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내지 못한 고전들이 있어,반가웠던 책이었다. 나와 맞지 않는 책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위로를 받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와 맞지 않는 세계가 있을수 있지만, 가까워질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겠구나..하는 편안함을 느낄수 있어 좋았다. 시인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제목에 관심이 가서 골라 들었던 <은엉겅퀴>를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왔다. 마음가는 대로 읽는 것이 좋아 시를 애정한다고 나름 자부해왔던 1人인데, 라이너 쿤체의 고요함 속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가..없었던 거다. 그런데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덕분에 다시 라이너 쿤체를 읽어보고 싶었고, 거짓말처럼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찾아냈다. 그에 앞서, 라이너 쿤체에 대한 설명을 하며 들려준 시인의 생각에 나는 더 많은 공감을 했다.
"작은 개가 한 외로운 인간에게 보여주는 우정을 우리가 동료 인간에게 보이는 일이 어찌 그리 힘든지, 이스라엘은 가장 유대적인 유산인 카발라의 침춤 사상을 망각했다.무한자도 한갓 유한자인 인간을 위해 기꺼이 수축시키는데 한 인간 종족이 다른 인간 종족에게 곁을 내주고 서 있는 자리에서 조금 뒤로 물러서는 것이 그렇게까지 힘든일일까? 드러내기 문명의 그림자 속에서 가장 빛나는 건 아무래도 인간의 야만인 것 같다"/132쪽 라이너 쿤체의 '작은 개'를 읽으며 인간의 야만성을 건드려주는 시선이 고마웠다.
들어오세요,벗어놓으세요,당신의/슬픔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제목도 '한 잔 재스민 차에의 초대' 라서 길상사에 가면 혼자 명상할 수 있는 그곳이 생각났다. 그런데 저항의 상징으로 씌여진 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거기까지 알지 못해도,기꺼이 오독이 허락될 수 있는 시란 생각을 하며 곱씹어 보기로 했다. 저항..의 상징으로 읽으면 너무 슬플것 같아서.. 고요함의 시간이 필요할때마다 꺼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설명을 듣고 다시 시집을 꺼내 들었으나 여전히 힘들다는 기분을 떨칠수..가 없다. 그런데 이유는 다르다. 처음에는 선문답 같은 시를 어떻게라도 이해하고 싶었다면, 다시 마주한 지금은, 시를 대하는 시인의 마음을 감히...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쿠 제목을 단 시들이 좋았다. 5음절 겸양/일곱 음절 외로움/5음절 슬픔// '하이쿠 교실' 절망적 찾음/사물들의 이름을/ 세계,멀어짐// '노령의 하이쿠' 그리고 불쑥 시조를 주제로 한 시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조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보여서..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몇 번을 읽고 또 읽고 나서야..후기를 읽었다. 우리나라에 방문했었고,우리나라 풍경을 담은 시도 썼다는 사실을... 밤의 고충 건물들 위/교회 십자가들,네온 불빛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빨갛게 노랗게 하얗게 디즈니/천국, 열려 있다/ 24시간//'서울의 선교' 시인이 다녀간 2005년 풍경과 지금 풍경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이란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모양이다.. 이 책을 읽게된 덕분에 다시 라이너 쿤체의 시집을 읽을수 있었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