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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보다 잘 '듣는' 훈련이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읽는 동안 내내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다 읽고 난 후, 제목을 곱씹어 생각하고,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다소 막장에 가까운 이야기라 생각했다.(솔직히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그리고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의 목소리가 그려진다. 그럼에도 올리버의 다소 일방적이고 억지스러운 태도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얼마전 보게 된 영화 '리얼 페인'의 벤지라는 인물과 오버랩되면서,그에게도 뭔가 씻어내지 못한 상처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그렇게 보이도록 연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이야기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만 낸다. 상대방의 마음으로 헤아려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들 각자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보고,자신의 마음을 해석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원제목이 실은 '내말좀들어봐' 가 아니라 '의논,설득, 상담,등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Talking It Over> 라는 사실을 알았다.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 설득,고민을 터놓고 싶은 상담,당신 생각은 어떻냐고 물어보는 '의논'의 느낌은 전혀 받을수 없었던 아이러니.. 그러니까 역자 후기 설명처럼 이 소설은 왜, 우리가 설득과 의논과 상담을 서로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거다. "그들은 귀먹은 사람들이 아니었다.그저 듣기를 거부한 것일 뿐 다른 깊은 요인을 찾기 어렵다.20세기 후반의 인간관계 특히 대화 부재의 인간관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343쪽 '역자후기'중에서
우리는 대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잘 '듣는' 것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하는 말 아닌 모든 말은 거짓말..이라고까지 우기는 지경에 이르렀다.소설 마지막 부분에 귀먹은 강아지의 최후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강아지에는 미안하지만- 내 말좀 들어달라고 하기 전에,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헤아릴 수 있었다면 스튜어트와 질리언은 헤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사랑에 대한 올리버의 끝없는 궤변에도 스튜어트와 질은 잘 설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스튜어트를 향한 질리언의 마지막 퍼퍼먼스는 영화적으로는 재미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반전이었지만....그녀는 끝까지 스튜어트를 향한 배려(?)를 자기 중심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을까... 스튜어트가 행복을 느끼(?)며 그녀 곁을 떠난걸로 믿고 싶지만... 사랑과 거짓말에 관한 조금은 통속적인 소설일거라 생각했으나,귀를 막아버리게 되는 최후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 사이사이 '줄리언스의 말' 메모장이 만들어질 만큼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들을 읽는 건 기쁨이다. 질리언의 직업 복원에 대한 엿보기 과정은 보너스처럼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