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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여름 같은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5
조지 오웰 지음, 심지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5년 8월
평점 :
조지 오웰이..시를 썼다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마침 표지를 장식한 제목도 궁금증을 불러왔다. 책을 받아 보고 나서 시와 에세이가 함께 수록된 책이란 사실을 알았고, 시보다는 에세이가 읽기에 좋았다. 아니 좋았다기 보다,아주아주 마음에 드는 단편같은 에세이를 만날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가슴으로 훅 들어오는 시 한편도 있었다. 곱씹어 생각할 필요 없이 바로 좋았던 시는,제목이기도 한 '한순간 여름 같은' 이었다.
한순간 여름 같은 가을볕이 쏟아져/ 단풍 드는 느릅나무 잎을 푸르고 환하게 비추네/비스듬히 떨어져 땅에 붙어 시들어가는 금잔화를/ 다시 타오르는 빛으로 물들이네 저물어가는 한 해의 마지막 불꽃처럼// 부분
나는 여름 같은 가을볕이 아니라, 가을바람 같은 여름을 종종 느낀다. 해서 저 표현속의 마음을 감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 행복했고,이 시가 그래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마음에 처연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어느 순간 가을날 지는 아름다운 단풍이 나는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논리로도 떨쳐낼 수 없는 슬픔이/내 심장을 꿰뚫네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하며/5월의 유령처럼 번득이는 그 덧없는 빛을 생각하며// 부분
10편의 에세이를 읽었다. 모두 좋았는데 특히 '두꺼비' 와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는가' 물속의 달' '불쾌함 없는 재미' '문학의 질식'을 재미나게 읽었다.
7월1일이 되면 어김없이 매미 울음 소리가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올해는 매미도 폭염에 지친것인지 한낮 울음소리가 미비하고, 새벽과 늦은 밤에 소리를 내더니, 폭염이 꺾이고 나서 본격적인 울음을 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오웰은 '두꺼비'를 통해 봄을 떠올렸다. 모두가 향기로운 꽃을 보며 봄을 떠올리는 것과 달라서 반가웠다.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는가' 제목만 보면 가난한 이들이 고통받는 이유만 언급할 것 같지만,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병원에서 받는 고통은, 병원이란 공간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로 확장되고, 다시 인간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다시 고통과 공포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는 이야기라 인상적이었다.그래도 병원에서 죽을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지인에게 했던 위로가 공허했다.삶의 기력이 다해 자연사 하는 것이 그래도 행복한 죽음의 한 형태로 생각했는데,정말 그럴까..죽음 이후에는 모르겠지만, 죽기 이전까지 우리는 '죽음'을 결코 쿨하게 대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인간이 발명한 무기 중에 평범한 질병의 잔인함에 비할 수라도 있는 게 있을까? '자연사'란 정의 그 자체로 더디고 냄새나고 고통스러운 무엇을 의미한다."/76쪽
죽음에 대한 고통과 공포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어쩌면 그래서 문학으로 부터 위로를 받고, 웃음이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물속의 달'은 에세이 통틀어 가장 가벼우면서도 재미난 글이라 에단편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다. '불쾌함 없는 재미'를 읽으면서는 요즘 유머가 사라진 시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개그가 사라지고 풍자가 사라진 시대다. 왜그럴까 생각해보면 혐오와 재미를 혼동하는 건 아닐까..싶은데 오웰 선생이 아주아주 기억에 남을 만한 말씀을 해 주셨다. 좋은 글이란 이런 거구나,하는 느낌을 받으며 읽었다.순간순간 나를 돌아보게 되고,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들.
"요즘엔 저속하지 않고는 웃길 수 '없는'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저속함'이란 오늘날 영국의 유머 작품들이 주로 대상으로 삼는 독자들의 기준을 따른 저속함을 의미할 뿐이다(...)유머의 주된 목적이 안락한 계층의 비위나 맞추는 것이라면 결코 진정으로 웃길 수 없다.불편하게 들릴 너무 많은 것을 빼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재미있으려면 역설적이게도 진지해져야만 한다(...)"/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