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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평점 :
혀의 미각에서 얻는 쾌락과 지적인 것의 충만감이 만드는 정신의 기쁨은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지 않다. 주린 위장의 배고픔과 정신의 공허가 초래하는 고통이 그렇듯이. 그 둘은 하나로 포개진다. 그런 맥락에서 철학은 차고 뜨거우며 쓰고 달콤한 음식이다. 오래 전부터 참을 수 없는 정신적 탐식에의 욕망으로 온갖 철학을 삼키고, 위와 장에서 삼킨 것들을 소화시켜쓰며, 마침내 이 화사한 철학들은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 <철학자의 사물들>은 사물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사유와 철학을 즐긴 흔적이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물들의 이모저모를 뜯어보고 그 철학적 의미들을 반추하는 동안 나는 사물의 행복한 감식가 노릇에 만족한다. 당신을 이 자유분방한 사유의 축제에 초대하니, 여기 와서 사물의, 사물에 의한, 사물들을 위한 축제를 즐겨라!
-저자의 말 중에서.
영화 '클로저'에서 영국인 주드 로는 처음 만난 미국인 관광객 나탈리 포트만에게 런던의 일상을 소개한다. 튜브라고 부르는 지하철, 보비라는 애칭의 경찰. 붉은색 벽돌 같은 이층버스. 입술 양 끝을 벌려 발음하는 티. 오후 네 시의 크림 티, 타인과의 거리를 끔찍이도 지키고 싶어하는 이들이 탄 이층버스, 시민 사이를 천천히 걷는 경찰, 운행을 자주 중단하지만, 도시의 이곳저곳을 연결하는 지하철. 무심히 보아넘긴 사물은 이국의 관광객에게는 신비한 물체로 다가선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어떤 존재는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상외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 고개를 들어보면 늦게 와서 빨리 지나치는 봄 공기를 타고 커피 향이 실려온다. 테이크아웃 잔을 손에 들고 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이야기를 하거나 뭔가를 들으며 스쳐 지나간다. 그 많은 얼굴 속에서 내가 아는 얼굴을 찾기 전까지 가만 앉아있노라면 내가 든 가방, 그 속의 잡다한 물건들이 때때로 말을 건다. 그것은 영화 파니 핑크에서 오르페오가 보지 말라고 했던 시계이기도 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쓰는 밝은 갈색의 가죽 수첩이기도 하다. 원하는 만큼만 인간적인 커피 전문점의 종업원이 내게 건네준 커피가 식기 전까지 짐짓 처음 보는 물건이라도 되는 양 그것들을 들여다보면, 더 깊은 이야기가 들린다. 아마 장석주는 '철학자의 사물들'을 펴내기 전 이런 시간을 가졌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장석주는 해마다 천여 권의 책을 읽는 다독가로 유명하다. 이 책은 그의 다독의 경험과 일상의 관찰력, 그것을 자신의 고유한 의미로 엮어내려는 노력의 결과다. 이를테면 여행 가방에서 그는 암스테르담과 서귀포를 떠올린다. 배와 기차, 비행기, 기상이변, 무수한 변곡점과 계획의 수정이나 이행을 떠올린다. 여행은 그에게 생각을 낳는 커다란 여행 가방으로 환원된다. 의미를 비틀고 환원하여 그 본질을 자기 생각으로 대치시킨다.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떠나기에 일회성을 지니는 여행을 생각하며 장석주는 떠남과 나아감으로 존재하는 인생 역시 하나의 여행임을 상기시킨다. 하나의 부분이 전체가 되는 순간이다.
관계, 취향, 일상, 기쁨, 이동이라는 분류에 따라 서른 개의 사물을 서너 페이지에 걸쳐 다소 느슨하게 계열화하고 그 사물에 관해 묻고 대답했다. 철학자의 시선은 종종 인용과 요약으로 장석주의 시선과 어우러진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일상의 사물이며 따라서 우리가 자주, 때로는 무심하게 지나치는 존재다. 하지만 같은 사물도 철학자의 필터를 거치면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김훈은 타인과의 연결 통로, 알랭 드 보통은 무심한 연인의 손에 들어가면 악마의 고문 도구로 본 휴대전화기를 그의 저서에서 이야기했는데 장석주는 이를 고독과 온전함의 자유를 잃게 하는 도구로 본다. 그는 휴대전화를 손의 구조와 그 기능의 한계 속에서 진화하는 사물로 보기도 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광신론적 믿음의 종교적 실존 도구로 보기도 하며 기술의 핵심과 시간 압축을 가능케 한 진화의 매개체로 보기도 한다. 그 사이사이 블랙베리, 모토로라, 삼성, 아이폰 등이 등장한다. 케빈 켈리(기술의 충격), 파스칼 피크, 장 디디에 뱅상, 미셸 세르(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저술이 인용된다.
담배
나는 담배를 통해서 '증발'되기도 하고 '집중'되기도 한다.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다.
-보들레르
거울
환상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그 무대이다.
-라캉
카메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에 찍힌 대상을 전유한다는 것이다.
-손택
시계
권태란 안쪽에 극히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의 비단으로 안감을 댄 잿빛 천과 같은 것이다.
-벤야민
엄청난 시간을 자신에게 굴복시킬 수 있는 존재, 무생물의 형성, 생물의 진화로부터 획득한 권위를 지닌 존재, 기호 순환으로부터 획득한 권위를 지닌 존재, 호미니언과 존재, 계통 발생의 시간에서 얻은 권위를 지닌 존재라고 인간을 정의한 파스칼 피크, 장 디디에 뱅상, 미셸 세로의 인용 끝에 저자는 그러나 스마트폰과 자기 자신을 동일화하지 않음으로 스스로 진화를 멈추었고 평한다. 필요성, 가치, 첨단 기술로 꾸민 스마트한 기기에 마음 설레는 사람이 많건만 저자는 그것을 쓴다 하여 자신의 생이 화사해지지도 화창해지지도 않을 것임을, 자기 존재의 현상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결심한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겠노라고.
사과에서 애플을 떠올린 저자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이란 삶을 위한 발명품이고 선택을 위한 도구여야 한다'는 말을 인용한다. 그가 바라본 스티브 잡스는 경영자 이전에 인문학자였다. 11월 들어 세 번째 맞는 목요일의 차가운 빗방울에서 따뜻한 수프의 위로와 욕조의 휴식을 생각한다. 늦게 배달된 신문에서 일상의 커피와 신문으로 드러나는 휴식과 연결고리를 이야기한다. 책에서 종이 재질과 독서의 역사, 재료와 구조까지 그의 생각은 꽤 넓은 범위를 어렵지 않고 간단하고 단순하게, 그러나 깊은 고찰을 통해 드러낸다. 사과와 스티브 잡스, 욕조와 사사키 아타루, 조간신문과 마샬 맥루한, 책과 움베르토 에코가 짝지어 등장한다. 이 속을 함께 산책하는 것은 독자인 나의 즐거움이었다.
이러한 즐거움은 아마 일상에 희석될 것이다. 아마 앞으로 많은 나날,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장석주의 말에 따르면 항생제 가득한 돼지고기로 저녁을 위안하고 신용카드를 긁으며 소비사회의 톱니바퀴가 될 것이며 자동판매기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음으로 존재하는 존재가 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침대에서 몸을 수평으로 만들어 다시 아침을 맞고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 알면서도 계속하는 담배 같은 습관을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 선글라스로 훌륭한 가면을 만들고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삶은 이렇게 지속된다. 파릇한 바람에서 겨울의 공기를 잊고 차가운 서리에서 남풍을 기약하듯 계속 나아가는 것. 일말의 위로와 사유를 통한 직관, 평범을 통한 비범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잠시 엿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