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술을 좋아한다. 아니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소주를 못 마셔서 맥주나 막걸리, 동동주등을 마시고 양주나 포도주등은 맛을 잘 모르는편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술꾼은 아니라는거다.
그래도 대학 다닐때 술자리에 가서는 필름 끊길때까지 마셔서 친한 전모양과 신모양을 많이 괴롭혔다.
내가 뻣으면 챙겨줄 그녀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믿고 마실수 있었겠지..ㅋㅋ
요새는 필름 끊기게 먹을 일도 없고 마시지도 못한다. 동네 친구들하고 먹더라도 어릴때 친구처럼 취한 모습을 보여준다는건 자존심상 허락치 못하고 자연스럽게 10% 정도 긴장하고 술을 마시는거다..
이번에 알라딘 번개에서 내 주량을 넘게 술을 마셨는데도 집에 들어올때까지 거의 정신이 말짱(?)했던것은 내가 생각해도 놀랍다..남편이 데리러 왔음에도 차타기 전까지 제정신을 유지할수 있었다.
남편이 아침 일찍 귀가 할때..내심 매일 저러고 들어오면 제정신일까? 술자리에서 실수는 하지 않나 걱정했는데. 내가 겪고보니 아마 그도 이렇게 긴장하고 술을 마시리라 생각된다.
나하고 마실때처럼 편하게 취하지 못하리라..
남편하고는 연애 시절부터 커피숍에 가도 병맥주 한병을 시켜먹지 커피 시켜 먹는것을 아까워했었다.
결혼후에도 집에서 혹은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한잔씩을 했었다.
아이가 조금 큰뒤에는 남편이 일차하고 집에오면서 전화를 한다. 집앞 치킨집에서 만나자고..그럼 밤 12시에 나가는거다. 2시까지 둘이서 술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그러다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평소에 하지 못하던 말도 할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한 일년전부터 이런 시간이 많이 줄게 되고..6개월 전부터는 아예 없어진것 같다.
남편의 승진과 함께 자연스럽게 새벽에 귀가를 하게 됐다. 모시는 상사가 툭하면 부르고..이런 저런 모임에 참석하다보니 밤 12시 귀가는 커녕 새벽 3시~5시 귀가가 거의 매일이었고..난 나대로 불만이 쌓여갔다. 그래도 뻔히 회사일이 어떤지 알면서 잔소리하기도 거시기해서 그냥 두고 봤었는데..
올해에 상사가 바뀌면서 그나마 새벽 1시엔 귀가하고 있다. 그것도 밤 10시 넘어서 헬스장가서 운동하고 오기 시작한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운동하고 밤12시 30분쯤에 돌아와선 맥주 한잔하고 싶다고 한다. 마침 냉장고에 피티병 맥주가 있었고. 저녁에 삶아둔 보쌈이 남아있어서 데워서 김장김치와 안주로 먹었다.
처음엔 기분 좋게 이야기하면서 먹다가 결국엔 서로에게 불만이 쌓인것들을 이야기하는데.내가 감정이 폭발해서 울고 말았다..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가장 슬펐던것은 남편과 내가 6개월 동안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는것이 놀라워서 였다. 항상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안해도 알것이라고 생가했었는데..그와 나는 남남이었던 것이다.
내가 새벽에 오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잠을 못 이뤘던걸 "낮잠을 자서 안자는줄 알았고..내가 와도 기다린척을 안해서 몰랐다" 한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새벽에 오면서도 전화 한통 없는 남편을 뭐가 이쁘다고 "이제 오셨냐?"며 버선발로 환영하겠는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지만 우리부부의 생활을 뒤집어 보니 남편은 회사일로 바쁘고 잦은 상사의 부름에 끌려가서 회사일의 연장이랄 회식과 이차, 삼차에 힘들었고. 새벽에 집에 오면 잠 안자던 부인은 반가워도 안하고, 책을 보거나 컴퓨터나 하고 있고..늦는다는 전화 안했다고 뭐라고도 안하고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던 거다. 그리고 주말에는 아이들 챙겨라, 아이들하고 놀아줘라,,뭐뭐 해달라 피곤하게 굴기나 하고..
남편이 9월에 사고 친게 있어서 금전적으로 약간 손해를 본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이 평소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줘서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안됐다 싶어서 오히려 아무말 안하고 지켜봐준건데..
그후부터 전화 한통 없이 늦게 와도 무슨일이 있었나 눈치만 보고 아무말 안한거고..그러다 나도 쌓인게 있어서 말 한마디 곱게 안나가고 기다렸단 말 하기 싫고..뻔히 회사 사람이랑 있는거 알면 남편에게 전화 안하려고 마음 먹고 있어서 전화도 안한건데 그게 다 남편에겐 무관심했다고 하니 나대로는 서운했다. 바가지 안긁느라 나는 얼마나 마인드 콘트롤 하면서 살았는데..그게 사내 결혼한 내가 남편에게 해줄수 있는 최대한의 이해라고 생각한건데..
유치하게 서로 집안일부터 성격적인것까지 시시콜콜 싸우다가 결론은 내가 강펀치를 날려버렸다.
남편과 살면서 내가 두번정도 실망한적이 있는데..처음은 몇년전에 나와의 문제였고. 두번째는 작년 가을..남편이 아이들과 나를 실망시킨 일이었다.
"나는 자기가 책임감 있는 사람이란걸 믿었는데..아무리 자기가 괴로운 일이 있었다고 해도..00일에 우리아이들과 나를 버려둔것은 용서할수가 없었어..그래도 난 자기가 힘들어서 그런거라고 마음속에 묻어 두었는데.."
"내가 주말에 자기 괴롭히고 나 편하라고 아이들 목욕 시키라고 하고 재진이와 베드민턴 치라고 하는거야? 아이들은 나보다 자기를 좋아하고 아빠를 영웅으로 생각하는거 알잖아? 일주일 내내 주말만 기다리고 아빠 이야기만 하는 아이들 보는 내기분은 어떻겠어? 다른아빠처럼 일찍 들어오는것도 아니고..주말밖에 시간이 없잖아? "
"내가 아무리 팔아프다고 해도 자기보고 설거지 해달라고 한적 있어? 아이들하고 놀아주라고 말했지?"
이래서 나의 승리(?)로 끝나고 남편은 안방에서 아이들과 자고...난 분이 안풀려서 아들방 침대에서 훌쩍이며 울다 자버렸다..남편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도 잘한것은 없었다. 하지만..부부 사이에 이렇게 딴 생각으로 산다는게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는게 외롭다고나 할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느새 남편이 내옆에 누워있다. 일어나서 부인이 옆에 없으니 찾으러 왔나보다. 어젯밤에 울고 불고 한것이 다 없었던 일처럼 아침밥 챙겨 먹고 아이들과 내볼에 "뽀뽀"까지 하고 평소대로 출근 했다. 하지만 그의 맘속에도 변화가 있었겠지? 앞으로 어찌 하는지 두눈 크게 뜨고 봐야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고 살아야 한다. 내맘속에 묵직하게 자리하던 바윗돌 같은 불만을 쏟아내고 나니 시원하다..남편은 내가 하고 싶은데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이니까 홧병 걸릴일이 없다고 한다. 난 많은걸 참고 사는데..그렇게 보이지않나 보다..부부는 일심동체라더만..이심동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