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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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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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의 신작을 한동안 찾아보지 않았다. 에도시대 시리즈가 작가가 재미있게 기획하고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새 손을 놓게 된 건 그 시대를 다루는 글, 특히 일본문화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와중에 국내에서는 행복한 탐정 시리즈로 출간된 스기무라 시리즈는 영상으로도 접한 적 있고, 인간 심리를 밀도 높게 그려낸 작품이라 좋았다. 일본문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탐정'이란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너무 뛰어난데 오히려 완벽함을 구현하다 보니 별다른 재미가 없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자칭 소시오패스이면서 천재적인 탐정 셜록이 존재하기에 매력적인 포인트가 없다면 차별점을 가지기도 힘들 것이다.


스기무라라는 인물은 그에 비해 매우 엉성하지 않은가. 그냥 선하다고 표현되는 인물일 뿐이다. 소시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영역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런치타임이 정해져 있다고 명시된 사내 카페에서 유일하게 런치 타임을 지키며 그 시간외에는 식사를 주문하지 않는 점이라든지, 재벌가 사위지만 야망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부를 누리는 게 부담스럽기만 한 인물이다. 그런 스기무라가 행복한 탐정이라 표현된 건 만족스러운 일(편집자 직무),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이 있는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토대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볼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탐정의 기질이 발동되게 된 건 아주 사소한 지점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말이다. 

한편 이런 그가 이혼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은 자신의 가족에게도 충실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때문에 아내 나호코와의 이혼은 불행히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을거라 생각된다. 결혼을 위해 스기무라의 본래 직장을 그만두게 해야 했고, 자신때문에 희생되었다는 죄책감을 가졌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호코의 외도는 서로간 입장차를 좁힐 수 없음을 뜻한다. 대개 탐정이란 인물들은, 결국 행복한 탐정이라 명명되었어도 어딘가 한 구석 상처와 결점을 가져야 되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게 매력 포인트인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가게 되는.


어쨌든 이번 작품은 스기무라의 탐정으로써의 본격 활약상을 보여준다. 스기무라가 탐정이라는 직업을 택하고 홀로서기를 하는 준비단계에 가까웠던, 이렇다할 상황 전개 없이 다소 어수선했던 『희망장』 에 비해 제법 탐정답게 보인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읽기 힘들었던 건 요즘 문제가 되는 여성혐오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로써 느끼는 바는 미미여사가 역시, 드디어...!라는 인상을 준다. 곪아터진 사회문제를 인간심리와 내면 깊숙하게 파고들어 읽는 내내 긴장과 피로를 안겨주었던 그의 대표작 『모방범』 이 떠오르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 절대 영도
물리 절대 온도의 기준 온도. 영하 273.15℃로, 이상 기체의 부피가 이론상 0이 되는 점이다.


<절대 영도>

사위가 자신의 딸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 한 여인의 사건의뢰는 어딘가 불온한 부분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더 큰 추악한 진실과 이면이 드러나게 된다. 그것도 선한 의지로 다른 이를 돕고자 했던 인물이 당해야만 했던 고통을 감히 들여다보는 것도 죄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고 그에 합당한 법적인 처벌 이전에 펼친 복수가 속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피해자의 고통과 생은 결코 되돌릴 수 없으니 더더욱이. 오히려 예상가능한 부분으로 느껴진 사건의 정황이 제발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게 했다.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갈수록 다가오는 진실은 현실과 맞닿아 있어 참담하기만 하다.


<화촉>

탐정 사무실로 신세지고 있는 집주인 다케나카 가(역시 부자)의 의뢰로 이웃인 사키코네 조카의 결혼식에 동행하게 된 스기무라. 가족이지만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금이 간 관계는 어찌해도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인과응보라는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타파하려고 했다는 점, 두 사람의 엇갈린 결혼식과 그와중에 발현된 욕망은 참...반복해서 말하기 싫지만 추악했다.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세상엔 참 별별 인간이 있으니 자식을 빌미로 한몫 챙기려 하는 몰상식한 작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착하다는 말로는 다소 식상하고 아둔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책임감 있는 인물도 있다. 이기적인 인물의 말로는 참혹했고, 그로 인해 힘든 생을 살았던 인물은 죄책감과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안고 가게 된다. 역시 뒷맛이 깔끔하지 않는 사건이다. 

"여성을 경멸하는 폭군들의 욕망을 파헤친"이라는 문구는 혐오와 위계의식으로 점철된 추악한 죄질을 가진 *레기들을 참으로 고급스럽게 표현한 수식 같다. 

스기무라의 활약이 두드러진 이번 작품은 지금의 현실과 너무 밀접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요즘 자꾸 시선을 끄는 단어가 '확장'이라는건데 단순히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편 가르기 하여 나뉜 단면을 넘어서 그 안에 담긴 진의를 제대로 보도록 해야 한다. 명백히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몰고간 가해자 또한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주 언급되었던 딸 모모코와의 케미를 다음 에피소드에선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역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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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너만의 길을 그려봐 - 아직 세상에 참 서툰 우리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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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너만의 길을 그려봐』

- 아직 세상에 참 서툰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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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성격의 글을 선호하진 않는데, 이 책은 디즈니의 작화를 소장하고 싶어 구매하였다. 그냥 예뻐서 구매한 책이다. 난 책 선물을 하는 걸 좋아하지만 주변에 선물해줄 사람이 마땅치 않고, 내 취향을 강요하는 것 같아 선뜻 선물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이럴 때면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하게 좋은 책이라면 그림에세이가 아닐까, 그림에 더 치중되어 있지만 구성된 글이 좋다면 더 좋을테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린왕자>와 마찬가지로 성인이 되어서도 찾게 되는 작품이고,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를 전해주기도 한다. 읽을 시기와 타이밍에 따라 해석하는 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관계성, 어쩌면 타인을 대하는 처세술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그외에도 어쩌면 당연한 소리 아닌가 싶은 글들이 있지만 묘하게 와닿는 구석이 많았다. 무의미하게 흘러보내는 시간이 참 많은데, 지나고나서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존재이기도 하고. 가끔은 뻔하지만 무조건 힘내란 성격의 글보단 적당히 솔직하고 정답같은 글이 도움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실천에 옮기는게 중요한 것이다. 어떤 마음가짐이든 마음만 가지고서는 되는 게 없으니, 일단 행하라. 그렇지만 길고 긴 조언은 한 귀로 듣고 흘려듣고 말테니, 예쁜 그림과 함게 덧붙인 이 에세이를 통해 전환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나의 길을 그릴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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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 빛나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어 -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너에게 디즈니 레이디스 시리즈
라푼젤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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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 빛나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어

-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너에게 













http://naver.me/FB6A99Km

"디즈니 여성들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진심 어린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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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자신을 납치한 마녀 고델을 엄마라고 믿으며 살아온 라푼젤은 바깥 세상은 위험하다는 세뇌때문에 성밖을 나서본 적 없는 인물이다. 어느날 탑에 침입한 도둑을 때려 잡으며 자신이 가진 새로운 면도 발견하게 되고 호기심과 특유의 매력으로 마주하게 되는 모든 인연들과 웃으며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과 진짜 가족도 찾게 되고, 디즈니의 모토 같은 꿈과 사랑을 이뤄내는 꽤나 주체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라푼젤의 꿈은 무엇이었던가, 예전에 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던 기억을 더듬어봐도 잘 기억나진 않지만(원래 기억을 잘 못함), 아마도 세상을 향해 스스로 한 걸음 내딛은 행위에 대한 은유?로 대체된 게 아닐까 싶다. 


꿈이란 무엇인가, 지금 현실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이뤄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일까 감히 생각해본 적이 있다.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 같은 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이룰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냥 돈벌이만 무던히 할 수 있다면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서 읽었던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건 디즈니를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단연 소장해야만 하는 시리즈 같다. 디즈니의 여러 공주 시리즈 중에서도 라푼젤은 참 매력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더빙 연기를 한 맨디 무어의 고운 목소리 덕분이기도 했고, 스토리적인 측면이나 캐릭터 재현을 잘 한 것 같아서 좋았다. 라푼젤 자체가 좋았다. 


애니 작화가 글과 함께 적절히 배치되어 있으니 아이와 함께 보기에도 좋을 듯 하다. 


'내일'이란 별로 반갑지 않았지만 '빛나는'이 앞서 밝혀주는 것처럼 희망찬 매일이 이어졌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이 리뷰는 RHK 북클럽1기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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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의 시방상담소 - 뭣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
김수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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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의 시방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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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활동의 이점이라면 단연 좀더 다양한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물론 이 또한 내 취향껏 선택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불가항적으로 정해진 기한 내에 읽어내야 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책임감이랄까, 강제적인 측면이 있어 좋다. 부지런한 독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독서가 습관처럼 자리잡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극히 통감하고 있다. 흥미로운 작품이 있음에도 선뜻 책장을 열어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자꾸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던 여느 때와 같은 나날 속에 도착한 책 한 권. 표지부터 놀랐다. 김수미 선생님, 매주 수요일 <수미네 반찬>을 통해 만나볼 수 있으니 왠지 모를 친근감도 있고, 또 생각치도 못하게 친필 사인본이 담긴 책이라니 너무 좋은데, 하면서도 처음 든 생각은 연예인 사인이 담긴 책을 처음 받아보는 데 그게 이렇게 차진 욕이라니, 하며 웃을 수 있는게 유쾌하다. 과연 독보적인 캐릭터이다.



자기계발의 얼굴을 하고 과시하는 자랑, 성공담이 담긴 책 다음으로 좋아하지 않는게 바로 에세이집이다. 나의 편견이기도 하지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은 에세이집은 접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에세이 집으로 분류하는게 맞는 지 모르겠지만 법정스님의 책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글쎄 요즘 다수가 찾는 일명 '치유'와 '그래, 힘내 할 수 있어!' 등과 같은 응원을 가장한, 글이라기 보단 누군가의 일기를 엿보는 듯한 책들은 물론 수요에 따른 것이겠지만 역시 거부감이 든다. 가성비의 나라에서 책 한 권에서조차 가성비를 따진다. 글의 양질을 따지게 된다. 이처럼 구구절절 늘어놓은 사담은 에세이라는 특성의 글을 불호한다고 미리 고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보고 싶다며 신청했던 건 혹시나 하는 마음과 늘 하고 있는 고민,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과 사연이 있다면 과연 김수미는 어떻게 답했을까 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번쯤 매체를 통해 접해본 그의 말투를 떠올리고서 읽다보면 참 신명나게 읽힌다. 실제로 오디오 클럽을 통해 들어볼 수도 있으니 궁금하다면 직접 더 들어볼 수 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372


시방 상담소(by 모모콘) 오디오클립




각 장마다 주제별로 나눠져 있고 사연을 듣고 저자의 답이 이어지고 재밌는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으니 이를 보는 맛도 있다.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나 싶은 기막힌 사연들도 참으로 많았다. 이에 살아온 날만큼의 자신이 겪은 시간들을 토대로 진솔하고 때론 욕해달라는 요청에 적절하게 욕을 내뱉어주면서 답하는 부분이, 보통의 '상담'을 주제로 한 매체들과는 확연히 성격이 달랐다. 본질은 같을지언정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참으로 달랐다. 더 맵고 칼칼한 맛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 맛이다.

상담을 청하는 데는 나의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과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기에 이에 대한 팁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김수미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렇게 실컷 단 것만 먹다가는 마흔 넘어서는 다리 하나 자를 각오를 해야 된다며 호되게 말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그런 걸 봐왔고 알면서 고치지 않는 어리석음에 정신이 번쩍 들게끔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가르치려는 태도도 아니고 정말로 염려되기에 더 세게 말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들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진실된 마음이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부분 부분들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정도 내 코 석자가 온전해야 더 잘 챙길 수 있다는 것, 인간에게나 인간답게 구는 것이고 똥한테는 똥같이 구는게 답이라는 것, 나쁜 습관 고치는 데 왕도는 없고, 실천으로 옮기는 방법뿐이라는 것, 노력한 만큼 되돌아오는 게 결과이고 경쟁이 없으면 나태히기 쉽다는 것, 실수는 결코 숨겨지지 않으며, 숨기면 숨길수록 더 나빠지는 것이기에 모든 문제는 직면해야만 하는 것, 싫고 귀찮은 일은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므로 이를 해내는 것부터 시작하면 스스로 자신감도 붙게 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심어준 자신감이란 한순간이기에 자신감이란 스스로 쌓아야 하는 것, 내가 저지른 잘못을 되감기할 수 있는 기회란 흔치 않기에 잘못한 게 있다면 바로 고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며,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기에 결국 필요에 의해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원하면 따라하게 되고, 자꾸 하다 보면 늘고 내 '맛'이라는 것도 낼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김수미는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 같다. 그리고 아마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하여 운동하고 목욕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전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일기를 쓰고 매일 같이 똑같은 루틴으로 일하고 움직인다. 게으름이란 인간의 원죄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하는 말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뻔하게 느껴지는가? 그럴 수도 있다. 이런 류의 성격이 담긴 매체가 대개 그러하다. 찾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세이류를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독자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같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바로 그가 가진 캐릭터와 커리어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바로 보고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열심히 살아왔으니 말이다. 속으로 뜨끔하며 같이 혼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찬물 한 바가지 세게 얻어맞은 듯 직설적인 조언들이 이어진다.  






또한 저자는 말한다. 내 인생의 로또는 '나'라는 것. 견디기 힘든 시간들에 도망치고 싶어 회피하고 싶어질 때도 있겠지만, 끈기 있게 참아보는 것 역시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해볼만한  인생공부라고 말이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와 때가 있다는 불가용어인 '시절인연'처럼 끝없이 이어질 듯한 인생의 여러 날들에 고통이 있다면 이를 지나 웃을 수 있는 날도 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긍정해보는 것이다. 

독자는 특히 가족이야기에서 공감이 많이 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저자는 내 고민 다스릴 사람은 나밖에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집중하여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도 필히 가져야 한다고 했다.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이다. 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언제였는지 무얼 할 때였는지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도 가져보는 것이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내 속도 같이 시끄러워질 때가 많다. 그럴 때일수록 '나'를 직면하고 '나'를 알아가보자. 그리하여 오늘도 무사히 잘 살아내었구나 하고 안도하며 웃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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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영화 공식 원작 소설·오리지널 커버)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강미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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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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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동안이나 사랑받은 고전 소설, 그 시절의 소녀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을 법한 이 소설은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인 요소가 담긴 작품이다. 읽을수록 생동감이 더해지는 이유는 네 자매의 톡톡 튀는 성격과 사랑스러움이 담겨 있으며, 그들의 추억과 삶을 살아가는 열성적인 태도, 인간적이면서도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결말도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되었으니, 어린 시절 꿈꾸었던 세계와 함께 추억하기에도 아주 좋은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이 퍽퍽할수록 아름답고 풍성한 이야기에 더욱 파고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요즘은 잘 해결하고자 애쓰고 있는 사람들의 노고를 무시하듯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기에,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빛이 나는 이 작품은 뿌옇게 가로막고 있는 음침한 먼지 속을 밝혀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랑받는 고전문학에 대한 신뢰는 언제나 한결같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된 작품이라면 바로 그만큼의 생명력이 깃들어 있을 거란 무한한 믿음이다.



<작은 아씨들> 역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형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공감가지 않을까 싶다. 이건 어떤 시대이건 상관없이 가족이 많을수록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같은 형제여서 닮은 것도 또 너무 다른 것도 있으며 추구하는 것 역시 천차만별로 다르다.



여기 등장하는 네 자매에 대한 간략한 묘사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메그, 마거릿, 맏이, 통통한 몸매, 투명한 피부, 커다른 두 눈, 숱이 많으면서 부드러운 갈색머리, 하얀 두 손, 조금의 허영기가 있는 전형적인 미인


조, 조세핀, 둘째, 큰 키와 마른 몸매, 가무잡잡한 피부, 망아지 같은 성격, 날카로운 회색눈, 길고 탐스러운 갈색 머리


베스, 엘리자베스, 셋째, 장밋빛 피부, 부드러운 머릿결과 반짝이는 눈, 조용한 말씨, 수줍음이 많고 피아노를 사랑하는 음악가


에이미, 막내, 푸른눈을 가진 금발 소녀, 투명한 피부, 날씬한 몸매, 백설공주형의 소녀, 우아함과 리틀 라파엘로라는 별명을 가진 화가



그리고 이 소녀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현명한 마치 부인과 선량한 아버지가 있으며, 풍요롭고 다정한 이웃 로런스가 있다.



소녀들의 나날들은 연례행사를 맞이하여 떠들썩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가난을 타파하기 위한 소일거리와 돈벌이에 지쳐 지루해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유쾌하다. 네 명이기에 나눌 수 있고 그만큼 배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각 인물별로 몰두하고 있는 분야도 다르고 성격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때론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애정으로 용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가의 모습을 닮은 조라는 인물에 더 애착이 생겼기에, 언니들이 자신을 두고 외출했다고 분풀이하기 위해 조의 원고를 태워버린 에이미의 행동에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백업'이라는 것도 없을테니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형제이기에 사소한 것으로 싸우기도 했고, 또 소중한 가족이라서 포용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기에 더욱 잘 이입이 됐던 것 같다.



소녀들이 했던 다양한 놀이, 연극, 그들만의 모임, 그리고 생활, 그리고 사랑과 신뢰로 구성된 이 가족이 가난한(?) 삶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헤쳐나갈 수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 느껴지기도 한다. 잘 맞지 않아 다투고 이기적이게 굴었어도 결국은 스스로 깨닫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대개 보통의 가족들이 그럴수도 있지만... 가족이기에 드러내보이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기도 하다.



예쁜 옷과 소품들이 함께 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꿈꿨지만, 결국에는 진실한 감정을 표현했던 가난한 가정교사 존과 결혼을 결심한 메그, 영원히 철이 들 것 같지 않았던 에이미는 우아한 여성이 되어 속물적인 관계가 아닌 또다른 '사랑'을 찾게 되었고, 수줍음이 많았던 착한 소녀 베스는 결국 영면의 길로 들어서며 그들 곁을 떠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어떻게든 잘 살아갈 것이기에 안도의 마음이 든다. 그리고 우리의 '조', 성급하고 직설적이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 책벌레 소녀는 결국 작가가 되었고, 때론 쓰레기 같은 글을 통해 두둑해진 지갑과 반비례하는 죄책감으로 스스로 부끄럽기도 했지만, 결국 진심이 담긴 글로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외로움이 더 지속되기 전에 그에게도 사랑이란 게 찾아오긴 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엿보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또한 지금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고루한 시선이 담겨 있는 것처럼 여성의 삶은 결혼으로 직결된다. 조 역시 로리의 청혼을 뿌리치고 떠나 있었지만 외로웠고 사랑으로 구속되는 게 싫었지만 온화한 품성의 지적인 노(?)교수와 이어지게 되었기에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 표현된 풍자적인 요소처럼 느껴졌던 그 부분, 출판사가 원하는 내용으로 고친 것일지도 모르는 조의 결혼과는 반대로 작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작가는 『작은 아씨들』이라는 제목으로 1868년에 1부를 완성해 출간했고, 같은 해 말 『굿 와이브즈Good Wives』라는 제목으로 2부를 발표했으며 이듬해에 두 권을 합본하여 출간했다. 1부가 네 자매의 따듯한 유년시절을 그린 이야기라면 2부에서는 조가 본격적으로 꿈을 향해 성장해 가는 한 여성으로서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에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간되는 『작은 아씨들』은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세계를 그대로 담아 1,2부를 합친 완역본으로 출간했다. (책소개 참고)



진보적인 사고와 가치관을 가진 아버지와 그의 친우들을 통해 받은 영향과 작가로서의 기질, 여성이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처럼 얌전히 앉아 하는 뜨개질보다 전쟁터에 나선 아버지와 같이 서고 싶었던 '조'처럼, 여성이기에 제약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상황 속에서 다양한 작품을 써 나갔으며, 그런 여성의 삶이 담긴 많은 작품뿐 아니라, 풍자적 에세이, 사실주의 소설, 펄프픽션, 선정소설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썼다고 하니 더욱 궁금해진다. <작은 아씨들> 속 '조'가 생계를 위해 썼던 속된 글처럼 루이자 메이 올컷의 글에는 자극적인 요소들도 있었지만 노예해방, 여성해방, 계급해방 등 급진적이고도 따뜻한 가치관도 함께 담겨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작가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 사랑스러운 작품 말고도 더 많은 작품을 만나고 싶단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이 작품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작가에 대해서도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당분간은 집중력 향상을 위한 독서에 더욱 노력해보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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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는 다르겠지만 살아가면서 우린 늘 천로역정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지. 우리의 짐은 여기에 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우리 앞에 놓여 있단다. 그리고 선의와 행복에 대한 갈망은 수많은 역경과 실수를 헤치고 진정한 하늘의 도시인 평화로 향하도록 인도하는 길잡이란다. 자, 어린 순례자 여러분, 이제 놀이가 아니라 진짜 생활 속에서 다시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니?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너희들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는 거야." 31쪽



가엾은 조는 착해지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내부의 적에게 언제나 승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이런 성질을 잠재우는 데에는 꽤 기나긴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다.

157쪽



그녀가 너무도 사랑하는 얼굴에서 묻어나는 인내와 겸손은 조에게 그 어떤 현명한 훈계나 통렬한 비난보다도 훌륭한 교훈이 되었다. 어머니가 보여준 연민과 신뢰는 많은 위안이 되었다. 어머니도 자기와 비슷한 결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고쳤다는 걸 알게 되자 한결 마음이 편해지면서 반드시 고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하지만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소녀에게는 40년 동안이나 조심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이 다소 지겹게 느껴졌다. 169쪽



"(…) 내 딸들아, 엄마와 아빠는 언제 어디서든 늘 너희들의 친구가 돼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너희들이 결혼을 하든 안하든 우린 너희들이 우리 집안의 자랑이 될 거라고 믿는다." 207쪽



"(…)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는 것도 중요하단다. 하루하루를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렴. 그렇게 일과 놀이를 잘 조화시키면서 살면 시간의 소중함을 이해하게 될 거야. 그래야 젊은 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후회를 덜하게 되지. 난 너희들이 가난하더라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249쪽



그제야 메그는 혼자 앉아 일을 하다 말고 눈물을 뚝뚝 떨구며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는지를 실감했다. 사람, 보호, 평화, 건강 등과 같은 인생의진정한 축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그 어떤 사치품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377쪽



조는 오랜 꿈을 접고 새롭고 더 나은 꿈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다른 욕심들은 초라해 보였고, 사랑의 영원한 힘을 믿으며 평화로운 위안을 느꼈다. 834쪽



조는 이미 너무 멀리 왔고, 또 자신의 행복말고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아주 단순한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둘의 인생에서 그것은 캄캄한 밤과 폭풍우와 외로움이 그 둘을 맞이하려고 기다리는 가정의 불빛과 온기와 평화로 바뀌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953쪽





(이 리뷰는 RHK 북클럽1기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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