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구판절판


어두침침하고 암울한 이 네모난 방은 우리를 각각 고립시킨다. 고독을 실컷 맛보게 한 뒤, 목숨을 거두어간다.


굳게 닫힌 방은 우리를 그저 가두고 있다는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욱 중요한, 인생이나 영혼이라고 할 만한 것마저 가두고, 고립시키고, 빛을 빼앗아 가는 것처럼 여겨졌다. 말하자면 영혼의 감옥이었다. 이때까지 본 적도 겪은 적도 없는 진짜 쓸쓸함이나, 이제 자신에게 미래는 없다는 삶의 무의미함을 이 방은 가르쳐 주었다.-38~39쪽

하늘이 보고 싶다. 이때까지 이렇게 절실히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어째서 갇히기 전에 구름을 더 잘 보아 두지 않은 걸까.-52쪽

나는 과학을 좋아하지만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가 존재한다.
-74 쪽

어느 한쪽과 있으면 다른 한쪽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문이 움직인 것도 눈앞을 가로질러 간 것도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나는 이제 각각의 세계의 겹쳐진 부분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떨어지기 시작하는 두 세계를 오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93쪽

그 짧은 문자의 열거 속에, 한순간의 움직이는 마음을 잘라내어 가둔다. 작가는 세계를 보고 들으며 느낀 감동을 짧은 문자 속에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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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에 의해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다른 형태로 바뀌어 있다. 그 변화의 과정이 물결처럼 성립한 것, 그것이 이야기의 정체다. 이는 수학과 같다. 소설을 미분하면 하이쿠나 시가 된다. 이야기를 미분하면, 묘사가 된다.-103~104쪽

"저 창문의 장식이 내는 소리는 바람이 만들어 낸 음악이군요. 저는 저 소리가 좋습니다."

지하에서 눈을 떠서 처음으로 밖에 나왔을 때는, 하얗게 물든 시야와 피부에 닿는 온도로밖에 태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 있어서 태양은 더 깊은 의미를 가진, 아마도 시의 세계에서밖에 표현할 수 없을, 내면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되었다.

"창문의 장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면 자신이 인간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지와 공포 사이에 뭔가 하나 빠진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153~157쪽

두 팔에 안은 토끼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 아이도 고칠 수 있습니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토끼는 이미 죽었다. 그렇게 말했다.-161쪽

어째서 그가 항상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죽음’에 의해 이별이 찾아올 때까지 잘 보고 눈에 새겨 두려는 것이다.-166쪽

그가 나를 만든 기분은 이해가 되었다.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자신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뭔가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저의 마음은 비명을 지릅니다. 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고통을 견디며 남은 시간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일까요. 그럴 거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마음 없는 인형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언덕에 펼쳐진 초원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새 둥지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일도, 커피의 쓴맛에 얼굴을 찌푸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세상의 빛 하나하나와 닿는다는 것은 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제 마음은 비록 슬픔에 못 이겨 피를 흘리고 있지만 그것마저 살아 있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증거로 여겨집니다."
감사와 원망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일까요?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분명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훨씬 전에 사라진 인간 아이들도 부모에 대해 비슷한 모순을 안고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요? 사랑과 죽음을 배우면서 자라고, 세상의 양지와 음지를 오가며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요?-172~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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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06 01:05   좋아요 0 | URL
깜짝이야. 지붕이 또 바뀌었군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