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라는 이름으로

귀족들은 성직자들이 빌린 이름이었다.성직자들은 귀족들 뒤에 숨어 그들을 질책했고 그들을 이끌었고 완전히 날조된 삶을 그들에게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성직자들이 귀족들로 하여금 중산층에 대한 혐오감을 극복하고 함께 공동 전선을 펴도록 이끌었을 때 그들은 성공을 확신했다.전쟁터는 아주 훌륭하게 준비되었다. 오래된 왕당파 도시 평온한 부자들과 겁쟁이 상인들은 조만간 반드시 질서당 편에 서개 되오 있었다,성직자들은,사정에 정통한 전략과 함께,방향 전환을 서둘렀다/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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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자신의 망토를 열기만 하면 연인을 위해 완전히 준비된 피난처가 되는 것이다(..)"/31쪽 문장을 읽는 순간 떠오른 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화가의 이름이 생각날..리가 없다. 이 답답함을 어떻게 해결해나 하면서. 혹시나 하고 열어본 그림 폴더 함에 잘 저장되어 있었다.^^



" 한 쌍의 연인은 그냥 갈색 덩어리로 보일 뿐이고,다른 연인들도 똑같은 모습이다. 늦은 산보객에게는 희미하게 움직이는 덩어리들로 보이지만 정확하게는 사랑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람, 짐작만 하는, 경험하지 못한 사랑이 스치며 지나는 것이다"/31쪽  

프랑스 화가 호노레 다우미에의 그림 '밤 산책자들' 이다. 충분히 상상이 될 수 있는 그림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뭔가 서사를 더 붙이고 싶은 마음이 있엇던 모양이다. 졸라의 소설을 읽는 순간 저 그림이 떠오른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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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박태원 지음, 이상 그림 / 소전서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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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느낌으로 읽혔다. 소설을 읽기 전 보게 된 뮤지컬('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이 영향을 미친 것도 같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던 차에, 구보 씨를 만나게 된 거다. 구보 씨는 억울(?) 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시대를 감안하고 구보 씨를 바라 보게 되었다.


그는 딱히 직업이라 내세울 것이 없는 남자다. 오늘도 어머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구보 씨는 행복하지가 않다. 마냥 고독하다. 그런데 자신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외로운지에 대한 설명이 가슴으로부터 전해지는 느낌도 없다. 누군가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던 시대가 아니던가 구보에게도 자신만의 고통이 있었을텐데,1930년대라는 시간이 구보라는 남자에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야 묻게 된다. 그런데 공연 '쇼맨' 을 떠올려 보면, 모두가 한가지 방식으로 살아갈 수도 없고, 강요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쇼맨 속 남자와 구보 씨의 경우는 그러니까 결이 좀 다르다고 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정처없이 여기저기를 다니며,행복하지 않다고, 외롭다고 고백하는 마음은 갑갑하게 전해질 뿐이다. 그런데 구보 씨의 시선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시선이 보인다. 그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런데 식민지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글이란 제한적이다. 투사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검열을 받아야 하는 현실도,소설가 입장에서는 치욕이었을 게다.

차마 입밖으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독자에게는 그렇게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구보 씨를 마냥 좋아할 수도 마냥 미워할 수도 없었던 것 같다.나라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에서 조차, 강요할 수 없었던,결국 구보 씨는 우리 모두가 '정신병자' 라고 진단하게 된다.


"갑자기 구보는 온갖 사람을 모두 정신병자라 관찰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실로 다수의 정신병 환자가 그 안에 있었다(...)" /167쪽


다양한 이름의 병명을 만들어낸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슬펐다. 구보 씨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엔 억울했을 시대가 보였다. 그때도 지금도 모두 정신병자..같은 세상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처음으로 구보 씨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혹시 내가 상상하는 그런 마음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식민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독립투사가 될 수 없다. 밀정 같은 암적인 존재도 있었지만, 문학을 통해 어떻게라도 힘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 '희망 이라는 빛' ..고맙(?)게도 소설의 앤딩은 구보 씨에게 희망의 빛을 선물해 주었다. 마침내 그가 소설을 써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뜬금없는 결말 처럼 보이지만,구보 씨가 이후 쓰게 된 소설에서 사람들은 분명 위로를 받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가 앞으로 쓰게 될 소설은 '어머니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 번 드는 순사가 모멸을 가져 그를 훑어보았어도 그는 거의 그것에서 불쾌를 느끼는 일도 없이 오직 그 생각에 조그만 한 개의 행복을 갖는다(...) 구보는 지금 제 자신의 행복보다도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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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라며 읽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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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서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손톱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크고 선명하게 손톱깎는 소리... 카페라는 공간이 모두를 위해 열린(?) 공간이라,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발상이 나는 적응하기 어렵다. 최소한의 예의라는 개념 자체가 이제는 사라진 시대인걸까...

그런데 구보씨도 손톱 깎을 목적(?)으로 끽다점을 찾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내가 이상한 사람인걸까..)


그가 가끔 드나드는 끽다점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휴식을 위함도 저차를 먹기 위함도 아니었던 듯 싶다.오직 오늘 새로 구한 것으로 손톱을 깎기 위해서 만인지도 몰랐다. 그중 구석진 테이블 그중 구석진 의자(...)/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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