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의태어의 발견
박일환 지음 / 사람in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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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예쁜 말들을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제가 쓰고 있는 언어가 예전에 비해 형편없이 모자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의성어의태어를 많이 썼었는데 이제는 최소한의 것도 거의 쓰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나라 말의 최대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소리나 동작을 표현하는 말이 풍부하다는 점이죠.

그러나 말을 줄여 쓰고,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사용하는 요즘에는 이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말들이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한 페이지씩 펼칠 때마다 예전엔 잘 사용했지만 요즘은 듣기 힘든 말들이나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표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어떤 스릴러 보다 더 스릴 있어요.






사람이나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말을 의성어,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 낸 말을 의태어라 한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분명히 구분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의성어로 볼 수도 있고 의태어로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둘을 묶어 '의성의태어'라는 용어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말로 '흉내말'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흉내말.

이 흉내말엔 소리뿐 아니라 동작이나 모양 등도 포함됩니다.

우리말은 살아있는 생물뿐 아니라 무생물에게도 '소리'를 부여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소리를 부여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거 같네요.

 

이 책은 동작을 나타내는 말, 태도를 나타내는 말, 말과 소리를 나타내는 말, 동물과 식물에 관한 말들, 생각해 볼 말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사부작사부작 발밤발밤 걸어요. 부랴부랴 하다 왜틀비틀 하면 헬렐레해 보여요.

사람들이 재그르르 하네요~

주전주전 하다가는 다이어트는 말짱 도루묵~

 

무슨 뜻일까요?

다 동작과 관계있는 말입니다.

어떤 뜻인지 맞춰보세요^^

 






부부 사이가 설면설면해 보이네요.

시시콜콜 꼬치꼬치 미주알고주알 알려고 하지 마세요. 좀스러워 보여요!

사람이 진중한 맛이 있어야지 그렇게 깝작깝작해서 되겠어요?

욜랑욜랑 거리지 좀 말래?

 

이건 태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뭔가 대충 감이 오시죠?


 

아이고! 왕배야덕배야 그만 좀 해라!

저는 책을 댕글댕글 읽어요.

엉두덜엉두덜 하지 말고 할 말 있음 따북따북해!

말과 소리를 나타내는 말들인데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죠?

띵까띵까는 어디서 나온 소리일까요?

 


 

괴발개발은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입니다. 글씨를 아무렇게나 써놓은 모양을 가리키죠.

그러나 거의 개발새발로 쓰고 있습니다. '괴'가 고양이를 가리키는 말인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개발새발'로 고쳐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굳어지게 되었다죠.

 

강아지가 아즐아즐 거리네요~

'워리' 많이 듣던 소리죠? 개를 부를 때 쓰는 말이래요^^

'요개' 싸울 때 상대방에게 하는 소리죠? "요개 까불어!" 라면서. 근데 '요개'는 개를 쫓을 때 지르는 소리래요 ㅍ.ㅍ

 

주저리주저리도 좋지만 드레드레도 좋네요^^

동물과 식물에 관한 말도 참 예쁘고 다정한 말들이 많네요.


 

생각보다 뱐주그레하시네요^^

소개팅 남에게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까요?

 

삐까번쩍 하다가 블링블링하네요.

삐까는 일본어 투 용어랍니다. 이제는 블링블링이라는 영어로 대체되고 있는 말이죠.

 

딩동 - 벨 소리를 나타내죠. 그러나 이 말은 영어에서 온 외래어입니다.

땡땡 - 은 종소리를 나타내는 우리말입니다. 초인종이 생기고 다른 표현이 필요해지면서 딩동이 쓰이게 되었답니다.

 

치카치카를 저는 외래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말이네요^^

올해는 과실나무가 아그데아그데했음 좋겠어요.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몸이 욜그랑살그랑 거리죠~

 

이렇게 많은 의성의태어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 국어학자들이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양하게 변해가는 언어들에 열린 마음으로 임하지 않으면 결국 사전용 언어와 일상 언어로 분리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양한 의성의태어를 마주하다 보니 이 말들을 자꾸 써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예쁜 의성의태어를 자꾸 썼으면 좋겠어요.

자꾸 쓰면 어휘력도 풍부해지고, 어휘력이 풍부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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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쿠쿠 랜드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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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거창하지만 솜털 같은 가벼운 그곳으로..

 

 

 

700년의 시간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았지만 <클라우드 쿠쿠 랜드>라는 필사본으로 묶인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애정을 갖게 만든다.

 

 

그 무덤은 팔 십 년은 남자로, 일 년은 당나귀로, 일 년은 농어로, 일 년은 까마귀로 산 아이콘이라는 자의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야기 속 아이톤은 자신에게 닥친 형벌 같은 상황 속에서도 끝없이 기도하며 자신을 바꿔가길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에서 당나귀로, 당나귀에서 농어로, 농어에서 까마귀로.

몸이 바뀔 때마다 상상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좌절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신에게 기도한다.

우리가 우리 앞에 닥친 힘겨운 삶에서 신에게 기도하듯이.

 

 

"저 책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문, 또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란다. 네 앞에는 창창한 삶이 펼쳐져 있어. 그리고 앞으로 넌 오늘 본 것을 평생 누리게 될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니? 어떻게 생각하니?"

 

"어떤 이야기는." 안나가 말한다. "거짓이면서 동시에 진실일 수 있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안나는 필사본을 챙겨들고 도시를 탈출한다.

도시 함락을 코앞에 두고 안나는 자신이 가진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지켜내기 위해서이든,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이든, 가진 게 그것뿐이어서 든 그녀는 자신이 태어나서 짧은 삶 동안 고통이었던 도시를 떠난다.

 

 

미래 우주를 가르는 우주선 안에서 콘스턴트는 홀로 격리된 채 홀로그램 속 지구의 삶을 체험하다 <클라우드 쿠쿠 랜드>를 만난다.

같은 우주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생사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200일이 넘는 동안 격리된 소녀의 외로움과 절망스러움과 분노는 홀로그램으로 지구의 곳곳을 누비는 모험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공지능 시발도 알지 못하는 비밀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이 책은 콘스턴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때로 이젠 사라지고 없어졌다고 생각한 것이, 다만 감춰져 있을 뿐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리기도 하니까."

 

 

안나, 오메이르, 지노, 시모어, 콘스턴트로 이어지는 필연이 <클라우드 쿠쿠 랜드>를 통해 그들의 이상향을 향해 나아간다.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안에 꽉꽉 담긴 다섯 명의 서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 같은데 모두 같은 걸 얘기한다.

그걸 깨닫게 되면 이 경이로운 이야기가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글로 써서 한 편의 이야기로 모았을까?

 

 

<클라우드 쿠쿠 랜드>는 우리 모두가 나아가고 싶어 하는 방향이거나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세계이다.

그곳으로 가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우리가 맞이할 세상이다.

 

 

그것은 이상향일 수도 있고

종국에 모든 생명이 마주하게 될 죽음일 수도 있고

새로운 지구일 수도 있다.

 

 

<클라우드 쿠쿠 랜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나의 세상이다.

아무도 그곳에 대한 내 마음과 내 의지를 알 수 없다.

나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닿을 곳이니까..

 

 

 

<클라우드 쿠쿠 랜드> 이곳은 곧 인간이 가진 불굴의 의지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굴의 의지만이 전쟁과, 전염병과, 재난과 고난을 견뎌 낸 인간의 승리를 뜻하기에.

그렇게 견뎌낸 뒤에 잠시 맞게 될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 모두의 바람일 테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으면 좋을 책이다.

시간에 쫓겨서 조급해지면 그저 두꺼운 책으로만 남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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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에를렌뒤르 형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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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그다.'

 

 

 

"전형적인 아이슬란드식 살인사건 아닙니까?"

"비열하고,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숨기려고 하질 않았잖아요. 증거인멸이나 단서를 꼬아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지. 조잡한 아이슬란드식 살인이지."

 

 

그렇게 단순해 보였던 살인사건은 그 깊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거슬러 간다.

50대 이혼남 에를렌두르 형사.

이 형사의 매력은 뭘까?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맛도 없고, 부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없고, 능숙한 말주변도 없는 에를렌두르 형사.

피살된 피해자에게서 발견된 쪽지.

쪽지엔 '내가 바로 그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단순해 보이던 살인사건은 그 쪽지로 인해 단순해지지 않는다.

피해자를 조사하다 보니 그가 전에 강간죄로 고소당한 적이 있음을 알게 된 에를렌두르는 살인자를 찾는 대시 피해자의 과거를 파헤친다.

 

'과거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에야 그 뜻이 이해가 갔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지워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거짓 화술로 여자들을 홀리고, 여자들을 집에 데려다주는 신사적인 행동 뒤에 따른 강간.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그녀들의 몫.

그중 단 한 명만이 그를 고소했고, 부패한 경찰은 철저하게 피해자의 의견을 묵살한다.

결국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4살 되던 해에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이 과거의 사실이 현재 재떨이에 맞아 죽은 피해자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북유럽 스릴러를 자주 접해봤지만 아이슬란드의 스릴러는 뭔가 살짝 다르다.

그들의 생활방식보다는 단일민족인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유전학적인 부분에서 다른 소재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함이 느껴진다.

 

왜? 어째서? 현재 일어난 사건의 범인을 찾을 생각을 안 하고 피해자의 과거 따위를 추적하는지 알 수 없는 동료들은 짜증스럽지만 그래도 에를렌두르의 지시를 착실하게 따른다. 그것 역시도 다른 스릴러들의 분위기와는 또 다르다.

 

"어쩌면 여기 정말 간단한 해답이 있을지도 몰라. 어떤 미친 자식의 소행일 수도 있지. 그러지만 내 생각에 이 사건은 아니라고 봐. 살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뿌리가 더 깊을 수도 있어 전혀 간단한 사건이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모든 해답이 홀베르그라는 인물과 그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놓여 있을지도 몰라."

 

 

에를렌두르의 매력은 매력이 없어 보인다는 게 매력이다.

 

약에 취해 그를 찾은 딸.

자신의 일에 상관 말라는 딸.

그런 딸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에를렌두르는 사건을 파헤칠수록 딸에 대한 애틋함과 스스로를 악의 소굴로 빠뜨리는 딸에 대한 분노도 내비친다.

그가 부엌에서 딸에게 한바탕 화풀이는 하는 장면에서 그가 무섭다기보다는 애처로운 것도 그 이유다.

 

아이슬란드식 부모 자식 간의 대화는 내 가슴을 탕탕 치게 만들지만 그것 또한 그들의 정서.

그나마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 동안 딸과의 관계도 호전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위로라면 위로라고나 할까?

 

잘도 오랫동안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용케 목숨을 보전했던 죽어 마땅한 놈은

결국 그렇게 자신이 뿌린 씨(?)를 마주하게 된다.

 

<저주받은 피>를 읽으며 어째서 피해자는 여자들인데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비밀을 지켜내야만 하는 것도 여자들인지.

왜. 그 여자들에게 뒤늦게라도 알게 된 사람들은 화를 내는지.

왜. 무능하고 부패한 경찰의 뒷배를 봐주는 무리들이 있는 건지.

그런 경찰 때문에 힘들게 찾아간 강간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건지.

어째서 이런 일들은 세계 곳곳에서 시간과 상관없이 자행되고 있는지.

왜. 피해자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지.

오만가지 생각들에 휩싸였었다.

 

졸지에 살인자가 된 사람에게 드는 안타까움과 그들의 고통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음에 그저 먹먹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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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레이철 워프 시리즈 5
팻 머피 지음, 유소영 옮김 / 허블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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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가득~!

 

 

"넌 밖에 나가면 안 된다. 네가 살기에 좋지 않은 곳이야. 세상은 속 좁고 옹졸하고 멍청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사람들은 널 이해하지 못할 거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를 해치려 들어. 자신과 다른 존재를 미워한다. 네가 다르다는 걸 알면, 네게 벌을 주고 해치려 들 거야. 널 가두어 놓고 절대 내보내 주지 않을 거다."

 

 

올 상반기에는 좋은 단편집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 최고가 바로 <사랑에 빠진 레이철>이다.

팻 머피.

그녀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였다.

 

1987년에 네뷸러 상을 수상한 표제작 <사랑에 빠진 레이철>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온몸이 찌릇찌릇했다.

그리고 레이철이 겪게 되는 일들 앞에서 인간으로서 저지르는 끔찍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침팬지 속에 갇힌 어린 소녀의 성장기.

침팬지에게 죽은 자신의 딸의 뇌 전기장을 덮어 씌워 되살려낸 애런. 그래서 인간과 침팬지 두 가지 기억을 갖게 된 레이철.

수화로 대화를 하고 글도 읽고 쓸 줄 알지만 목소리는 낼 수 없다. 아빠 애런의 죽음 뒤에 유인원 연구소에 실려간 레이철이 겪는 일들은 동물 학대의 매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기에 그 어떤 실험에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인간의 모습에 레이철이 투영된다.

현명한 레이철은 청소부 제이크에게 연정을 품지만 결국 자신에게 살뜰하게 구애하는 침팬지 존슨과 함께 연구소를 도망친다.

침팬지이자 인간인 레이철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채소 마누라> 는 여성을 식물화했다.

밭에다 식물을 심으면 여자로 자라게 된다. 채소 신부, 채소 처녀가 있지만 농부는 채소 마누라를 심는다.

점점 여자로 자라나는 채소 마누라를 쳐다보는 농부의 끈적한 시선. 다 자란 채소 마누라를 거칠게 대하는 농부의 모습에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다.

그리고. 팻 머피는 위대한 반전을 심어놨다.

채소 마누라는 농부가 자기에게 한 짓을 되갚아 준다.

농부가 묻힌 그 땅에서는 무엇이 자랄까?

 

시간여행자에게 받은 오렌지.

그녀가 시간여행자임을 알아챈 순간 그녀에게 가진 호감은 질투로 바뀐다.

나도 시간여행자가 되고 싶다. 나도 데려가 달라고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했다.

전염병이 그들의 아파트를 덮치고 그도 병이 든다.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깨어날 때마다 눈앞에 그녀가 있다.

조금씩 늙어가는 그녀의 모습. 시간 여행의 대가일까?

두 사람은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의 오렌지 농장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시간은 끝난다. 공룡과 인간들, 우리의 시대는 끝난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사랑이. 나는 미래를 꿈꾸고, 금속 집게발의 달각거리는 소리가 나의 꿈을 채운다.

 

 

핵폭탄이 터지고 마지막 남은 시간 동안 로봇을 만드는 케이티.

사랑할 줄 아는 의갈목 수컷과 암컷을 만들고 죽음을 기다리는 케이티.

그가 만든 그 로봇들은 인간이 멸한 세상에서 또 다른 생명체가 될 수 있을까?

 

과학의 시대는 끝났다.

 

 

20편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

과학과 여성을 모티브 삼아 이 지지리도 어리석은 시대를 맘껏 놀려대는 팻 머피의 글들은 통쾌함과 동시에 불편함을

위기의식과 동시에 짜릿함을 절망과 함께 희망을 보여준다.

 

복합적인 감정을 계속 느낄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앞에서 새로운 SF 소설의 실체를 보는 기분이다.

쓸데없이 거창하지 않아서 좋고

전혀 본 적 없는 세상인데 익숙해서 소름 돋고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상대를 서술하고 있어서 놀랍다.

 

표제작 <사랑에 빠진 레이철>만 읽어도 팻 머피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그 짧은 단편에 인간의 오만함과 남성들의 우월감을 드러내면서도 현명하게 빠져나가는 레이철의 선택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둔다.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상상력에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

 

과학의 시대가 끝났듯 우월감으로 똘똘 뭉친 시대도 끝날 것이다.

그 뒤에는 온건한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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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최후의 심판 + 두 개의 세계 + 삼사라 + 제니의 역 + 발세자르는 이 배에 올랐다
한이솔 외 지음 / 허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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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작가들이 그리는 미래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근 미래와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 작가들의 SF 소설은 따뜻한 감성이 깃들어 있어서 좋다.

미래에도 인간적이다. 세상이 아무리 기계화되고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그 인공지능까지도 인간적이다.

그래서 암담한 미래 앞에서도 희망적일 수 있다.

 

솔로몬이 변론으로 인간을 압도하는 게 솔로몬 자신에게 과연 이로운 일일까. 인류는 예수를, 소크라테스를 법정에서 죽였다.

 

<최후의 심판>

 

한이솔 작가의 최후의 심판은 한 사람의 유서로 시작된다.

20년 전 한 자살 사건에서 발견한 유서를 간직한 형사가 그 유서에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덧붙여 쓴 유서다.

초인공지능 판사 솔로몬이 재판에서 스스로 사라지면서 세상의 인공지능 기술은 쇠퇴한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솔로몬의 재판 과정을 따라 이어지고 그 내용을 읽는 동안 우리의 현실을 대비해보게 된다.

앞으로 20년 내에 없어질 직업중에 판사직이 있다는데 과연 인공지능 판사가 어떻게 판결을 내릴지, 인간은 그 판결에 얼마만큼 신뢰를 하는지 팽팽한 법정 공방을 보면서 인간의 모순됨을 확인했다.

스스로 사라진 솔로몬의 심정이 이해된다.

 

"누군가는 했어야 될 일이니까, 그쵸?"

 

<두 개의 세계>

 

계속 비가 내리는 환경.

사람이 나무가 되는 병.

발현한 나무들을 전송하는 돔.

이 두 세계는 같은 세계일까. 다른 세계일까?

 

 

"너와 나는 인간의 태아를 배양했어. 그리고 영혼 없이 태어난 아기들을 식량으로 제공했지. 32년 동안."

 

 

<삼사라>

 

인간의 정자와 난자를 싣고 제2의 지구가 될 우주로 떠난 삼사라.

그곳은 인공지능 세라와 에이브가 지키고 있다.

제2의 지구가 될 별에 도착할 시간을 20년 앞두고 두 인공지능은 인간을 배양한다.

그러나 태어난 인간들은 모두 영혼이 없다.

인간의 환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건 살아있는 인간이 있다는 걸까?

 

마지막 두 인공지능의 선택은 지독히도 고독스럽다...

 

군청에서는 인간의 언어를 연결하고 기록하는 마인드베이스 기능을 갖춘 지능형 로봇 제니 20대를 내가 사는 농촌마을의 다문화 가정에 시범 공급했다. 사회복지관이 멀거나 교육 시간을 보장받지 못해 한국어가 늘지 않는 이주 여성의 언어 자립을 돕기 위한 사업이었다.

 

 

<제니의 역>

 

언젠가 농촌 이장으로 다문화 여성이 선출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그런 시기가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여성의 영역이 넓혀지는 이 시기 농촌에서는 다문화 엄마들의 파워가 점점 커지고 있을 거 같다.

그들이 뭉친다면 우리는 그들을 '남'이라고 생각할까. 아님 '우리'라고 생각할까?

 

리메이, 아니 내 아내의 목소리를 갖고 내 아내의 이름을 한 내 무형의 피조물.

 

 

<발세자르는 이 배에 올랐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사랑을 할 것이다.

그것이 인공지능이라도...

무형의 존재를 유형하게 만들어서 과연 어떤 사랑으로 이어졌을까?

끝을 알 수 없는 독특함이 기억에 남는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색다른 이야기가 신선한 자극을 준다.

이야기가 끝나고 작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뒷얘기는 어떤 것이든 유용하다.

쟁쟁한 심사위원들의 소감도 읽는 재미가 있었던 책.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처음 읽었는데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고 싶은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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