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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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까맣고 긴 머리칼을 흩날리며,머리칼만큼이나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빙글빙글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그의 앞에는 새알이 놓여져 있다.이윤기가 세계의 신화를 전달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번역자라면 류시화는 인도의 모든 것을,혹은 미개하다고 여겨왔던 어떤 사소하고도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하여(인디언들의 명연설을 모은 신간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처럼 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이다.

인도로 아직도 우려먹을 것이 있나,하면서 약간은 비꼬는 마음으로 그의 책을 펼쳐들더라도 결국은 그 뻔한 얘기들 때문에 비직비직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경험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했을까.그는 좀 이상하다.어딘가에 혼을 두고 온 사람 같다.본인은 긍정한다.자신은 인도에 혼을 두고 온 사람이다,그렇게 얘길한다.그리고 류시화 본인이 말하듯 '더럽고 가난하고 지저분한' 인도에 대해 자꾸만 한국의 독자들에게 환상만 심는 그는 사이비에 돌팔이 이야기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쳇,결국 동냥을 얻기 위해서 번지르르르하게 말하는 거지 뭐' 하고 넘기기에 인도의 사두(고행자)들의 말은 너무나 담백하고 해맑은 것을.겨울엔 누구나 한 개의 외투가 필요하듯,우리의 영혼에는 어딘지는 몰라도 단 한 곳,가보지 않아도 그리운 고향이 필요하지 않느냔 말이다.그렇다면 겉보기엔 똥물 같아도 인도인들은 '어머니'라고 부르는 갠지스 강을 사랑하는 이 시인 겸 번역가,이상한 류시화는 그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며,우리에게도 영혼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선량한 길잡이임에 분명하다.

<지구별 여행자>는 무엇보다도 삽화가 쏘옥 마음에 드는 책이다.하얀 표지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인도인들의 모습은 아주 매력적이다.이마에 붉은 점을 찍은 눈이 큰 여인들이 살고 고행자들은 제각기 자신의 철학을 일구어내어 이방인들에게 가르칠 줄 아는 곳,삶의 지혜가 충만한 인도로 가는 영혼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그리고 운이 따라준다면,우리도 또한 류시화처럼- 미처 몰랐던 내 영혼의 고향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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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우물에서의 은어낚시 - 1990년대 한국단편소설선
이남호 엮음 / 작가정신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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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시나 단편집의 매력은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대종상 영화제 방송처럼,한 눈에 우리의 '우상'들을 쭈욱 훑어보며 한 모금씩 그들의 매력을 시음할 수 있다는 것에 다름아니다.그 점을 감안할 때 <옛우물에서의 은어낚시>는 비교적 뛰어난 성과를 거둔 듯이 보인다.한 권의 책에 녹록치 않은 분량을 담아낸 것도 그러려니와 어느 한 곳 놓치지 않기 위해 작가들의 면면을 고루 비추려고 노력한 흔적도 엿보여 독자를 흐뭇하게 한다.이 정도 두께의 책인데 왜 양장판이 아니냐,혹은 디자인이 아쉽다 등의 투정은 말 그대로 투정일 뿐.

1990년대는 이를테면 '모호함'의 시대였다.90년대 초반에는 서태지가 아이들을 이끌고 데뷔했으며 중반은 폭탄주와 거품경제의 시대였고,후반에는 IMF가 닥쳤다.밀레니엄 버그-일명 Y2K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는 아랑곳없이(우리는 북한의 미사일이 작동 오류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까봐,내심 얼마나 가슴 떨려 했던가) 고작 몇몇 컴퓨터가 날짜를 헷갈리는 해프닝으로 끝난 1990년대.이 책 속의 작품들은 그 모호함과 애매함의 시대에 태어난 것들이다.

책을 받은 지 며칠만에 벌써 표지가 조금 꾸겨져 버려 서글프긴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마음 내키는 작품을 골라서 읽는 재미는 쏠쏠하기 그지없다.젊은 축의 작가군이 포진한 2부에서는 몇몇 작품의 선정에 있어 구성이 약간 흐트러진 듯한 느낌도 주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그러나 이 일련의 작품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확실히 서사적인 측면에서 많이 약화된 듯한 90년대 소설의 모습을 그 어떤 문학비평보다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물론 그 속에서도 작가마다 자신의 오감과 육감으로 스토리를 윤색하는 노력은 있지만,모든 것이 불분명한 시대에 소설마저도(특히,소설의 묘미를 가장 잘 살려주는 결정체인 단편 소설에서) 제 빛깔을 잃고 해체되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든다.이제 제 나름의 세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한 단계 도약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계속 기대를 걸 수밖에. 어쨌든 소설은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세상에 아직 가장 싼 값으로 가장 많은 사람의 심장에 직격탄으로 대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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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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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장 자끄 상뻬의 그림을 손으로 짚어내려가다 보면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유년기를 보냈길래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든다.매우 간단한 펜선과 거의 쓰이지 않은 듯한 컬러,그러나 대책없고 사랑스러우며 시끄럽기 그지없는 그 꼬마들의 모습을 그토록 생생하게 지금 그 나이에 그려내고 있다니.(세상에, 그는 1932년 생이다.)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며 모자같이 생긴 보아뱀 그림을 불후의 명작으로 후세에 길이 길이 남긴 <어린 왕자> 의 쌩 떽쥐뻬리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행방불명되어 자신의 영원한 캐릭터 어린 왕자와 함께 소혹성 B612로 날아가 버린 쌩 떽쥐뻬리와는 달리,장 자끄 상뻬는 지천명과 이순,그리고 옛적부터 드물며 마음 가는 대로 해도 하늘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는 나이,일흔을 넘기면서 여전히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구워내고 있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여전히 세상을 향해 유쾌하고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그의 짧은 이야기이다.아무 때나 얼굴이 빨개지고,정작 남들의 얼굴이 다 빨개지는 순간(예컨대 커닝한 것이 들킬까봐 꼬마들이 조마조마해 하는 바로 그 때)에는 얼굴색이 멀쩡한 마르슬랭 까이유.여기서 약간만 이야기의 방향을 틀어본다면 이 아이의 뿌리깊은 컴플렉스와 '다른 것'을 용납치 않는 사회의 냉랭한 시선,집단 따돌림 같은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튀어나올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르네 라토라는 이름의,시도때도 없이 재채기가 나오는 꼬마를 등장시켜 그 모든 갈등을 일소시켜 버린다.

게다가 '내가 여러분을 우울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이 두 친구가 자신들의 일에 떠밀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었다며,각박하고 바쁜 세상에 옛 친구를 만날 시간이 어딨겠냐며 코웃음을 칠만한 독자까지 포용하는 여유를 보인다.코흘리개 시절의 우정은 '아이러브스쿨'에서 검색만 하면 나오는 세상에,그러나 버스에서 재채기 소리로 르네를 알아보는(알아듣는) 마르슬랭의 이야기는 결국 읽는 이의 입에 미소가 떠오르게 만들고야 만다.누구나 숨기고 싶어하는 빨간 얼굴 혹은 재채기는 사실 아무 얘기 없이도 서로의 영혼을 읽을 수 있는 매개체라는 이 老작가의 혜안은 갓 구워낸 빵처럼 달콤하고 흐뭇하기 그지없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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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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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청소년 권장도서로 분류되는 것이 적당하겠고, 비룡소 걸작선은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에야 겨우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모모>를 한없이 유치한, 혹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돌림노래쯤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집에서 빌려읽은 이후, <모모>는 선물목록 1위 도서가 되어버렸다. 누구나 알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은 세상, <모모>가 말하는 아주 기본적인 주제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 작은 책(비룡소 판은 이전에 비해 약간 두껍고 작아졌으며 갈색 활자체로 씌어져서 아주 맘에 든다)은, 분명 어떤 책과도 다른 색깔의 감동을 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가 성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TV는 끊임없이 유명인들의 성공신화를 되풀이해 보여주고,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딜레마겠지만) 무언가를 잃어야만 얻을 수 있는 무서운 세상 속에서 앞을 향해 달려가느라 미처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이미 수많은 이야기들이 발전의 미친 가속도에 제동을 걸어왔고, 우리도 경쟁과 효율성 속에 어그러져 가는 어떤 소중한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다들 수긍한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상하게도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많은 지적들은 대안 제시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짐짓 딴전을 핀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잘못되었으니 고쳐라, 이 이상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해답을 찾아야 할까. 다른 사람의 시간을 훔쳐서 연명하는 회색 신사는, 어쩌면 그렇게 속도로 가득찬 사회를 질타하는 수많은 비난의 화살 속에도 살고 있을지 모른다. 지루한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최악의 죄악으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는 쉴새없이 무언가를 비난하는 것조차 미덕일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는 대신 니키,케빈 등의 이름표를 달고 학원에서 현지인 교사와 회화를 해야 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말이다. 우리는 대체 그렇게 저축한 시간들을 어떻게 할 셈일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영어를 배워야 하고,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한 특수반에 들어가야 하고, 요행히 대학교에 입학해도 취업 전쟁을 치러내야 하고, 끊임없이 누군가는 도태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신화는 매일 방송되는 시대에는. 그러나 그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정은 사라지고 물질적인 가치가 정신적인 가치와 역전되는 물질 만능주의가 나타났다고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는 가르치지만, 고작해야 100년도 안 되는 일생을 살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갈 자손을 남기랴 우주 곳곳으로 뻗어 나가랴 인체의 비밀을 탐구하랴 문화를 발전시키랴, 인간은 늘 너무나 바쁘게 살아왔으니 말이다.
<모모>는 시대상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작품이 아니다.

<모모>는 너무 느리고, 너무 단순하고, 그래서 늘 유효하다. 자신이 백 몇살쯤일 거라고 생각하는 꼬마 소녀, 모모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존재치 않았고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기롤라모가 허풍을 섞어가며 들려주듯, '이야기'는 인류 역사 이래 늘 존재하지 않던가. 기롤라모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이곳은 어쩌면 예전의 지구를 몽땅 옮겨놓은 아주 다른 어떤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앞에 놓인 옛 지구의 받침대와 같은 <모모>를 보며,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글자가 있기도 전에 있었던 것들, 우리의 두뇌는 알 수 없어도 우리의 영혼은 기억하고 있을 그 우주의 노래들과 시간의 꽃이 피어나는 소리를 어쩌면 다시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잃어버린 것들의 이름을 한 번쯤 불러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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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심영섭 지음 / 다른우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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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심영섭의 영화평은 늘 아슬아슬하다.그녀의 글은 비전문가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당신'이었다가,전문가에게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어거지를 쓰는 듯한 느낌을 줄 법하다.이미 그녀의 첫 책 <영화,내 영혼의 순례>에서 씨네21과 그 밖의 수많은 영화잡지 독자(혹은 심영섭의 팬)은 실망과 아쉬움을 토로했다.나 역시 약간의 아쉬움을 뒤안으로 한 채,그래도 심영섭은 심영섭이라며 위안했던 축에 속한다.

이 책 역시 외줄타기에 아직 익숙지 않은 서커스 곡예사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약간 엽기적이고 가볍발랄한 삽화,아무래도 일간지에 연재하던 글이다보니(씨네 21과는 독자층이 다르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쓴) 쉽고,간편하고,짧다.나름의 재치와 센스를 발휘하려는 흔적도 엿보인다.

그러나 비전문가가 접근하기에는 <김영하와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가 삽화도,글도 훨씬 재밌다.그 책을 강추하고프다.전문가가 접근하기에는 <영화,내 영혼의 순례>가 그나마 심영섭스럽고 착실하다.그러니 결국 곡예사는 뒤뚱거리다가 그물 위에 떨어졌거나 앞으로 푹 고꾸라진 셈이다. 어느 쪽이든 30%는 포기하고 70%로 만족해야 하는 책이니,사기 전에 앞에 말한 저 두 권의 책을 사보는 것은 어떨지,신중하게 선택하길.웬만하면 전자의 두 권에서 고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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