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사회 속을 돋보기로 들여다 본 느낌이었다. 약한 인간이라서 욕망에 집착하고, 소문과 억측과 누명, 탐욕, 허영, 편가르기 등등..1부에서는 선거를 둘러썬 권력이 보였고,3권에서는 아내를 소유물로 생각하려는 남편의 유언장에 기막혔다면...4권에서는 다시 이러한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과거가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한 벌스....그가 지난날 실수로 그랬다면, 현재의 그는 어떻게든 다른 삶을 살아야 했겠지만..그는 살인의 유혹을 느낀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연민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는 아이러니.. 1부의 서막을 연 부분인 도로시아라서..당연이 그녀가 이 소설 전체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했지만.. 벌스트로드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리드게이트, 선의라 생각했던 베품이 실은 뇌물일수도 있다는 뒤늦은 자각, 무죄가 유죄되는 길은 얼마나 쉬운지...이런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시작점은 아마 욕망이지 않을까..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리드게이트 역시 욕망의 화신이었던 거다. 최고의 의사가 되고 싶었던..마음만이 강력해서 종종 다른이들에게 오만하게 보일수 있었고, 그것이 또 시기를 불러오고..이런 과정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에게 적용되었다고 본다. 소설의 앤딩은 급 마무리 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내 눈에 들어온 건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문과 억측과 추측이었다. 욕망은 반드시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도 작용하고 있다는 점. 가짜 뉴스가 넘쳐 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 소문을 만들어 내고 소문이 어느 사이 사실이 되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만 읽지 않았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가 소개된 점도 놀라웠다. 고전 작품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작가를 꼽아 보라면 열손가락에 들지 않을까 싶을 만큼 조지 엘리엇의 이름을 들어왔다. 그때마다 <미들마치>를 읽어봐야지 생각했으나, 4권이란 압박감과,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표지가 읽고 싶은 마음에 거리를 두었더랬다. 그러던 어느날,읽기 시작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나게 읽혀서 놀랐더랬다. 철학자의 시선으로 <미들마치>를 읽어 보니 나는 등장인물들마다 드러난 욕망..에 힘겨워했다면, 책에는,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를..배울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렇듯 마음의 상처를 견뎌내며 자기중심적인 안일한 사고를 벗어나는 과정이 바로 인간의 성숙과정이다.그리고 이런 고통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더 한층 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이기적이고 편협한 자기 욕구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구비한 성숙한 인간은 이제 나와 다른 이웃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희노애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기도 한다."/211쪽 커소번과 리드게이트를 이기적인 인물로만 생각하며 읽었던 나에게,그들을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는 문을 열어 주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려 4권이나 되는 책을 언제 다시 읽게 될까 싶었는데 다 읽고 난 후 거짓말처럼 민음사출간 소식을 들었다. 다시 읽게 된다면 민음사에서 나온 걸로 읽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철학자의 고전문학 에세이>를 읽으면서...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확실히 생긴것 같다. "(..) 인식의 힘겨운 과정을 통한 성숙의 과정은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마치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하얀 모랫벌 위로 쉼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면서 아주 조금씩 다가오는 파도처럼 우리는 무수한 깨달음의 반복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216쪽 '철학자의 고전문학 에세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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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품격....!!


(...)나는 크리시에게 다시 임신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그애기 들어야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크리시를 안아주었고,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옆으로 부드럽게 넘겨주었다"/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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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루시처럼,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이들도 있다...

"필" 내가 말했다. "이것만 물어볼게. 요즘은 밤에 어때? 그러니까, 당신이 느낀다던 악몽 같은 공포 말이야"
그리고 윌리엄의 목소리에서 나는 그것이 내게 전화한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루시" 그가 말했다. "지난밤에도 그랬어(...)"/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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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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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리즈 라는 타이틀이 있다는 건 나름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일텐데, 읽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오히려 타임머신을 타고,과거로 돌아가는 기분과,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어떤 모습에서 진행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연결되는 재미가 있다. 마치 누군가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는 기분도 그랬다.지금,비키는 살아 있지만,나는 그녀가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도 알고 있다.('바닷가의 루시'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는 이미 소설가로 성공한 루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주변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형식이다. 실제 루시의 이야기인지, 소설 속 루시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경계들 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주변인들. 작가로 성공했으나,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가 겪어야 했을 가난했던 시간속 이야기는 철저(?)히 루시의 시선으로 그려졌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에서는 루시가 그려냈던 주변인들이 직접적인 목소리를 낸다. 당연히 루시가 기억한 그들과, 그들이 기억하는 루시의 모습은 다르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한 번 명료하게 언급되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라는 제목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오했다. 한 명씩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무엇이든 가능하다' 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종종 '노력'하면 이라는 단어가 전제되어야 했지만.... 노력해도 도저히 어쩔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은 왜 무엇이든 가능하다..였을까?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그려지는 것 같았는데..그냥 그들에게 일어난 인과관계들이..그럴수..있어로 정리되는 기분이었다.결과 상관없이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패티가 딸에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 모두 너나 없이 엉망이야.앤젤리나,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사랑은 불완전해,앤젤리나,하지만 그래도 괜찮아"/75쪽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그럴수 있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문제가 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로 바뀐다.(아니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우겨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소설이 단순히 이런 자기 합리화를 위해 씌어진 이야기가 아니란 건 알고 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어,순간순간 울컥했다.우리 삶은 불완전해서 오히려 무엇이든 가능하다..그 말을 실천(?)한 인물은 루시였고,노력으로도 극복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그러나 사실 루시도 진짜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가 겪고 있는 공황장애를..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럼에도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그 말이 좋았다.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 같은 기분..물론 나 자신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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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노을은 수없이 봤지만..

붉은 강물은 거의 보기 힘든 풍경이라..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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