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보러 예당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내가 사는 동네에 공연장이 들어서고 나서는 이상하게 가게 되지 않았는데....방송에서 공연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불현듯 이제는 가봐(?)야 할 때인가 생각하다가 마침 베토벤소나타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있어 예매를 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찾아가는 공연장... 프로그램대로 연주를 들을수 있어 좋았다. 겨울로 가고 있는 시기에, 봄을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놀란건(클알못이라서..) 격정적인 베토벤소나타9번 마저..굉장히 소프트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상상하는 기쁨.... 베토벤 소나타9번은 내게 연주라기 보다, 언제나 톨스토이의 소설을 생각나게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남자는 그렇게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 걸까.. 아니 소설 속 남자가 아니라 톨선생에게 더 지대한 영향을 준 베토벤 소나타 9번.... 사실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긴 한다.
베토벤의 바이올린소나타9번에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라는 글을 읽고, 몇 년 전 읽은 기억이 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포함 4 편이 실린 중단편집. 리뷰로 남기지 않은 이유는 네 편 모두를 읽지 않아서 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우선 크로이체르 소나타만 읽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소나타9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라, 처음 읽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충격까지 받았으니, 처음 읽을때도 충격을 받았던 걸까.. 리뷰까지 남기지 않은 걸 보면 당황했던 게 틀림없다....다시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읽었다. 베노벤 바이올린소나타9번에 대한 감상을 즐기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데 센(?) 소설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오롯이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톨선생의 말년 작품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광기에 가까운 에너지가 느껴져서 사실 무서웠다.
소설의 시작은 사랑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여성과 남성의 시각이 다르고, 노인과 젊은 사람의 시각이 또 다른 사랑의 본질에 관한 주제는 톨선생이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해결 될 수 없는 질문이란 생각을 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정답은 아닐까..그런데 우리는 타인의 사랑에 대해서 만큼은 또 관대하지가 않아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한 남자는..정말 심각한 문제를 지닌 남자임에는 분명하다..(그의 시선에서 바라볼 여유가 아직은 없다.) 그런데 톨선생은 베토벤의 바이올린소나타9번에 어디에서 광기를 느낀걸까...그렇지 않았다면 사랑에 잘못된 환상을 가진 남자를 그려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음악 때문이란 건 자신의 광기에 대한 합리화 일 뿐이다.그러나 모두가 같은 느낌으로 예술을 바라보지는 않다는 걸 감안하면 누군가에는 에너지 넘치게만 들릴 프레스토가...누군가에게는 심장박동을 조여오게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세계로 이끌수도...아, 베토벤선생께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자신의 음악으로 인해 한 남자가 미치광이처럼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모습을 마주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내 음악에 숨어 있는 악마의 목소리를 찾아냈다고..고마워 할까..아니면 모독이라 생각했을까...사랑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남자의 결말이 해피앤딩일수 없다.문제는 함께 사는 이들에까지 아픔이 고스란히 남겨진다는 거다. "(...)규칙적인 아르페지오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자신들의 말이 들리지 않도록 일부러 피아노를 치는게 분명했습니다.어쩌면 키스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이럴 수가! 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때 제 내부에 숨어 있던 짐승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심장이 답답해지며 멈추는 듯하다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모든 증오의 귀결점은 예외 없이 자신에 대한 연민입니다"/264쪽 사실 이 소설은 센..소설이 아니라, 굉장히 솔직한 소설일지 모른다. 너무 솔직해서 자신이 숨기고 싶은 무언가를 꺼내 놓는 바람에 사람들이 난리를 친것이 분명하다. 무튼 그럼에도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무섭다. 그러니까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지, 예술이 미칠수 있는 악영향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혼란스럽기도 하다.스탕돌신드롬과는 반대지점에 있는 이야기 같아서....
베토벤소나타 9번을 들을때마다 어김없이 톨선생의 소설을 떠올린다. 그것이 온전하게 감상하는 것을 방해하는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무튼,소설과 함께 이 시리즈의 베토벤 편도 함께 찾아보곤 하는데, 베토벤소나타 연주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지어 연주프로그램도 같다. 베토벤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들을수 있는 공연을 보기에 앞서, 책으로 만난 덕분에 즐거움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남들과 달라서 선구자가 되었던 베토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대등한 위치에 놓았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설명 덕분에 그렇게 느껴진 것일수도 있겠지만 공연을 감상하는 내내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크로이처>에서는 넓은 음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숨 가쁘게 펼쳐지는 피아노 파트가 특히 화려하다.너무 화려한 나머지 마치 바이올린을 위협하듯 공격적이다.그러나 이에 대항하는 바이올린 파트 역시 만만치 않아서 불을 뿜는 듯한 스타카토와 강렬한 악센트를 선보이며 피아노와 접전을 벌인다. 그래서 음악학자들은 이 곡이야말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대등한 위치에 있는 진정한 의미의 듀오 소나타라고 본다"/165쪽 현악4중주 연주가 좋았던 건, 글을 몰라도, 누군가와 대화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때 느껴지는 희열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알고 들으면 더 좋겠지만..몰라도 듣지 못하는 벽이 느껴지지 않는 기분...그런점에서 보면 클래식은 여전히 어렵다. 베토벤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모르고 들었때와 조금의 정보를 이해하고 들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 그러나 모르고 들었다고 해서 답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조금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지점이...클래식클라우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그런데 클래식은 함께 듣기가 병행될 때 더 즐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베토벤의 개인사 보다, 청각을 잃어가는 고통을 상상하며 바이올린 소나타9번을 들어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5번은(공연은 3,7,9였는데, 1,5,9번은 변경되어 있었다.^^) 그런데 비교적 밝은 연주곡으로 알려진 5번에서 조차 베토벤의 복잡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기분을 느낄수 있다. 체념과 받아들임, 9번에서는 노애락..만 있다는 설명 덕분에 좀더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1번은 어려웠다..기 보다 평범한 느낌..만약 이 음악을 가장 먼저 들었다면, 클래식은 역시 어려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5번과 9번이 너무 센 음악들이라..건상식이 입에 안맞게 느껴지는 기분이었을수도 있겠고.... 무튼 베토벤바이올린 소나타 공연 덕분에 , 클래식 클라우드편과 톨스토이의 소설까지 찾아 읽게 되었다. 그러니까 연주를 보기 위해 클래식클라우편을 찾아 읽었고, 톨스토이소설로까지 이어진 모양이다... 이번 공연을 들으면서 남자가 광기로 빠져들수도 있을 것 같은 이유가 하나 보이긴 했다. 서로 다른 악기가 어느 순간 하나의 소리가 되는 듯한 기분.. 물론 그럼에도 광기에 사로잡힌 남자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베토벤 음악에 영감을 받아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톨선생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