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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평점 :
김경욱은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이다. 단편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스토리라인이 분명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이번 작품들은 주로 하층민이 소재가 되었다. 아니, 확실히 이야기하면 1%가 아닌 나머지 99%에 대한 소설을 썼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단편 ’99%’에서는 1%가 되지 못한 자들끼리의 다툼을 보여준다. 1%가 되지 못하면 소외감을 느끼고 스스로 자책하며 자신감을 얻을 수 없는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99%에 속하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으며, 1%의 의도에 맞춰서 흘러가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선, 제도를 빌리기 보단 스스로의 힘을 통해야 한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바로 그러한 소설이다. 사내는 또래 아이들에게 집단으로 강간을 당한 계집애를 키운다. 그 아이는 그 충격에 정신 질환을 앓고 있으며, 몸도 좋지 않아 시름시름 앓는다. 사내도 몸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힘의 앞에 무기력하게 희생된 계집애를 보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힘 없고 나이든 사내만이 계집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계집아이를 성폭행한 남자의 집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차에 화염병을 집어던지는 모습은 그렇기에 통쾌하다기 보다는 가슴이 아프다. 더군다나 그의 방화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얼굴에 잿가루까지 묻히고 비장하게 작전을 수행했음에도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삶은 무한정 반복된다. ‘태양이 뜨지 않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삼대는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한다. 할아버지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TV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는 경비원이다. 나는 밤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들은 그러한 생활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반복하며 지내지만, 그의 집에 들어온 앵무새는 그 어둠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의 깃털을 뽑아대며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의 부엌’에는 누군가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미미의 부엌’이었다. 아버지는 그를 법대에 보낼 생각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강요로 항상 공부를 붙들고 있어야 했으며, 그에게 부엌이란 넘어가서는 안될 장소였다. 영화 포스터를 붙이며 돈 벌이를 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 남자는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불우한 환경은 불우한 관계만을 만들어낸다. 그가 원하던 것은 미미의 부엌과 같이 단란하고 아름다운 부엌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 의해 요리사였던 자신의 꿈을 억압당하고, 법대로의 길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 스스로 아버지에게 반항하에 그 길을 포기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그가 유일하게 저항한 존재인 아버지, 그의 부엌은 더럽고 냄새나고 음식물 찌꺼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사실 아버지의 꿈 또한 ‘미미의 부엌’이 아니었을까.
그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이야기의 결말이 허무하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끝이 두루뭉실하다. 사건은 제대로 끝나지 않고 무책임하게 버려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의 삶은 끝이란 게 없을 것이다. ‘혁명기념일’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만년 같이 느껴지는 하루도, ‘러닝맨’에서 오리배를 타고 열심히 페달을 밟는 남주인공의 고생도 소설 안에서 끝나고 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설이 끝나고도 무한히 이어지며 그들의 생이 끝날때까지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다. 때문에 김경욱의 소설들엔 마땅한 이야기의 결말이 없다. 물론 그것이 ‘연애의 여왕’에서처럼 독자의 상상에 뒷 이야기를 맡기는 형식으로 쓰여지기도 했지만, 하층민이 소재가 되는 그의 대부분의 단편에선 그것이 종결되지 않는 삶의 치열함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듯 했다.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에 등장하는 대필 작가나 왕년의 권투선수부터 ‘하인리히의 심장’에 등장하는 형사들까지 수많은 인간상과 다양한 직종이 등장하는 작가의 단편들은 한 작가가 썼다곤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다. 물론 그 단편들이 보여주는 주제의식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다양한 케릭터들을 훌륭하게 주조해내는 작가의 능력, 그리고 그 케릭터들로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돋보였던 단편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