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에 큰 글자로 쓰인 홍보문구 "뉴베리 상을 두 번 수상한 로이스 로리의 화제작" 을 읽으면서 콩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불란서 소설가 대신에 백희나 작가 생각을 했다. 백희나 작가의 가족의 의미, 동화, 이야기의 관습을 생각했다. 상을 두 번 탈 정도로 '좋은 이야기'를 만든 로이스 로리가 십몇 년 전에 나온 '윌러비 가족' 이야기의 속편을 썼다고 한다. 올 가을 속편이 나오기 전 서둘러 1편을 읽었다. 제목도 무시무시하게 '무자비한 윌러비 가족'이다. 마침 넷플릭스에 애니메이션 <윌러비 가족>도 올라왔다.
이 (어쩌면) 동화는 '옛스러운 동화'의 패러디다. 동화의 흔한 요소들이 모여서 기괴해지고 더 기괴해질 때 가까스로 봉합을 해서 이야기의 형태라도 유지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 요? 라고 독자에게 묻는다.
아이들이 넷이나 되는데 제대로 챙기지 않는 부모. 무관심하게 그저 방임하다 언뜻 '만약에'를 꿈꾼다. 만약에 아이들이 없다면, 단촐하게 자유롭게 어른 둘만 산다면! 그리고 아이들을 버리고 여행을 떠난다. 보모 하나 급히 구해두고. 아이들은 보호도 없이 무법천지로 놓여있다. 얼결에 집앞에 업둥이가 들어오는데 부모가 내다버리라니 이웃 음산한 저택 앞에 두고 온다. 그중 첫째가 꼴같지 않게 가부장제를 흉내내며 동생들 앞에서 허세를 부린다. 그래봤자 열두살. 아이들은 부모가 없어지기를, 부모가 그들을 없애버리고 싶은 만큼이나 바란다. 동화의 제1요소, 고아.
옆집 저택엔 가족을 잃어 슬픔에 빠진 사탕 회사 회장이 산다. 제2 요소, 재벌 이웃과 그의 슬픈 과거. 그리고 이런저런 사고와 극복 다음엔 제3요소, '해피 엔딩'.
친 부모와 친 자식들 사이에 보이는 적의, 그리고 살의, '고아'라는 신분을 갖고 새출발 하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읽기 쉽지는 않다. 어른들을 향한 복수가 통쾌하고 강렬한 로알드 달보다도 더 수위가 높다. 행복했다고 하지만 옆집 회장님의 가족도 삐걱거리고 있었다. <레모니스켓의 위험한 대결>의 고아 삼남매는 똘똘 뭉쳐서 (가슴엔 친부모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 부모의 유산을 찾아내고 지키려고 악랄한 법적 후견인과 싸운다. (어느 대통령 유족 이야기 아님) 윌러비 삼, 아니 사남매는 일단 부모가 사라지자 첫째 아들의 우스운 대장 역할은 끝나고 보살핌 받는 경험을 보모를 통해서 시작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세대주가 되는 길을 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보모는 절대로 메리 포핀스가 아니고 애니메이션에선 책과 또 다른 모습이다. 옆집 회장님의 음산한 저택은 윌리 웡카의 사탕 공장이 되어있다. 그나마 딸아이가 둘째로 순서도 바뀌고 말발도 좀 서서 체증이 반은 나았다. 애니메이션이 책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화의 흔한 요소들을 더 흔들어 놓았으면 좋았겠지만 답답한 (행복한) 가족 만화영화로 주저 앉아버려서 아쉬웠다. 부모를 싹 뜯어고치는 <코랄린> 근처도 못간다.
동화의 기본 요소들을 비틀어서 깨닫게 되는 좋은 이야기, 좋은 동화, 이상적인 가족이란 건 무얼까? 있기나 할까? 이렇게 한달 아니 두달 넘도록 집 안에서 복닥거리는 요즈음?
친 부모가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고, 밥 세끼 아니 다섯끼를 잘 먹고, 사지 멀쩡해도 고아라고 느끼는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있을테고, 여기 말고 다른 곳을, 만약에 어쩌면 하고 상상해보는 부모들도 있을테고, 놓쳐버린 가족을 못잊고 울면서 폐인이 된다거나 죽은줄 알았는데 짜잔 돌아오기도 한다거나, 어마어마한 부자가 내 후견인이 된다거나 .... 아 이런건 다 이야기구나. <윌러비 가족>은 동화 패러디로 보기엔 아주 새롭거나 강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은근 살벌했다. 한마디로 '사랑하지 않아' 에서 출발해 '우리 사랑해요'로 가는 과정이다. 책이나 애니메이션이나 다 그렇다. 동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러니까, 고아도 아니고 사랑이었어! 러브!
내 눈엔 개인 비행기를 띄우고 갑자기 다섯 아이를 입양하고 수년간 스위스에 구조대를 보내고, 사업도 막 잘하고, 그럴만큼 어마어마한 재력이 필수 요소였던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