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캠페인 - 미국을 완전히 바꿀 뻔한 82일간의 대통령 선거운동
서스턴 클라크 지음, 박상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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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역개루 카페와 모던아카이브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응모하여 썼음을 알려 드립니다.


로버트 프랜시스 케네디(이하 RKF)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가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이하 JFK) 대통령의 친동생이자 최측근으로 정실 인사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법무장관 자리에 올랐으며,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소련이 그를 JFK의 핵심 측근으로 파악하고 비선 접촉을 하며 사태를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게 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RFK는 당시 경험을 다룬 회고록 『13일』을 출간하였고 한국어판으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RFK가 1968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으며 불행이도 암살당했다는 것은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75년에 첫 저작을 출간한 베테랑 미국 언론인이자 논픽션 작가인 서스턴 클라크의 『라스트 캠페인』 (모던아카이브, 2020)은 저의 지적 공백을 매워주기에 좋은 저작이었습니다.


RFK가 대선에 출마한 1968년은 전 세계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서유럽에서는 68혁명이 맹렬한 기세로 사회 곳곳을 뒤흔들었고, 프라하의 봄은 바르샤바 조약군에 진압되었으며, 한반도에서는 1.21 사건과 푸에블로호 피격 등의 북의 무력도발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미국 또한 최악의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전은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되었고, 상류계급 사람들은 군복무를 빠져나가며 하층민에게 불리한 징병제도는 격렬한 반전운동을 일으켰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백인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당하며 흑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2008년에 미국에서 The Last Campaign: Robert F. Kennedy and 82 Days That Inspired America(New York: Holt Paperbacks, 2008)으로 출간된 『라스트 켐페인』은 이 시점에서 RFK는 이 시점에서 민주당 경선출마를 선언한 RFK를 자세히 보여줍니다. 저자 클라크는 RFK의 경선출마부터 그가 6월에 암살당할 때까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그의 선거운동과 연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RFK가 암살당한 후 미 전국을 뒤덮은 추모 열풍부터 시작하며, 어쨰서 RFK가 그렇게 전국적인 사랑을 받았을 수 있었는지 그의 선거운동 과정을 재구성하며 보여줍니다.

클라크가 중점에 둔 것은 RFK가 보여주는 무모할 정도의 솔직함이었습니다. 클라크의 책에서 재구성된 RFK는 핵심 지지층을 어떻게 챙길 것인지, 민주당의 핵심 표밭에서 기존 표가 이탈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는 솔직히 느낀 대로, 생각한 대로, 자신이 믿는 바를 사전에 계산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갈파하였습니다. 빈민가의 끔찍한 현실에 눈돌리지 않고 그곳으로 가서 눈물을 흘리고, 그 또한 백인 도련님에 불과하다며 증오심을 드러내는 흑인들과 한 자리에서 킹 목사를 같이 추모하여 인디애나폴리스의 흑인 폭동을 진정시키고, 대학생의 징병유예를 대학생들 앞에서 비판하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에 당장 무력보복을 가해야 한다는(아마 푸에블로호 사건 떄문?) 상류층 대학생에게 "먼저 입대하세요."라고 하는 신랄함을 보이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힘들고 짐진 자들의 친구이자, 그들의 삶을 개선시켜줄 수 있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 나옵니다.


책 속의 RFK는 절대 보좌진들이 꾸미고 이것저것 고려한 연설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보좌진들의 우려를 살 정도로 즉흥적으로 발언하고, 그것에 마음을 담으며, 뛰어난 유머감각 덕에 반대자들도 비호감을 품지 않게 만드는 사람으로 재현됩니다. 그의 행동은 어느 계층에서건, 그를 위대한 정치인 "바비(로버트의 애칭)"로 보며 찬성하건, 그저 철모르는 이상주의자 도련님으로 보며 반대하건 간에 충분히 진정성 사람으로 비춰지는 모습이 책 속에 드러납니다. 그 점에서 RFK가 정말 책에 묘사된 것처럼 오직 심장만으로 즉흥적으로 행동한 건지, 아니면 그 즉흥성도 극히 정교하게 계산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RFK의 열띤 모습이 책 속에 워낙 생생하게 드러나는지라, 감정이입을 잘 하는 독자분은 책 속의 RFK 지지자들처럼 "바비!", "우리는 바비를 원한다!"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논픽션이지 연구서가 아닙니다. RFK가 당시 구사한 선거전략과 정책의 현실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보다는, 그가 보여준 열정에 뜨거운 감각을 느끼는 걸 더 선호하는 사람에게 맞는 책입니다. 그만큼 논픽션의 가장 큰 미덕인 현장감을 갖춘 책으로, 당시의 열기를 느끼고 싶은 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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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들의 행진 - 유교인의 건국운동과 민주화운동
이황직 지음 / 아카넷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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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연구에서, 유림은 소외된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소위 "근대화" 물결에 반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 수구세력이자 "봉건"(조선왕조가 봉건제를 시행하지 않았음에도!) 세력으로 낙인찍혔고, 위정척사만 내세워 비좁은 세계관에 갇혀 개혁세력에 반대하려 한 집단으로 기술되었습니다.


유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들이 주도한 1910년대 의병항쟁에 대한 인식도 훼손했습니다. 평민 의병장인 신돌석을 양반 의병장들이 소외시켰다는 소설 속 이야기가 기정사실로 둔갑했고, 13도 창의군의 수장 이인영이 부친상 때문에 한성 진공을 포기했다는 표면적 사실이 무슨 유림의 한계인 것처럼 비춰졌습니다. 13도 창의군의 한성 진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진공을 멈추어야 했던 상황에서 부친상을 명분으로 삼았던 것은 고려되지 않고 말입니다. 유림의 의병항쟁은 그것을 삐딱하게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구체제 기득권 세력의 저항 정도로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영훈과 박노자가 의병항쟁을 보는 시선이 공통분모를 이루는 시선이 위와 같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유림의 활동 또한 그런 식으로 비춰졌습니다. 간재 전우가 승려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3.1운동에 참여를 거부했다는 일화는 무슨 유림 전체가 다 산 속에 파묻혀 현실도피나 했다는 식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식민지 지배세력이 구체제 기득권 세력을 포섭하고 이용해 식민지의 근대화를 방해한다는 레닌주의의 이론에 따라 유림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고려되지 않은 채 그들을 지배체제에 순응한 '친일지주'로 낙인찍는 경향도 생겼습니다.


또한 유학의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적 특성이 독재체재를 옹호한다는 공격과, 실제 일제의 이른바 '황도유교' 및 박정희 정부가 유학의 몇몇 개념들을 독재체제 국민만들기에 적용하면서 유학은 민주주의 사회와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매도되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잡서인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그 대표일 것입니다.


이러한 서사는 근대중심주의의 산물입니다. 서구적 근대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들을 없어져야 할 것들로 규정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역사의 중심서술에서 제외하는 근대중심주의는 역사서술에서 많은 자들을 소외시켰습니다.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개화파와 계몽운동가들의 시선과 당시대 비판이 주로 소개되었고, 이들에 대한 유림의 반박은 제대로 된 고찰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유림은 피상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인 존재로만 기억 속에 남았고 그들이 과연 그때 무엇을 하였는가는 망각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정래의 『아리랑』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 서사에서 유림은 계몽주의적이고 진취적인 주인공이 일제와 더불어 맞서야 할 대상으로 기술되었습니다. 각종 삼류 대체역사물에서 유림은 소위 "근대화" 방해물이란 이유로 학살 수준으로 쓸려나가고, 저급하고 자극적인 것만 찾는 한심한 독자들은 이걸 '사이다'라고 추잡스런 욕망을 충족시킨다며 좋아합니다. 무지함과 지적 태만이 자아낸 참으로 끔찍스러운 단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림이 5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나라를 이끌어 왔으며,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당대 평범한 백성들에게 강고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이들에 대한 소외와 무시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심지어 해방 이후까지의 역사를 제대로 재현할 수 없게 만듭니다.


조선의 유학사를 보면, 소위 "유교 탈레반"이라는 끔찍하고 천박하며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비하성 발언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당대의 지배적 학문인 성리학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시대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용되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중화론의 대두는 공자, 맹자, 주자의 가르침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변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렇게 하였던 퇴계, 율곡에 대한 탐구로 독자성을 띄게 되었으며, 하층계급의 성장으로 인한 신분질서의 해체는 중화와 오랑캐 사이에 명확한 선을 것지 않고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낙론 성리학으로 변용되었습니다.


또한 19세기 초 세도정치기에 유림은 민란의 주체이기도 하였습니다. 임술농민봉기의 주역인 류계춘을 비롯한 자들은 농민들을 지도하고 무장시킬 재력과 명망을 가진 양반 지주들이었고, 이들은 정조 시대 수령권력 강화와 세도정치가 결합된 관의 수탈에 맞서 무장봉기를 주도하였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졌을 때, 전라도의 유림들은 봉기가 일어날 만 했다며 봉기를 옹호하는 상소를 조정에 올렸습니다. 이들은 결코 민중과 유리된 존재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들과 가까이 지내는 자들이었습니다. 동학의 교리와 논리 또한 유학의 구호와 표현들을 담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전개를 볼 때, 당대 유림이 일제강점기의 폭압 앞에 어떻게 저항했으며, 그러한 저항이 1960년 4.19 혁명까지 연결되는 연속성을 탐구한 저서가 바로 『군자들의 행진』입니다.


제목 "군자들의 행진"은 4.19 혁명의 상징적 장면 중 하나인 교수단 데모를 말합니다. 경찰의 학생시위 유혈진압에 교수들이 4월 25일에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는 플랜카드를 내걸고 가두행진을 벌인 것이었습니다. 저자 이황직 교수는 이러한 행진이 일제강점기 유림의 저항과 연속성을 가지는 것임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유학이 현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느냐의 여러 논쟁들을 보고, 이 논쟁들이 유학의 이론에 대한 분석에 집중되었으며 실제 유림이 서구적 민주주의의 등장에 어떻게 반응하고 변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연구서를 집필했습니다. 이 저서는 심산 김창숙을 비롯한 유림 독립운동가들이 일제강점기, 해방전후, 그리고 이승만 독재시기에 어떻게 저항하고 정치적 활동을 하였고, 그들의 논리는 무엇이었으며, 변화하는 시대상에 따라 유학의 논리를 어떻게 변용하였는지 고찰하고 있습니다.


저자 이황직 교수는 유학의 근본 사상인 민본주의가, 당대 유림에게 민주주의로 변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은 의병항쟁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으로 일시적으로 잠잠해졌으나, 3.1운동 이후 진행된 파리 장서 사건으로 결합하여 강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였습니다. 이 학맥의 네트워크에 속한 여러 유교인들은 신간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 참여하거나 위당 정인보를 중심으로 조선학연구를 주도하며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며 일제에 유무형적 저항을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부분이 어땠는지는 저도 책을 본지 시간이 흐른 관계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들의 행동이 어느 종교 못지 않게 치열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해방전후 김창숙의 유도회총본부로 집결한 유림 인사들은 임정봉대운동을 비롯하여 민족주의 진영의 한 축으로 자리잡으며 일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유교적 이상국가를 건설하자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유교인들와 아나키즘 운동가들의 결합이었습니다. 국가주의, 권위주의적이라는 유교와 권위를 파괴하고 저항하려 하는 아나키즘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냐고 놀랄 사람들이 많겠지만, 본디 공자와 주자가 국가권력이 개인의 생활에 깊숙히 개입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해 왔음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 아니겠습니다.


이러한 유림의 강한 정치의식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승만의 강력한 반대자 중 하나였던 김창숙이 적극적으로 독재에 저항한 것은 유명합니다. 그리고 4월 25일 교수단 데모에 나선 교수들은, 조선유도회의 네트워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대 유림의 학맥적 후예들로 여전히 존재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시위 일선에 나서며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 내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로서 미국적이고 기독교적이고 "근대인" 독재자인 이승만은, 한국적이고 유교적이고 "전근대인"들이 참여한 민주화운동에 끌려 내려와 하와이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근대/전근대의 공고한 도식이 허물어지는 광경인 셈입니다.


이황직 박사의 이 책은 최근의 역사에서 소외된 유림을 편견과 천박한 비난에서 벗어나 다시 제 자리로 돌리는 훌륭한 저작입니다. 이 책이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에 이렇게 소개하니 다들 일독을 권합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시간적 배경이 4.19까지라 그 이후에 유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서술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후 유학 운동의 쇠퇴와 비정치화가 원인이라긴 하지만, 언젠가는 이 부분도 탐구한 연구가 나온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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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신화와 진실 - 독소전쟁과 냉전, 그리고 역사의 기억
로널드 스멜서 외 지음, 류한수 옮김 / 산처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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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국방군과 무장친위대는 PC통신 하이텔 군사동과 잡지 『취미가』창간호가 나오던 시절부터 적어도 2010년대 극초반까지 국내에서 효율성과 간지의 상징이었습니다. 유연함의 극치인 임무형전술, 장군참모대학의 철저한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유능한 장교단, “전격전”이란 용어로 대표되는 기갑지휘, 미하엘 비트만과 오토 카리우스로 대표되는 전차 에이스, 뛰어난 전투효율을 입증해 주는 것 같은 '교환비', 티거와 판터, 쾨니히스티거를 비롯한 간지나는 기갑차량과 Bf109, Fw190을 비롯한 전투기, 회고록이 세 개나 번역되어 있는 유보트, 그리고 간지나기 이를 데 없는 군복까지. 


이런 독일군은 국내에서 오랫동안 팬덤을 구축하였고, 국내 인터넷상 군사 분야 인식에 이러한 인식을 만들었습니다. 


만슈타인, 구데리안, 롬멜을 비롯한 독일군의 장교단과 병사들은 나치즘과 무관하게 조국 독일을 위해 싸웠으며, 전쟁을 제대로 모르는 정치가 히틀러의 간섭에 저항했고, 적국인 미군의 찬사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전투력을 보여주었으며, 홀로코스트와 무관한 존재라고 말입니다. 미국과 일본에 만연한 "깨끗한 국방군 전설"이 바로 이것입니다.


국군 장교단 또한 이러한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냉전의 최전선에 있던 집단인 만큼 그런 군사적 효율성을 자랑하는 “명예로운 군인”의 표상에 관심과 애정을 표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완전히 허구임을 드러내는 서적들이 국내에서 출간되어 퍼지면서 더 이상 인터넷상에서는 이게 주류적인 설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라울 힐베르그의 기념비적인 홀로코스트 연구서와 고려대 최호근 박사의 서적은 독일국방군이 홀로코스트의 일부였음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프리 메가기의 『히틀러 최고사령부』(플래닛미디어, 2008, 2017)은 독일 장군참모집단에 내재된 조직론적 문제와 비효율성을 짚어내었으며, 볼프람 베테의 『독일 국방군』(미지북스, 2011)은 깨끗한 국방군 전설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일국방군이 홀로코스트의 주체이자 일부임을 폭로하였습니다. 제라드 와인버그의 3권짜리 제2차 세계대전 통사도 독일군과 홀로코스트의 관계를 지적하고 있으며, 독일 군사술의 핵심으로 단기잔의 기동 작전술로 단기결전을 치른다는 '작전적 사고'가 독일군을 파멸로 몰아넣는 기제가 되었다는 연구서도 출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일군의 인물인 만슈타인, 구데리안, 롬멜, 갈란트, 슈코르체니, 폰 루크, 카리우스 등의 회고록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독일군의 시야로 제2차 세계대전사, 특히 독일의 소련 침략으로 시작된 대조국전쟁을 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터넷 상에서 독일 애호 경향이 대놓고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독일군 소재의 책은 여전히 시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독일국방군 팬덤의 존재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결단코 아닙니다. 이것의 원조는 다름아닌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거대한 시장 덕택에 영미권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관련도서나 출간되었고 일종의 서브컬쳐를 형성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의 말단 정도만 맛보았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영미권의 "깨끗한 독일국방군 전설"의 형성과정과 그것이 미국의 서브컬쳐에 미치는 영향을 깊숙히 파고든 책이, 바로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신화와 진실 입니다. 원제 『동부전선의 신화: 미국 대중문화속의 독소전쟁』(The Myth of the Eastern Front: The Nazi-Soviet War in Amercian Popular Culture)은 유타 주립대학의 홀로코스트 연구자인 로널드 스멜서 교수와 에드워드 데이비스 주니어 교수의 공저작입니다. 스멜서 교수는 이전에 여러 연구저작을 발간하였고, 데이비스 교수는 2007년 기준으로 비교적 신예인 교수였습니다. 상명대학교 류한수 교수님의 명성이야 이전에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이 책은 효율적이고 뛰어나며 홀로코스트와 무관하고 히틀러와 갈등했다는 독일군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 적나라하게 파해칩니다. 


책은 냉전시대 미국이 소련과의 충돌 대비와 아군이 된 서독을 포용하기 위한 "실용적" 선택으로서 수백명의 장교 전범 중 대다수를 석방하게 되늰 과정, 깨끗한 국방군 전설의 서사를 만들고 전파하는 과정, 미국인의 반공주의와 러시아혐오증이 독일국방군과 무장친위대 장성들이 가진 극우 인종 이데올로기를 외면하거나 오히려 써먹는 과정, 베트남전 전후 독일군이 미군 개혁의 모델이 되며 독일군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그러니까 각종 통계수치 활용으로 “효율적”으로 보이게끔 보이게 서술한 여러 연구들이 독일국방군과 홀로코스트를 분리하며 독일군 찬양에서 죄책감을 거세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후에는 서방세계의 일부가 된 독일국방군 장교단의 회고록에서 드러나는 자기미화의 서사와 그것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크림반도 유대인 90,000명의 학살을 외면하고 오히려 아인자츠그루펜에 학살하고 약탈한 유류품을 나눠달라고 한 만슈타인, 히틀러에게 엄청난 부동산을 받아챙긴 구데리안, 슈투카 에이스이자 진성 나치였던 루델, 인종주의적 관점을 대놓고 회고록에서 드러낸 멜렌틴 등이 말입니다.


특히 책이 다루는 것은 미국의 밀리터리 서브컬쳐입니다. 역사학 전공자나 학계 사람이 아니면서도 그저 독일국방군과 무장친위대에 대한 팬심 하나로 1차사료까지 참조하며 독일군 팬보이 서적을 써댄 사람들(이른바 ‘본좌’들)이 열거되며, 그들이 가진 인종 이데올로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 뒤에는 한때 국내에서도 소스로 인용된 적이 있던 악퉁판처닷컴을 비롯한 군사동호인 사이트들이 분석 대상이 되며, 인터넷상 독일군 애호가의 심리와 사상을 오프라인의 독자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책의 묘미입니다. 이들의 책에서 독일군 팬덤과 리인액터들은 독일군 계급체계를 가지고 군대놀이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됩니다. 책에서 한 리인액트먼트 단체가 독일군 참전자를 모셔와 열심히 리인액트를 했는데, 참전자가 "다들 너무 뚱뚱하다."라고 한 부분은 실소를 터트릴 만할 대목입니다. 


이러한 폭로는 군사 서브컬쳐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만큼, 아마존에서 책에 대한 별점테러를 낳았습니다. 깨끗한 독일국방군의 실체를 다룬 볼프람 베테의 책이나 오메르 바르토프의 책에 달린 별점테러보다 더 많이요. 대게 "학자라고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마라.", "저자들은 PC충이 틀림없다."등의 불만 가득한 아우성입니다. 자기들은 나치즘과 무관하게 순수한 취미가일 뿐인데, 왜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냐는 겁니다.


아마존에 달린 별점테러들처럼, 자신을 순수히 나치즘 및 인종주의와 무관하게 자기 취미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이 책을 매우 불편하게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2017년 미국 버지니아주 살러츠빌에서 일어난 사태를 생각하면, 취미생활이 공격당했다는 불편함보다 더 경각심이 더 앞서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샬러츠빌에서 남부연맹의 영웅 로버트 E. 리의 동상이 인종주의의 상징이 되며 철거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찬성 시위대와 극우 반대 시위대가 격렬히 충돌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반대 시위대의 제임스 알렉스 필즈 주니어라는 자가 자기 차를 몰고 찬성 시위대로 돌진해 여러 명을 죽거나 다치게 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필즈는 독일국방군과 무장친위대에 심취한 인물이었으며, 고등학생 시절에 독일군의 전술에 대한 높은 수준의 리포트를 제출한 사람이었습니다. 독일을 자기 조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증이었던 필즈는 역사 선생이 그를 교정하려 애를 썼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저자들이 우려한, 독일군에 대한 애호와 극우 인종주의의 결합이 빚어낸 사태가 실제로 일어난 버린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군사 분야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더 높은 지적 저변으로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계기로 삼으신다면 불편함을 딛고 더 큰 발전을 이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의 경우 이 분야에서 국내 독보적인 전문가이자, 디펜스코리아에 가입해 글을 쓰며 국내 인터넷 문화에도 익숙한 상명대학교 류한수 교수님이 훌륭하게 해내셨습니다. 작중 역사학자가 아닌 무장친위대 애호가를 Guru라 칭하는데, 이는 힌두교의 영적 스승을 말하는 동시에 비전문가이면서 팬덤에게 숭배받는 지식 전달자를 말합니다. 류한수 교수님은 이 Guru를 깔쌈하게 “본좌”로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생소한 인명이나 용어에는 다 역자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찬탄을 자아낼 세심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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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4-23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리뷰 잘 봤습니다.^-^ 읽어야할 책이 한권 더 늘었습니다.
 
8월의 폭풍 - 1945년 8월 9-16일, 소련의 만주전역 전략 공세
데이비드 M. 글랜츠 지음, 유승현 옮김 / 길찾기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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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9일, 소련군 150만이 만주의 75만 일본 관동군을 섬멸하기 위해 펼친 공세작전은 일본의 항복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으며, 중국의 공산화와 남북한의 분단이라는 동북아 냉전의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이 작전이 가진 중요성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구 세계에서 거의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된 서구의 제2차 세계대전사 통사들은 만주작전을 단 1-2쪽에만 할애하는 경향이 있고, 몇몇 도서는 아예 몇 줄로만 끝내 버립니다. 만주작전이 한국사와 큰 관련이 있는 관계로 국내에 관련 연구들이 여럿 있기는 하나, 남북분단의 배경과 동북아 냉전의 시작이라는 국내정치 및 국제정치적 소재로만 다루었지 작전 자체는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역자인 저는 한국 독자의 이러한 지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주작전을 순수히 군사작전의 관점에서 분석한 『8월의 폭풍』을 번역해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8월의 폭풍』의 저자 데이비드 M. 글랜츠 박사는 미군 대령 출신으로 소련 군사사 연구의 권위자로, 인생의 전반생을 소련군에, 특히 소련군이 사실상 세계 최초로 개념화하고 명문화한, 전략과 전술의 중간 개념인 "작전술" 개념 연구와 적용에 바친 사람입니다.

이 책은 글랜츠의 소련 군사사 연구의 실질적인 시발점이었습니다. 당대 서구 세계는 몇몇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소련군에 대한 반공주의와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패전한 독일국방군의 장성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고 전후 서독 사회에서 예전에 누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냉전의 동서대립 속에서 서구 세계에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독일군의 군사적 업적을 추앙하고 독일국방군이 나치즘과 거리가 먼 순수 군사조직임을 부각하는 동시에, 적국 소련군을 무조건적인 정면돌격(이른바 "우랴돌격")과 인해전술밖에 모르는, 군사술이라고는 없는 군대로 폄하하였습니다. 이는 냉전이 시작되며 반공주의와 러시아혐오증이 절정에 달한 미국 사회에서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포트 레븐워스 미육군 지휘참모대학의 전임강사로 근무하던 글랜츠의 연구는 그러한 시선에 강력한 도전을 하였습니다. 냉전의 절정기이자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던 1983년에, 글랜츠는 만주 작전을 연구하며 소련군의 군사행동이 독일국방군 인사들이 주장했던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랜츠는 이 책에서 만주작전에서 소련군의 작전준비와 작전실행을 철저히 분석, 어째서 소련군이 만주작전에서 단기간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대한 작전준비, 적의 의표를 찌르는 기동, 고속으로 적을 포위섬멸한다는 작전개념과 일본 관동군의 오만과 어리석음이 복합된 이 작전을 분석하며, 글랜츠는 이 작전이 "미군에게도 전술적 관심사 이상"이 되어야 한다며 소련군을 배우자는 함의를 담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책이 재현하는 소련군의 대규모 기동전이 만주사변으로 시작된 일본 제국주의의 폭주와 동아시아 침략을 주도하고 731부대의 생체실험으로 끔찍한 비극을 일으킨 악당 군대 중의 악당인 관동군을 조각조각내고 내장을 헤집어내는, 박진감 넘치는 광경에서, 분단의 배경이라는 점에서 벗어나 군사작전의 전개로만 본다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글랜츠의 주장은 냉전의 최절정기에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주장이었습니다. 어느 나라건 가장 보수적인 조직인 군대에서, 증오해야 할 소련군의 업적을 인정해 주고 적에게서 배우자고 하는 책은, 아마 1950년대 초반 매카시즘 시절이었다면 빨갱이로 몰릴 수 있는 위험한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이 1983년은 1953년이 아니었고, 30년의 시간 동안 미합중국은 훨씬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글랜츠는 역자인 본인과의 메일교환에서 이데올로기적 오해와 비난을 산 적이 있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그런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학술적 진리탐구와 미군의 발전을 위하여 용기를 가지고 이러한 연구를 한 것이 글랜츠의 뛰어난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국내판의 가장 큰 장점은 원문에는 없는 글랜츠 박사의 미출간 원고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글랜츠 박사가 제게 보내주고 공개를 허락한 이 원고는 1945년의 만주작전과 1991년 걸프전의 "사막의 폭풍" 작전의 유사성을 비교분석하는 원고인데, 이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두 작전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1980년대 미군의 발전과 걸프전을 보는 새로운 시각까지 생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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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9-07-2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님의 좋은 리뷰 잘읽었습니다. 저 또한 읽고 싶어 집니다. 8월에는 꼭 읽겠습니다.^-^

NamGiKim 2019-08-1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정맘 2019-12-29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