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8시쯤 대전 집에 도착했다. 12시가 넘어 도착했었는데 엄마의 넓은 아량으로 대전에 일찍 올 수 있게 되었다. 원래 9시에
식당에서 나와 서울역으로 가서 10시 45분쯤 대전으로 가는 기차를 탔었는데 추운 밤에 고생할까 걱정이 되셨는지 일찍 내려갈 수
있게 해주셨다. 그래서 편하게 행신역에서 타고 내려올 수 있었다. 행신역에서 서대전이나 대전으로 가는 기차가 몇 개 안 된다.
더구나 나는 서대전에서 내려야 더 편한데 서울역에서 타는 기차는 대전역에 정차하기 때문에 택시비도 더 들고 더 불편하다. 엄마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지만(내가 말을 안 해서) 늦은 밤 스산한 기차역 풍경을 떠올리고 일찍 가도록 허락하셨는지도
모른다. 내 친정엄마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식을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자식이 편할 수 있도록, 춥지 않도록, 많이 먹을 수
있도록,,,,등등 많은 있도록을. 그런데도 엄마에게 "신경 써 줘서 고마와요."라는 말 한마디 못했다. 식당일로 서로 신경이
날카롭다 보니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내일 일산에 올라가면 짜증 내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미안해요, 엄마.
대전집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는 남편의 생일 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보낸 것은 아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메일로 생일
카드를 대신했다. 올해는 그러고 보니 생일 카드 한 장도 못 보냈구나. ㅠㅠ 시부모님께서 보낸 남편의 생일카드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몇 구절이 마음을 잡아끈다.
Wow - 42 ys - where has the time gone?
Just yesterday
you were a little boy
filling the house with laughter, robot toys, lots of legos, bicycle parts,
and endless energy...
..and now you're a grown man
with serious accomplishments,
confidence, skills,
and respected name in the world.
Two things haven't changed, though,,,
the fun and the love.
Hoping this next year finds you here in the U.S.
so we can be together more often.
We miss you!
Happy Birthday, Son
Love you,
Mom
카드에 있는 내용을 다 옮기지는 않았다. 더구나 시아버님이 쓰신 글은 알아볼 수가 없;;;ㅠㅠ 미국에 있는 우리의 은행 계좌에
생일 선물로 돈도 입금하셨다는 내용도 물론 있고,ㅎㅎ 그런데 정말 시간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시부모님께서 보내신 생일
카드를 읽으면서 갑자기 아득하고 아찔해졌다. 남편은 성장하면서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가족이 다 함께 생활하여 즐거운
추억이 많은데(남편은 한동안 어린 시절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취미(?)마저 있을 정도,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에,) 우리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엄마의 얼굴을 보며 자라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긴 보지만 자세히 알 수 없다, 나는.
N군이 학교에서 일찍 온 날은 아빠 몰래 온라인 게임을 하는 일이 잦아서 주중엔 컴퓨터 사용을 못 하게 한다는 사실이나 해든 이가
레고로 만들기 하는 것을 좋아해서 잠자기 전에 뭔가를 만들고 그것을 들고 침대로 가져가서 함께 잠들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만들었던 모양이 변해 있거나 조각이 사라지는 일 같은 것. 이런 일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남편의 생일 카드를 읽으며 급
우울해지는 황당함이라니. ㅠㅠ 이 짓도 오래 하진 못하겠구나, 그저 막연히.
더 생각하지 말고 크리스마스 음악이나 듣자. 모든 게 잘 되겠지.
Ella Fitzgerald -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Let your heart be light
Next year all our troubles will be
Out of sight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Make the yule-tide gay
Next year all our troubles will be
Miles away
Once again as in olden days
Happy golden days of yore
Faithful friends who are dear to us
Will be near to us once more
Someday soon, we all will be together
If the fates allow
Until then, well have to muddle through somehow
So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