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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이거
페넬로피 라이블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부커상 수상작이다. 1987년 수상작. 그런데 국내엔 초역된 듯 하다. 문타이거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왜일까.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문학상이라고 하는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인데. 14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야 소개되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인공 클라우디아 햄프턴은 임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소설에서 그녀의 첫 마디는 이렇다. “세계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 병원 침대에 누워 거동도 못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E.H.카는 ‘가위와 풀의 역사’라는 말을 했다. 역사는 역사가의 역사이다. 객관적으로 서술된 역사는 없으며,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활자화되며 비로소 역사가 된다. 클라우디아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세계사를 쓰려고 했다.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생에 관한 역사. 사실 그것이 한 인간에겐 세계사가 아닐까.

문 타이거라는 제목이 상당히 생소했다. 번역하면 ‘달 호랑이’정도로 할 수 있을까. 알고보니 이것은 둥글게 타들어가는 모기향이라고 한다. 모기향에 이렇게 동양적이고 신선한 이름이 붙어 있을 줄은 알지 못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모기향처럼 중심을 향해 서서히 타들어간다.

그 중심엔 한 남성과의 사랑이 있다. 이집트에서의 짧은 사랑. 그것은 클라우디아의 인생에 있어서 중심점을 이룬다. 그녀는 임종의 순간까지 그 찰나의 사랑을 붙들고 슬퍼한다. 세계사의 추동에 휩쓸려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아버린 그 사랑은 그 시간에 굳어져버리고 홀로 늙어버린 클라우디아는 젊은 시절의 톰을 회상하고 추억한다.

집중하지 못하고 읽은 소설이었다. 많은 사건들이 있고, 한 장면을 여러 시각을 통해 다시 보여주기도 하는 등, 결코 정물화되지 못하는 역사를 끊임 없이 상기시킨다. 등장인물도 개성적이다. 지독한 나르시시즘으로 인해 자신과 가장 닮은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수위가 얕은 근친상간은 자극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소설 근처에서 맴돌 뿐, 끝내 소설 속으론 들어가지 못했다. 문체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 자체를 탐독하기보다는, 그냥 활자를 읽어내었다는 느낌 뿐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혹은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라면 더 절절이 가슴아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클라우디아 햄프턴은 그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이므로. 하지만 나는 솔직히 공감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건 편집상의 문제인데, 이야기의 몰입이 힘듬에도 주석까지 책의 맨 뒤에 달아놔서 더욱 방해가 되었다. 그 주석이란게 읽지 않아도 무리가 가지 않는 거라면 상관이 없지만, 소설 속엔 외국어가 그대로 실린 경우가 많이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기 위해선 자연히 책의 맨 뒷장을 펼쳐야 했다. 원래 원본이 그렇게 편집 되어 있고, 출판사는 그것을 따른 것일 뿐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개인적으론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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