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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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마디를 하면 언니가 두 마디, 세 마디를 했다.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이고 틀린 말이 아닌데도 듣다보면 묘하게 기분이 상했고 뭔가 말을 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다. 대화는 적당한 속도로 차분하게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덜컹거리며 엉뚱한 방향으로 이어졌고 매번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숫자와는 도통 익숙치 않은데......이상하게도 숫자를 다루는 일을 했었고 종종 지금도 물끄러미 숫자들을 들여다본다. 거짓이 없고 그간의 사정을 보여주는 차별없는 객체이자 주체로서의 숫자들을.

 1983년 태어난 한국 여성작가의 2020년 출간작. 표지에서부터 숫자가 나온다. 너라는 생활. 너, 2인칭. 이걸 독일어나 영어로 옮긴다면...이때의 '너'는 2격일까 3격일까. 이런 생각도 해보는데, 생각의 경로는 단편 전체가 관통하는 주제의식이었다. 대체 이 낯익은 지옥과 낯선 일상, 영원히 모를 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이런 일에는 아직도 어리다. 그럴 나이, 아닌데도 이 나라 말, 잘 모릅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까지 원치 않는 덤처럼 따라온다.


  

 여덞 편의 단편 속을 관통하는 여덟 사람의 너는..요령있다가도 답답하고,(3구역, 1구역) 어두운 캠퍼스에서 내가 답을 내리게끔 했고(다른 기억), 거절의 열패감과 위협의 당혹감을 연이어 드러내기도 했다(너라는 생활). 이런 사람들도 우리가 배려하며 서로 양보하며 살아야지, 라는 말을 듣고도 고개를 주억거렸었고(자정 무렵), 평온하고 조용한 주말을 보내고픈 내 바람은 무시하고 왜 내가 사과하냐고 언성을 높였고(동네 사람), 성실히 장사하는 사장님인지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인지 나를 헛갈리게 했고(우리는), 그 언니 때문에 헤어질 수 있는 한해빠진 옛 연인이기도 했으며(아는 언니) 광장이라는 신기루 같은 오지 않은 시간을 나누던 사람(팔복 광장). 이 전부가 다 이 소설집 속의 너인데......




 이 모든 소설집 속 너의 모습들은 너를 하나의 소유와의 주체로 볼 수도, 너의 동작과 생활이 향하는 대상, 그 수여 대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는 나 개인적인 생각. 이 책을 여러번 읽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데, 그 중 하나가 도통 알 수 없는, 분통터지게 만드는 너라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쉬었다가도 재개해오는 침범이다. 너에게 닿으려면 이래야만 하나. 너의 소유에서 나의 소유로 넘어와야만 하는 걸까. 그 사이, 시인 황인숙의 시 '강가에서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처럼, 꼭 그래야 한다는 듯 선을 하나 그어둘 수는 없는 걸까. 라고 한다면, 차라리 성경의 누가복음 한 구절이 답으로 적당할 듯하다.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해와 관용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왜 상대의 무지가 나의 관용의 이유가 되어야 하나. 살아간다는 일은 때로는 환상같으면서도 때로는 고단해서, 이 얽히고 섥힌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사실의 크기를 조각내 보곤 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내가 납득할 수 있고 내가 좋게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사이즈로 작게 줄여보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김혜진의 소설집에서 이 노력은 배경음처럼 깔려 있는데, 문제는 이 배경음이 '너'라는 상대에게는 때론 지나치게 크거나 작게 들린다는 지점에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나에게도 그 문제는 마찬가지다. 너의 노력들이 과연 노력이 맞기나 한가 싶게 의심스러운 순간 



<아는 언니>와 <자정 무렵>에서 그 의심스러운 순간은 균열, 불균형, 실금으로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는데 더 신기한 것은, 이 균열의 결말은 불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짜장면과 짬뽕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닌,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네가 선물하고 싶어하니까 비좁은 마을 연구소라는 공간에 너무 커서 도대체 어떻게 자리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양문형 냉장고를 같이 선물하고, 네가 좋아하니까 나는 알지도 못하는 아는 언니를 만나게 되는데 아, 좀더 세련되기란 어려운 걸까. 읽다보면 느껴지는 탄식은, 이제 내가 이런 종류의 호혜적 마음을, 상대방의 나를 향한 친절을 단번에 이해하게 될 정도로 경험치가 쌓여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이 너무 많아져서 더는 어떤 종류의 영화나 소설에 등을 돌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해해버려서 찜찜한 친절도 있다는 뜻. 


아,맞다. 요 아래 이번에 새로 이사온 커플도 여자분들이에요. 가까운 데 살면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하고. 좋을 것 같아.

-자정 무렵

 

여기 길이 있어요? 여긴 아파트 단지라 막혔을 텐데.

다 왔어요. 바로 여기예요. 109동이요.

언니의 얼굴에 잠시 난처한 표정이 떠올랐다. 경비실을 지나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에야 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두 사람이 이 아파트 이름을 자꾸 말하기에 부근인 줄 알았지. 여기인 줄은 몰랐네. 정말 생각도 못했네. 

...

집에 책이 많네.

쟤 요즘 논문 쓰잖아요.

논문? 무슨 논문? 알바 한다고 안 했어?

알바야 늘 하죠. 석사 졸업해도 알바는 계속해야 할걸요. 그지?

-아는 언니



 아이고. 맵다, 매워. 저 대목에서는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나는 너를 평가해 왔다는 것을......그러다가 보니 이것은 거울 치료인가, 그림자 요법인가. 생각하기에 이르른다. 여자 둘이 사귄다는 이유로 다른 동성 커플을 갖다붙인다면, 그럼 모임에서 이성 부부를 만나 아 우리 옆집에도 부부가 한 쌍 사는데,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할 노릇인가. 어쩌면 저렇게 상대를 단편적으로 재단하는가, 싶다가도 이 모든 것은 게으름의 죄이다. 상대의 몇십년의 시간을 몇가지 단편적인 사실로 요약하고 평가를 몇 초 만에 끝내버리는 일.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는 종교인이 아니므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들의 무지함을 이해하여 용서할 수도, 석가처럼 강물이 흘러가게 내버려둘 만큼 지혜롭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알게 모르게 이런 식의 침범에 맞서서 나는, 그리고 너는 지속적으로 경계를 리셋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 책을 읽노라면 나는 내가 바라는 편안한 내 집, 그 안에서도 책읽는 방의 안락함과 침범당할 일 없는 생활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아. 김혜진의 소설집 속의 여덟 명의 네가 떠오른다. 나에게 속한 생활이 있다는 것을, 내가 마련한 경계를 인정해두는 것이 중요한 만큼 너에게 속한 생활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 등가교환이 될지 알 수는 없으나 감가상각이라도 면하게, 너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 보자는 것. 


 굳이 보태자면, 바라보기도 전에 대충 말해버리는 장면들이 이 책에는 꽤 자주 나오는데, 그 대목에서마다 이 책은 서늘해지곤 했다. 바로,





그러니까 바로, 그정도 가지고 왜 그래? 라고, 오히려 예민해진 침범당한 사람에게 묻는 얼굴들. 너무 사소해서 따지기도 뭣한데 기껏 말하면 내가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게 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책이라는 생각은, 표제작에서는 그 속에서는 악의와 무지가 섞여 있다가 <자정 무렵>에 이르면 선의에 도달한다. 최선과 무지가 악의의 정점이었건만 선의에 이르면 선의에 취하여 경계를 넘으면서도 그것을 관용이나 도움으로 부르는 사람들.  

 나의 삶에 걱정, 호의, 연민, 선의, 무지, 친밀함, 도움 같은 것들이 경계를 넘어설 때 김혜진은 이 책에서 재차 묻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내가 너의 생활을 소유했다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면 당신의 생활은 어디까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경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악의보다 어려운 것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자신의 최선을 고집할 때인데, 그럴 때면 상처에 대한 해석권까지 빼앗긴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책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책이라고 부르기는 쉽다. 하지만 그보다는, 나는 제대로 질문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편이 이 책에도 공정하지 않을까. 서재 다락방님에게 선물받았는데 몇 번이고 읽었던 책. 이제야 더 깊게 생각해본 경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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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10-2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쟌 님의 긴 글을 보니 너무 좋으네요. 그런 한편 오랜만에 쓰신 글인데 역시 특유의 글맛은 여전해서 그것도 참 신기하고요.

이 책을 읽고 저는 어떤 감상을 남겼는가 찾아보니, ‘너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적어두었네요. 좋은 책이었어요.

Jeanne_Hebuterne 2026-10-28 10:22   좋아요 0 | URL
너무 오랜만이라 아직 뒤뚱뒤뚱, 많이 다듬고 싶기는 했는데 그러다간 아예 업로드 못할 것 같아서 그대로 올렸답니다.

이 책은 다락방님에게서 받고 처음 읽을 때도 감탄스러웠는데..꽤 자주 반복해서 읽었어요. 최근에는 비슷한 경우를 겪고나서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그 와중에 다시 읽고 마음을 결정하기도 했고요. 아. 아직도 전 늘 서툰 것 같아요. 좋은 책,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