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 1주일하고도 하루 지나서, 서재에 페이퍼를 쓰는 듯. 신간 목록을 살펴보니 꽤 여러 가지, 그 중에 취향이나 배움과 관련한 선별(;)을 거쳐서 몇몇 도서를 담아둔다.
5시 57분
스물네 살의 젊은 비평가에게서 '전통적 비평 담론에 기대지 않은 새로움'과 '우리 문학의 최전선의 상상력을 탐문하는 전위적 비평 감각'을 읽어냈다.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 허윤진의 지난 4년간의 비평 활동을 담은 비평집 <5시 57분>이다.
: 매장에서 직접 들춰보고 돌아와서 검색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평을 좋아한다. 리뷰만 해도 그렇다. 특정한 책, 음악, 그림 등 여럿 계열 중, [스토리, 리듬, 분위기, 등등의 작은 집합]에서 개개인이 느끼고 생각한 그 영상의 무수한 영역은 카테고리로 분류해도 그 범위가 어마어마할 것 같다. 풀어내는 글도 상당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선호하는 방식이 다르고, 끌어오는 아이템의 이미지도 가지각색일 테고. 나랑 친구랑, 비평가 자신만의 특별한 해석을 펼친 듯해 이끌렸다. 바로 주문할 수 있을 만큼 열광 모드.
조대리의 트렁크
문학에 하나, 둘의 목표나 목적이 없다는 것이 때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문학은 그냥 '하는 것', 언제나 '과정중에 있다'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는 것' 진행형의 사랑, 그 자체가 언제나 삶의 목표이고 목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리하여 소설에게 '넌 언제나 내게 신성한 존재'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소설은 언제나 제게 절실함을 요구합니다. 제 마음이 항상 똑같지 아니하니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이 간절해지기 시작하여 몇년의 준비와 등단 후 또 몇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감히 내가 꿈꾸고 열망하여 준비한 것의 두 번째입니다. 이제 계획하고 열망하였던 것이 점점 바닥나는 기분이 들어서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한 선배는 바닥을 지나 깊이 파고 있는 것이니 괜찮다며 위로해주었지만 여전히 찜찜한 마음은 도망갈 길 없습니다. 언제쯤이면 내 소설에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부여할 수 있을지. 여전히 저는 자신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두 번째 책을 묶는 시간 동안 마음속에서 많은 사람이 오갔습니다. 그 사이에 교만해져 잃어버린 사람에 애달픕니다. 찾는 이도 많아지고 아는 사람도 곱절은 많아졌지만 이미 잃어버린 그녀들과 그들에게 진심으로 그립다 전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사람은 시간과 함께 가고 오지요. 그냥 그뿐이라고, 그것이 순리라고 다시 변명하고 싶어집니다.
흔쾌히 해설을 써준 차미령 선생님, 애정을 나눠준 윤대녕, 장석남 선배님, 사진을 찍어준 다흠, 책 만들어준 창비 편집부 황혜숙씨께 감사드립니다. 지칠 줄 모르는 부모님의 기도와 오랜 친구 조대리, 용관에게도 더불어.
독서 후에 소설 속 인물들의 운명이 다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영원히 그들과 그녀들 모두 잘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쓸 때마다 언제나 드는 생각이고 다짐입니다. - 백가흠
: ‘언제나 과정 중에 있다.’ 적극 공감하는 작가의 이야기. 어설프게나마, 나 또한 그렇게 이끌어오고 있어서. 끊임없이 몰두하고, 부족한 것을 배우고 채우고, 자신의 단점을 지적한 것에 발끈할 게 아니라, 그것을 교정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되짚어나가기. 그런 태도를 취할 것.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짤막짤막한 문장을 쓱쓱 훑어봤는데, 빠져들고 싶은 라인을 발견해서 보관함에 담았다.
몰타의 매 - Mr. Know 세계문학 | 원제 The Maltese Falcon (1930)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는 이상의,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를 깊이 끌어안고 있고 그것은 한 시대의 초상으로도 읽힐 만한 입체감과 설득력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탐정 소설의 장르를 뛰어넘는 영역에서 이루어져 왔다.
: 실존적인 문제, 그 탐구의 영역은 매번 신비로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어떤 특정한 영역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섰다는 데 중요성이 있는 듯하다. 매장 신간 코너를 둘러봤는데 발견하지 못해서, 다음에 들를 때 꼭 찾아봐야겠다.
하늘 높이, 깁슨 플라잉V | 원제 ぎぶそん (2005)
2006년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 이토오 타카미의 장편소설. 작가가 즐겨 그려온 청소년기 소년소녀들의 성장통을 순정만화처럼 섬세하게 그렸다. 조심스럽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워가는 리리이와 가쿠,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마로와 가케루. '건즈 앤 로지스'의 곡을 연주하는 4인조 밴드 멤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배려심이 많은 소년 가쿠는, 음악과 '건즈 앤 로지즈'를 좋아하는 록 마니아다. 건즈의 곡을 꼭 연주해 보고 싶은 가쿠는 어렵게 친구들을 모아 4인조 밴드를 구성한다. 어릴 때부터의 소꿉동무인 가쿠와 리리이, 우직한 고집쟁이 마로, 그리고 어려운 가정형편에 어딘가 비뚤어져 있는 가케루. 이렇게 넷이 모여 결성된 밴드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되는데...
: 나도 참, 못 말릴지도. ‘밴드’가 나온다는 그 키워드 하나에, 번쩍하다니. 그전에 확인은 하겠지만 말이다.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 랜덤시선 028
이번 시집에서 가장 윗머리에 두어야 할 단어는 무엇보다 응시다. 가만히, 조용히, 그러니까 찬찬히 무언가 바라보는 한 시선. 소녀이거나 여자이거나 엄마일 때 비로소 빛나는 포용. 이는 삶과 죽음이라는 아주 근원적이면서도 태생적인 물음에 대한 시인만의 대답일 것이다.
튀기
미식축구로 2006 슈퍼볼 최우수 선수가 된 하인스 워드
그가 한국계 혼혈이었다고 전국이 떠들썩하다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었다면 지금의 하인스 워드가 있었겠는가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한 프로에서는 혼혈아들이 학교도 못 나가고
집에서 리모컨으로 TV 프로만 꿰차고 살아가는 실태를 방영하고
심지어는 혼혈 1세대의 고통이 혼혈 2세대로 고스란히 대물림된다고도 했다
혼혈이란 한 종족과 한 종족이 만나고
어떤 피가 또 다른 낯선 피를 만나는 것이 아니던가
더운 피의 어미와 차가운 피의 아비를 둔 나도,
꼬리 없는 개와 다리 없는 개 사이에 온 이웃집 복실이도,
능선이 완만한 앞산과 첨탑을 여럿 거느린 뒷산 사이 저 언덕들과
잔잔한 앞 냇가와 시퍼런 용소를 숨긴 뒷 냇가 사이 흘러나온 서낭당 앞 개울도
엄격히 말하면 다 튀기였던 것
어미 아비가 뒤섞인 몸에서 변형된 어떤 피가 울렁거려 깨는 날이 있다
늑대와 인간 사이 나온 새끼모양
어떤 피로 이 방을 걸어 나갈지 막막해지는 날이 있다
복면을 쓴 밤과 해말간 낯빛의 아침 사이에서
새벽이 먼 강에 얼음 깨지는 소리로 쩡쩡 우는 그 시각,
: 시선이 닿는 소품들과, 풀어내는 생각, 잔잔하고 다소곳한 분위기를 어떤 식의 영상으로 그려냈을지.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혹 그런 쪽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일단 찜해둔다. ‘책 속에서’로 잠깐 소개되는 저 시, [튀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타입이다. 은근 설레고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