다. 적어도 진양철 회장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테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지켜보는 저자는 그래서 더욱 삶에 의미를 두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우리도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앞서 좀 더 남은 삶을 의미있게 살고 싶은 마음에서 아닐까? 그 의미에는 자식이나 연인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으로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는 자세만이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임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소중한 것은 바로 어떻게 살아가는 자세일 것이다. 나보다 가족, 우리, 사회를 더 생각하는 동양적 사상과 차이가 있지만 인생의 주인으로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을 것이다. 깊은 사색의 시간이 된 이 책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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