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싶다>가 궁금해서 읽게 되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건 '6호 병동'이었다는 나의 기록(2022년3월) 그때와 지금 다르게 읽혀진 것이 당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탄핵의 시간을 겪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스스로 두려움이란 껍데기로 숨어간 이반을 안쓰럽게 바라보았을 것 같다. 중요한 건..재미난 건 '6호 병동'을 한줄로 요약할 지점은 같았다는 사실이다. 삶은 참으로 성가신 덫입니다.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 성숙함에 이르러 제대로 판단하게 되면서 자신이 출구 없는 덫에 걸려 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82쪽










"인생은 지긋지긋한  덫입니다.생각이 있는 사람이 성숙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이 출구 없는 덫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83쪽


미치광이와 인간이 공존한다는 말을 심오하게 받아들이며 읽었던 처음과 달리, 현실에서 날뛰는 미치광이를 보고 있는 탓에,공존한다는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선은 지극히 오독하고 싶은 나의 마음일 뿐이다. '6호 병동'을 다시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맞지만.. 진짜 재미라면 '상자 속 인간'을 읽고 '유형지에서'를 읽은 다음 '6호 병동' 으로 이어진 알 수 없는끌림이었다. 다른 듯 닮은 인물들과의 만남.상자,유형지,감옥,병원..모두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이다. 상자 속 남자를 욕하지만,욕하는 이들도 결국 스스로 만든 상자 속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은 유형지에서 자유를 꿈꾸지 않는 늙은이(세묜)을 떠올리게 했다.6호 병동에서는 두려움에 숨어드는 이반이 상자 속 인간 벨리코프를 연상시켰다. 물론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인생은 지긋지긋한 덫이란 말로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각자 이유는 달랐지만..우리는 그렇게 그렇게 지랄맞은 삶을 살아간다. 미처 날뛰는 사람도, 스스로 유배지 삶을 택한 이도,정신 병원으로 찾아 들어간 이도... 안드레이 에피미치의 탄식이 정신 번쩍 들게 했다...이 부분도 2022년과 같은 느낌으로 와 닿은 부분이라 신기했다. 달라진 점이라면,그때는 생각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차라리 스스로 생각하는 걸 멈추는 것이 행복한 걸까..라는 질문 자체를 하면 안된다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는 거다.


"어떻게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단 말인가.그는 고통을 몰랐고,또 고통에 대한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그러니까 그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하지만 니끼따처럼 완고하고 투박한 양심이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하게 만들었다.(...)/125쪽


생각 없이 사는 니끼타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이반의 패악이 오히려 카타르시스처럼 전해져왔다.부디 그가 유령으로 부활해주길...미치광이들을 모두 잡아 가 주길...


"나는 저 세상에서 유령이 되어 여기에 와 이 악당들을 놀라게 해줄 거야.머리카락이 새도록 말이야"/122쪽









"(..)병원 동료들의 음모와 악행에 맞서 대응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모든 것은 마찬가지라며 경멸했던 의사 라긴은 사회의 폭력과 음모에 의해 희생당한다.그는 정신병자로 몰려 6호실의 6번째 칸의 환자가 되어 격리병동에 갇혀있다가 경비원 니키타의 구타로 뇌출혈을 일으켜 죽음에 이른다"/272쪽


'6호 병동'을 다시 읽으려고 마음 먹고 나서 <체홉의 6호실>이 보였다. 출판사 이름은 낯설지만, 체호프의 작품 세 편만을 소개했다는 건, 작품에 대한 해설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열린책들은 이 부분이 좀 아쉬웠다) 덕분에 '6호 병동'을 쓰게 된 이유와, 의사 라긴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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