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좋아, 솔직히 말할께. 처음 널 영화에서 봤을 때 난 내 생애에 있어서 앞으로 너같이 멋진 남자애를 다시는 못 만날 거라고 지레 단정지어버렸어. 그렇지 않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의 낯선 의자에 앉아 화면을 통해서 본 넌, 내 잃어버린 열아홉처럼 그렇게 멋지고 쿨하고 기타 등등 멋진 말은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랄 놈이었고, 그건 10대만이 가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결과이기도 했으니, 이제 스물을 넘겨도 이만저만 아닌 이 노땅(!)이, 그 후로 몇 번 남자를 바꿔가며 연애를 하면서도 단 한 번, 화면 너머의 네 눈빛을 접했을 때만큼 강렬하고 짜릿한 느낌은 가진 적이 없었다니까. 그건 당연한 일이야. 어머, 이러고 보니 내가 사쿠라이가 된 느낌이네.
이 책은 네 말대로 네 연애 이야기지. 재일 교포, 조선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너와 순수 토종 일본인 사쿠라이의 연애 이야기. 민족, 혈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연애는 그러나 바로 그런 장애 때문에 멈칫하기도 하고, 늘상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일본 속 한국인에게는 아주 사소한 시비도 네 친구 정일의 죽음처럼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기도 하지. 피가 다르다고? 생긴 것도 엇비슷한 동양의 두 나라, 지독한 반일 감정의 뿌리가 아직 자생하고 있는 한국과, 한국인과 중국인은 피가 더럽다는 생각을 가진 유능한 회사원이 아직 존재하는 일본. 역사는, 굳이 누구를 죽이고 죽지 않더라도 참 끈질긴 거지?
어쨌든 난 그 이야기를 하는 네 태도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 그건, 영화하고는 또다른 거지. 어떤 사람들은 소설이 낫느니, 영화가 낫느니, 비교하기도 하지만 난 기꺼이 둘 다 별 다섯을 날리겠어. 왜냐고? 왜긴 왜야, 달리는 지하철과 목숨 걸고 경주를 하는 지독한 꼴통인 너, 마르크스를 독학한 전직 복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니체를 좋아하는 너에게 반해서지. 스기하라, 너 자신은 단지 나에게 다가온 매체만 달랐을 뿐, 똑같은 너잖니.
굳이 난, 너와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날릴 필요성을 못 느껴. 단지 좀 더 좀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랄 뿐이야. 사실 말야, 한국에 사는 일본인들도 극심한 차별을 겪고 있을 거야. 그런데 차별이란 거, 우습지 않니? 나도 차별을 당해. 여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차별하고 따돌리지. 돈이 많고 적다는 이유로, 학교를 많이 다니거나 이름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가문, 명예, 기타 등등 에세트라(etc.) 블라블라블라.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재일 교포 작가가 쓴 한국인의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얘기라구. 그럼 이 책을 통해 그런 차별과 편견을 지닌 나약한 인간들을 이 책의 문체처럼 발랄하고 유쾌하게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하잖아. 이긴다? 내가 방금 이긴다고 했니? 네 말이 맞아. 사자는 자신을 사자라고 칭하지 않지. 단지 그렇게 이름붙이는 사람이 있을 뿐. 영원히 사자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을 테고, 사자를 사자라고 부르는 한 두려움과 공포는 차별하는 자들에게 뿌리깊게 남아있을 거야. 뭐 어떠니, 이건 결국 네 연애 이야기이고, 네 연애만 해피엔딩이면 그만인걸.
너의 아버지가 부러워. 정확히 말한다면, 그런 아버지를 가진 네가 부러워. 난 세상 어디에서도 너의 아버지처럼 사랑스러운 남자를 보지 못했거든. 넌 말야, '이 망할 영감탱이'가 입에 붙었지만 난 그 말조차 귀엽다. 아들에게 팔을 쭉 뻗고 한 바퀴 돌아보라고 시킨 뒤, '원 안에 있으면 안전하지만 권투는 그 원을 뚫고 상대방의 원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빼앗아오는 행위다. 자신 있냐?' 라고 말해주는 아버지가, 어디 있는 줄 아니? 그러고 보면 나도 권투를 배웠어야 했어!
누구는 널 아시아의 홀든 콜필드라고 하더라만, 그런 비교는 정말 반(反)쿨하지 않니? 아마도 영화를 보고 나서 내 남자친구들이 다 시시껍질해져 버린 것처럼, 이 책을 보고 난 버린 지금 당분간 내 눈은 다락같이 높아져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혹시 아니? 나도 사쿠라이, 또다른 스기하라를 만날지. 너도, 나도, 건투를 빌어.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