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정 때의 그 악명 높던 곡식 공출이 여전히 존속되어 부족한 식량을 수탈해가는데 어찌 해방이며 이민족들이 나라를 두동강 내고 점령하고 있는데 어찌 해방이라고 할 수 있으랴.그러므로 그 이듬해인 1947년 3월1일 읍내에 이만 군중이 모여든 대시위는 이렇게 극한 상황에 몰린 민생의 피맺힌 절규였다.그러나 미군정은 슬픔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 집회에 무차별 총격으로 응답했으니,여섯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고 말았다/37쪽
하늘은 언제나 백치같이 무심한 표정이었다.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일이기에 더욱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인간의 경험 상상력을 훨씬 능가해버린 그 엄청난 살육과 방화를 놓고 어떻게 무자비하다,잔인무도하다,하는 따위의 빈약한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