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옛 소설들은 해가 갈수록 고풍스러워진 하지만 그렇다고 그 탁월함이 빛을 잃어가는 건 아니다. 너새니얼호손의 <일곱 박공의 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와 소소하게 다른 점들이 있다. 옷차림도 다르고 점잔 빼는 면도 있고 대화도 좀 딱딱하다.우리는 처음엔 그들에 대해 읽는다. 그건 그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결국 세상엔 몇 가지 이야기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악함에 대한 이야기,선에 대한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시간에 대한 이야기.마법은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다.우리가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바로 표현력이니까.그리고 그건 분명 모든 훌륭한 책들의 능력이다."/101쪽



인내가 필요했다.소설 보다 표지가 궁금해서 더 읽고 싶었던 <일곱 박공의 집>,표지 만큼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단 한줄(?)로 이 소설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지금으로썬 '저주에 관한' 이야기 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이야기 자체에도 저주의 공기가 뚝뚝 묻어 났을 뿐만아니라, 독자에게도 참 고약스러웠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그러다가 그는 아마도 독자들 자신에게도 밀려드는 졸음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두드러진 졸음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소녀의 감각을 뒤덮었음을 알게 되었다"/284쪽 홀그레이브가 오로지 피비를 향한 생각일 뿐인데..힘겹게 읽고 있던 입장에서는..마치 작가가 독심술을 부리는 기분이었다. 서문이 너무 흥미로워..살짝 당혹스럽긴 했다..서문의 여운(?)이 소설이 끝날때까지 이어질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을 것 같은...그리고 이런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법...최근 조금 특별(?)해 보이는 로맨스를 읽기도 하고, 영화(헤어질 결심)를 본 덕분에..내 관심이 오로지 로맨스로 향하고 있었기에..나는 조금 특별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에도 오히려 기대감으로 충만했더랬다."로맨스가 진정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어떤 효과적인 작용을 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대개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기보다는 오히려 훨씬 미묘한 과정을 통해서이다(...)"/9쪽 달콤하거나 씁쓸한 혹은 애절한 로맨스와는 아주 거리가 먼 소설이었다. 도대체 로맨스는 언제 등장하는가 조바심까지..그러다 조심스럽게 그려지는 관계도를 보았다. 그러나 뭔가 강렬하지도, 애잔하지도...그래서 과연 로맨스라고 말할수 있나..싶었는데, 내가 생각한 로맨스와느 개념부터가 달랐다. 소설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한 이유다. (애초에 바라보는 방향이 달랐으니...^^) "이 로맨스 형식이 영국이나 여타 유럽 소설과 다른 19세기 미국 소설의 특성을 지칭하는 대표적 개념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 만큼 이 작품은 근대 미국의 시대상과 그 정신을 읽어 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435 역자설명 '로맨스' 라는 개념을 내 맘대로 오독하지 않았다면, 읽는 내내 힘겹다는 생각은 덜했을 것 같다. 작가의 의도와 다른 로맨스를 찾으려 했으니, 힘들었던 것 뿐, 가깝게는 내가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던 이들의 심정만 떠올려 보아도, 소설에서 찾아낼 이야기 거리는 너무 많다. 힘없는 자들이 어떤식으로 쫓겨나는지, 그러나 강제로 빼앗은  땅위에 올려진 건물..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답은 작가에게 허락되지 않는 모습이었던 거다. 켜켜이 붙여 놓은 살을 발라내는 과정 같은 소설이었다 살을 하나하나 발라 내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순간 순간 찾아오는 버거움 속에 정신 번쩍 들게 하는 메타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남의 눈에 눈물나게 한 자들에게 반드시 저주가 내려져야 한다는 작가의 신념 같은.그러니까 일곱 박공집에 내려진 건 저주가 아니라 인과응보였던 거다.


"<일곱 박공의 집>에서 호손은 역사 속 청교도의 광기를 허구적으로 바꾸어 소개한다.그건 먼 과거의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다. 어느 마을에서 매슈 몰이라는 사람이 마녀사냥에 몰려 교수형을 당한다.그를 고소한 핀천 대령은 몰의 2,3에이커정도 되는 땅을 탐냈던 인물로 몰리 죽은 후 그 땅을 차지한다.그 거친 땅을 토대 삼아 냉혈한 핀천은 자신의 집을 짓고 호손은 음울한 이야기를 시작한다.마녀사냥광기가 주는 공포와 더불어 독자들이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으니 바로 망치를 두드려 일곱 박공을 만들면서 생겨난 도덕적 타락의 암시다.호손이 말하고자 하는건 단순하지만 인간의 마음처럼 심오하다.도덕적 타락의 영향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의 모든 유형의 축적물과 함께 대를 이어 전해지며 그건 끔찍한 유산이다.(...) 이 소설의 사건들에는 많은 극적 요소들이 존재한다.등장인물들도 가끔 우화를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극적이다.이 로맨스에서는 인간의 악과 덕이 오랜 기간에 걸쳐 싸움을 벌인다<<천로역정>>이 호손이 즐겨 읽던 책 중 하나였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109~110쪽 <일곱 박공의 집>을 끝낸 것이 2022년 여름이다. 읽는 내내 몹시 힘들었지만,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를 받게 되고 보니, 다시 읽어낼 수 있을까 품었던 의심은..올 여름 다시 한 번 읽아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유혹을 느끼게 한다. <완벽한 날들>을 구입한 이유에는, 어쩌면 호손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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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애드의 다섯번째 파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마침 넷..에 올라와 있어 보게 되었다. 실화라는 사실도 놀랍고,마침내 성공을 이뤄낸 것도 놀라웠다. 거리와 시간과 나이가.. 그런데 책사랑 하는 이에게는 보너스 처럼 메리 올리버가 등장하는 순간도 반가웠던 순간이었다는^^


메리 올리버 알아,하고 나이애드가 보니 에게 묻는다. 보니(조디 포스터)는 시크히게 시는 별로라고 하는 반응도 재미났다. 사실 지난해 메리 올리버시집을 여러 권 구입했으나, 단숨에 읽어낼 수 없어..틈틈히 읽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고이고이 모셔 두었던 메리 올리버를 다시 꺼내 보았다.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










3월은, 메리 올리버를 읽어 봐야 겠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한 것 같다.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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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자유로워야 한다!!^^

(ps...티모시 샬라메배우가 새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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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읽은 <우미인초> 다시 읽기를 막 끝내고 나서 보게 된 알라딘의 기록. 지난해 소세키전집을 읽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나는 고양이..가 1년 전 기록으로 올라오게 될 줄은 몰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늘은 <우미인초> 리뷰를 작성했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무튼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다시 소세키 소설을 읽게 된다면 <우미인초>가 될 거라 생각했다. 애정하는 카페서 '우미인초' 블랜딩을 마시지 않았다면, 간만에 찾아본 일드에서 '우미인초'가 언급되지 않았다면..2월에 읽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혹 내년에도 어쩌면 <우미인초>.를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그만큼 소세키의 <우미인초>가 좋다는 이야기일터. 그닥 밝은 내용이라 할 수..는 없는데, 하이쿠같은 문장들이 너무 좋아서..



거의 드라마를 보지 않지만, 우연히 보게된 작품에서 '책'이 언급되면 마냥 반갑다. 게다가 소세키의 소설을 읽은 커플이라니..드라마에서 '우미인초'가 중요한 역활(?)을 했는지..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저 커플은 '우미인초' 덕분에 진정한 사랑에 대해 눈을 뜨지 않았을까..믿고 싶다.




"<<화엄경>>에 '외면은 보살 같고,내면은 야차 같다'라는 구절이 있다. 알고 있지?

"그 구절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견소라고 한단다.꽃은 아름답지만 가시가 아주 많지.어디 한번 만져봐라"/335쪽 '우미인초'가 언급되었다는 반가움에 순간 남녀의 대사를 우미인초서 언급된 대사인 줄..알고,기억나지 않아 다시 <우미인초>를 찾아 읽고 싶었던 것도 이유였다. 처음 읽을 때는 후지오의 마지막이 너무 장렬(?)해서 소설 이야기 전체가 까맣게 타버린 느낌이었는데, 다시 읽으면서도 여전히 그녀의 마지막은 어떻게 말 해야 할지... 우리가 이렇게 힘든 이유는, 내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 그렇고.당연히 타인을 바라볼 때도 겉과 속 마음이 다를수 있음을 헤아릴 눈이 깊지 못한 것때문에 그런건 아닌가..생각했다. 굳이 소설속 인물들 면면의 성격에 대해 따져 묻고 싶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이다.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서 힘든 것이 아니다.겉과 속이 다른 마음을 헤아릴 힘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읽혀지는 것이 고전의 맛이라 생각한다. 일년 밖에 되지 않아, 거의 비슷한 느낌으로 읽었지만, 지난해 도덕적인간에 대한 물음은,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의 복잡한 마음과,그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조금은 더 연민이 생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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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9
이디스 올리비어 지음, 김지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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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목소리가 사그라지고 다른 존재와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로"/15쪽



소설은,엄마의 장례식이 막 끝난 상황으로 시작된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소환된 건, 그녀가 온전히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감정 상태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럴수 있는 상황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무튼 뫼르소가 엄마가 죽고 나서, 누군가를 죽이게 되는 상황을,애거사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둘이 만나게 되었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까..혼자 잠깐 상상해봤다.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그녀가 <이방인>을 읽었다면,어릴적 자신이 만들어 냈던 상상의 인물을 가져오지 않았을지도. ...현실의 시간으로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상실의 기억을 찾아(?)냈고..그녀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의 진짜 목소리가 아닌,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로.. 적어도 처음 읽는 (지금의) 나는 그렇게 밖에 이해되지가 않는다. '공황' 이란 단어가 언급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애거사는 모호하게 대답했다.공황이 서서히 밀려왔다.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클러리사가 점점 더 수습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28쪽


엄마와 둘이 살아왔기 때문에,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딱히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것 같지도 않았다는 그녀의 고백.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았던 과거속 아이는, 애거서가 만들어낸 또 다른 애거사가 아니였을까... 숨은 행간을 해석하기가 벅차서,그렇게 밖에 이해되지 않았고,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생아'는 결국 자신을 향한 말은 아니였을까? 어릴적 그녀가 의유부단하지 않았다면, 현재를 살아내려고 노력했다면,엄마의 죽음이란 상실을 또 다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생아'라는 단어가 그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였을까? 데이비드의 존재는 그래서 또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애거사는 상실을 극복해내지 못한 인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상실을 잘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절이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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