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2020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해로 기억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영국에서는 첫 번째 기나긴 롹다운이 있었고 이제 두 번째 롹다운이 코 앞이다.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속에서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는다. 그 첫 번째가 자전거 타기다. 올해 영국에서는 자전거가 엄청나게 팔렸다. 그래서 나도 샀고 여름 동안 열심히 타고 다녔다. 악기 배우기도 인기다. 그래서 나도 15 파운드 짜리 중고 기타를 하나 샀다. 올해 안에 5곡의 레퍼토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현재 연주 가능 곡은 물론 하나도 없다. 롹다운 때문에 가든이 딸린 집(하우스라고 한다)의 수요가 높아졌다. 마침 나도 가든의 뒷 절반 부분의 정글을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영국에서도 서점이 사양 산업인데 올해는 첫 번째 롹다운 직전까지 서점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올해를 돌이켜보면서 나도 좀 유식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가능한 많이 읽자는 다짐을 했다. 요컨대, 무엇보다도 2020이 나의 유식함의 시작 해가 되었으면 한다.  


다음은 10월에 읽은 책들이다.

1. 폴 리퀘르. 리건: 리퀘르에 대한 간단한 평전, 논문, 인터뷰 등을 모은 책. 재미있게 읽었다.

2. 무의식. 매킨타이어: 내가 원한 것은 무의식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였지만 이 책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만 다루고 있었다. 저자는 무의식은 임상적으로든 실험적으로든 검증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내가 알고 싶었던 바다.

3. 해석의 갈등. 폴 리퀘르: 처음으로 읽은 리퀘르의 저작. 재미 있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무척 많기 때문에 따로 리뷰를 쓰고 싶다. 나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한 부분만 말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의식과 언어가 내적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4. 현상학 해설. 데트머: 후설의 저작들을 차례로 따라가며 설명하는 책. 그러므로 책 제목이 좀 잘못된 듯 하다. 그저 그런 책.

5. 사르트르의 두 가지 윤리학. 앤더슨: 조잡한 책. 사르트르에 대한 제대로 된 책을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르트르의 철학 자체가 피상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나는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6. 이념들 2. 훗설: 훗설의 기획, 그러니까 환원과 구성의 의미에 대해 조금씩 감을 잡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후설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분석들을 따라가다보니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고야 말았다. 그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시작했으나 아직 끝내지 못한 책.

1. 지각의 심리학. 버넌.

2. 데리다와 훗설. 롤러: 데리다를 중심으로 한 저작들을 차례로 해설하는 책인데 데리다에 대한 탁월한 해설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데리다에 대한 해설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3. 이성의 위기. 버로우. 일종의 사상사인데 그렇게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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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영국 수상이 (큰 틀에서 봐서) 영국 전역에 대한 봉쇄령을 예고했다. 이번 주중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가뜩이나 안좋은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줄 것이 뻔하기에 영국 정부에서는 가능한 전국 봉쇄를 피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의료 붕괴가 자명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리라 본다.


유럽은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의 두 번째 파고를 맞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예고된, 그리고 불가피한 두 번째 재난 상황이다.


몇 달 전 강경화 장관이 비비씨와 인터뷰를 했었다.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져서 동성애자 시민이 뜻하지 않게 커밍 아웃되어 버린 때였다. 비비씨 앵커는 강경화 장관에게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추적 체계가 개인의 사적 영역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강경화 장관은 --- 무척 실망스럽게도 --- 한국은 법치 국가이므로 철저하게 법에 따라 인권 침해 요소가 없게끔 대응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솔직히 나는 강경화 장관의 빅 팬은 아니고, 강 장관이 이런 식으로 방어적으로 인터뷰하는 것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강 장관은 그것이 딜레마라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앵커에게 영국은 겨울과 함께 닥쳐 올 두 번째 파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물었어야 했다. 영국 등의 서방 세계는 한국 식의 추적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봉쇄 말고는 사실상 코로나 대응 방안이 없다. 여기 영국에서 나는 한국의 방역 당국이 동시다발적인 집단 감염의 고리를 추적하여 기어이 그 고리를 끊어내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영국 등의 서방 세계는 이 탁월한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이번 겨울의 두 번째 파고에 대해서는 한국 식의 추적 체계를 갖출 시간이 없었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 순환 고리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잦아들고나서 또 새로운 전지구적 유행병이 돌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사태가 심각해지면 전국 봉쇄로 대응할 것인가? --- 이것은 서방 세계에 커다란 딜레마가 될 수 밖에 없다. 좋든 싫든 서방 세계의 역사와 문화가 이 딜레마를 거의 해결 불가능한 수준의 난제로 만들고 있다.


현재 영국 정부는 실내 공간에서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거리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영국 사람들은 정부 시책에 군소리 없이 잘 따라서 참 '순종적' 이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아내는 영국 사람들이 너무 순하고 순종적이라고 비판하고, 나는 그렇게 해서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겠지... 라고 대꾸한다. 물론 영국에서도 일상으로 돌아가자며 마스크 착용이나 전국 봉쇄에 반대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세계 어디서나 있을 딱 그 퍼센티지의 사람들이다. 반면 최근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 사태는 그런 이념적인 주장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 한다. 몇 칠 전 비비씨 뉴스에서 이탈리아의 식당 주인 인터뷰를 봤는데, 4 가족의 생계가 이 식당 하나에 달렸다며 또다시 식당 문을 닫아야 한다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전국 봉쇄에는 막대한 정부 지출이 뒤따른다. 영국은 지난 번 봉쇄 때 어마 어마한 재정 지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니 이런 재정 지출을 감수하기 힘든 나라들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그것이 폭력화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일 것이다. 봉쇄가 자유에 반한다는 이념적 문제가 아니라 이 겨울을 어떻게 버티어낼까, 월세를 어떻게 낼까 하는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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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땅을 깍고 있다. 잔디를 깔기 전에 흙 속의 잔뿌리, 돌멩이 등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꼭이 인간 종에 고유한 것이랄 수 없는, 유서 깊은 경계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옆 집이 돼지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돼지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1). 매년 두 차례씩 암퇘지를 임신시켜 새끼를 낳게 하고 그 새끼들을 판다. 2). 작은 돼지들은 생일 파티 등에 빌려주고 돈을 받는다. 옆 집 아주머니가 우리더러, 돼지에게 그늘과 안정을 주는 나무를 함부러 베었다고 이기적이라고 욕을 했었는데, 펫이라던 돼지를 일년에 두 차례 임신시켜 그 새끼들을 판다는 사실을, 오밤 중에 인터넷 써핑을 통해 알게 되고는 아내는 오싹함을 느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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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죽은 나무(거의 100% 우리 땅에 있음), 가운데 잡목(70% 이상 우리 땅에 있음), 그리고 오른쪽 죽은 나무(거의 100% 저쪽 땅에 있음) 모두에 대해 저쪽 집 부부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앞에 쌓아놓은 것은 내가 경계 부근에서 긁어낸 돼지 똥 퇴비이다.)


1. 가든의 정글을 걷어내면서 옆집 부부가 우리 집 경계 너머에까지 돼지 똥을 지푸라기와 섞어 투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치워줄 것과, 퇴비는 퇴비통을 이용하여 만들 것을 몇 번 요청했지만, 옆집 부부는 이를 확고하게 거절했다. 


2. 가든 이용에 대한 우리의 권리와, 돼지 퇴비 조성 방법에 대한 옆집의 권리가 충돌하였으므로 구청에 이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를 문의하였고 이 문의 사실을 옆집에 알렸다.


3. 이를 알린 바로 그날 밤 옆집 남자가 찾아와 경계에 있는 나무를 더 이상 자르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면 펜스를 어떻게 짓냐는 나의 항변에 그는 우회하라고 대꾸했다. 옆집 남자가 몹시 흥분해 있었으므로 다음에 다시 대화하자며 그를 일단 돌려보냈다. 


4. 다음 날 아침 경계 부근의 나무들을 확인해 본 결과 사진 아래에 쓴 것과 같았다. 원래 펜스 설치는 내가 하려 했지만, 분쟁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업자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펜치 설치가 완료될 때까지, 돼지나 옆집 부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가든 작업도 중단하기로 했다. 그 전에도 돼지 밥 주는 시간에는 작업을 멈추어주고는 했다. 옆 집 땅에 거의 100% 뿌리를 두고 있는 죽은 나무는, 펜스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해서 그대로 놔두고, 나머지 나무들은 자르겠다고, 펜스 업자 오는 날 일주일 전에, 그리고 그 전날에 다시 고지를 했다. 옆집 남자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5. 펜스 업자가 작업을 하러 오자 옆집 아주머니가 나타나서 저 나무들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나무에 손대면 고소하겠다고 업자를 위협했다. 결국 펜스 업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떠나야만 했다.


6. 펜스 업자가 떠나고 나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곡괭이와 삽과 톱 등을 챙겨들었다. 작업 안전을 위해 우리 집 영역의 잡목들을 마져 잘랐고, 경계선에 나란하게 있던 그루터기 몇 개를 캐내었고, 지저분한 와이어와 잡목들을 치우고, 돼지 똥 퇴비 등을 전부 긁어내고, 땅에 박힌 강철 파이프를 뽑아내고, 종종 일을 멈추고 채증 사진을 찍었다. 1 미터 바로 옆에 돼지들이 있었고, 옆집 부부가 지켜보고 있었지만 나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일에 집중했다. 배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일의 효율이 높아졌다. 강철 파이프를 뽑는데, 예전 같았으면 골판지라도 옆에 대서 소음을 최소화했을 것이다. --- 그러나 왜 그래야 하는가? 실력에는 실력이, 권리에는 권리가 맞붙을 뿐이다. 이를 분쟁이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신뢰에 기반하여 형성된 관계 밖에는, 다만 게임이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옆집 부부들은 돼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주 내에 펜스를 지으라고 주장했었다(뭐라고?). 이에 대해 나와 나의 아내는 펜스 짓는 것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로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열려 있는 돼지 우리 앞에서 나는 곡괭이질을 하게 될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한국에 층간 소음 문제가 있다면 영국에는 경계 분쟁이 있다. 물론, 한국도 그렇겠지만 영국에도 이런 사람들만(이런 사람들에는 우리 부부도 포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란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 나무를 자르다가 옆 집 할아버지네 펜스를 박살내고, 나무들에 크게 상처를 주었는데, 그 할아버지네는 털털 웃으시며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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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끝에서 11 미터 정도 펜스가 없다. 그래서 그 곳에 펜스를 세우려 하는데 난관이 있다. 옆 집에서 돼지 7 마리를 키우면서 돼지 똥을 퇴비랍시고 자기네 정원 가장자리 여기 저기에, 그러므로 우리 집 경계 부근에도 투기해왔던 것. 이에 대해 옆 집에 지적을 하였으나 전혀 알아들을 태세가 아니어서 구청에 신고를 했다. 신고 사실을 알려주니 옆 집 아주머니가 아주 악다구니를 한다. 참 선량하고 사이 좋았던 이웃이었는데 관계는 이미 틀어졌고, 그들의 말도 안되는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다. 그래도 정원 작업은 펜스 세운 후에 하기로 마음 먹고 잠시 중단했고, 펜스 공사도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쓰기로 했다. 쓸데없는 분쟁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덕분에 펜스 공사 비용이 두 배 정도 늘 것 같다. 


(영국은 개인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사회다. 상업용이 아니라면 돼지를 주거 지역에서 기르는데 거의 아무런 제한이 없다. 등록을 하여 질병 예방 주사 등을 제 때 맞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하우스 가든에서 돼지를 몇 마리 기르던, 그 똥을 노천에 노출하여 처리하든 이를 규제하는 법률이 없다. 한국은 개체 수, 주거 지역에서 최소 몇 미터 떨어져야 한다는 등등의 상세한 규정이 있을 것이다. 마치 단순한 라운드 어바웃 체계(영국)와 상세한 신호 체계(한국) 사이의 차이와 같다. 둘 중 어느 한 체계를 선호하는 것은 완전히 신념의 문제일 것이다. 예컨대, 실질에 있어서는 상세한 신호 체계가 더 효율적일지라도 신념에 있어 라운드 어바웃 체계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영국식의 폭넓게 개인적 자유를 보장해 주는 시스템을 선호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점점, 삶에 있어서 신념이니 실질이니 하는 분별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이제 내게는 관습성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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