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는 오리엔테이션 요원의 이름을 참으로 친절하게도 '처음'이라고 지었는데 그 하쓰가 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주인공에게 "여기가 지옥의 입구야" 들어갈 수 있겠어? 라고 묻는다. 이 구절은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라는 첫 구절로 시작하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과 자연스럽게 공명한다.소세키 보다 한 세대 뒤에 활동했던 다키지가 일본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작가였던 반면, 소세키는 사회주의나 노동자 계급에 아무런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324쪽
웬만하면 창비고전은 피하고 있다. 번역의 정직(?)함이 읽기에 방해가 되서 그렇다. 그런데 <갱부>를 읽다가 <게 가공선>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 궁금했다. 무엇보다 <게 가공선>을 일본 소설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다음으로는 소세키의 소설과 결이 다르다는 지점이 읽고 호기심을 끌었다."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7쪽로 시작되는 소설..분량이 작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소세키 소설도 그렇지만 <게 가공선> 역시 백년 지난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살해당하지 않으려면 단결해야 하는데..왜 단결은 점점 더 요원한 것인지... 통한의 절규를 들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은 얼마전 보았던 영화 '오키쿠와 세계'를 다시 생각나게 했다. 똥푸는 직업을 가진 청년들이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영화는 가끔 컬러로 변신하는데,감독은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소설 속 똥통이 상징하는 바가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새삼...영화를 보면서 갑질하는 이들을 보았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매일매일 살해당하는 삶을 살고 있으나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매순간 지옥을 내려가는 것 같은 두려움이..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든 탓일까? 소세키의 <갱부>에는 야쓰같은 인물 덕분에 청년이 스스로 갱부를 빠져(?)나갈 수 있게 되지만 <게 가공선>에서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여러분 무엇보다 우선 우리들끼리 힘을 모아야 한다.우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동료를 배신해선 안된다."/121쪽 배신과 단결하기는 왜 그렇게 힘든 것인지... 한 순간에 닥치는 폭풍우 보다 서서히 무너지는 잔물결이 더 무서울수..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때보다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게 가공선>을 읽는내내 소설이란 생각을 할 수도 없었고, 저들의 고통을 가늠할 여유도 없었다. 지금..현재의 모습이 너무 지옥 같아서...
작가들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도스또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말야. 여기서 보면 그것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58쪽 박경리의 <표류도>를 읽다가 도옙..의 죽음..이 소개되어 궁금해 읽었다. 그런데 <게 가공선>에서 또 다시 언급 된 죽음...을 보면서 작가들의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고통'을 상징하는 은유라는 생각도..그런데 도옙..소설 보다 <게 가공선>이 더 지옥같았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