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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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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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제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작이자 표제작.


새로이 떠나고, 다시금 돌아오는 곳, 공항. 공항은 이름만 들어도 괜히 아득해지는 설렘을 지닌 공간 같다. 더불어 혼란한 풍경들.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지고 지나치는 사람들은 사소한 계기로 엇갈리거나, 스치는 인연이 되기도 한다. 


이릴드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이다. 사회인 자원봉사자에 지원하여 스키 강사로 일하기 위해, 낯선 나라 일본에 도착하게 된다. 세무사 일을 하고 있는 겐지는 몇 달 전 이혼을 통보한 아내의 휴가차 떠난 시애틀 여행에서 돌아올 딸과 아내를 마중나간다. 되돌리고 싶은 관계를 위한 노력으로 딸이 아끼는 인형을 가지러 가기까지 한다. 스미코는 영국남자와 결혼한 딸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타국을 향하게 됐다. 쌍둥이 손녀 조안나와 에이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보게 된 차분한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를 통해 손녀들과의 여행을 상상해본다. 가온은 공항의 풍경 속에서 한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이상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상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소년과 그의 소란스러운 가족을. 이릴드는 가온의 엄마, 즉 겐지의 아내에게 가온의 언니냐고 묻는 실수를 하고, 스미코는 서툰 영어로 이릴드에게 수줍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속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듯한 소란스러운 한 가족으로 인해 시선이 한데 묶였다, 또 다시 엉키다 풀어지곤 한다. 스치는 풍경 속에 각기 다른 사정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항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며,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것 같다. 지나친 활기 가득한 공간 속에 속해 있다, 곧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데서 오는 왠지 모를 공허함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가온의 말과 달리 세상에는 말로만 어른들이 천지이고, 이를 다 세어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항은 이러한 결이 다른 개인의 고독이 잘 숨겨지기도 때론, 너무나도 잘 드러나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파묻혀 숨어버리기도, 한껏 그 존재감을 드러내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각자의 몫으로 지닌 고독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늬만 어른들은 대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 세상에는 어른이 너무 많다. 온통 어른투성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 많은 어른들을 전부 숫자에 넣었다가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20쪽


<침실>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아내와 달리 열다섯 살이나 어린 매력적인 애인 리에에게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후미히코. 늘 좋은 말만 해주었고, 서로의 존재와 관계성이 점차 당연스럽게 여겨졌다. 아내와 이혼을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리에는 슬프지도, 화내지도 않는 태도로 말한다. 리에의 헤어짐은 덤덤한 듯 했고, 후미히코의 속은 한없이 요동쳤다. '곤란한 사람'이란 무슨 의미일까. 집으로 들어와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침실의 풍경과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후미히코. 헤어짐을 통해 문득 자신의 옆에 존재하는 사람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떤 향기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언젠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딱히 정의할 수도 없는, 그런. 마치 무언가를 잃고 나서 본래 자신의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듯이 말이다. 


나와는 상성이 잘 맞지 않는 것인지, 당연하게 등장하는 불륜 이야기에 사실상 반감마저 느낀다. 아름다운, 특유의 감성과 감각적인 문장이 함께 한다 하더라도. 내겐 잘 와닿지 않는다. 그 나라의 일부 당연한 정서, 일반적인 풍토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호였다. 누구에게나 취향이라는 건 존재할 테니. 이를 흥미롭게 읽어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나의 취향이 아니었을 뿐..



<늦여름 해 질 녘>


늘 고독의 품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나는 이타루라는 남자에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흠뻑 빠지게 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여행을 떠났고, 순간의 욕망과 끌림은 다소 과격하게 그를 먹어 치우고 싶다는 격한 표현으로 내뱉게 되고, 이에 자신의 살갗을 도려내어 전해주는 사람이라니. 한편으로는 너무 잘 맞는 두 사람이 아닌가. 시나는 그동안의 연애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그가 곁에 없는 순간에도 그를 느껴야만 직성이 풀릴 정도이다. 우연히 지나쳐 가는 한 여자아이를 보며 문득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고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소녀와 여인의 경계를 허물듯이.


시나는 홀연히 이해했다. 자신이 지금도 고독하다는 것을.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친구라고 생각했다. 저 아이는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겠지만 우리는 친구다, 라고.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시간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73쪽



<피크닉>


큰 계기 없이, 소개로 조금씩 친해졌고, 어느새 연애를 하며 결혼까지 하게 됐다. 잔잔하고 소소한 어느 부부의 일상, 그리고 피크닉. 왜 이런 풍경이 낯설게 느껴져야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고, 그에 따라 집에서 싸온 음식으로 피크닉을 하게 된 것인데. 이런 시간과 행위가 전혀 뜻밖의 것이고, 놀림과 부러움이 대상이 된다는 게 어쩌면 더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다정한 듯 무심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건 편안하고 즐거웠다. 타인과의 결속이 그런 게 아닐까, 어딘지 모를 흔적 같지만, 어느새 내 삶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어쩌면 피크닉은 이 두 사람이 갖는 또 하나의 충전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쿄코 본인이 가장 놀랐을 테지만, 나란 존재가 그녀에게는 불쾌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이물질이다. 이렇게 바깥으로 끌어내어 볕을 쬐이고 바람을 쏘여 조금이나마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89쪽


내게도 쿄코는 이물질이다. 짙은 갈색 깃털을 지닌 작은 새 한 마리와, 관목수풀 사이를 가로질러 간 검은 고양이와, 세발저전거를 탄 아이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이물질이다. 90쪽



<유가오>


에쿠니 가오리의 시대소설이라니, 퍽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보면 작가 고유의 개성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건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다. 이름 없는 풀꽃, 유가오. 그 청초한 아름다움에 대해. 모두에게 사랑 받는, 미워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남자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라고 해두면 될까, 겐지 이야기에 대해 무지하여 그 배경을 잘 모르겠지만,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가 이어진다. 그 당시의 정서도 알고 읽어낼 수 있다면 더 잘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알렌테주>


마누엘과 루이스의 여행기. 누구에게나 다정한 마누엘과 이를 불안해하는 루이스. 묵게 될 숙소에서 만난 가출상습범 소녀 엘레나와 그녀의 어머니인 아름다운 플라비아. 다른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두 사람을 보면 친구 사이로 보일지라도, 틀림없는 연인 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한 화해 여행에서 또다시 싸움을 하면서도, 평생의 단짝처럼 너무나도 잘 맞는 두 사람.  어느 관계에서든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강요할 수도 없고, 변화를 기대하는 게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벽에 기대선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는 두 사람은 결국 현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할 수도, 아님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처럼 결국 한 조각처럼 잘 맞는 두 사람이기에 지금을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진실은 언제나 나를 무너뜨린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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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달랐고, 사는 곳이 달랐고, 관계성 또한 각기 달랐다. 잔잔하게 이는 물결처럼, 고독과 쓸쓸함의 자리가 커져버린 순간을 그려 보여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익숙한 것들도 낯설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기도 했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는 이별을 겪기도 했고, 평온하면서도 나른한 행복의 순간도 있었다. 단편소설을 쓰는 것을 여행에 빗대어 표현한 작가의 말처럼, 이번 작품집은 각각 이야기 속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았고, 무거운 듯 무겁지 않았다. 붕-하고 들뜬 기분과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교차했다. 사람은 자신만의 가진 고독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존재함으로서 얻어진 당연한 굴레와 같이. 그러나 이야기 속 모든 인물들이 결국 둘이서 하나였듯이. 둘이였다 하나 되는 과정도 있었지만. 당연한 말로 함께하기에 기댈 수 있는 것이다. 쓸쓸하고 고독에 파묻힌 삶의 이야기라도.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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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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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우아함, 러시아 혁명 그 이후




『모스크바의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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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각기 다른 환경이라는 게 주어진다. 이 환경에 어떻게 순응하여 조화롭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그저 핑계로만 말한다면 이 환경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불만과 포기밖에 남지 않을까. 환경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 


여기 두 번의 혁명 이후, 1920년대 러시아,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한 순간 뒤바뀌게 된 사람이 있다. 바로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 경마 클럽 회원, 사냥의 명인인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다. 혼란한 시대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가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다시 돌아오게 된다. 프롤레타리아의 시대. 곳곳에서 혁명 이후 바뀐 현상들이 뒤섞인 가운데 사라져야 할 지위지만, 과거 자신의 쓴 시가 혁명에 동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명목 하에 평소 머물고 있던 메트로폴 호텔 '종신 연금형'을 선고 받게 된다. 


붉은 양탄자가 안내하는 스위트룸에서 하인용 다락방으로 옮기고 모든 특혜와 재산을 국가로부터 몰수 당하게 되었지만, 빼앗긴 자유와는 달리 백작의 세련되고 기품 있는 취향에 따라 피난처로써 좋은 터전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는 백작의 훌륭한 품성이 바탕이 되어 마주하는 사람들 또한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결코 나쁘게 보지 않는, 상대를 다른 시기심 없이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을 대해도 변함없을 것 같기도 하다. 


길고 긴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기에 분량은 방대하다. 그저 백작의 생활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고, 그 안에 녹아든 당시의 시대상을 아주 적절히 잘 보여주고 있는 게 이 작품의 또다른 강점이다. 러시아 문학에서 흔히 부딪히게 되는 장벽은 일단 어렵고 긴 이름들이다. 긴 이름이 연이어 나오면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메모해가며 읽어나가도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그 중심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어려움은 한결 덜었다. 심지어 번역의 딱딱하고 어색한 곳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재밌고, 가독성 또한 훌륭하다. 


또한, 백작의 신분의 특성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시대상은 물로 문화, 역사, 음식, 인식, 예술적 특징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로도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장면이나 행위를 묘사하는 부분 역시 굉장히 매력적이다. 때문에 낯선 부분들을 재밌게 접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자주 가는 단골 이발소의 이발사의 가위질을 묘사하는 것도 춤 동작에 빗대어 설명해준다. 머릿속에 아주 잘 그려질 수 있도록. 



야로슬라프는 가위 두 개를 동시에 들고 은발의 신사에게 마법 같은 기술을 발휘하고 있었다. 야로슬라프의 손에 들린 가위는 처음에는 무용수가 뛰어올라 두 다리를 공중에서 교차하는 동작인 앙트르샤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이발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손은 점점 더 빨라져서 마침내 가위는 고파크를 추는 카자크 사람처럼 뛰어올라 다리를 내치곤 했다.  61쪽  


호텔 곳곳에 백작의 취향을 존중해주며 잘 대해주는 직원들이 존재하고, 공주가 되고 싶어했던 이상주의자 니나, 백작의 연인이 될 인연이었던 배우 안나, 친구 미시카, 다정한 부녀의 인연 소피야 등 분량 만큼이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백작도 현실을 의연하게 받아 들이며, 잘 적응하는가 싶었지만 참을 수 없는 묘멸감이나 불현듯 찾아오는 공허함은 견디기 힘들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앞에서 다시금 생의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건, 결국엔 기억 속 그리운 고향의 맛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흥미로웠던 점은 답답한 호텔 생활에서 노동을 시작하게 된 백작의 모습이었다. 사색과 독서 등 나름의 규칙과 생활 패턴으로 살아왔지만, 생활 반경이 극히 좁아진 데에서 비롯되어, 이미 사라진 신분 앞에 백작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취향과 기품 있는 태도를 잘 살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당연하지만 의외성을 가지고 다가와 신선하게 느껴졌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 옷을 입고 일하는 백작의 모습, 시대의 흐름을 타고 변화하고 흔들리는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 애썼던 백작이 행복한 삶의 마지막을 가져갔으면 한다.


세상살이 팍팍하고 한 주간의 시작만으로 숨이 막히는 지금, 이 작품은 훌륭한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백작이 묘사하는 장면, 음식, 문화 등 흥미로운 부분들이 군데군데 있었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면모에 공감이 가고, 안도하는 한편 존경스러웠다. 무기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세상은 돌고 도는 거야. 

사실 지구는 지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동시에 태양 주위를 돈다. 은하수도 돈다. 더 큰 바퀴 속의 작은 바퀴인 셈이다. 천체는 돌면서 시계의 작은 망치가 내는 종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자연의 소리를 낸다. 그 천체의 종소리가 울리면 아마 거울은 불현듯 자신의 보다 더 진정한 목적에 맞게 일할 것이다. 즉, 우리 인간에게 자신이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그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65쪽 

  


"원칙적으로 말해서 세 시대는 이전 세대의 구성원들에게 어느 정도 고마움의 빚을 지고 있단다. 우리의 나이 많은 분들이 밭을 경작하고 전쟁에 나가 싸웠어. 그분들이 예술과 과학을 바런시키고, 일반적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한 거야. 그러한 노력을 해왔으니, 설령 그 노력이 변변찮다 할지라도 그분들은 마땅히 우리의 감사와 존경을 받아야 하는 거란다." 

84쪽 



그렇지만 아무리 역사적 근거가 넘친다 하더라도 하나의 충고가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와인과 마찬가지로 이웃한 동네에서 태어난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도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 예로서, 옛날에 살던 집의 폐허 앞에 선 이 여행자는 충격이나 분노나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수풀이 무성한 길을 바라보면서 지었던 것과 똑같은 아쉬움과 평온함이 깃든 미소를 지었다. 옛 모습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라고 예상하고서 과거의 장소를 찾는다면 즐겁게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716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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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이내옥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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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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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직업은 박물관 큐레이터이다. 우연한 기회로 일하게 된 박물관에서 3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됐지만, 처음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잘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작품을 보는 대선배의 안목과는 다르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선뜻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미적 안목이 전제되지 않으니 박물관은 그저 삭막한 사무실로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정준 디자이너와 더불어 그 주위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아름다움에 대한 식견이 점차 넓힐 수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을 근무하게 되면서 문화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심하게 되었고, 서양 박물관의 유물 관리 수칙과 규정과 다르게 명확한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 박물관 상황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하며, 조명의 중요성, 수집가들의 못 말리는 수집 욕구와 기증에 대한 이야기, 동양 문화의 아름다움, 아는 이들만 찾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풀꽃 갤러리 아소에 대한 이야기,  종교와 역사, 정치, 미술, 일본문화, 고향에 대한 이야기 등 새삼 곳곳에 간직되고 있었던 아름다움과 그 가치에 대해 놀라웠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안목의 성장'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처음엔 단순히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이를 올바른 가치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어떠한 노하우나 방법을 얻어가려는 요령으로 읽기 시작했었다. 

  

허나, 사실 이 에세이는 오랫동안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저자의 생활 즉, 삶 그 자체로 스며든 문화 예술 역사 등 자연히 태어났고, 자연히 성장한 저자만의 안목에 대한 이야기이자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고록이었기에, 잘못된 독법으로 접근한 것 같아 아차 싶었다.

  

굳이 안목에 대해 얻은 결론을 정의해보자면, 그저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오래 응시하며 시간의 지혜가 전해주는 대로 자연히 길러지길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마치 여러 분야의 역사 강의를 들은 기분이었다. 특히 동양권 문화에 대해서. 머릿속에 얼핏 인식은 하고 있었으나, 잘 알지 못하였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나라 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 책이 아니었다면 영영 몰랐을 풀꽃 갤러리에 대해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소는 자연광이 스며드는 공간이 너무 매력적인 곳이었다. 가만히 바라보는, 응시하는 데서 얻어지는 기쁨도 있을 것만 같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는 사진이나 그림 한 장 정도는 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러 여건들이 전제되어야 했던 것이었지만, 저자의 감상과 다르게 나는 어떻게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백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뻔한 구성일지 몰라도 어쩌면 아예 무지한 영역에서는 이미지만큼 효과적인 게 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아쉬움이 남겨졌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느낌과 애정 어린 감탄에 함께 동조하고 싶은데 상상만으로는 부족한 지점이 있어 읽는 도중에 검색을 많이 해봤던 것 같다. 

  

저자에게 많은 영감을 준 듯한 도연명과 화엄경의 거대한 세계에 궁금증이 일었고, 윤두서의 그림을 찾아보고 그 멋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다양한 도시에서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경험했고, 좋은 인연들을 통하여 겪고, 느낄 수 있던 것들에 대한 부러움도 들었다. 하나의 길로 향하지만, 사실 여러 방향으로 그 뿌리가 뻗어져 나가 있는 저자의 삶의 시간들에 대한 경외감도 들었고, 멈춰있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지금이 헛헛하고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아직 갈길이 멀기도 하니까, 구절에 인용된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눈부시다고 하니, 이 빛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더욱 발을 굴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안목은 없고 고집만 있는 독자의 부족한 리뷰를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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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름다움을 보는 눈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이란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진실은 여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우주의 운행에 자신을 맡긴다는 옛 성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봄날 뜰 안의 나무와 풀꽃의 새싹을 보며 우주 생명의 신비를 경외하고, 따뜻한 봄볕에 자신을 맡겨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녹일 뿐이다. 23쪽

  

 

어떤 분석도 끼어들 틈이 없다. 모든 존재에는 완벽한 아름다움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33쪽

  

그런데 안목이란 단순히 유물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물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포괄한다. 이러한 점에서 돌아보건대 내가 안목을 틔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러한 눈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35쪽

  

  

골동에 관한 얘기이지만, 인간사 또한 먼저 자신을 속여야 남을 속일 수 있고, 남을 속이다가 결국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 진리이다. 51쪽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가치와 품위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생각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조선의 아름다운 유풍을 그리워한다. 76쪽

  

모든 관계를 떠나니 무한한 고독과 대면한다. 천 길 낭떠러지에 서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에 열리는 새로운 세계이다. 아마 우리 인간의 죽음도 흰 눈에 덮인 겨울의 호수 풍경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82쪽

  


2부 알아본다는 것

  

모란이 상징하는 아름다움은 그것이 너무나 짧고 무상하기에 더욱 아름답고 또한 슬프다.  109쪽



3부 시골에 집을 마련하다

  


(…) 건축은 자연처럼 스스로 존재할 수 잇는 힘을 지닐 때 화려함으로 승화되는데, 그것이 인문적이고 예술적인 힘을 가진다는 것. 그런 집이야말로 ‘삶의 무대이자 피안으로, 삶을 살되 삶을 잊게 하는 집’으로서 우리 삶을 확장시킨다. 188쪽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니, 우리 생의 본질은 능동적일 수 없으며, 타락적이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생명이 다하면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272쪽






(이 리뷰는 민음북클럽의 서평 프로그램 '첫 번째 독자'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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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 : 저주받은 갤러리 기기괴괴
오성대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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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 저주받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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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스릴러 장르를 즐기진 않지만, 긴장감과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가끔 괴담집을 찾아 읽어보긴 했다. 그것도 무더운 한여름 밤이면 이런 오싹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안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더위를 잠시 잊게 할 만큼 소름 돋는 이야기를 찾는데, 너무 자극적이지 않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오성대 작가의 <기기괴괴>가 가장 최적화된 작품이라 추천하고 싶다. 


처음 표지만 봤을 때는 어떤 공포스러운 이야기와 그림이 기다리고 있을까 약간 긴장된 것도 사실이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현재 웹툰으로도 인기리에 연재중이라고 하던데, 단행본으로 읽게 되었지만 실제 컴퓨터 화면으로 마우스 스크롤을 조심조심 내려가며 읽었다면 깜짝 놀랄 만한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기기괴괴>시리즈 단행본은 현재 5권 세트(성형수 + 아프리카에서 생긴 일 + 저주받은 갤러리 + 아내의 기억 + 키베이루의 서재)로 발간된 상태다. 그중 내가 읽게 된 건 『저주받은 갤러리』이다.


『저주받은 갤러리』는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표제작인 저주받은 갤러리, 괴모수, 당첨번호, 살의, 불면증에 부록 장르파괴괴까지. 다 읽고 난 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라는 독자를 향한 배려로 병맛코드 부록 만화는 따로 모아 또 한 권의 책으로 나와도 될 정도로 재밌었다. 본래 작가님이 이런 유머를 갖춘 분이신 것 같다는 생각.


만화를 읽어나갈수록 단순히 괴담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현 사회의 일면을 담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포’라는 시점 또한 어떤 면에서 바라볼 때 또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지가 보여 색다른 느낌이었다. 다섯 편의 괴담을 간략히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저주받은 갤러리 


이 이야기는 학교 괴담의 일종으로 저주하고 싶은 상대를 향한 미움, 살의, 복수 등을 담고 있다. 재윤은 예전에는 친했지만 지금은 박정열 패거리의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외면하다 같이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참을 수 없던 재윤은 학교에서 떠도는 괴담처럼 저주받은 갤러리를 찾기에 이른다. 죽이고자 하는 상대의 사진을 머리 밑에 베고 자면 꿈속에서 사진 액자로 나타나는데 그걸 들고 걷다보면 ‘저주받은 갤러리’라는 곳를 찾게 되고, 그 문을 열기 쉽지 않지만 우선 열게 되면 갤러리 내부 벽에 그 액자를 걸고 꿈에서 깬 후 사진을 찢으면 실제 인물을 죽일 수 있다는 괴담이었다. 재윤은 처음엔 떠도는 소문이라 호기심으로 관심을 가졌었지만, 괴롭힘이 더해갈수록 진심으로 살의를 품으며 저주를 실행하게 된다. 한 명씩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갖고, 이제는 끊을 수 없이 중독된 재윤의 저주는 자신을 옭아매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사진이 걸린 걸 발견한 이후부터였다. 떼어내도 자꾸만 걸려 있던 자신의 사진에 대한 물음을 재윤은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 괴모수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얻은 탈모치료제. 그저 주스에 지나지 않다며 벌컥벌컥 마시던 후배는 깜짝 놀랄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 당첨번호


남자는 어느 날 꿈속에서 매일 여자친구 몸에 복권 당첨번호를 하나씩 새겨 놓겠다는 이상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시험을 준비하며 만났던 여자친구와의 사이가 소원해지던 찰나 남자는 매일같이 복권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여자친구에게 점점 더 집착을 하게 되고, 결국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모든 걸 잃게 된 남자에게 또다시 닥칠 일을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 살의


어느 중학교의 한 학급에서 권동현이라는 학생이 실종된다. 실종 당시 인상착의에 대한 기억도 가지각색이고, 수사의 난항을 겪던 찰나 눈속에서 발견된 아이는 옷이 모두 탈의된 상태였다. 그 후 반 아이들은 한 명씩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게 되고,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 불면증


잠을 잘 못자고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불면증은 ‘악마가 붙어서 잠을 못 자게 하는 거’라며 ‘생명력을 갉아먹고 결국은 사람을 없애버린다’고 말한다. 나는 친구의 말에 쉬어야 겠다며 친구를 보내려 하자, 수면제를 뺏고 집을 나서는 친구는 약에 의존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급히 문을 열고 친구를 부르는데, 복도에 남아 있는 건 친구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 존재가 서 있는 걸 보게 된다.


# 부록 장르파괴괴


각 이야기마다 갈등과 긴장감을 초래했던 장면들을 전환하여 병맛 코드식 유머로 재탄생시켰다. 이건 확실히 타고난 유머가 틀림없다. 나중엔 이런 병맛 코드로도 작품 기획을 하셔도 잘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싹한 상태가 아니라, 소소하게 웃으며 책장을 덮을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웹툰을 잘 찾아보지 않았는데, 이 기회에 <기기괴괴> 다른 작품도 궁금하여 읽고 싶어졌다. 그저 공포심을 자극하는 재미로 소비되는 것뿐 아니라, 괴담 속에 담긴 진짜 공포는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진실로 미워하고 해하고자 했던 미움의 상태, 욕망과 욕심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공포란 그런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음 속 어느 한쪽에 어둠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장마에 꿉꿉한 기분을 털어낼 수 있는 괴담 속으로 한 번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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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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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남겨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




『영의 기원』








**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과 같다지만, 흔히 일상 속에서 죽음을 떠올리진 않는다. 모두가 앞날에 대한 많은 걱정을 하지만, 아직 닥쳐오지 않을 법한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매일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 틈새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데는 소중한 사람의 빈 자리 혹은 그 사람의 본질적 성향에 기인한 게 아닐까 싶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일면식도 없지만 존경하거나 동경하던 사람의 죽음까지. 결만 다를 뿐 비슷하지 않을까. 천희란 작가님은 왜 첫 소설집을 온통 '죽음'으로 채운 것일까 궁금하여 인터뷰를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셨었다. 


  “죽음에 관해 쓴다고 말할 순 있지만 죽음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할 순 없으니, 죽음 주변을 배회하면서 삶에 관해 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경향신문 인터뷰 중) 


내가 생각하기로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삶을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배회하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 역시 처음 좋아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생각과 판단을 하려 했을 때,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목도한 후 였다. 처음으로 타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의 삶을 생각해보게 됐다. 주체적은 삶, 선택,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다. 물론 정답을 잘 찾진 못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실존이랄까,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으니, 나의 삶의 큰 영향을 미친 것만은 확실하다. 그 전에는 그야말로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기에. 문학의 역할에 대해 말하기엔 나는 아주 많이 서툴고 부족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문학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킴으로써, 삶을 되짚어보게 하는 것. 그로 인해 다양한 감정들과 생각들을 빗대어 겪어보기도 하며, 더 잘 살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매개체 혹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같다.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었지만. 


아직도 인정할 수 없는 죽음이 너무나도 많기에. 하루의 한 순간은 꼭 죽음을 떠올려본 적이 있기에. 긴장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영의 기원』을 펼쳐보는 일은 그런 용기가 필요했다. 위로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되돌리고 싶은 시간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때문에 다시금 무기력이 찾아오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잘 먹고 잘 살기도 한다. 


어쨌든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새로운 작품을 읽어볼 수 있는 것이다.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 모두 다양한 죽음이 등장한다. 대개 남겨질 자들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선택하는 죽음이 다수 등장했던 것 같다. 여러 죽음의 형태와 위치에 나를 대입해보며 읽어나갔다. 사실 처음부터 읽기 버거운 느낌이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막연히 떠오르는 죽음과 관련된 생각들과 기억 때문에 순간 울컥하는 심정이 되어버렸기에. 제자리걸음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 이야기 속에 갇힌 기분이 드는 상황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역시 표제작인 <영의 기원>이 제일 인상 깊고 좋았다. 익숙한 이름과 연관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삶의 끝에 서 있던 '영'이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을 때, '나'의 자리에서 '영'을 안아주며 공감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그 죽음에 관해 계속해서 던지는 '나'의 질문들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처음 천희란 작가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게 '2017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이었는데, 그때도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전개되는 작품 형식 속 서사가 탄탄하게 진행되면서도, 서로 맞물려가며 밝혀지는 이면의 진실이 흥미로웠다. 여기 실린 작품 중에 가장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라 대체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환상성과 종교적인 색채 혹은 모호한 분위기가 감도는 게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 안개처럼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느낌마저 들었지만. 이 묵직한 작품을 부족한 소양으로 다 헤아리지 못하는게 아쉬울 정도로 생각해볼 거리가 참 많았다.이건 좀더 시간날 때 다시 한번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다짐한 작품들이 많지만, 이번 여름 휴가때는 반드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남겨놔야 겠다. )



**



<창백한 무영의 정원>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면서, 나는 동시에 나의 이름을 곱씹는다. 아마 모두가 그럴 것이다. 서로에게 각인할 자신의 이름을 발설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은 자의 이름 앞에서 산 자의 이름이 무용해진다. 10쪽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경련의 흔적조차 남지 않는 침대는 그녀의 절박함을 반증했다. 절대로 살아남지 않겠다는 완강한 결의가 육체가 지닌 삶의 의지를 이긴 것이다. 

18쪽 


원인도 모를 갑작스러운 죽음이 곳곳이 스며들 때. 나는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며 자살한 여동생의 휴대전화에서 의문스러운 모임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이상한 죽음이 창궐한 뒤에 만들어진 이 모임은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곳이었고, 동생에게 최근까지 메시지를 보낸 B는 JJ라는 닉네임으로 두 차례 자살 예고를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동생의 가족임을 밝히지 않고 이 자살자들의 모임에 참가하게 된다. 이름 대신 이니셜로 서로를 호칭하고, 각자가 준비한 방식으로 죽음을 결정하는 여행. 일행 모두가 자신의 방식대로 떠났지만, 나는 우연히도 다시 살아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곁에 남아 있던 C마저도 잠이 들고, 나는 수상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태양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린다.  


장면 장면이 현재를 그리면서도 중간중간 과거의 서사가 밀려들어 오고, 나중엔 경계 없이 한데 뒤섞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B의 시체를 옮기는 장면으로 등장하니, 무슨 스릴러인가 싶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간혹 이런 죽음을 바라곤 했었다. 아무런 고통없이 어느날 갑자기 조용히 잠드는... 원인 모를 죽음.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이야기로 등장하니 이걸 반갑다고 해야 할지. 


결국 홀로 남겨지게 된 '나'는 휴식이 필요하다 했지만, 그건 생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죽음을 바라지만 죽는 게 두렵기도 한 인간적이면서도 솔직한 태도. 피곤한 와중에도 '나'의 손엔 총이 쥐어져 있고, 누구에게 발견되면 오해받을까 걱정하는데서 그렇게 느껴졌다. 그 총으로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될 일이다.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그러한 선택들의 비밀스러운 모임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나'는 우연히도 살아 남았다. 그리고 완전히 종결될 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지 않을까. 평범함 사람의 위력을 발휘하면서. 


<예언가들> 


(…), 그가 원할 때면 언제든 창을 열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는 현실 그 자체이다. 그것이 한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였으므로, 그는 이제 아무런 구속도 없이 주어진 드넓은 영토에서도 더는 새로운 자유의 감각을 획득하지 못한다. 

38쪽 


사라진 E 음계를 상상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연약하고 구슬프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E 음계가 사라지기 전에 그녀가 단 한 번이라도 독립적인 E 음계의 인상을 그토록 구체적인 언어로 떠올린 적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금 그것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곳에서만 더 깊고 애잔하게 울려 퍼진다. 40쪽 


여자는 음악을 구원이라 여겼다. 여자에게 연주는 인류의 역사를 기리는 행위였고, 동시에 안식과 평화에 다다르는 길이었다. (…) 모든 것이 불가능해지자,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 없는 헌신을 순교자적인 것으로 여겼고, 음악은 예정된 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리라 믿었다. 42쪽 



종말의 시대, 공표된 날짜는 생각보다 너무 멀리 있고, 종말에 관한 다양한 계층의 예측과 전언. 결국 희망과 다짐보다 기다리는 일에 더 익숙해져야만 하는 사람들. 사형당했지만 기적처럼 다시 부활한 남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시체안치소 직원에 의해 종말을 앞두고 일어난 기적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원치 않는 부활이었고 기적이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마지막에 간절히 남기려 했던 말은 무엇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하였지만, 정말 기적이 존재한다면 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일까. 

음악을 구원이라 믿는 여자. 끊어진 현이 도착하길 바라며,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여자. 특별히 뛰어난 연주능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음악을 구원의 양식으로 믿으며, 도착하지 않은 네 번째 현을 기다리고 있다. 린치, 낯선 이들의 만남, 고요한 세계, 들리지 않는 음악. 자전거를 타고 온 사내. 사내가 전해준 작은 상자. 마치 희곡의 한 장면처럼 마무리되는 이 이야기 속 남자의 죄는 무엇이며, 자전거 탄 사내가 전해준 작은 상자 안에 든 것은 과연 무엇인가.  


<영의 기원> 


시계는 계속해서 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런데 왜 0일까. 마치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의 측량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오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81쪽 


영이 나를 찾아온 것이니 묻지 않아도 언젠가는 입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영과 함께 침묵했다. 아니,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83쪽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한 장의 잎도 떨구지 않지만 서서히 빛깔을 잃어버린다. 꽃의 사라진 빛깔은 어디에 보존되는 것일까. 시들지 않는 꽃은 아름다운가. 잎을 떨구지 않는 꽃은 저주인가. 영은 꽃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았고, 꽃은 여전히 단 한 장의 꽃잎도 떨구지 않는다. 88쪽 


죽을 용기로 살았어야 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니까 죽을 용기와 살 용기, 그것은 과연 같은 종류의 용기일까. 나는 맑스와 마르크스, 그리스인과 희랍인, 자정과 0시, 두 번의 침묵, 분명 같은데 서로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 영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이제는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한 답을 결코 알 수 없다. (…) 빈 편지지와 잉크가 가득 찬 볼펜은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라는 것. 영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는 것. 그렇다. 그것 뿐이다. 97쪽 


희랍의 시인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고 이미 태어났다면 될 수 있는 한 하루라도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지. 그러니까 꼭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건 남은 사람들의 몫에 불과할지도 몰라.  (…) 때로 자살은 자신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었다고 해. 그러니까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영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을 묻는 거라면, 나는 그게 사고가 아니었을 것 같구나. 98-99쪽 


영을 생각하면, 영이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때때로,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109쪽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 술에 취한 영이 말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얼어붙은 그 손엔 편의점 비닐 봉투가 걸려 있었고, 그속엔 텅빈 편지지와 볼펜이 들어있었다. 영이 주고간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빛깔만 사그라들 뿐, 시들지 않는 꽃이다. 다음날 영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고, 장례식장을 찾은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과 더불어 영에 대한 기억을 회상한다. 언젠가부터 반복되는 꿈, 밝고 맑고 투명함을 뜻하는 이름의 '영'. 영이 다가오는 것 같다. 만질 수 없는, 투명한 영, 씁쓸한 미소 짓는 영을 그려본다.  


무엇이 선행되었는가? 본질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나는 매일 동전을 던지고 있다. 앞면과 뒷면. 0과 1. 그리고 영은 왜 죽은 것일까, 왜 나를 찾아온 것일까. 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한다. 빈 편지지에 남기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시들지 않는 꽃처럼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한 영의 이미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빛깔을 바랠지라도, '영'은 영원히 살아있게 되는 거라 믿고 싶다. 나의 마음 속에 그렇게 '영'을 담아두고 싶다. 

한 편의 시같은 소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곧 결혼을 앞둔 '나(효주)'는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자, 나의 후견인이 되어준 선생님에게 드디어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에 묻는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한 편씩 주고 받으며, 점차 더해가는 이야기 속엔 한 사람의 씁쓸하면서도 진솔한 마음과 애증이 드러나게 된다. 예술가이자 성소수자였던 선생님의 마음,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진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대신 죄책감과 미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또다른 애정 속에서 길러냈던 효주. 그렇게 그리움의 편지를 쓴다. 새하얀 설원 위에 떠오로는 이미지가 아름다운 소설이다.

잔잔하면서도 시린 도입으로부터 차근차근 서사가 쌓여나갈수록 그 정교함과 세밀한 묘사 덕분에 더 잘 그려지는 것 같다.


<신앙의 계보> 


믿음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갱신하지 않으면 강바닥의 흙처럼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유실되었다. 계속해서 흙을 퍼 나르고 땅을 다지는 것이 사제의 일이었다. 

156쪽 


P는 도쿄에 있는 한인 성당의 주임신부이다. 천주교 박해와 원폭 피해의 상흔이 남아 있는 나가사키의 우라카미(신의 속마음)성당을 방문하며, 어머니 덕에 자연스럽게 생긴 신앙, 자신이 품고 있던 신의 뜻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한다. 그런 P앞에 우연히 나타난 마른 체구의 소년은 연신 기도하면 천국을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아이를 보며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던 P. 불면증을 앓고 있던 그가 깊은 잠을 빠져들었다 깨어보니 아이와 함께 사라진 수면제 약병에 불안해하면서도, 스스로 비열하다 느낄만한 선택을 하고, 다시 찾은 아이의 눈 앞에 자신의 신앙을 파괴됐음을 깨닫는다.  



<경멸> 


그렇게 보입니까. 꺼져가는 촛불도, 시들어가는 꽃도, 앙상한 해골이나 화려한 보석 같은 것이 없어도, 당신이 그리는 그림은 어쩔 수 없이 모두 일종의 바니타스화가 아니겠습니까. 삶이 헛되다는 것을, 가까이 가면 볼 수 없고, 멀리에서는 실감할 수 없는 그 허망함을 당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209쪽 


그에게 예술은 짧았고 인생은 무한에 가까웠다. 그가 만든 무엇도 그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터. 그는 언제나 현재에 속했고, 그의 작품들은 늘 과거에 남겨졌다.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에 사라진 것으로서. 209쪽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로 서술해가는 형식이 독특한 소설이다. 미술기자인 ‘당신’이 겪은 화가 ‘그’는 자신이 불멸의 인간이라고 주장하며 기자의 눈앞에서 자살을 해 보인다. 그런 화가를 두고 '당신'은 황급히 현장에서 도망을 치지만 기자의 눈앞에 정말로 화가가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된다. 그로테스크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는 현실인가, 아님 '당신'의 상상이나 망상인가.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과 '그'를 지칭한다. 당신이라고 지칭되는 인물의 자리에 읽는 이로 하여금, 독자가 그 위치에 서서 이야기 속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놓은 장치로 느껴진다.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상상이 현실을 능가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형인은 믿는다. 우리가 아는 현실이란 지극히 선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고통스럽고 추악한 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고개를 들 때, 상상은 전복된다. 상상이 전복되고 나타나는 현실은 우리의 것이 아닐 것이다.  227쪽 


설령 다르지 않다 해도, 그것이 형인의 실패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 형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형인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서는 날을 기다려온 것이다. (…) 공포 속에서 인간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눈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형인의 계획이었다. 255쪽 


이 무시무시한 지루함에서 벗어나야 해요. 아니 이 지루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달아야 해요. 집으로 돌아가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요. 257쪽 


사이렌이 울리면 누구라도 거대한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사이렌이 곧 사건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결코 이해하지 않는다. 258쪽 


유학 전문 업체에서 일하는 ‘형인’은 미국 명문대 입시를 준비하는 특별 관리 학생인 ‘수진’의 입학시험 접수에서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이로 인해 사장과 ‘수진’의 부모로부터 부당한 요구에 시달린다. 모멸감을 느끼며 공항으로 ‘수진’을 마중 나가게 된 ‘형인’은 안개주의보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사방으로 깊어지는 농무를 헤치며 공항으로 향하고, 수진을 만나게 된다. 형인의 예상과 달리 수진은 진솔한 아이였고, 부모님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형인을 언니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는 수진과 달리 형인은 자신이 당한 모욕을 되갚을 때만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안전한 위험'이란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일까. 


참고 인내하는 사람들이 폭발하면 어찌될지 대체로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를 드러내보이는 방식이 더 거칠고 과감하다. 여러 변수에 의해 혹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이성과 주저함으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을지언정, 또다른 적의와 허무, 이내 곧 새로운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완전히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  


광활한 우주는 한 인간을 그 자신의 심연으로 내동댕이치고, 외롭지 않은 인간조차 외로움의 의미를 알게 되는 그곳에서 마음이 허약한 자는 어둠에 마음을 빼앗인다. 아내에게도 우주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294쪽 


우주선의 깊은 밤에 들려오던 것과 같은 소리들. 그 자신의 맥박과 호흡이 어둠 속에서 진동한다. 외부의 적막이 그의 신체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소음이 공간의 적막을 뒤덮는다. 어둠은 그림자를 삼키지 않고 그림자가 몸을 부풀려 빛을 삼킨다. 297쪽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미리 삭제된 몇 개의 장면이 존재하며,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삭제된 바로 그 장면들이다. 나는 영원히 달아나지 못한다. 다만, 이제 불을 끌 시간이다. 303쪽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아이가 이사해 나간 방에서 아내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화성 여행의 시대가 도래한 세상. 화성 여행자들의 겪게 되는 그림자 분실.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게 되고, 고립된 느낌, 공포와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했던 사람들. 아내는 화성을 다녀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하는 '그'와 그런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이 떠났다는 아이. ‘그’는 중간중간 찢겨 나간 일기장의 내용을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채워 넣으면서, 아내의 자살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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