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읽고 있다.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집중해서 볼 시간이 자꾸 안 난다.  문중과 아당이 나뉘는 기준도 처음 알았다.  재지세력들의 경제적 차원에서 공고화를 위하여, 그러니까 가산이 여러 자손들, 사위들에게 나뉘어 영세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적자에게만 그 가산을 집중했다. 제사의 의무는 물론이고. 그러나 이러한 수직적 친족관계는 다른 친족들의 비협조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러하여 조직된 것이 문중이다. 


이들은 '대종의 경제적 건전성'을 보장하는 역할도 하였다 한다.


  1587년에 내앞의 종가가 불탔을 때, 동일한 김씨 친척들이 동원되었고,  무덤 앞 비문이 새겨진 묘석을 세우는 프로젝트에도 여러 친척들이 참여하였다.  그 외에도 가문의 적자가 혼자서 제사의 의무를 다지는 것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경제적차원에서 재지세력들이 공고화 되는 장면 그린 장을 읽으면서 마치 현재 집값 떨어지는데 영향을 줄 시설이 주변에 설치된다고 강력하게 항의하는 주변 시민들의 모습과, 부동산 투기꾼들을 떠올렸다.


물론 이렇게 가산이 흩어져 종국에는 빈한해 질 것을 우려하여 특별한 제도 및 습속을 가지는 것을 특별한 일이 아니기는 하다. 고대의 형사취수제나 자매연역혼 등도 그러한 이유가 있었지 않았나. 


워낙에 드문드문 읽다 보니 일관되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틈나는대로 한 장씩 읽되,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전체를 다시 일독해야 겠다. 



 오늘 동명왕편을 집어 들었는데, 고려의 문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문집에 수록된 것이다. 익히 들은바와 같이 고구려의 건국영웅 주몽을 다룬 서사시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동명왕편을 지은 동기가 흥미로운데, 이규보의 구관을 위한 시라는 것이다. 구직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  당시 무신정권이라는 상황을 보자면 그들의 구미에 맞는 소재를 선택한 것이고. 물론 다른 내적,외적인 동기가 있음도 충분하지만 이러한 동기야 교과서에서 잘 알려주지는 않으니까. 









 아름다운 이야기.  신화적 세계의 상세한 묘사는 그곳이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 페이퍼로 글을 쓴 이후로 못 읽고 있다.  어서 읽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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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전에 이 책의 출간을 보고 읽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으면서도, 헤인시리즈를 읽으면서도,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읽고 있다는 것에 신기해 했다.  결국 읽지 않았고, 얼마전에서야 구입해서 오늘부터 읽고 있다.


국내 출간 당시에 읽었다면 상당히 지루해 했을 것 같다.   


지금 다시 작가의 글들을 읽으니 더 빛나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어스시 전집을 다시 구입하고 1권만 읽고 다음 권은 꺼내들지 않았네. 조만간 손에 잡을 날이 오겠지.   


이 책의 주인공은 나에게는 낯선 라비니아의 이야기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는 구입 했던 적이 있지만, 지루함에 이내 팔아버렸다(기증을 했던가?). 그 서사시를 좋아하거나 사랑했다면 더 특별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상관 없다.   


 이 이야기는 그 서사시에서 크게 비중을 가지지 못했던 라비니아의 이야기다.


이 할머니의 글은 대부분 시 같은 느낌을 줄때가 많다. 시를 읽는데,  일반 대중소설 읽을 때처럼 앞장이 궁금해서 빨리 페이지를 넘기지는 않는다.  재미도 있지만 할머니의 책을 읽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차분해진다.  물론 지나치게 산란되어 있다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좋지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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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2020-03-20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새 ˝이 할머니˝께서 번역하신 도덕경을 틈나는 대로 보는데요,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 딱, 시 같은 느낌!
 

  

<윤이후의 지암일기>, 하얀늑대들 외전 2권, <후쿠나가 미츠지 장자 내편>,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고대의 풍경과 사유> 등을 구입했다.


바로 집어 든 것은  윤이후의 지암일기다.  역시 남의 일기 훔쳐보는 것은 재미있다. 이 일기를 통하여 당시의 조선 사회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을 물론이고, 날것의 사적 감정을 살피는 것이 은근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지루한 것도 있지만.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것도 대단하다.   윤치호의 일기를 온전하게 보는 것은 힘들겠지. 


그리고 이전부터 읽고 있는 것은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조상의 눈 아래에서>다. 아래께 부터 읽고 있으니 많이 읽지는 않았다.  외국의 한국학자의 번역본을 보면 대부분 읽기가 매끄럽지 않았는데, 이 책의 경우 잘 읽힌다. 이 책은 한국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족단이 어떻게 하여 변화하고 적응하며 왔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내용에 적합한 제목이다.   그들은  하루 두세대 위의 조상이 아니라 오래전의 조상까지 중시하며  그것을[출계] 통하여 자신들의 배탸적인 권한을 정당화 하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국사의 곡점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중국에서 차용한 과거제와 고려말 조선초의 신유학의 도입이다.   신분에 의거하여 배타적인 권리를 확보 하는 것에 대하여 과거제는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였다.  그것은 오히려 국가가 그들의 권한을 공인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신유학의 도입은 그들의 배타적 권한에 대한 세련된 정당화를 제공하여 주었다. 


읽을 것은 많고  시간은 적다.  거기다 독해능력까지 떨어져  속도를 배로 줄어들어여 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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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2020-03-1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쿠나가 미츠치의 장자에 대한 평도 궁금하네요 ^^

가넷 2020-03-10 17:15   좋아요 1 | URL
비로자나님의 글을 읽고서 출간을 알게 되어 구입한 것입니다. 상당히 궁금한데, 사실 간단한 평도 할만한 수준이 안되나 내키면(???) 적어보겠습니다.^^;;;;;
 

 

 2019년도 일주일 남짓 남은 것 같다 주변도 한 해를 마무리 한다고 부산을 떤다. 거기다 문서를 정리하는 작업도 슬슬 시작하다보면 정말 한해가 지나가는 구나 실감을 하게 된다. 한 해를 마감하며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아야 할 시간이 된것 같다.  

  

  우선, 독서기록 면에서는 다소 부족했다. 최근 3년간 기록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즐길거리(그래보았자 게임, 드라마 시청 정도다)가 생겨서 독서에 소흘히 한 면이 있었다.  80여권 안되는 것 같다. 독서를 많이 못한다면, 왜 그런지 과제가 있는데 안한 느낌이 들어서 죄책감이 든다. 거기에는 책은 한 가득 구입하면서 읽기 속도를 그에 미치지 못한 다는 것도 포함 되어 있을 것 같다. 

 

2019년 초반에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세계의 미세세계로 내려가 보았다.  어렵지만 만족스럽게 읽었는데 벌써 기억이 희미하다. 그만큼 독서가 치열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초반에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책이라면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이다. 내년에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불교 서적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 권 읽었다.  <장자>를 읽고자 하였지만 결국은 올해는 못 잡고 지나가게 되었다.  대신에 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를 읽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조금 기여를 받았던 것 같다.  남들에게 이야기 하기에는 개똥철학이라 창피하나.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후로 삶과, 존재를 생각할 수 있는 책들로 읽기 위해 탑을 쌓아놓았으나, 음....


또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 <생물과 무생물사이>라는 책에서는 생명을 동적인 평형상태로 있는 흐름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지금의 모습이 바뀌지 않은 것 같으나, 세포단위에서는 끊임 없이 변화하고 있다.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나라는 존재도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하루하루 바뀌고자 한다. 물론 안되는 건 안된다고 인정하면서. 

 

굳이 안되는 걸 스트레스 받아할 일도 아니더라. 


갑자기 출간된 김용의 <소오강호>도 그냥저냥 읽었다. 생각보다는 재미없었다.  이후 <천룡팔부>와 <녹정기>를 출간할 계획이라 하여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 외에도 연말에 고룡의 <다정검객무정검>도 나와서 구입했다. 조만간 읽을 것인데, 어떨지는 모르겠다.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올해에는 특정분야를 집중적으로는 읽지 못한 것 같다. 언제는 안 그랬냐만.  


지금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을 읽고 있었는데, 드라마를 보다 보니 중간까지 읽은 채 읽는 둥 마는 둥하고 있다. 동력이 안 생겨서 <병자호란과 예, 그리고 중화>를 들고 읽으면서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병자호란을 무조건적인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현실적 외교(이미 홍타이지는 자신의 정치적 기획을 완성 시키기 위하여 어찌하던 전쟁을 일으킬 것이었다.)를 도외시 한 것에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당대의 정치사회적, 계획과 의지는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그에 미치지 못하였던 물적토대를 강조한 것은 유사하다.  인조와 그 외 지배층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분명히 명시하나 변호하는 형태다. 


 그러나 이미 홍타이지에게 외교적 빌미를 준 것 역시 실수이다.  광해군대에 이어 인조대 초반만 해도 적이 바로 서울로 직진해서 올라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한 방비는 보이지 않았단 점에서도 실수이다.


 당시 민을 개돼지로 보았던들 결국 그들이 있기에 조선이란 나라가 유지할 수 있었다.  전쟁이란 야만의 상태로 떨어지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것인데, 중화(명)냐 중화가 아니냐(청). 를 문명과 야만으로 이분하여 그(청태종)의 요구를 야만의 상태로 가는 것이라 생각한 조선의 양반들은 어떤 자들인가.  전쟁이야말로 사람 잡아 먹는 야만인데,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라 한다면(나라보다 중화가 우선), 난 문명을 버리겠다. 사람 잡아 먹는 문명은 필요 없다.


<7년전쟁>이란 역사소설에서 작가는  서두에 이런말을 적어 놓았다.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 


아무리 참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던 들 인조를 포함한 당시 조선의 양반들은  무능한 통치자다. 


내년도에는 올해 하반기에 읽었던  중국의 역사(청나라 부터)를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싶다. 그리고 진화학, 인류학, 세계사를 다룬 책들도 여러 권 쌓여 있는데 집중적으로 읽으려고 하고. 산더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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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조선과 중화>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이되는 것처럼 “여말선초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중화세계관이 그린 궤적을 추적”하고 있는 연구물이다.  옮고 그르고, 좋고 나쁨을 따지기 보다는 궤적을 그리는 것이 주 목적이라 한다.  현재 2부 1장까지 읽었다.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읽혀서 즐겁다.  예전에는 조선지식인들이 가지는 중화적 세계관에 혐오감마저 느꼈는데,  지금은 많이 그러한 경향을 벗어났다. 그렇게 형성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이유에 집중하는데 관심이 간다.

요즘 들어서 이러한 묵직한 연구물을 보면 심리적 안정감을 줘서 좋다.  송곳처럼 찌르는 것보다는 하나씩 쌓아 가며 묵직하게 한방을 날리는 책들. 기본적으로 어느정도는 알아 먹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이런 중화세계관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역시 더 관심있는 것은 전근대 동아시아의 세계질서에 대한 관심이 크다.  중국의 왕조를 중심으로 돌아간 세계질서를 설명하는 이론들에 관심. 혹은 그 안에서 나타나는 개별적인 사실들.  뭐 그런...  몇권은 구입해두었다가 이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정리했는데 절판.품절이 되어 버리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기증을 한 뒤 나중에 다시 기증 한 곳에 가서 사서 읽어야 겠다... 라는 계획은 불미스러운 일로 망해버리고 말았다...). 중고로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지.   <중국과 주변>은 정말 구하기가 어렵다.  한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판매가 되고 있었지만 어느새 팔리고... 그 지역으로 사러 갈까 했는데.  부산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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