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째 박완서 선생은 갈수록 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목>에서 <오래된 농담>까지, 읽어가면 갈수록 문체는 스타카토처럼 톡톡 튀어가고 스토리는 발랄하며 때로 뒤통수를 칠만큼 아찔하고, 배우는 나이를 이름 뒤 괄호와 같이 끌고 가는 게 가장 불리한 직업이라지만 박완서 선생을 보면 그건 배우뿐이 아닌 듯 싶다.

세상에 책을 읽자고 TV에서 떠드는 나라도 흔치않을 테지만, 어쩜 그렇게 말들을 잘 듣는지 그 프로그램의 권장도서 목록이 베스트 셀러 목록과 판박이 스티커 같은 것을 보면 기절할 노릇이다. <그 많던 싱아..> 앞에도 스티커 같은 '낙인'이 찍혔을 때 얼마나 서러웠던지. 그것은 '천의무봉'의 경지에 이르른 선생의 품격 자체를 깎아먹는 짓만 같아서 민망하고 죄스럽고 못할 노릇이었다(내가 한 것도 아니면서).

박완서 선생은 비평가들이 참 안 좋아할 만한 작가이다. 그래도 문학 비평을 하려면 연관없는 사건들이 좀 나열되어 있어야 하고, 인물들이 왜인지 모를 행동들을 해야 하며, 그래야 비평가는 잘난 척 하면서 그게 왜 그런지 알아? 라고 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선생은 도대체가 막히는 곳이 없다. 마치 퇴고라고는 생각도 없는 양 날것 그대로의 문장들을 착착착 회치듯이 종이 위에 얹어 놓는다. 그런데 이게 또 기막힐 노릇, 이 선도 높은 글자들은 독자의 눈과 머릿속에 쏙쏙 박혀 달짝지근하게 흡수된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하나 둘 꺼내주던 곶감같이 환장하게 이끌리는 맛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퇴고 따위는 필요가 없었던 거다.

작가는 영혼의 상처를 파먹어가며 글을 쓴다던데, 선생의 글은 괴롭지도 노여웁지도 않고 그저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손가락을 물고 곰곰히 생각에 잠긴 듯한 선생의 어린 시절처럼. 작가 신경숙은 '세상 시시한 이야기는 (박완서)선생이 있어서 기쁠 것이다' 했지만, 시시한 삶을 사는 우리들이야말로 기쁘다. 사는 거 별 거 아니다, 나직하게 속삭이는 듯한 선생의 목소리는 시시한 세상에 시시하지 않게 살아나갈 힘이 되어주고 시시한 삶을 흘깃 돌아보며 픽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글을 쓰리라는 예감으로 책을 맺는 박완서 선생, 그것은 생의 예감이다. 아아, 정말 시시한데 왜 이리 웃음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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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2004-08-0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선생에 대한 예찬인지, 박완서 선생의 책에 대한 리뷰인지?

셰헤라자데 2004-08-0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리뷰를 쓰라고 되어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예찬이 되어 버렸나 봅니다. 기가 찰 노릇이지요. 리뷰가 맞는지도 아리송한 글이 '이주의 마이리뷰'로 선정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