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영국 수상이 (큰 틀에서 봐서) 영국 전역에 대한 봉쇄령을 예고했다. 이번 주중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가뜩이나 안좋은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줄 것이 뻔하기에 영국 정부에서는 가능한 전국 봉쇄를 피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의료 붕괴가 자명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리라 본다.


유럽은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의 두 번째 파고를 맞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예고된, 그리고 불가피한 두 번째 재난 상황이다.


몇 달 전 강경화 장관이 비비씨와 인터뷰를 했었다.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져서 동성애자 시민이 뜻하지 않게 커밍 아웃되어 버린 때였다. 비비씨 앵커는 강경화 장관에게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추적 체계가 개인의 사적 영역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강경화 장관은 --- 무척 실망스럽게도 --- 한국은 법치 국가이므로 철저하게 법에 따라 인권 침해 요소가 없게끔 대응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솔직히 나는 강경화 장관의 빅 팬은 아니고, 강 장관이 이런 식으로 방어적으로 인터뷰하는 것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강 장관은 그것이 딜레마라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앵커에게 영국은 겨울과 함께 닥쳐 올 두 번째 파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물었어야 했다. 영국 등의 서방 세계는 한국 식의 추적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봉쇄 말고는 사실상 코로나 대응 방안이 없다. 여기 영국에서 나는 한국의 방역 당국이 동시다발적인 집단 감염의 고리를 추적하여 기어이 그 고리를 끊어내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영국 등의 서방 세계는 이 탁월한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이번 겨울의 두 번째 파고에 대해서는 한국 식의 추적 체계를 갖출 시간이 없었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 순환 고리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잦아들고나서 또 새로운 전지구적 유행병이 돌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사태가 심각해지면 전국 봉쇄로 대응할 것인가? --- 이것은 서방 세계에 커다란 딜레마가 될 수 밖에 없다. 좋든 싫든 서방 세계의 역사와 문화가 이 딜레마를 거의 해결 불가능한 수준의 난제로 만들고 있다.


현재 영국 정부는 실내 공간에서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거리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영국 사람들은 정부 시책에 군소리 없이 잘 따라서 참 '순종적' 이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아내는 영국 사람들이 너무 순하고 순종적이라고 비판하고, 나는 그렇게 해서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겠지... 라고 대꾸한다. 물론 영국에서도 일상으로 돌아가자며 마스크 착용이나 전국 봉쇄에 반대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세계 어디서나 있을 딱 그 퍼센티지의 사람들이다. 반면 최근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 사태는 그런 이념적인 주장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 한다. 몇 칠 전 비비씨 뉴스에서 이탈리아의 식당 주인 인터뷰를 봤는데, 4 가족의 생계가 이 식당 하나에 달렸다며 또다시 식당 문을 닫아야 한다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전국 봉쇄에는 막대한 정부 지출이 뒤따른다. 영국은 지난 번 봉쇄 때 어마 어마한 재정 지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니 이런 재정 지출을 감수하기 힘든 나라들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그것이 폭력화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일 것이다. 봉쇄가 자유에 반한다는 이념적 문제가 아니라 이 겨울을 어떻게 버티어낼까, 월세를 어떻게 낼까 하는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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