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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하게 해봐
정정희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4월
평점 :
∥2004. 03. 24∥
[도서]널 사랑하게 해봐
등단 7년이 지나 처음으로 선보인 작가의 단편집. 이제껏 읽어왔던 장편소설보다 그 깊이가 더욱 묵직하게 느껴졌다.
널 사랑하도록 만들어봐. 날 일어나게 해봐. 날 걸어다니게 해봐. 날 뛰게 해봐.
장편소설보다 더욱 깔끔하게 마무리된 참신한 비유, 감각적 문체, 생의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진 고통, 고독, 불안, 권태, 상실, 결핍, 망각, 고립. 때로는 무심함에 가까운 감정 처리, 때로는 무의미한 일상을 한 단계 끌어올려 농담조로 툭툭 던지는 게 건방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리 가볍지도 않은 단편들.
늘 무언가에 두려움을 느끼는 미처 성숙되지 못한 자아, 혹은, 자신의 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지루해하고 동요하고, 불안에 시달리는 신경질적인 자아. 사회에 호소하고, 자신의 고통을 알아달라 주변인을 무의식적으로 괴롭히는 이들, 상실, 망각, 결핍, 불안, 권태, 고립 등등을 삶의 숙명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벗어날 수 없이 신경증을 겪는 자들. 정정희 소설의 주인공들의 공통된 모습.
의사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닮은 소설. 하지만, 독자들에게 끈질기도록 소통을 요구하는 주인공들이 가득하다.
잔혹한 듯 하면서도, 애처롭고, 분리불안, 신경증에 시달리는 주인공들을 현대사회에 빗대어 예리하게 포착하여 역설적인 비유로 고루 닮았고, 이전의 장편소설들보다 더욱 완성도가 높아진 단편집이다.
제목만으로 단순한 "연애소설"이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 될 뻔한 생의 본질에 다각도로 접근한 고요한 깊이가 느껴지는 성숙한 소설들이다.
(나의)교보 북로그에 이미 올렸던 글입니다.
쭉 정리하고 나서, 새 리뷰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