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효서 작가의 소설을 몇 편 연달아 읽었고, 그 깊고 넓은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었다. 하지만 내가 정작 제일 먼저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은 바로 [별명의 달인]을 비롯한 그의 단편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별명의 달인]이란 이름을 걸고 이번에 신간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나온다 나온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알리미 문자를 받고 보니 설렌다.

 

<목차>

 

바소 콘티누오 ‥‥‥‥‥‥『현대문학』 2011년 2월호
별명의 달인 ‥‥‥‥‥‥『세계의 문학』 2010년 겨울호
모란꽃 ‥‥‥‥‥‥『문학동네』 2008년 가을호
6431-워딩.hwp ‥‥‥‥‥‥『학산문학』 2012년 봄호
산딸나무가 있는 풍경 ‥‥‥‥‥‥『대산문화』 2012년 봄호
화양연화 ‥‥‥‥‥‥『문학나무』2011년 겨울호
저 좀 봐줘요 ‥‥‥‥‥‥『현대문학』 2012년 7월호
나뭇가지에 앉은 새 ‥‥‥‥‥‥『현대문학』 2009년 12월호

 

 

우와 이 센스 있는 목차 좀 보게! 목차에 이렇게 발표지면이 실려있다니!

 

구효서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깊이와 넓이(이것은 오래 글을 쓰신 소설의 달인들의 소설을 읽다보면 대부분 느끼게 된다.)보다 글에서 느껴지는 세련되고 젊은 감각이었다.  다른 소설들을 읽어보아도 토속과 고귀함을 넘나들고 안정과 실험을 동시에 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다양한 시도들이 작가의 글을 늙지 않게 하는 힘이겠구나 싶다.  마치 이 소설 속에 멋스러움과 가당찮음의 경계([6431.hwp])라는 말이 나오는데 구효서의 소설이 그 둘을 동시에 오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일단, 읽은 바 각각의 작품에 대한 짧은 후감과 밑줄 친 것들을 올려본다. 더불어 한 번 더 읽게 될텐데 그후 리뷰를 남겨보길 스스로에게 바라본다. 막연한 듯 선명하고, 길을 보여주는 듯 슬쩍 감추는 통에 사실 재주없는 글로서 정리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다만, 그 단단한 느낌을 품고 있을 뿐이다.

 

<바소 콘티누오>를 읽다보면 마주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꼭 마주보아야 마주보는 것인가 하는 생각, 같이 하고 있다면 그것이 마주본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같은.

두 사람에게 오랫동안 익숙한 것이다. 그렇게, 함께하는 응시의 순간들이 모여 세월이라는 시간의 숲을 이루었다. 숲은 길어지고 우거지고 깊어졌으나 등뒤 풍경으로만 저물어갈 뿐, 그들은 그것을 뒤돌아보지 않는다. 나란히 앞을 바라보는 사이 배경의 숲은 저 홀로 그윽해질 뿐이다.

 

<별명의 달인>을 읽으면서는 타인에 대한 내 마음대로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만들어버린 타인의 이미지에 대한 강박,,,없을까? 분명 있을 것이다.

와이프 별명이 베아트리체였어.

라즈니시가 말했다.

애칭이었지. 물론 내가 지어준. 와이프도 나름 그걸 소중하게 여기며 지금껏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어느 날 나한테 말하더군.

라즈니시 입술에 옅은 미소 같은 게 스쳤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뭐랬는데?

그가 물었다.

웃기지 마셔. 나, 베아트리체 아니거덩!

 

<모란꽃>은 내가 여자라 그런지 삶을 살수록 공허한 느낌이 드는 탓인지 다음 문장에 공감하며 몰입했다.

 어쩌면 어떤 실체와 맞닥뜨리고 싶었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지금껏, 나와 동떨어져 있었으니까. 무엇 하나 나와 착 붙어 있질 않았다. 늘 거리감이 있었고, 비켜났고, 부유하는 듯했고, 비위가 상했고, 불명확했다. 애착을 못 느꼈다. 그랬으면서, 그랬기 때문에, 바로 이거다! 라는 기분을 언제나 목말라 했다. 어딘가에 내 진짜 삶이 준비돼 있는데 길을 잘못 들어 그곳을 못 찾고 있을 뿐이라 생각하면 애가 탔다. ------집이 점점 가까워졌다. 뒤돌아, 왔던 길로 가버리고 싶었다. 어딘가에 있을 내 별로.

 

<6431-워딩.hwp>은 왠지 구효서 소설가가 소설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겐 말과 글이 따로일 수 없다. 허공 중에 흩어지되 무시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거듭 뜻을 일깨우는 게 형의 말이라면, 내 말은 언제든 다시 들춰볼 수 있는 글이된다. 그렇게 지금껏 적은 글이 6430개의 파일로 남았다.

말의 궤적이었다. 지나온 자국으로서의 궤적이 아니라, 내 삶이 나아가고자 했던 이정표로서의 궤적.

 

<산딸나무가 있는 풍경>은 좁은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혈연 뿐이겠는가 우리가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이. 그들은 그자리에서 튀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하는 만큼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 모호한 거리를 두면서 말이다.

말이 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품고 산딸나무는 새 자리에, 있을 수 있을 만큼 서 있을 것이다. 당신은 새집에서 살 만큼 살 것이다. 나는 마을을 오르내리며 기념관의 지붕과 마당과 산딸나무를 바라볼 것이다. 개울은 원래 그랬다는 듯 흐를 것이고, 은백양 잎은 바람에 하얗게 뒤집힐 것이다. 정화백의 그림처럼.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는 <화양연화>에 나오는 '넌 정말 나와 너무 똑같아서 슬프다'라는 구절이 추억에 젖게 한하다. 그런 사랑,,,

 

<저 좀 봐줘요>는 다른 작품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몽환적이기도 하고, 은비라는 존재가 신비롭기도 하다. 이국적이기도 하고 토속적이기도 한 느낌이 공존하는 단편이었다. 소설이지만 어떤 영상이 펼쳐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는 삶의 피로감이랄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했다.

재주와 웃음은 의도된 분망 뒤의 허약함까지 다 감추진 못했다. 마침내 태평양 끝까지 다다르고야 만 고단함. 더이상 오갈 수 없는 교착. 누나는 사이판 동북단 반자이 절벽 위에 표표히 옷자락 나부끼며 홀로 서 있는 거였다.

 

이미 많은 팬들이 있는 구효서 작가이지만 만약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집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바소 콘티누오>가 재밌다면 <랩소디 인 베를린>을 읽어보면 좋겠고,  <산딸나무가 있는 풍경>이나 <저 좀 바줘요>가 재밌다면 <라디오 라디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도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본 것은 아니라 권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지만 시작은 [별명의 달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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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단순히 나는 '손을 자른다'는 물리적 행위로만 제목을 읽어서 애써 외면했던 책이다. 알고 보니 이 책의 제목은 파울첼란의 [빛의 강박]의 한 구절에서 따 왔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곳에 북마크를 꽂아두었는데 저자 사사키 아타루의 문체와 문장이 매력적인 책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도 사실 완전한 이해(그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독해라고 해야할 것 같다.)를 하지 못해서 읽으면서도 막연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이 책이 많이 좋았다. 이 느낌을 공유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옮긴이 송태욱 씨였다. 그가 옮긴이의 말에서 쓴 말이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긴 해도 왠지 끌리는 책이 있다. 그 책의 핵심 내용이 아닌, 가볍게 흘러나온 몇몇 문장들에서, 그 책 전체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만큼 와 닿는 부분이 있어서일 것이다.
- '옮긴 이의 말' 중>


사사키 아타루의 글에는 열정이 묻어 있었다. 매우 객관적이고 냉정한 열정. 독자들과 함께 나아가기 위해 반복하고 독려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 문장의 힘이 나를 이 책을 끝가지 다 읽게 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들의 적지 않은 부분을 옮겨적어보기로 했다.

p44
나의 읽기 습관을 콕 짚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읽는 편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최근 리뷰를 공들여 쓰기 위해 혹은 다른 이유들로 두 번 세 번 읽은 책들이 읽을 때마다 더 깊이 읽혀지는 것을 경험했던지라 이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p85
읽으라고 만들어진 책이 결국은 읽을 수 없는 존재라는 역설적 표현은, 책은 가벼이 볼 대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저자의 표현 속에 나오는 '그런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저자의 이 책 또한 '그런 책'에 포함될 것이라는 기대가 동시에 떠올랐다.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에 앞서 '그런 책'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든다.

p147, p167
원리주의자(원리주의라는 말이 부정적말이었구나,,,하는 자책감과 번역에 대한 의구심이 살짝 들었다. 여기서는 옴진리교나 나치와 같은 자들을 말한다.)라는 비난을 맞기 싫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 즉 천사적인 일을 하루 빨리 얻으시길. 특히 남보다 앞장 서 나아가려는 자들.

p269
책이 곧 혁명이다. 이 말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수십 번도 더 반복되는 말이다. 책을 읽는 것만이 혁명을 만들 수 있다는, 책 읽는 자들이여 자긍심과 책임감을 가져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p280-281
문학이 죽었네, 끝났네 라고 엄살 떨지 말고 부지런히 읽고 쓰고 다시 읽고 다시 써서 혁명의 빛을 꺼뜨리지나 말거라~~라고....마지막 말, '창피하니까 그만두세요.'에서 느껴지느느 사사키 아타루의 문체. 매력 있다.



최근 사사키 아타루의 새 책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새 책을 기대하는 지인의 트윗 덕분이었다. 나 역시 사사키 아타루의 다른 책들이 무척 궁금해진다. 같은 사람이 번역했으면 더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역자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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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이 책을 바라보는데 괜히 손이 갔다 쓰담쓰담.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 국 영>

 

  장국영이 만우절에 생을 달리 한 것은 알았지만 9월 12일이 그의 생일인 줄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고, 곧 그의 생일이 다가옴은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살아생전 난 장국영을 그리 좋아하는 관객은 아니었다. 그를 좋아했던 것은 <금지옥엽>이라는 영화와 <야반가성>에서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배우보다는 가수로 먼저 데뷔했고 사랑받는 가수였다.

 

 

 그의 팬은 아니었지만 그가 생을 달리하던 때에, 나는 많이 울었다. 여리고 다정했던 영화 속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그를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최진실이 떠났던 때와 노무현 대통령이 떠났던 때도 그랬다. 난 늘 왜 영원히 떠난 이들에게 뒤늦게 미안해지는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생을 달리 하지 말아줬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안쓰럽고 더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주성철 기자는 그의 사망일이 오기 몇일 전 홍콩으로 떠났고 그의 흔적을 찾아 홍콩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많은 시일이 떠나 세상 속에서 그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마음이 아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억하는 이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책 곳곳에 드러나있다. 홍콩의 배우들이나 영화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장국영'에 대해 묻는 일을 계속 했고 그때마다 그들은 오랜만에 장국영을 떠올리며 아련해했고 미안해했다. 누군가는 들추는 사람이 있어야 추억 속의 사람도 살아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양조위가 떠났다면, 그리고 10년이 흘렀다면 난 이렇게 무심히 잊고 살 수 있었을까? 아니, 무심히 잊고 지냈을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이 떠나도 떠난 시간이 많이 흐를수록 무심해지는 것이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장국영은 주성철이라는 사람을 비롯하여 오래오래 기억해주고 들추어주려는 사람이 있으니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생전 노인의 역할을 하지 않은 장국영은 언제나 그 예의 맑은 웃음과 우수어린 촉촉한 눈빛으로 떠올려진다.( 내가 사랑하는 양조위는 요즘 독고영재 닮아가던데....) 가장 아름다운 그때의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은 어쩌면 떠난 그에겐 위안이 되지 않을까. 그에게 이생은  화양연화花樣年華인 동시에 춘광사설春光乍洩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어느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을까만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사 두고 읽지 않았던 작가의 첫번째 책 <홍콩에 두번째 가게 된다면>을 찾아 읽고 있다. 읽다보니 <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은 바로 이 책에서 장국영에 대한 내용을 더 구체화, 집중화 시킨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시절...>이 홍콩에서 장국영의 흔적을 작가와 함께 찾아가서 애도하는 책이라면 <홍콩에 두번째 가게 된다면>이 우리 추억 속에 고이 간직된 홍콩 영화의 흔적을 구석구석 찾아가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향수가 충만해질 즈음 문득, 홍콩에 가고 싶어진다. 아, 내 어릴 적 꿈이 홍콩에 가서 양조위를 만나는 것이었지! 아, 그 시절 내 상상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홍콩의 배우들을 만났던가!하는 살짝 얼굴 붉어지는 추억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홍콩엔 길거리에 채이는 게 배우라던데,,,그 말은 사실일까?^^ 주성철 기자가 우연히 관지림을 만난 걸 보면 사실일 것도 같다. 관지림, 참 예뻤는데.......

 

 

책 속 홍콩의 모습을 보니 참 복작복작 복잡하다. 홍콩의 모든 곳이 영화 속 장소일 것만 같다. 홍콩 영화 안 본지가 꽤 오래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마치 <화양연화>인것만 같다. 그만큼 오래되었다. <천장지구>, <불초자 열혈남아>를 보며 휴지 한 통씩 다 쓸 정도로 엉엉 울었던 어린 소녀. <도학위룡>, <가유희사>를 보며 깔깔 대던 그 어린 소녀. <아비정전>, <동사서독>, <중경삼림>에서 <춘광사설>, <화양연화>까지 왕가위의 영화를 사랑했던 소녀 혹은 여자. 그녀를 참 오래 잊고 살았다. 지금도 보이는 곳에 홍콩 영화 비디오테이프가 있건만 이젠 그것을 볼 수 있는 기계마저도 없다. 시간은 참 지나간다는 말도 없이 퍽도 빠르게 지나간다. 뭉텅이 뭉텅이로 지나가는 것만 같다. 어디서 홍콩 영화 한 편 상영해주면 좋겠다. 기왕이면 오~~래 된 것으로, 촌스러워도 좋아!

 

 

 

 

 

 

 

 

 

 

 

 

 

 

 

 

 

 

 

 

 

 

아, 홍콩에 가고 싶다. 두번째가 아니라 단 한 번 이라도!

 

 

 

"유덕화가 캐릭터와 경쟁하는 배우라면

양조위는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배우다

그리고 장국영은 캐릭터를 유혹하는 배우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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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9-1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홍콩영화 매니어(비디오와 dvd로 많이 봄)였는데 장국영이 죽은지 벌써 10년이 되었네요.장국영은 항상 우수에 찬 모습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울렸는데 개인적으로 장국영의 코믹한 모습이 더 보기 좋더군요.
동사서독이 여러문제로 촬영이 늘어지자 그 틈에 후다닥 찍은 영화가 있는데 바로 동성서취입니다.이 영화속 코믹한 장국영이 모습이 참 재미있었습니다.혹 보셨는지요?

그렇게혜윰 2013-09-13 01:25   좋아요 0 | URL
양조위가 퉁퉁부은 입술로 나오고 유명한 배우들 거의 다 나온 시대물이었죠^^ㅋ
책 속 사진에서의 장국영의 환한 웃음을 진작 알았더라면 좀더 사랑했을텐데 말이죠. 하긴 양조위도 한 우수 했는데 그는 사랑했네요. ㅋ
 

얼마 전 올인원 pc를 구매했다. 컴퓨터의 사양에 그다지 눈이 밝지는 않은지라 다른 좋은 점, 나쁜 점은 모르겠고 일단 선이 깔끔해서 좋았고 벽에 기대어서도 눈만 밝으면 저 멀리의 컴퓨터를 마우스로 클릭클릭 가능하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TV가 나오는데 TV가 나온다는 사실보다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다는 점이 훨씬 좋았다. 혼자 신이 나서 아들에게 영화를 같이 보자며 청했다. 즉흥적으로 고른 것이 1951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틀어주고 나서 나는 옆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아이는 무척 흥미롭게 본 모양이다. 요며칠 틈만 나면 틀어달라고 조른다. 사실, TV를 거의 안보고 살아서 좀처럼 뭐 보여달라고는 잘 안하는데 뭐 하나에 꽂히면 정신이 없다.

 

어젯밤에도 잠들기 전에 버지니아 리 버튼의 그림책 두 권을 읽어주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갑자기

- 엄마 앨리스 읽어줘.

- 앨리스?

그러고는 집에서 앨리스 책을 찾아 뒤적거렸다. 삽화가 예뻐서 사두었던 비교적 신간책 한 권과 지난 번 어린 왕자 색칠공부책을 사며 같이 사두었던 앨리스 색칠공부책이 있었다.

어떤 책으로 읽어줄까 했더니

 

   이 책을 골랐다. 이유인즉슨 길어서 오래 오래 읽어줄 수 있어라나?

소설가 한유주의 번역이라 매끄러운 문장을 기대했는데 책 초반에 나오는 그 유명하나 대사인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어!"가 "이런, 안 돼. 늦을지도 몰라!"라고 나와 있어서 사실 좀 아쉬웠다. 너무 직역하셨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야기초반의 번역은 의구심 때문인지 직역의 느낌이 들어서 소설가 번역에 갖었던 기대가 살짝 무너졌다. 다행히 뒤로 갈수록 좀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은 두 챕터밖에 못 읽어서 번역은 차차 느껴봐야겠다. 하지만 나에게 다음에 또 어떤 출판사의 앨리스를 사겠느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허밍버드 클래식으로 사겠노라고 말하겠다. 판형과 양장이 딱 내스타일이다! 삽화도 맘에 들고 말이다.

 

 

어쨌든 아들은 두 챕터를 채 다 읽기도 전에 잠이 들었고 앞으로 일 주일 넘게는 이 책으로 잠을 재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낮 시간에 몇 번이 될지 모르게(벌써 오늘은 아침부터 애니메이션을 봤다 ㅠㅠ) 할머니와 동갑인 앨리스 애니메이션을 볼 것이고 때때로 색칠공부를 한다고 하겠지. 앨리스, 나 어릴 적에도 그렇게 몰두하면서 본 것 같지는 않은데 네 덕분에 나도 앨리스의 매력에 퐁당 빠져보겠구나!!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팝업북도 사고 싶어지고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앨리스도 사고 싶어진다.

 

 

 

 

 

 

 

 

 

 

 

 

 

 

아, 책 욕심은 당분간 버려야한다. 잘못 들어온 수당 386만원을 홀랑 써버려서 일시불로 갚아야하기 때문이다ㅠㅠ. 참을, 수, 있, 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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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빨리 읽는 편도 아니고, 책을 샀다고 혹은 빌렸다고 그 자리에서 그 책을 읽는 편은 더더욱 아니어서 산 책은 거의 새 상태로 책꽂이 보관 중이고, 빌린 책은 가방 안에 있다가 독촉 문자를 받으면서부터 읽어 연체 중인 때가 많다. 앱에 뜨는 상태 '정상'이 낯설고 신기할 뿐이다. 문제는 그 연체를 아들의 대출증과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는 점!

 

미취학 아동의 경우 부모가 아동을 동반하지 않아도 아동의 카드로 책을 빌릴 수 있는데 처음엔 아동 도서에 한정된 줄 알았다가 나중에 종합자료실 이용도 가능하다는 것을 안 이후론 대놓고 돌려막기 하고 있다. 그래서, 한 번은 내 카드 연체 그 다음번은 아들 카드 연체이다. 지금은 아들카드 연체 중이다.

 

토요일에 아들이 간만에 도서관에 가자고 했고 책을 빌리고 싶어했다. 카드가 없다는 핑계가 필요했으므로  의도적으로 아들의 카드를 안가져갔고 아들은 책을 많이 빌리고 싶어했지만 나는 준비한 대로 '네 카드'가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그리곤 인심쓰듯 막 연체가 풀린 내 카드로 두 권을 빌렸다. 미안했지만 미안한 티를 내면 안되니까 당당하게 '다음부터 네 카드는 네가 챙기라'며 충고까지 했다, 고작 여섯 살한테...

 

그리곤 책을 반납하러 갔다. 바로 아들의 카드로 빌린 책 4권을.

-9월 11일까지 정지십니다.

라는 메시지를 아이도 놓치지 않았고, 이내 물어왔다.

- 엄마 대출 정지래..

- 어, 아빠 거야!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른다고 아들이 진실 규명을 하기 전에 얼른 11일이 왔으면 좋겠다. 아직 여섯 살은 어려서 참 좋다~~! 이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난 누구 카드로 돌려막기를 해야 하나? 카드 돌려막기를 위해서라도 아이를 하나 빨리 더 낳아야 하는 건가? 어쨌든 아이는 빌려온 두 권의 책을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와 아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책이다. 내가 이보나 흐므엘레프스카를 좋아하는 계기는 <마음의 집>이었고, 아들이 이수지를 좋아하는 계기는 <파도야 놀자>였다. 집에 이보나 흐므엘레프스카의 책이 여섯 권쯤 있는데 아들은 빌려온 이 책이 제일 재밌단다. 내가 봐도 아들이 제일 재밌어 할 것 같다. 상상력이 가장 아들 나이와 흥미에 맞는 것 같다. <이 작은 책을 펼쳐봐>는 그림만 이수지가 그린 것인데, 그래서인지 느낌이 기존 이수지의 그림책들과는 좀 달랐지만 점점 작아지고 점점 커지는 책의 변신에 아이는 흥미로워했다. 우연히 문화센터에서 만난 유치원에 새로 전학 온 친구와 동생에게도 읽어줬는데 정말 좋아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본 그 아이 엄마가 내 직업을 맞춰버렸다. 읽어주는 느낌이 다르다나? 직업을 못 속이나보다.

 

아들이 집에 와서 <네 개의 그릇>을 한 번 더 읽으며 사달라고 조른다. 요즘 소급해서 내야 할 돈이 급하게 생겨 386프로젝트(일상 속에서 386만원을 아끼는 프로젝트, 가령 지나가다 커피 사먹을까 하고 안사먹으면 그돈 아끼는 걸로!) 중이라 빌려서 오래 읽으라고 했더니 아들 왈,

- 아, 연체 시키면 되지?

-(아들아,,,너 마저...) 아니야, 네가 반납하고 아빠 이름으로 다시 빌리면 되지...

 

가끔 도서관 행사에서 보상으로 한 번에 10권 빌려주는 등업 제도를 하곤 하는데 난 그런 건 하나도 안 부럽고, 대출 기간 한 달로 보상해주는 게 훨씬 반갑다. 도서관 관계자 분들 고려해 주시와요. 이참에 도서관 홈피에 건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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