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지하철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용과 지하철』




타고난 이야기꾼인 마보융의 위력은 이미 국내 첫 출간되었던 『장안 24시』로 증명된 바 있다. 역사소설을 비롯한 미스터리, SF판타지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데다,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더불어 구성이 촘촘하기 때문이다. 그가 구축한 작품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빨리들여 가는 듯한 강력한 흡인력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가 가진 힘이 강력하다. 가독성 좋으면서 작품성까지 갖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걸 가뿐히 해내고 있으니 타고났다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의 신작이 나왔다니 당연히 기대가 됐다. 과연, 이번엔 판타지적인 요소가 주를 이루고 주인공은 어린 소년인데다, 이야기 속  배경은 익숙한 장안성이라니 한층 더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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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이정의 아들 니타는 순수한 마음과 타고난 대담함과 더불어 의협심과 모험심이 가진 소년(가히 주인공이 가질 만한 성격 요소를 모두 갖추었음)이다. 오랜만에 가족간의 재회를 기대하며 장안성으로 향하는 길, '얼룡'이라는 용 형상의 검은 기운에 공격을 받게 된다. 기막힌 타이밍으로 니타가 탄 마차는 천책부 공군 덕에 무사히 생명의 위협을 벗어날 수 있게 되지만. 위기의 순간 추락하던 니타를 구해준 천재 비행교위 심문약 덕에 하늘을 비행하는 짜릿함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그렇게 무사히 아버지와 재회를 하게 된 소년은 미로처럼 끝없이 펼쳐진 장안성이란 낯선 도시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보호자를 자처한 옥환공주를 통해  지하룡을 처음 타 본 소년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편리함과 달리 살아있는 용을 도구로만 이용하는 데에 불편함을 느낀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 소년의 눈엔 오히려 본래 가졌어야 할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감정없는 냉담한 눈으로 지하에 갇혀 사람과 짐을 싣고 나르는 그들의 생활이 가엾기만 하다. (이는 물론 필연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겪게 된 동시에 하늘을 나는 즐거움을 겪어본 것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연찮게 지하룡들의 거처인 선로 관제소에 숨어들게 되고, 주머니 속에 가득 채워둔 달콤한 과자와 주전부리들 덕에 식탐 많고 정 많은 한 용의 용주를 얻어 그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실수로 떨어뜨린 사탕액이 묻은 용의 차가운 눈빛에 대한 사연을 듣고 그를 구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좌절을 겪게 되고. 소년의 순수한 진심이 전달되자, 많은 지하룡들의 요구로 그들에게 손수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열살배기 어린 소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소년은 지하룡 막대사탕, 식탐이, 천둥, 매화반점과의 우정을 통해 지하룡들이 겪는 고통과 죽음에 대해 더 가까이 경험하게 된다. 


장안에서 매년 열리는 용문절에는 수많은 잉어들이 간절한 바람으로 힘겹고 고통스럽게 호구폭포를 거슬러 올라가 드높은 용문을 통과하여 용이 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운이 좋게 통과하여 무사히 용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 좌절하거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억겁의 시간을 견디고서도 겨우겨우 용이 되어 비상할 찰나, 천책부 공군과 백운관 도사들의 공격으로 주술과 쇠사술에 묶여 지하에 묶인 신세가 되고만 용들에게서 떨어져 나간 역린(용의 아래턱에서 3척쯤 내려온 곳에 위치한 특별한 비늘). 영혼도 없이 오직 깊은 분노와 원한만 담긴 역린이 변해 얼룡이 되는 것이었으니, 이는 곧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한편 니타의 아버지 이정과 대척점을 이루는 백운관의 수장인 청풍 도장은 황제의 전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인물. 점차 강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얼룡에 대해 대비하는 데에 의견을 달리 하는 이정과 청풍 도장의 기싸움에서 권력다툼의 조짐이 보이나 싶었는데, 다행히 더 심화되는 양상은 아니었다. 어른들의 다툼과는 상관없이 니타는 자신을 보호하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죽음의 문턱에 선 막대사탕을 구해내기 위해 온힘을 다한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 니타가 이뤄낸 기적이 하나씩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멀미에 힘들어하던 어린 소년은 첫 인상과 달리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비범하게 행동하며, 이야기의 힘을 더해준다. 


소년과 용 막대사탕의 우정을 읽어가며  한순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가, 긴장감에 마음을 졸이게도 하였으며, 모두가 공존하여 잘 살 수 있는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기도 했다. 이들의 우정이 영원하길 간절히 바라며, 흐뭇한 웃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던 작품이다. 



"날아! 비상은 용들의 숙명이야!"

이 말은 붉고 강렬한 전류처럼 모든 용의 신경을 자극해 전율하게 만들었다. 이 치기 어린 목소리에 갑자기 많은 용들이 사납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 용들이 뿜어내는 질풍노도와 같은 포효가 한데 모여 강한 기류가 형성됐다. 마치 비범한 진룡이 탄생할 때처럼 바람이 일고 구름이 피어오르며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았다. 


 제12장 대얼룡  中 (223-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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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이 소설 내엔 권력의 다툼 속 존재하는 이기적인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조화를 이루는 구조였기에 편하게 읽을 수 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불현듯 닥친 위기를 무난히 잘 헤쳐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의 힘이 강력하면 없던 집중력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는데, 바로 이 소설이 그러했다. 긴장이  고조되어 제발, 제발하는 마음으로 한 장씩 넘겨가며 안도하는 상황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영상매체 제작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봤던 것 같은데 이미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선명한 묘사가 이어지니, 보는 즐거움까지 더한 듯 하다. 소년 니타의 순수한 마음과 용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아름답게 펼쳐치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니 감히 치유소설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를 짐작하여 살펴보면,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각심과 조화로운 공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그동안 운좋게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쪽으로만 편중된 독서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그 세계에만 갇혀 있었음을 고백해본다. 중국소설도 '마보융'이라는 작가를 통해 그 매력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용과 지하철』에 실린 그의 다른 단편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와닿지 않고, 별 매력도 잘 느끼지 못하였지만. 


작품의 여운이 남아 그 다음을 자꾸만 그려보게 됐다.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된 막대사탕과 니타의 이야기를 좀더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싶고, 혹은 틈만 나면 투닥거리기 바빴던 옥환 공주와 심문약의 이야기도 덧붙여져 있었으면, 완벽한 마무리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는 작품이었기에 소소한 아쉬움을 덧붙여보았다. 하지만 역시 믿고 읽는 마보융, 다음 작품도 너무 기다려진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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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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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됩니다. 황정은 작가님 소설집!! 제발 선착순 안에 들어서 사인본 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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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악 5법 쟁점 해설


 http://nodong.org/7046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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