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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박태원 지음, 이상 그림 / 소전서가 / 2023년 10월
평점 :
다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느낌으로 읽혔다. 소설을 읽기 전 보게 된 뮤지컬('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이 영향을 미친 것도 같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던 차에, 구보 씨를 만나게 된 거다. 구보 씨는 억울(?) 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시대를 감안하고 구보 씨를 바라 보게 되었다.
그는 딱히 직업이라 내세울 것이 없는 남자다. 오늘도 어머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구보 씨는 행복하지가 않다. 마냥 고독하다. 그런데 자신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외로운지에 대한 설명이 가슴으로부터 전해지는 느낌도 없다. 누군가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던 시대가 아니던가 구보에게도 자신만의 고통이 있었을텐데,1930년대라는 시간이 구보라는 남자에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야 묻게 된다. 그런데 공연 '쇼맨' 을 떠올려 보면, 모두가 한가지 방식으로 살아갈 수도 없고, 강요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쇼맨 속 남자와 구보 씨의 경우는 그러니까 결이 좀 다르다고 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정처없이 여기저기를 다니며,행복하지 않다고, 외롭다고 고백하는 마음은 갑갑하게 전해질 뿐이다. 그런데 구보 씨의 시선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시선이 보인다. 그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런데 식민지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글이란 제한적이다. 투사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검열을 받아야 하는 현실도,소설가 입장에서는 치욕이었을 게다.
차마 입밖으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독자에게는 그렇게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구보 씨를 마냥 좋아할 수도 마냥 미워할 수도 없었던 것 같다.나라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에서 조차, 강요할 수 없었던,결국 구보 씨는 우리 모두가 '정신병자' 라고 진단하게 된다.
"갑자기 구보는 온갖 사람을 모두 정신병자라 관찰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실로 다수의 정신병 환자가 그 안에 있었다(...)" /167쪽
다양한 이름의 병명을 만들어낸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슬펐다. 구보 씨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엔 억울했을 시대가 보였다. 그때도 지금도 모두 정신병자..같은 세상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처음으로 구보 씨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혹시 내가 상상하는 그런 마음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식민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독립투사가 될 수 없다. 밀정 같은 암적인 존재도 있었지만, 문학을 통해 어떻게라도 힘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 '희망 이라는 빛' ..고맙(?)게도 소설의 앤딩은 구보 씨에게 희망의 빛을 선물해 주었다. 마침내 그가 소설을 써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뜬금없는 결말 처럼 보이지만,구보 씨가 이후 쓰게 된 소설에서 사람들은 분명 위로를 받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가 앞으로 쓰게 될 소설은 '어머니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 번 드는 순사가 모멸을 가져 그를 훑어보았어도 그는 거의 그것에서 불쾌를 느끼는 일도 없이 오직 그 생각에 조그만 한 개의 행복을 갖는다(...) 구보는 지금 제 자신의 행복보다도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184~1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