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과의 대담, 

더 깊은 책 이야기 혹은 '이야기들에 관한 이야기' 

-언제 시작할지도 모를 인터뷰를 기다리기를 한 시간 반. 동갑내기 두 명의 MD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미 모 사이트에서 책 얘기 다 해버린 것 같던데 어쩌나부터 시작해서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로 마무리된 두서없는 이야기. 중복된 질문들을 지워나가다가 결국 팽개쳐버린 질문지와 식은 커피, 길어봐야 30분이 못될 거라는 인터뷰 스케쥴 조정 통보. 두 청년(!)은 박찬욱 감독이 커트 보네거트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밀어붙여 보기로 했습니다. 좀 더 '책 ' 이야기를 뽑아내 보기로, 운이 좋으면 '무엇이든' 작은 조언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인터뷰어: 알라딘 도서팀 금정연, 최원호 

 


알라딘:
SF와 장르문학 매니아로 유명하신데요.
 

박찬욱: 특별히 가리지는 않아요. 인문사회 쪽이나 과학쪽 책들도 읽는 편입니다. 문학을 좋아하긴 하죠.

알라딘: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보니까 커트 보네거트 책들이 많아서 반가웠습니다(두 MD는 모두 커트 보네거트 광팬임). 혹시 보네거트의 작품 중에서 이게 최고다라고 추천해주실만한 작품이 있을까요? 

박찬욱: (10여초를 고민) 음... 그 분이 편차가 별로 없이 퀄리티가 좋은 분이라서 고르기가 상당히 힘든데, 하나를 고르라면 <제 5 도살장>을 꼽겠어요. 물론 작품 자체도 유명하고 좋지만, 제가 처음으로 읽은 보네거트의 소설이라서 의미가 각별해요. 

 

알라딘: 그 외에 추천하고 싶은 책을 딱 다섯 권 정도만 뽑을 수 있을까요? 

박찬욱: (다시 10여초를 고민) 음... 그 때 100권 짜리 추천도서 목록을 고른 건 커피숖 같은데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라고 생각하고 골랐어요. 좀 대중적으로. 

알라딘: 그럼 아무 조건 없이... 

박찬욱: <관촌수필>도 좋고(이 책은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도 최고의 책으로 꼽았었음), <제 5 도살장>, 카프카의 <소송>, 졸라의 <떼레즈 라깽>... 도스토예프스키가...(10여초를 고민함)...이 분 소설도 참 다 좋은데...<백치>로 할까. <악령>도 좋은데. 이건 너무 고르기 힘드네요(웃음). 말 나온 김에 7개쯤 채워볼까? 존 르 까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그리고 SF문고 시리즈 중에서 어린 시절에 제일 재밌게 읽었던 <우주선 비글호>. 

                    (우주선 비글호는 절판)

알라딘: 도스토예프스키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지인 중에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떠올랐다고 한 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책들 중에 영화 작업에 영향을 준 작품이 있나요? 

박찬욱: 아, [복수는 나의 것]은 아까 얘기했던 <악령>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특히 숲 속 살인장면. 이번에 나올 신작 [박쥐]의 경우는 <떼레즈 라깽>. 그 외에 특별히 어떤 책을 떠올리면서 영화를 만들진 않았어요. 그냥 느낌 가는 대로 가는거죠. 

   

알라딘: 그럼 영화를 만들 때의 영감이랄까, 느낌은 어디서 얻는 편이세요? 

박찬욱: 글쎄, 다 달라요. 그게 어디서 오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데이빗 린치같은 경우에는 초월명상 같은 걸 한다는데, 저는 그런 데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때그때 다른 것 같고, 특별한 근원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문제의 초월명상 매니아 데이빗 린치의 영화/인생 이야기.

알라딘: 그렇다면 소재로써 영화화하고 싶은 책은 어떤 게 있나요? 

박찬욱: 코맥 맥카시의 <핏빛 자오선>을 생각해 봤어요. 제가 서부극을, 그것도 인디언이 많이 나오는 서부극을 정말 해 보고 싶었거든요. 너무 잔혹한 이야기라서 쉽진 않겠죠.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같은 경우는 실제로 판권까지 알아 봤는데 간발의 차로 누가 이미 사 갔더라구요(웃음). 아마 잘 만들고 있겠지?  

알라딘: SF나 추리물 등은 20-30대 젊은 층이 주 독서층인데요. 감독님께서도 독서광이자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장르물 팬이신데(웃음), 이 땅에 함께 있는 '장르 동지'들께 한말씀.

박찬욱: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작품들, 문학이나 문화쪽 결과물들이 상당히 뛰어난 점들이 있어요. 그런데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은 역시 상상력과 지성 같은 거예요. 인생에 대한 성찰같은 지적인 작업도 상상력과 충분히 결합할 수 있잖아요. 그게 가장 잘 발휘되는 분야가 싸이-파이(Sci-Fi, SF, 과학소설)죠. 국내 창작물에 대해서는 거기에 늘 갈증을 느껴요. 그런 책들을 통해서 자극을 많이 받고, 영감을 많이 받게 되는 거니까. 상상력의 자극이 가장 필요한 젊은이라면 Sci-Fi죠.  


알라딘:
지성과 상상력의 결합이라... 가장 성공적인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요?
 

박찬욱: 음, 어슐러 르 귄 여사죠. 글마다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구축한 경지를 느낄 수가 있어요. 물론 문체도 아름답고. 

알라딘: 너무 책 얘기만 한 것 같은데요(웃음). 영화 얘기도 한 번 드려볼까 합니다(웃음). [올드 보이]의 엔딩 장면에서 오대수가 최면을 통해 기억을 지우는데요. 사실은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끝났다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박찬욱: 아, 그것도 어떤 책에 나왔던거죠? 뭐드라... 

알라딘: <몰락의 에티카>요. 

박찬욱: 아 신형철 씨. 나도 읽어봐야겠네. 어쨌든 저는 그 결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실례라는 생각도 들고. 중요한 건 오대수가 (기억을 지우려는) 시도를 했다는 거죠. 기억을 지워가면서까지 미도와의 사랑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의도가 소중한 거예요. 패륜적인 발상이기도 하고, 반사회적인 면도 있는데, 그런 내용은 이제 하나의 신화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니까(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인륜이나 도덕을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신화 속 인물들의 삶이잖아요. 최민식 씨는 연기를 할 때 최면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건 배우가 연기를 하기 위해 선택한 거고, 저하고는 상관 없는 거예요. 

알라딘: (30분 경과) 벌써 시간이 다 됐네요. 마지막 질문 드릴께요. 요즘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 꿈을 잃었거나 포기한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걸로 성과를 거두신 입장에서 조언을 한마디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찬욱: 글쎄.. 조언이라. 특별히 제가 무슨 충고를 하기보다는 영화 하나 소개해 드릴께요.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씨네마떼끄의 친구들이라는 영화제를 하는데(영화제는 3/1 까지입니다), 거기 개막작이 [선라이즈]라는 무성영화예요. 가뜩이나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영화냐고 할지 몰라도, 한 번 그 영화를 봤으면 좋겠어요. 온갖 고생과 난관을 뚫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는 열정, 힘을 느낄 수 있어요.  

알라딘: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선라이즈. 지친 청춘들을 위한 박찬욱 감독의 기습 추천작.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ohoho 2009-02-26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보이 마지막 장면의 웃음이 궁금했는데. 배우의 그런 의도가 있었군요.

짱미 2009-02-2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젠가 영화로 나올 "핏빛 자오선" 꼭 봐야겠네요. ^^

외국소설/예술MD 2009-02-2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ohoho님/ 그 미소의 의미는 해답은 없겠지만, 감독과 배우 사이의 묘한 갭을 알고 나니 저도 다시 보고 싶어요. ㅎ

짱미님/ 저도 박찬욱 감독님께서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 팅커테일러..는 정말 아까워요 개인적으로.

독서하는청춘 2009-03-1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인의 서재에 나왔던 만큼 책도 정말 사랑하시는 거 같습니다.
앞으로 나올 영화도 기대하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이사야 58,6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은 계몽주의의 오래된 사상적 무게를 다시 획득하게 된다. 이는 천국 주위에 도사리고 있는 안개가 현혹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있다는 인기의 유용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현혹의 이데올로기는 고대에서는 의도적이고 주관적 요소를 드러내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객관적, 사회적 강제성의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종교가 이제 역사적으로 계급사회와 결부되었다고 한다. 이때 사람들은 교회의 권력 이데올로기를 간파함으로써 계몽주의 시기에서 파생된 어떤 보편성이 관철되었다. 

(중략)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유일하게 막강했던 사회 형태로서의 종교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은 이른바 교회라는 체제를 비판함으로써 가능해졌다는 사항 말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마르크스주의는 인민의 아편인 신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18세기의 천박한 유물론자들이 맹목적으로 비난하던 경우와는 달리 경제적 분석이라는 첨예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 p.118-119 



  신은 어느 쪽에 서 있는가. 멋진 질문이지만, 시시하게도, 성경에 따르면 그 답은 명백하게 '낮은 자들의 자리'입니다. 낮은 자들의 자리는 상호 겸손과 연대 외에는 어떤 대외적인 권력도 뿜어낼 수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은 그 자리에 임재했지요. 유대인들이 신의 이름을 입에 담기를 꺼려한 이유 중 하나 역시 그 이름을 남용하며 휘두를 파괴력-권력에 대한 자발적인 경계였습니다. 그러고보면 신의 이름을 걸고 획득한 재화야말로 악마가 가장 사랑하는 함정 중 하나라고 증언한 유명한 악마도 있었드랬죠(그 악마의 이름은 스크루테이프라고 합니다. 글 하단 참조).

   이렇듯 성경(특히 신약)의 텍스트가 아래로부터의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다는 얘기는 언제부턴가 조용하지만 꾸준히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에 68혁명 세대가 열심히 탐독한 기독교(그리스도교)-사회서가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또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킵니다. 종교의 세속적 위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사회가 위로부터의 질서를 숭상하게끔 강요(혹은 그에 대한 자발적인 숭상)하며, 거기에 저항하는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세력을 형성하는 세계... 이 책의 발간은 마치 다시금 자신의 시대를 찾아 어딘가로부터 '호출'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68혁명의 동지였던 이 책은 소위 교조주의 좌파 역시 비판합니다. 배타적인 체계를 구성하고 자체 내 역량의 확장(이런, 각종 파시즘이 얼마나 애용하는 단어였는지!)을 통해 세계를 변혁-통일시키겠다는 개념 역시 또다른 억압의 싹을 키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문구 때문에 종교 자체를 단번에 반지성적이고 반진보적인 시스템으로 매도하는 자들 역시, 다른 이름의 적이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현재 권력과 '현재 권력의 단점을 답습한 대항권력'이라는 두 가지의 '적'들을 동시에 돌파하기 위해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는 성경을 비롯한 서양 문명의 토대를 재구성함으로써 아주 오래전에 이미 인간들이 발견했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드러내 보입니다. 또한 그 발견들이 왜 늘 권력의 힘으로 인해 왜곡되었는지, 왜 역사 속의 권력은 늘 배타적이었는지 역시 추적합니다. 과연 신좌파의 탐독서군요. (물론 그양반들도 결국엔 엇비슷한 함정에 빠져들었습니다만...)

  마치 반 종교책인양 출발하는 이 책은, 그러나 성경의 텍스트를 하나둘 풀어헤치며 기독교의 진보적 성향을 발견해 냅니다. 그리고 서양 문화의 또다른 뿌리들인 각종 신화들과 철학들을 불러와 조합을 시도합니다. 바로 이 점이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당시 최전선에 있던 마르크시즘은 물론이요 신계몽주의 철학과 기독교의 결합은 때늦은(?) 신선함을 안겨줍니다. 대부분의 진보적 종교 담론이 신학적 구조 안에서 활로를 찾고, 때로는 알랭 바디우의<사도 바울>처럼 현대 철학의 성과를 삽입한 경우도 볼 수 있었지만, 저 열렬한 혁명기의 최전선에 있던 철학과 기독교의 접점이라는 건 참 가슴 뜨거운 데가 있으니까요.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했으나 서로 너무 다른 존재처럼 보였던 두 힘이 융합하는 장면은 퍽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수정주의자(?)들은 열렬히 환영받아 마땅합니다.

자본주의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최선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으므로(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 종언설을 철회했다고 들었습니다), 역사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더 고민해야 하고, 가능한 모든 것에서 긍정의 힘을 찾아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 한 사례로서, 냉철한 시야와 뜨거운 가슴으로 구원의 두 가지 방향을 하나로 엮어내려는 이 담대한 저작 역시 일독을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앞서 레닌의 反 반동론을 언급하며) 여기서 뒤바뀌어서는 안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즉 그들(레닌-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적 태도 속의 일차적인 탈신화적 태도는 오래전에 나타난 이른바 종교적 반역이라는 원형과 직결되고 있다는 점 말이다. 예컨대 모든 신화 속에 나타나고 있듯이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태도, 억압하는 모든 신화를 모조리 파괴하려는 의향, 억압의 구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분쇄하는 행위 등을 생각해 보라. 지금까지 권력자로서 신을 모시는 교회는 이로써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오히려 이와 반대이다. (중략) 

자유의 원형들은 오로지 모든 달콤한 거짓을 떨쳐버림으로써 관철될 수 있다. 입으로만 모든 것을 말하는 기독교인들은 결코 정당성으로서의 자유를 실천할 수 없다.(중략)  <너희는 무엇보다도 수확하는 결실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게 될 것이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 가거라,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꺾쇠 인용구는 마태복음 7장 20절 이하),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 p.452-453 



 

-그리고 기독교를 다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하여, 또다른 책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어쩌면 가장 뛰어난 기독교 우화. 기독교의 본질을 역추적하는 악마의 서간집.

성경 왜곡의 역사 -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유혹, 신의 책에 나의 한 줄을 추가하는 것.

세계 종교 올림픽 - 5대 종교와 무신론의 대표가 벌이는 가상의 종교 토론. 그들은 의외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 성경 공인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초기 기독교 계파간의 권모술수. 게다가 외경들은 아름다웠다.

 

                

예수의 독설 - 한국 민중신학, 역사주의 신학의 현주소. 지금 이 나라에서 그리스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정치 - 종교는 비폭력이며 복지이고 반전이어야 한다. 무종교 좌파와 극우 종교인을 향해 던진 '극 중도 복음주의'의 일격. 

사도 바울 - 현대 사회라는 매트릭스 속에서 붉은 깃발을 치켜들고 싸우는 전사 바디우, 지행일치의 혁명가 바울을 소환하다.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30여년 전에 쓰여진, 그러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기독교발 <탐욕의 시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정치적인 것이 가장 '폼'난다, 혹은 

문화 게릴라용 유격 전략전술 강해, <뱅크시, 월 앤 피스>

 

책의 원제 <Wall and Piece>는 금방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War and Peace>를 연상시킵니다. '벽'을 이용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집이기 때문에 재미난 말장난으로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이 제목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뱅크시의 양 측면을 모두 드러내는 중층적인 제목입니다. 그는 '벽과 조각들'을 이용해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이는 곧 일탈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와 신자유/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문화 게릴라 뱅크시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의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죠. 경찰들의 눈을 피해 그래피티 작업을 하고 박물관의 그림들 사이에 자기 그림을 슬며시 걸어 놓는 문화 게릴라이며, "모든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꿈"인 팔레스타인 봉쇄 장벽(얼마나 거대한 '스케치북'인가!)에 찾아가 벽이 무너지고 하늘이 열리는 그림들을 그려 놓습니다. 공공연히 자본주의와 관료-권력을 조롱하는 뱅크시의 반권력 미술(모두가 참가할 수 있고, 세상 모든 곳이 그림을 그릴 터다)은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미술과 즐거움의 관계, 미술과 정치-권력의 관계, 그리고 미술과 사람들의 소통에 관해서요.  



 
                                 <런던에서의 작업>                                                     <팔레스타인에서의 작업>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지만, 책의 서문 말마따나 뱅크시의 여정은 이제 시작인지 모릅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가 벽에 그려놓은 그림들에는 보호막이 둘러쳐지기 시작했고, 그의 작품들은 비싼 값에 거래되기 시작했으니까요.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좌파 밴드' RATM의 언행 불일치(까지는 아니지만)를 생각해 보면 뱅크시가 지금껏 해 온 말들이 그의 커져가는 자본주의적 위상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68혁명 이후로 쭉 이어진 얼터너티브 문화의 주류 편입기에 한 사례가 더해지는 선에서 그칠 수도 있겠죠. '우리에게 사랑과 상상의 자유를 달라'는 신좌파의 구호는 늘 자본의 예쁜 포장능력에 무릎을 꿇어 왔으니까요.

체 게바라의 상품화에 반대하며 그의 초상화가 줄줄 흘러내리는 그래피티를 선보였던 뱅크시가 그저 비상한 재간둥이일지, 아니면 혁명 전야까지 영원히 어둠 속에서 그림을 그릴 게릴라일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죠.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작품만으로도 중요한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즐겁고 또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즐겁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라는 교훈이죠. 대중들의 '즐거움'이라는 중요한 고지를 선점한 자본주의 시장의 맞선 게릴라식 역습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저는 그저 기대에 차서 지켜볼 뿐입니다. (밴드도 아니니까 RATM처럼 해체는 안하겠죠...-_-;) 

참전 지원자들은 구입 및 소지, 배포를 권합니다. -예술MD 금주의 선택 

  

 

디자인, 인류와 지구를 지켜라!

                  



1. 디자인, 한국을 구출하라 : 평론가 최범의 두 번째 평론집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독재형 관치와 신자유주의를 부드럽게(!) 오가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종속된 한국 디자인의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껀수별로'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좀 어이없는 기획이었던 디자인 올림픽이나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피어나는 각종 비엔날레의 향연도 살펴보고, 국가와 디자인이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살핀 뒤 '이용이 아니라 공존'을 위해 시스템 자체에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더 많은 관심이 아니라!)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당연한 결론이 아니냐구요? 그러나 이 책은 구체적인 사실 적시와 함께, 이런 책에서는 보기 드문 '행정적 대안 제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기 드문 '단행본 시론'이라 하겠습니다. 

2. 디자인, 자본주의를 돌파하라 : 평론가 서동진의 디자인 비평집 <디자인 멜랑콜리아>. 현재를 장악한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과 '신경제'간의 암묵적인 협약을 돌파하기 위한 고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대안 디자인'정도가 아닙니다. 불온서적이예요. 디자인이야말로 어떤 사회의 '드러난 겉모양'이며, 또한 (시민과 사회간의 상호 에너지 교환 장치로써의) 정치가 그 겉모습을 드러낸 부분이라는 그의 지론은 단순한 진보적 디자인 담론을 뛰어넘어 '그 다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회의 시스템과 연결된 디자인이라는 열쇠를 통해 '바깥에서 안으로' 시스템을 추적해 들어가자는 (일종의 문화적 해킹?) 얘기인데요, 현 체제 하에서는 디자인의 긍정적 발전의 한계가 너무 명백하니, "한 번, 산 자여 따르지 않겠는가"라는... 이 책의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소 현학적인 글쓰기와는 달리 그 바닥에 흐르는 뜨거운 감성인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현재 세계라는 매트릭스에 포섭된 수많은 디자인 운동들의 사례를 열거하며 그가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사실 좀 동조하고 싶습니다. 근데 네오는 어딨나요. 

3. 디자인, 매트릭스를 돌파하라 : <인터페이스 연대기>는 한국 사람이 쓴 디자인 문화 비평서라기에는 좀 아스트랄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이 도구와 소통하는 방법(인터페이스)에 대해 사회문화적 접근을 시도하는 재미있는 책이예요. 핵전쟁 시나리오와 베트남전과 대도시 개발시스템의 관계 (<분산의 다이어그램:신경망 도시, 구치 땅굴, 세미라티스>), 포촘킨 파사드와 포스트모더니즘 광고/건축미학의 집합 등 재밌는 주제들이 등장합니다. 인터페이스는 항구적으로 보다 나은 것을 찾아가는 이상적인 여정이 아니라, 한 사회가 집약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일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이 책은 드러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역사의 인터페이스를 살펴본다는 것은 어떤 사회의 욕망 또는 히스테리의 징후를 훑어내는 작업으로도 유효한 셈이죠. 이 징후 읽기에 대해 어느정도 '징후'만 안겨주며 종횡무진하던 책은 마지막 장(<우리, 파시스트 - 테크놀러지의 강철폭풍>)에 다다라 대중친화적 인터페이스-매체의 파시즘적 공격력을 고발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서민, 대중, 다중... 초식동물의 특성에 가까운 이 '집단'은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고 징후를 알아채지 못하면 늘 댓가를 치러야만 알게 되지요. <인터페이스 연대기>는 기민함을 좀 더 제공해 드릴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의 잦은 에러가 사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계획이란 걸 아시나요? OS의 발전속도를 일부러 늦추어 인공지능 컴퓨터의 개발 가능성을 저지 혹은 지연하려는, '다른 지구에서 온 동지들'의 놀라운 활약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인터페이스야말로 매트릭스의 표면이고 우리의 생활 구역이므로, 정신 바짝 차리시고, 데자뷰 현상이 일어나면 주위의 가장 가까운 전화기를 시야에 확보해 두시기 바랍니다. 부디 건승하시길. (앞선 윈도우즈 관련 언급은 그리폰북스의 <21세기 SF 도서관>에서 가져온 설정임을 밝힙니다~) 

 

& +   

               



<다카페 일기>는... '이봐 위에. 싸우지들 말라고. 해피 홈이 최고야' 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그런데 책을 보고 있으면 '그렇군 역시 해피 홈이 최고일지도 몰라', 라고 어느새 동조하게 된달까요.; 저는 아마추어 블로거의 '책'에는 점수다운 점수를 줘 본 적이 없지만, 이 책은 의외로 매력적입니다. 아마 첫경험인거 같아요 저도. 2006년 일본 블로거 대상을 탔다는데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의 엽기발랄한 모습도 인상적이고, 종종 출현하는 '보는 사람에게 햇살이 쏟아지는 느낌의' 사진들도 감탄스럽습니다. 사실 그거야말로 중산층의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데올로기적인 사진임은 분명하지만, 뭐 어떻단 말입니까. 그걸 알고 오히려 그걸 위해서 이 책을 집어든 거잖아요. 게다가 퀄리티도 좋고, 조금은 마력적이기까지 한걸요. 일상에 지친 분들께는 최소한 진통 효과만큼은 뚜렷할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무지 부러운 가족입니다.; 초판 한정 제공되는 엽서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행복을 부르는 부적 정도로 사용해도 왠지 작동할거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콘란과 베일리의 디자인 & 디자인>은 크고 비싸고 멋져요. 전반부는 디자인계의 두 대가가 만나 각종 주제에 대해 토론을 펼친 뒤 그 결론을 책으로 옮겨 담았고, 후반부는 거의 디자인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명/지명/상품 등을 배열해 놨습니다. 때로 냉소적인 비판이 드러날 때가 더 재미있는데요. 제가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디자인 백과사전식의 배열보다는 개인적으로는 문화-디자인 담론을 다루는 앞부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객관적인 가치(?)라면 역시 후반부, 국내에서는 아마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에 관한 베스트들을 모아놓은 소사전' 정도가 되겠지요. 사실, 그냥 소장용으로 꽂아놔도 폼이 막 나는 '커피테이블 북' 이기도 합니다... 아 오해마세요. 담겨있는 콘텐츠는 상당히 흥미롭고, 담겨있는 사진들도 시원하고 멋집니다. 모더니즘 미학의 극치를 포드 공장 내부에서 발견하다니!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증거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로 '도시'를 꼽았습니다. 한국의 광역시들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근/현대사와 도시 내 디자인 요소가 어떤 관계를 주고받았는지 (아쉽게도 불륜적인, 즉 부적합한 관계가 훨씬 많은 편입니다) 알 수 있습니다. 탐사라고 해도 맞는 것이, 실제 역사 사료들을 충실히 가져와 옮겨 놓았고, 사진 자료도 풍부하게 싣고 있거든요. 그래서 단순한 '썰로 푸는 연구'가 아니라 발로 뛰며 직접 보고 비교하는 현장학습형 디자인-도시론이 되겠습니다. 이 무슨 도시의 명소도 아니고 온갖 자질구레한 곳들을 다 돌아다니는 희안한 답사기기도 하지만.. 글쎄요.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저도 부산 출신이라 부산 얘기 재밌게 봤어요. 아참, 위에서 소개드린 지구 구출용 디자인 책 세 권과 묶어 보셔도 괜찮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방글 2009-02-0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뱅크시, 월 앤 피스는 멋지구만

외국소설/예술MD 2009-02-0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뱅크시 모르는 분들에게는 서슴없이 추천 가능한 책입니다. 반달리즘에 대한 애증이 뒤섞인 <디자인 멜랑콜리아>와 함께 추천해 드리지요. ^^

라온 2009-02-0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멜랑콜리아 여기에도 있었네염. 적어뒀었는데.

외국소설/예술MD 2009-02-0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준수한 시론이라고 생각됩니다. 분명히 드러나는 성향은 플러스구요.
 

아래 책 상세 페이지의 미리보기를 꼭 구경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공적인 디자인이란 시각적 효과만으로 여타의 해설이 필요없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설득시키는 것이겠죠. 그럼 디자인에 관한 책에도 그 정의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디자인을 디자인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메타-디자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 재미난 작업을 해치워버린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디자인계의 멋쟁이 저술가 스티븐 헬러와 머코 일릭의 공저, <디자인 해부학>입니다. 

21세기에 눈에 띈 디자인 작업들을 기존의 디자인 역사와 엮어보는 이 책은 꽤 풍부한 글밥을 담고 있습니다만, 좀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글씨를 하나도 읽지 않더라도 굉장히 재밌습니다. 성공적인 디자인 작업을 한 페이지를 할애해 보여주고 그 디자인의 핵심 구성 요소 3가지씩을 뽑아낸 다음, 접혀 있는 옆 페이지를 펼치면 그 구성 요소들의 변천사를 화살표를 따라 손쉽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말이 필요없는 디자인 연대기죠. 직관적이고 깔끔하며 효과적입니다. 책 클릭하고 들어가셔서 미리보기를 한 번 보세요.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디자인에 관한 책은 거의 현대미술에 버금갈 정도로 어렵거나, 쉽게 쓴다는 것이 그만 에세이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요, <디자인 해부학>은 가장 직관적이고 효과적이라는 디자인적 정의를 책 자체가 실현함으로써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히 웅변합니다. 굳이 해설하지 않고 그 자신의 특성으로 말없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저 약간의 타이포그래피와 예쁜 편집으로 승부하는 (내용은 일반 교양 예술 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책들과는 발상 자체가 다르죠. 아주 즐거운 책이고, 어렵지 않으며, 시각적 포만감은 물론 발상의 신선함까지 제공합니다. 진심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 근데 표지는 좀...-_-; (그러나 원서 표지도 이렇습니다.;)

<난이도 중: 글을 읽으려고 시도할 경우 약간의 용어 지식이 필요함. 글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이제서야 만나다니...(한숨)

 

이 책도 설명보다는 감탄 위주로 써야 할 책입니다. 이유 불문하고 여지껏 책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었던 한국 정원에 관한 답사기인데요. 개인적인 감상기가 되지 않도록 아예 팀이 꾸려져 객관적으로 쓰려 노력했고, 각 정원별 배치도와 함께 중요 포인트마다 꼼꼼한 설명이 붙었습니다. 첨부된 사진도 정원 사진답게 나무와 자연 경관을 바짝 끌어들이는 등 매우 공들인 모습이고요. 그야말로 애정이 담뿍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자랑을 일삼기에는 아직 때가 일러" 만방에 점잖게 소개하고자 하는 저자들의 들뜬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거기다가 정원 종류별 분류와 정원에 주로 심는 나무며 풀에 대한 소개 등등, 그야말로 답사를 위해 만들어진 충실한 가이드 북이죠.

예를 들어 볼까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경복궁 편을 한 번 볼짝시면(엣헴), 사람들이 구경 다니는 길에 아미산이라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아미산 아래를 지나가면서 슬쩍 올려만 보고 지나가버린단 말이예요. 애매한 풀 좀 보고 휙하니 지나갑니다. 근데 이걸 교태전에 올라가 바라보면 그제서야 빛을 발해요. 열린 문 틈 사이로 네모 반듯하게 들어오는 풀이며 나무며 하늘이 마치 움직이는 그림 같더란 말입니다. 보라고 꾸민 것들은 가장 보기 좋은 곳에서 봐야 그 진가를 아는 법, 마침 함께 실어놓은 사진도 네모난 창문 밖으로 호젓한 가을 풍경이 퍽 단정하고 멋스러워요. 

서양은커녕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도 그 분위기가 극히 다른, 자연과 건축이 시나브로 섞여버린 이 녹색성장 하이브리드 스타일의 한국 정원을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세상에 가 볼 곳이 더 늘었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무니까요. 이 땅을 사랑하는(강부자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분들 모두에게 강력히 권하는 바입니다.

<난이도 하: 권태와 일상에 찌들었으나 아직 꿈과 희망을 놓지 않은 분들, 중에서 호젓함과 허허로움의 맛을 아는 분들께>

사진, 두 번은 조금 깊게, 한 번은 즐겁게

              

<사진의 북쪽>은 우리나라의 '현역' 여성 사진가들에 대한 월간사진의 연재분을 모은 책입니다. 북쪽=빨강이라는 공식에 잘 부합하는 표지와는 달리 그다지 정치/사회적으로 불온한 내용은 없습니다. 변방을 의미하는 북쪽에서부터 불어온 여성/사진이라는 바람에 대한 이야기지요. 여기 실린 사진들의 장르는 포토저널리즘에서부터 디지털 합성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데요, 대신에 작품 감상(분석보다는 감상에 가깝습니다)과 약간의 인터뷰로 구성된 각각의 꼭지를 관통하는 주제는 명확합니다. 여성성이라는 추상이 어떻게 실체화되느냐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이죠. 표현과 재현이라는, 다소 역설적인 사진의 매력으로 인해 여성성이라는 주제는 실재하는 삶을 발견함과 동시에 작가의 발언이 가능한 매혹적인 예술로 변화합니다. 인문사회과학과는 다른 편에서 예술과 여성과 소수와 '타자'는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고찰하고 세계 내의 영역을 넓히고자 투쟁하는지, 순진함부터 격렬함까지, 딱부러지는 리얼리즘부터 디지털 키치 작업까지를 망라한 이 책은 여러 면에서 검토할만한 유효한 텍스트입니다. 저는 이래서 사진이 너무 좋아요. ^^

<난이도 중상: 글밥 자체는 크게 어려운 수준이 아니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같은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현대사진'입니다>

전국 곳곳의 큰 소식을 붙여두었던 80년대 초반의 공설 게시판. 청소를 했는지 붙어있는 대자보는 없고, 각종 '직할시'며 충청도 경상도 할 것 없이 흰 벽과 검은 그림자만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전라도 소식을 붙이는 벽앞으로는 군인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광주 항쟁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전시가 금지되고 작가 자신도 고초를 겪었던 그 연작사진의 작가, <나다>는 중견 사진가 정동석의 베스트(?) 작품집입니다. 정통파(?) 민중미술 계열 출신의 사진가 중에서 아직까지 왕성하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입지는 좀 독특한데요. 현대 한국 사진판의 조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결코 꺼지지는 않을 듯한 묘한 느낌이죠. 그건 아마도 세월의 무게와 역사의 무게... 그가 증거해온 역사의 지난한 발걸음이 유독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사회 고발에서 자연에 대한 성찰로, 그리고 다시 도시의 삶을 비추는 열성의 걸음걸음이 청년의 그것처럼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가운 윤구병 선생님의 글을 포함해 그의 작업마다 각각 다른 분들이 여러 각도에서 사진가와 그의 사진들을 위한 글을 담아 놓았습니다. 정동석 씨(선생이라기에는 아직 너무도 젊게 느껴지는)의 사진에 대해서는 책에서 여러 각도로 분석한 바, 그에 대한 이 짤막한 소개만으로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건승하시길.

<난이도 중상: 각 꼭지별로 글밥의 난이도 차이가 좀 있으니 감안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앞서 소개한 두 권의 책과는 아주 다릅니다. 사진으로 어떻게 더 잘 놀 수 있을까, 이 고민이 이 책 전체의 화두죠. 토이 카메라를 사랑하고 필름 사진의 매력을 아는 분들께 어필할 수 있겠습니다. 재밌는 점은 유명한 필름 똑딱이 카메라 소개하기 코너. 이거야말로 팬심을 자극할 요소거든요. 물론 기존에 앤티크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종종 있었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20세기 후반의 P&S(자동카메라)들을 집중적으로(그러나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반갑습니다. 저도 한때 똑딱이 좀 갖고 놀았던.. 네 여튼. // 카메라 소개와 재미있게 사진 찍기 등의 팁들이 소소히 들어차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집중적으로 원하는 열성파 당원들께서는 다른 책을 보시는 게 좋겠지만, 예쁜 사진들을 부담없이 감상하면서 겸사겸사 팁도 챙기는 맛에 만족하시면 이 책도 괜찮습니다. 작가들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는 것도 독특한 재미겠구요.

<난이도 하: 쉽고 편하게 감상하면서 틈틈히 지식도 챙겨보는 실속파.. 중에서 온라인 감성류 사진 좋아하시는 분들께>


                                                                    세 권의 반가운 개정판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었거나 한번쯤은 들춰봤을 책, <세계 영화사>로 알려졌던 A History of Film의 최신판이 번역되었습니다. 기존의 편집이 읽기에 꽤 불편했고 오역이나 오탈자가 심심찮았던 점을 감안해 아예 새로 뽑아냈다고 하네요. 출판사를 옮기면서 새 번역자가 통째로 번역했고, 자간이나 행간도 적절합니다. 비록 흑백이긴 하지만 도판의 크기도 더 커졌고, 개정증보판 답게 발리우드 이야기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 인디 영화와 소수자 감독들에 대한 비중을 높였다고도 하고요. 여튼간에 제목이 <세상의 모든 영화>이긴 해도, 이 책은 그 명성 드높은 세계 영화사의 가장 따끈한 버전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전공자는 물론 영화 팬들에게도 재미있는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양서임은 확실하지요. 이 두꺼운 책을 아직 유의미할 정도로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다소 딱딱하기는 해도 읽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해서 소개 결정. 쾅쾅.

<난이도: 중상,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어렵지 않은, 혹은 어렵더라도 꼭 도전하고픈 책일겁니다> 

현대미술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시인이며 사진가이며.. 쉽게 얘기해서 종합예술가인 신현림이 이 책에서 시도한 방법은 시로 보여주기입니다. 인상깊은 현대 미술작품들을 펼쳐놓은 뒤에 그와 닮은 시를 딱딱 박아 놓은거죠. 뉘앙스를 다른 뉘앙스로 옮겨내는 작업은 사실 대단히 위험한데요, 이 책에서는 시를 통해 '비유'한다는 승부수가 부드럽게 작동합니다. 게다가 반쯤은 에세이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도 있고요. 현대미술을 체계적으로 만나는 책은 아니지만, 체계적으로 만나기 이전에 먼저 접해보기에는 여러모로 괜찮습니다. 예술과 인간(특히 감상자) 사이의 소통, 베스트급의 목록으로 적절히 골라낸 작품들의 면면, 거기다 알싸하고도 따뜻한 시들까지 골고루 접해볼 수 있으니까요. 최소 일석 이조의 성과를 노려봄직합니다.

<난이도 중: 현대미술을 난이도 중하 이하로 설명할 수 있는 책이 있을까요. 시로 비유한 것은 재미나지만, 시조차 좋아하지 않는다면 접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불멸의 오페라>는 저 번쩍번쩍한 모습만으로도 유명하지요. 이 책도 최근 개정 증보판이 나왔습니다. 가격은 올랐지만 추가한 정보들이 쏠쏠하니 이해해 주세요. ㅎㅎ 특히 수록된 추천음반들의 경우 08년을 기점으로 절판된 음반들 대신에 구입 가능한 음반들을 위주로 전면 재구성했습니다. 또한 원래 시청각예술인 오페라를 접하기에 가장 좋은 매체인 DVD에 대한 소개가 추가되었다는 점이 매우 반갑고요. 아직 구입하지 않으신 분께서는 당연히 이 신판을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책 자체야 워낙 호평받았으니 칭찬 한 줄 보탠다고 소용이 있을까요. 그저, 재밌습니다.

<난이도 중하: 초보든 고수든 오페라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다들 재밌게 읽으시는 마법의 책입니다.> 

그리고 두 권의 음악 
           

제목이 참 인상적인 <베토벤의 가계부>는 역사에 남은 작곡가들의 삶을 경제적 여건을 통해 풀어가보는, 매우 실용적인 코드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입니다. 아껴서 잘 살자는 얘기가 아니라, 돈이라는 문제를 각양각색으로 돌파한 여러 모습을 바라볼 수 있거든요. 아 그럼 반실용적인 책인가요. -_-;; 어쨌든. 베토벤이 가계부를 정말 썼냐고 하면 네 그렇습니다. 열렬한 가계부 신봉자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산수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 열성에 비해 장부의 정확도는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_-;; 책 속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살림꾼인 베토벤은 물론, 슈베르트나 쇼팽처럼 돈계산과는 담쌓은 평범한 천재들도 있었고, 파가니니나 푸치니처럼 돈계산에 밝고 떵떵거리며 살았던 음악 갑부들도 있었습니다. 음악이라는 꿈을 위해 의사나 법 공부를 때려친 사람들(베를리오즈, 슈만)도 있었으며, 일에 치여 겨우겨우 휴가 때에나 작곡하던 양반(말러)도 있었죠. 이런 다양한 모습을 통해 개개의 인간들이 자본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살펴보는 건 꽤 가십스러우면서도 흥미롭습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남자 고규홍 씨의 글은 내내 편안한 것이 틈틈이 읽기에도 좋습니다.

<난이도 하: 클래식 몰라도 괜찮습니다. 알면 더 재밌구요.> 

<물고기 마음>은 음악계 최고의 엄마친구아들, 루시드 폴의 시가집입니다. 책의 90%는 기존에 발표된 노래 가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앨범을 다 갖고 있거나 가사를 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 것도 사실인데요. 각 앨범의 탄생 배경이나 특출난 싱글곡에 얽힌 뒷이야기, 그리고 인생에 대한 루시드 폴의 조근조근한 글솜씨를 보는 것도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해요. 게다가 행 연 맞춰 편집된 노래 가사들이 퍽 예뻐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말입니다. 보너스로 미니 CD에 새 싱글 두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2집과 3집 사이 정도의 분위기네요. 부드럽고, 따뜻해...

<난이도 하: 사랑 쪼금 해 보셨고 스물 넘도록 살아오셨으면 됩니다. ^^;>

어쩌다 여기까지 써 왔을까요. -_-;;; 정신없이 써 내렸더니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차회예고 해볼까 했는데 패스.;;;  부디 즐겁게 읽으셨기를, 거기다 좋은 책 한 권쯤 발견하셨으면 더 감사하구요. 그래도 늘,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시죠. 이번 주도 행복하셔야 합니다.  (아 지난 주에 인사 빼먹었던가...)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에 수록된 시 한 수 적으면서 물러납니다. 

나의 이솝 

                         데라야마 슈지 

초상화 속에
그만 실수로 수염을 그려넣었으므로
할 수 없이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
문지기를 고용하게 되었으므로
문을 짜 달기로 했다

일생은 모두가 뒤죽박죽이다
내가 들어갈 묘혈 파기가 끝나면
조금 당겨서라도
죽을 작정이다

정부가 생기고 나서야 정사를 익히고
수영복을 사면 여름이 갑자기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늘 이 모양이다

한데
때로는 슬퍼하고 있는데도 슬픈 일이 생기지 않고
불종을 쳤는데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하여
개혁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바지 멜빵만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1-15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책에 몹시 관심이 가네요. 키다리 아저씨 덕분에 나머지 숙제를 하듯 책을 읽는 요즘? 입니다. 어떤 책을 읽기에는 너무 수준 미달이라는 생각; 종종 찾아오므로 좋은글 계속 부탁 드립니다. 올 한해 쭉 그냥 행복하세요.

외국소설/예술MD 2009-01-1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북쪽>은 참 괜찮은 시론이지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쭉 행복하세요.

NA 2009-01-1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블록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네요..ㅎㅎ 그래도 꾸준히 찾아옵니다..ㅎㅎ
신현림씨 책 같은경우엔 개정증보판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왕이면 기존것과 어떻게 다른지 코멘트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거 같습니다..^^
이번주에도 좋은 책 많이 소개받아서 좋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09-01-1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이나 종교 코너에 들어오시면 editor's blog의 최신판을 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부디 애용해주시기 바라며.. 리플은 늘 용기를 백배 진작시켜 준다는 걸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ㅎㅎ 신현림씨의 책은 구판을 따로 어떻게 구할 수가 없어 비교는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아쉽네요...

나탈리 2009-02-03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하고 재미나게 설명해주시는 군요.
마음이 동하는 책이 몇권(아니..거의 대부분 이라 큰일 --; 다 읽지도 못하면서..) 있네요
좋은 책소개 감사드립니다 :)

외국소설/예술MD 2009-02-0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에 감사드리며, 마음에 드는 책이 많으셨다니 그저 영광입니다. ^^
많이 구입해주세요. ㅎㅎ
 

본의아니게 연말특집 

연말 특집은 아닌데 그렇게 됐네요. 이번 새 책 이야기는 무려 세 명의 MD가 연합전선을 펼칩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직접 열정적으로 썼다는 느낌이 드는, 뜨끈뜨끈한 클래식(중에 교향곡) 이야기 책 <금난새의 내가 사랑한 교향곡>의 특집이랄까요. 딱 10곡의 교향곡만 뽑아서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책입니다. 작곡가 소개와 작곡 당시의 배경 소개, 곡에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기본적인 곡 구조 분석까지 한 곡의 교향곡을 둘러싸고 풍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초심자를 먼저 배려하다보니 익숙한 레퍼토리와 에피소드들이 많은데요. 고수 분들은 이 책 리뷰에 아량을 갖고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ㅎ

근데 이 책, 다 좋은데, 딱 10곡을 이야기하면서도 추천 음반이 없다는 점이 참, 여러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습니다. 사실 책의 난이도가 완전 입문용이라기보다는 초중급 수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기초적인 음악 용어나 곡의 구조에 대해서는 알아야 읽기 좋습니다) 굳이 음반 추천이 필요한 건 아니죠. 반면에 추천의 부작용이야 책이고 음악이고 좋아하는 분들은 다 아실테구요. 그래도요...ㅎ

원래는 '아쉽습니다'에서 끝내고 넘어갔을텐데요. 이번에는 '없으면 잇몸으로 고고씽...' 글쎄요 왜 그랬을까요. 어쨌든. 뭐 재미있는 일 없나 하던 참에 잘됐다 싶어 두 명의 MD를 꼬셨섭외했습니다.

저하고 클래식음반 담당 공효현 MD님, 그리고 이런거 재밌어하시는 잡식성 음악매니아 홍성원 경제경영/자기계발 MD님 해서 세 명이 이 책에 나온 10곡의 교향곡에 대해 각각 한 장씩 골랐습니다. 지금 저는 제 추천음반 이외에는 모르는 상황인데요, 만약 세 명이 동시에 같은 음반을 추천하게 되면 기념으로 작은 이벤트라도 하나 열겠습니다. 약속. ^^; 

(이하 명칭은 저-최, 공효현MD-공, 홍성원MD-홍 으로 하겠습니다. 음반정보는 음반 그림을 클릭하시면 상품페이지로 이동!)  

 

1. 하이든 교향곡 제45번 F샤프 단조 '고별'

                                

                                    <공의 선택>                         <최의 선택>                       <홍의 고백> 

공- 인간적이며 따뜻한 연주. 헝가리 출신의 도라티와 최상급의 연주자로 이뤄진 필하모니아 헝가리카의 1970년대의 녹음. 하이든의 교향곡의 시기의 내적 구조를 잘 드러내는 음반. 
최- 안탈 도라티의 지휘반을 전곡 박스 외에는 구하기 어려워진 관계로 차선책(엘로퀸스 수입좀해줘요). 속도감있고 날렵하지만 베이스의 든든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쫀득쫀득하게 다져져 있다. 약간 우쭐대는 듯한 느낌이 오히려 즐겁게 어울린다.  
홍- 딱히 많이 들어본/아끼는 음반이 없다. 그저 교향곡의 아버지에게 죄송할 따름; 

 

2.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G단조 K.550 

 

                  

                          <공의 선택>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 마음속에 간직한 맑은 노래같은 연주. 번스타인과 빈필의 궁합이 잘 맞아떨어진 녹음. 모차르트 만년의 단조 교향곡속에 숨겨진 인간성을 잘 포착한 음반. 
홍- 번스타인과 모차르트? 왠지 모르게 어색하지만 그래서 더 애착이 갔던 음반이다. 뭔가 더 화려하고 웅장한 40번을 찾던 끝에 발견했던 음반이기도 하다. 번스타인/빈필 조합의 최전성기때 녹음이다. (#이 음반과 위 음반의 40번 연주는 동일한 84년 음원입니다. 홍MD는 39번 교향곡을 아주 좋아해서 저 음반을 골랐다고 합니다.) 
최- 번스타인&모차르트보다 더 이상해보이는 조합. -_-;; 그렇지만 내 스타일이다. 전성기 케겔 특유의 '현대음악스러운 무감각 무표정 그루브'가 모차르트와 만나서 참 미묘한 정결함이 느껴진다.

  

3.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플랫 장조 Op.55 '영웅'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의 선택> 

홍- 무덤에 가져갈 음반 중 하나. 황제로 칭송받던(?) 시절의 카라얀과 에로이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을 것 같다. 여기 수록된 에그몬트 서곡 역시 최고다. 
최- 한 장을 고르라면 이것 뿐이다. 이 교향곡의 에너지가 속도에서 온다는 특징을 여실히 활용한 장쾌한 연주. 소편성임에도 불구하고 완급조절을 기막히게 잘 해서 파워의 부족함이라는 느낌도 없다. 
공- 무뚝뚝하지만 강렬한 연주. 불굴의 의지를 지녔던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 만들어낸 진정한 "영웅". 1950년대의 모노녹음이지만 GROC 시리즈의 백미 가운데 하나로 꼽을만한 음반. 

 

4.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Op.14 

               

                                <최의 선택>                        <홍의 선택>                       <공의 선택>

최- 무엇보다 종! 다른 연주와 달리 진짜 교회 종을 가져와서 울리는데, 그 느낌의 차원이 다르다. 카라얀이 대개 그렇듯 미끈하고 빤질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환상교향곡 자체가 자아도취와 탐미적 환상을 위한 곡이라서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홍- 카라얀의 60년대 음반도 소장하고 있는데 이 70년대 음반에 손이 더 자주 간다. 전반적으로는 카라얀의 70년대 베토벤 전집과 같이 거침 없는 질주의 느낌이 강하다. 5악장의 종소리 녹음으로도 유명하지만 2악장의 매력도 상당하다. 
공- 균형감 있는, 약간의 건조함마저 장점으로 들리는 연주. 60년대 뮌시와 보스톤 심포니의 두 번째 녹음. 이 곡에 있어 최상의 레퍼런스로 불릴 만한 음반.

   

5. 멘델스존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 

                  + 아바도..

                         <공의 선택>                       <최의 선택>                        <홍의 선택> 

공- 전반적으로 넘치는 활기와 뛰어난 직관으로 가득한 연주. 이 레퍼토리에서는 아바도에 전혀 밀리지 않는, 극히 자연스러운 녹음. 데카 레전드시리즈의 이름에 걸맞는 음반. 
최- 아바도와 카라얀의 절충형? 낭만 가득한 풍부한 사운드지만 현악군의 몸놀림이 날렵하고 전체적인 균형감각이 탁월하다. 그래서 가벼운 발걸음에 실린 민속풍 선율이 느끼하게 변질되는 일이 없다. 지킬 건 지키는 멋쟁이.
홍- 1순위는 물론 아바도지만 다른 것을 골라보았다. 도흐나니/클리블랜드 조합은 소장할만한 수준의 명연을 다수 남겼는데 (말러 5번 필청) 이 음반도 그 중 하나다. 기름기 쏙 빠진 사운드에 뚜렷한 해상력이 장점이다. (#걍 아바도 하시지..-_-;;)

 *모든 음반을 아바도와 비교하고 있지만 정작 아바도는 없는 기현상...;; 

 

6. 브람스 교향곡 제1번 C단조 Op.68 

                   

                             <홍의 선택>                        <공의 선택>                         <최의 선택>

홍- 카라얀의 80년대 녹음을 가장 좋아하는데 편향성을 걷어내고자(?) 차선을 꼽아보았다. 뮌시/파리오케스트라 조합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실황연주다. 참고로 라이센스로도 발매되었던 음반이지만, 도시바 EMI 수입반이 훨씬 낫다. 
공- 4악장의 절정에 이르는 과정의 힘이 느껴지는 연주. 오리지널스로 발매한, 밸런스를 잘 맞춘 녹음. 1960년대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뛰어난 모습을 볼 수 있는 음반. 
최- 교향곡 1번만큼은 대놓고 전투적이라도 OK. 교향곡 작곡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며 포효하는 야수, 브람스도 그 순간만큼은 싸나이니까! 돌격력 최강을 자랑하는 조지 셀의 지휘는 내 이런 상상을 만족시킨다. 

 

 7.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E단조 Op.64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의 선택>

홍- 전혀 예상밖의 선택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젤 최전성기때의 빈필과의 연주(60년대 녹음)는 맘에 들지 않았던 적이 없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현 사운드가 담겨있다. 특히 같은 음반에 있는 6번 '비창'은 그야말로 '강추'다. 
최- 6번은 무조건 번스타인이지만 5번은 참 어렵다. 고심끝에 스베틀라노프로 선택. 말 그대로 압도적인 위력의 실황녹음 앞에서 입이 떡 벌어진다. 러시아 풍 비장미의 극점에 다다른 뜨거운 폭풍. 라이센스 음질도 매우 좋으나, 표지는 왜이러세요. 
공- 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열정이 가득한 연주.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가 빚어내는 광포함과 거대함이 느껴지는 녹음. 차이코프스키의 잘 알려진 4-6번 교향곡에서 빠질 수 없는 음반.

 

8.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신세계에서' 

                 

                             <공의 선택>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 풍부한 감성과 신선한 느낌으로 일관하는 늘 새롭게 들리는 연주. 1960년대 데카 녹음의 황금기에 이뤄진 녹음. 드보르작의 교향곡에서 케르테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큼인지 보여주는 음반. 
홍- 이리저리 돌고 돌다가 결국 다시 찾게되는 음반이 바로 이거다. '반지', '말러 8번', '마술피리'와 더불어 솔티가 남긴 가장 위대한 음반이 아닐까. 시카고심포니가 왜 금관으로 유명한지, 확실한 답을 들려준다. 
최- '신세계'는 다이나믹함과 은근한 애수 사이에서 절충점을 잘 찾아야 하는 까다로운 곡이다. 뉴욕 필하모닉과 젊은 번스타인의 조합은 당당한 자신감과 다소 노골적인 서정성을 겸비했다. 분주하고 자기과시적인 신천지, 미국은 바로 여기다.

 

9.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E단조 Op.27 

                  

                             <공의 선택>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 너무나 낭만적인 음악, 너무나 낭만적인 연주. 아날로그이지만 3악장이 가지는 극한의 서정성이 때론 더 풍부하게 들리는 녹음. 이 곡의 레퍼런스이자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을 대표할 만한 음반.  
홍- 말러 7번, 베토벤 3번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이다. 음반도 꽤 많은데, 그중 고르라면 1순위가 프레빈/런던심포니 연주이고 그 다음이 바로 이거다. 서정성은 프레빈의 승, 다이내믹은 얀손스의 승! 
최- 테미르카노프/쌍뜨뻬떼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음반과 함께 숨겨진 명연. 런던 심포니야말로 두텁고 우아한 선율을 내기에는 최고이며, 로제스트벤스키는 파워와 서정성을 어떻게 겸비해야 하는지를 늘 잘 알고 있다. 

 

1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 '혁명' 

                   

                            <최의 선택>                             <홍의 선택>                         <공의 선택>

최- 5번 한 곡으로만 보자면 홍MD의 선택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세계의 연속성을 감안하면 콘드라신의 이 지독한 전집이 최고다. 신랄하고 과격하며 거침없다. 오마주든 패러디든, 이게 '쏘련'의 진가다. 
홍- 곡을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다. 콘드라신도 좋고 로제스트벤스키도 좋지만 역시 이 므라빈스키의 도쿄 실황음반이 최고다. 한때는 구하기 정말 힘들었던 음반이기도.. 
공- 쇼스타코비치의 혁명이 가지는 긴장과 에너지를 잘 느끼게 하는 연주와 녹음. 비록 러시아계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아니지만 일사분란함과 표현력에 있어 최상의 기능을 보여주는 음반. 

 

와...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요. -_-;; (그러고보니 겹친 음반은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길어서 다른 책 소개는 다음으로 미뤄야겠습니다. 비록 이번에는 음반 소개가 되었지만 다들 즐거운 이벤트로 이해해주시리라 믿어요. 예술분야야말로 책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_+

이 책을 구입하신 입문자들께는 쏠쏠한 도움을, 고수분들께는 비교의 즐거움을 드리고자 한번 해 봤습니다. 도움 주신 두 MD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주를 기약할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 행복한 한 해 되세요. ^^ 

p.s: 또다른 명반을 추천해주시면.. 음.. 제가 감동합니다.; 

품절음반이 많네요 공MD님 힘내세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고파염 2009-01-01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교향곡의 아버지께 죄송할 따름..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드보르작 교향곡은 쿠베릭을 추천하고있습니다.
그나저나 금난새씨의 최근 연주 레퍼토리를 보면 모두 저기에 있는 10곡내에서 활동하셨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09-01-0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벨릭 좋지요~ 워낙 유명한 곡들이라 음반 고르기도 참 고민이 많이 되더군요.
그리고 하이든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