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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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오 윌리엄>을 읽고 나서야, 소설의 시작(?)이 <내 이름은 루시 바턴>라는 사실을 알았다. 윌리엄의 시선과 루시 바턴의 시선이 서로 다르겠구나,싶어 당장 읽어야지 했으나,그렇게 하지 못했다.그러다가 <바닷가의 루시>를 먼저 읽고(?) 말았다. 루시 바턴 시리즈를 시작하기에는 뭔가 스포일러를 다 알고 읽게 되는 기분이라..재미가 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기우였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으로 읽어보는 경험... 루시와 윌리엄은 이미 이혼했고, 아이들은 모두 성장해 있다. 다만 그녀를 붙들고 있는 과거의 조각들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았을 뿐... 이제 그녀의 진짜(?) 모습과 만나는 시간이 시작된 거다.


함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조차 없을 정도의 가난을  겪었던 루시는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과,열등감 속에서 성장한다. 가족관계에서 조차 편할 수 없을 만큼,엄마의 간호를 받는 장면에서,루시가 마음 속으로 했을 법한 질문을 상상해봤다. '나는 어떤사람인가' 잔잔하게 흘러가던 소설은 그렇게 집요한 질문으로 이어지더니..결국 내가 이런 사람일수도..있다는 생각을 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기분을 느낄수 있어 좋았다.


"(...) 우리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집단보다 스스로를 더 우월하게 느끼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아내는지가 내게는 흥미롭다.그런 일은 어디에서나,언제나 일어난다.그것을 뭐라고 부르건,나는 그것이 내리누를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이런 필요성이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저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111쪽



너무 잔잔해서,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착각될 정도의 느낌이 들면서도 빨려들어가는 매력이 있다. 개인의 문제를 확장해서 바라보는 주제가 마음에 들어서인 것 같다. 열등감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에게만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싶지만..사실 우리는 저마다 문제를 가지고 살아간다. 오히려 그 문제를 극복하는가 그렇지 못하는 가의 문제인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지점에서 루시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를 건드린다. 우리는 왜 타인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가? 타인의 탓이 아니다. 자신과 정직하게 마주하지 못한 탓이 먼저인거다,나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지 못하기 때문인거다. 윌리엄의 바람으로 그녀는 이혼을 했지만 (이후 읽은 소설에서 보면 그렇다는..^^) 그것이 절대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순간 당혹감이 바로..루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구나..생각했다. <내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된 생각인데 말이다. 무튼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결혼이 자신에게 어느 순간 버거웠던 것일수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물론 행복한 결혼 생활이 그녀에게 허락되었다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소설을 관통하는 이야기 가운데 내 마음에 들었던 건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것.그러나 무엇보다 내게서 일어난 문제의 원인이 모두 외부의 탓이라고 말하지도 말것..그래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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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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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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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테네시 윌리엄스가 블랑시 뒤부아아의 이런 대사를 썼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여러 번 구원을 받지만 시간 지나면 그것도 버퍼스티커처럼 진부해진다(...)"/98쪽 애거서 추리물을 읽을때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등장해서 반갑기도 하고, 이번에는 어떤 작품이 소개될까 기대가 되기도 했다. <오 윌리엄> 은 너무 오래전 이라 모르겠고, <바닷가의 루시>에서는 체홉의 '갈매기'가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다. 알고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당연히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저 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작년에 읽은 것도 아니고 2013년에 읽었으니 당연하다...^^



마술적사실주의 전이 열리고 있던 시기에 읽게 되어,블랑시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는데 큰(?)도움이 되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그런데 무언가 해갈 되지 않은 갈증이 남아 있었다. 연극을 기다렸던 이유는 그래서였을 거다.그리고 올해 공연 소식을 듣자 마자 예매를 하고 기다린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한 번 더 읽어 보고 싶어졌다. 욕망으로 가는 전차를 타고 가다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탄 후 극락역에서 내린다는 말은 이미,이 극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대략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재미란,이렇게 뻔한 결말이 보일 것 같은 내용에서 시종일관 긴장감을 갖게 한다는 것일게다.  사실 처음 읽을때는 블랑시란 인물에만 너무 몰입한 나머지 다른 인물들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읽는 내내,블랑시만이 아니라,저마다 서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들을 서로 서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란 것이 보였기때문이다. 때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는 듯 보이는 블랑시의 모습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극을 이끌어 가는 줄기는 블랑시의 욕망이었지만,미치나 스텔라,스텐리 역시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블랑시의 욕망만 보였던 처음과 달리 두 번째 읽다 보니,저마다의 욕망이 보였다.

처음에는 블랑시의 불완전한 정신상태의 빈곤에 대해 단단해 질 무엇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욕망이란 무엇일까?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등에 대한 질문들이었던 것 같다. 욕망이란 결코 타인에 의해 해소될 수도 없으며,전구를 종이 갓으로 감추듯 그렇게 숨긴다고 해서 해소 되는 것도 아니였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길 바라기 전에,내가 무엇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늘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예전 리뷰를 다시 읽으면서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모습이 힘겹게 보였던 건.. 루시가 인용해준 말처럼,블랑시가 마냥 의지하며 살아가려 한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너무 힘든 공연이라 다시 볼 자신은 없는데..공연 소식이 들려오면 예매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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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내 이름은 루시 바턴> 부터인데, 나는 <오 윌리엄> 을 읽고 <바닷가의 루시>를 읽고 나서야 루시 바턴... 으로 와버렸다. 그 덕분(?)에 타임머신을 타고..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의 '읽기'를 경험하고 있다. 바닷가의 루시..에서(오, 윌리엄은 지난해 읽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윌리엄이 메인주로 그녀를 이끌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 포로의 아들이었던 사실도 언급된다.


남편은 메사추세츠 주 출신으로 메인 주의 감자밭으로 보내져 노역을 해야 했던 독일인 전쟁 포로의 아들이었다/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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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길을 택할 때 그길을 결정하는 요소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 요소를 찾아내거나 정확히 짚어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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