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아니게 연말특집
연말 특집은 아닌데 그렇게 됐네요. 이번 새 책 이야기는 무려 세 명의 MD가 연합전선을 펼칩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직접 열정적으로 썼다는 느낌이 드는, 뜨끈뜨끈한 클래식(중에 교향곡) 이야기 책 <금난새의 내가 사랑한 교향곡>의 특집이랄까요. 딱 10곡의 교향곡만 뽑아서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책입니다. 작곡가 소개와 작곡 당시의 배경 소개, 곡에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기본적인 곡 구조 분석까지 한 곡의 교향곡을 둘러싸고 풍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초심자를 먼저 배려하다보니 익숙한 레퍼토리와 에피소드들이 많은데요. 고수 분들은 이 책 리뷰에 아량을 갖고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ㅎ
근데 이 책, 다 좋은데, 딱 10곡을 이야기하면서도 추천 음반이 없다는 점이 참, 여러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습니다. 사실 책의 난이도가 완전 입문용이라기보다는 초중급 수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기초적인 음악 용어나 곡의 구조에 대해서는 알아야 읽기 좋습니다) 굳이 음반 추천이 필요한 건 아니죠. 반면에 추천의 부작용이야 책이고 음악이고 좋아하는 분들은 다 아실테구요. 그래도요...ㅎ
원래는 '아쉽습니다'에서 끝내고 넘어갔을텐데요. 이번에는 '없으면 잇몸으로 고고씽...' 글쎄요 왜 그랬을까요. 어쨌든. 뭐 재미있는 일 없나 하던 참에 잘됐다 싶어 두 명의 MD를 꼬셨섭외했습니다.
저하고 클래식음반 담당 공효현 MD님, 그리고 이런거 재밌어하시는 잡식성 음악매니아 홍성원 경제경영/자기계발 MD님 해서 세 명이 이 책에 나온 10곡의 교향곡에 대해 각각 한 장씩 골랐습니다. 지금 저는 제 추천음반 이외에는 모르는 상황인데요, 만약 세 명이 동시에 같은 음반을 추천하게 되면 기념으로 작은 이벤트라도 하나 열겠습니다. 약속. ^^;
(이하 명칭은 저-최, 공효현MD-공, 홍성원MD-홍 으로 하겠습니다. 음반정보는 음반 그림을 클릭하시면 상품페이지로 이동!)
1. 하이든 교향곡 제45번 F샤프 단조 '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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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선택> <최의 선택> <홍의 고백>
공- 인간적이며 따뜻한 연주. 헝가리 출신의 도라티와 최상급의 연주자로 이뤄진 필하모니아 헝가리카의 1970년대의 녹음. 하이든의 교향곡의 시기의 내적 구조를 잘 드러내는 음반.
최- 안탈 도라티의 지휘반을 전곡 박스 외에는 구하기 어려워진 관계로 차선책(엘로퀸스 수입좀해줘요). 속도감있고 날렵하지만 베이스의 든든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쫀득쫀득하게 다져져 있다. 약간 우쭐대는 듯한 느낌이 오히려 즐겁게 어울린다.
홍- 딱히 많이 들어본/아끼는 음반이 없다. 그저 교향곡의 아버지에게 죄송할 따름;
2.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G단조 K.550
<공의 선택>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 마음속에 간직한 맑은 노래같은 연주. 번스타인과 빈필의 궁합이 잘 맞아떨어진 녹음. 모차르트 만년의 단조 교향곡속에 숨겨진 인간성을 잘 포착한 음반.
홍- 번스타인과 모차르트? 왠지 모르게 어색하지만 그래서 더 애착이 갔던 음반이다. 뭔가 더 화려하고 웅장한 40번을 찾던 끝에 발견했던 음반이기도 하다. 번스타인/빈필 조합의 최전성기때 녹음이다. (#이 음반과 위 음반의 40번 연주는 동일한 84년 음원입니다. 홍MD는 39번 교향곡을 아주 좋아해서 저 음반을 골랐다고 합니다.)
최- 번스타인&모차르트보다 더 이상해보이는 조합. -_-;; 그렇지만 내 스타일이다. 전성기 케겔 특유의 '현대음악스러운 무감각 무표정 그루브'가 모차르트와 만나서 참 미묘한 정결함이 느껴진다.
3.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플랫 장조 Op.55 '영웅'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의 선택>
홍- 무덤에 가져갈 음반 중 하나. 황제로 칭송받던(?) 시절의 카라얀과 에로이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을 것 같다. 여기 수록된 에그몬트 서곡 역시 최고다.
최- 한 장을 고르라면 이것 뿐이다. 이 교향곡의 에너지가 속도에서 온다는 특징을 여실히 활용한 장쾌한 연주. 소편성임에도 불구하고 완급조절을 기막히게 잘 해서 파워의 부족함이라는 느낌도 없다.
공- 무뚝뚝하지만 강렬한 연주. 불굴의 의지를 지녔던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 만들어낸 진정한 "영웅". 1950년대의 모노녹음이지만 GROC 시리즈의 백미 가운데 하나로 꼽을만한 음반.
4.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Op.14
<최의 선택> <홍의 선택> <공의 선택>
최- 무엇보다 종! 다른 연주와 달리 진짜 교회 종을 가져와서 울리는데, 그 느낌의 차원이 다르다. 카라얀이 대개 그렇듯 미끈하고 빤질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환상교향곡 자체가 자아도취와 탐미적 환상을 위한 곡이라서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홍- 카라얀의 60년대 음반도 소장하고 있는데 이 70년대 음반에 손이 더 자주 간다. 전반적으로는 카라얀의 70년대 베토벤 전집과 같이 거침 없는 질주의 느낌이 강하다. 5악장의 종소리 녹음으로도 유명하지만 2악장의 매력도 상당하다.
공- 균형감 있는, 약간의 건조함마저 장점으로 들리는 연주. 60년대 뮌시와 보스톤 심포니의 두 번째 녹음. 이 곡에 있어 최상의 레퍼런스로 불릴 만한 음반.
5. 멘델스존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
+ 아바도..
<공의 선택> <최의 선택> <홍의 선택>
공- 전반적으로 넘치는 활기와 뛰어난 직관으로 가득한 연주. 이 레퍼토리에서는 아바도에 전혀 밀리지 않는, 극히 자연스러운 녹음. 데카 레전드시리즈의 이름에 걸맞는 음반.
최- 아바도와 카라얀의 절충형? 낭만 가득한 풍부한 사운드지만 현악군의 몸놀림이 날렵하고 전체적인 균형감각이 탁월하다. 그래서 가벼운 발걸음에 실린 민속풍 선율이 느끼하게 변질되는 일이 없다. 지킬 건 지키는 멋쟁이.
홍- 1순위는 물론 아바도지만 다른 것을 골라보았다. 도흐나니/클리블랜드 조합은 소장할만한 수준의 명연을 다수 남겼는데 (말러 5번 필청) 이 음반도 그 중 하나다. 기름기 쏙 빠진 사운드에 뚜렷한 해상력이 장점이다. (#걍 아바도 하시지..-_-;;)
*모든 음반을 아바도와 비교하고 있지만 정작 아바도는 없는 기현상...;;
6. 브람스 교향곡 제1번 C단조 Op.68
<홍의 선택> <공의 선택> <최의 선택>
홍- 카라얀의 80년대 녹음을 가장 좋아하는데 편향성을 걷어내고자(?) 차선을 꼽아보았다. 뮌시/파리오케스트라 조합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실황연주다. 참고로 라이센스로도 발매되었던 음반이지만, 도시바 EMI 수입반이 훨씬 낫다.
공- 4악장의 절정에 이르는 과정의 힘이 느껴지는 연주. 오리지널스로 발매한, 밸런스를 잘 맞춘 녹음. 1960년대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뛰어난 모습을 볼 수 있는 음반.
최- 교향곡 1번만큼은 대놓고 전투적이라도 OK. 교향곡 작곡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며 포효하는 야수, 브람스도 그 순간만큼은 싸나이니까! 돌격력 최강을 자랑하는 조지 셀의 지휘는 내 이런 상상을 만족시킨다.
7.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E단조 Op.64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의 선택>
홍- 전혀 예상밖의 선택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젤 최전성기때의 빈필과의 연주(60년대 녹음)는 맘에 들지 않았던 적이 없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현 사운드가 담겨있다. 특히 같은 음반에 있는 6번 '비창'은 그야말로 '강추'다.
최- 6번은 무조건 번스타인이지만 5번은 참 어렵다. 고심끝에 스베틀라노프로 선택. 말 그대로 압도적인 위력의 실황녹음 앞에서 입이 떡 벌어진다. 러시아 풍 비장미의 극점에 다다른 뜨거운 폭풍. 라이센스 음질도 매우 좋으나, 표지는 왜이러세요.
공- 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열정이 가득한 연주.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가 빚어내는 광포함과 거대함이 느껴지는 녹음. 차이코프스키의 잘 알려진 4-6번 교향곡에서 빠질 수 없는 음반.
8.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신세계에서'
<공의 선택>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 풍부한 감성과 신선한 느낌으로 일관하는 늘 새롭게 들리는 연주. 1960년대 데카 녹음의 황금기에 이뤄진 녹음. 드보르작의 교향곡에서 케르테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큼인지 보여주는 음반.
홍- 이리저리 돌고 돌다가 결국 다시 찾게되는 음반이 바로 이거다. '반지', '말러 8번', '마술피리'와 더불어 솔티가 남긴 가장 위대한 음반이 아닐까. 시카고심포니가 왜 금관으로 유명한지, 확실한 답을 들려준다.
최- '신세계'는 다이나믹함과 은근한 애수 사이에서 절충점을 잘 찾아야 하는 까다로운 곡이다. 뉴욕 필하모닉과 젊은 번스타인의 조합은 당당한 자신감과 다소 노골적인 서정성을 겸비했다. 분주하고 자기과시적인 신천지, 미국은 바로 여기다.
9.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E단조 Op.27
<공의 선택>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 너무나 낭만적인 음악, 너무나 낭만적인 연주. 아날로그이지만 3악장이 가지는 극한의 서정성이 때론 더 풍부하게 들리는 녹음. 이 곡의 레퍼런스이자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을 대표할 만한 음반.
홍- 말러 7번, 베토벤 3번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이다. 음반도 꽤 많은데, 그중 고르라면 1순위가 프레빈/런던심포니 연주이고 그 다음이 바로 이거다. 서정성은 프레빈의 승, 다이내믹은 얀손스의 승!
최- 테미르카노프/쌍뜨뻬떼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음반과 함께 숨겨진 명연. 런던 심포니야말로 두텁고 우아한 선율을 내기에는 최고이며, 로제스트벤스키는 파워와 서정성을 어떻게 겸비해야 하는지를 늘 잘 알고 있다.
1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 '혁명'
<최의 선택> <홍의 선택> <공의 선택>
최- 5번 한 곡으로만 보자면 홍MD의 선택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세계의 연속성을 감안하면 콘드라신의 이 지독한 전집이 최고다. 신랄하고 과격하며 거침없다. 오마주든 패러디든, 이게 '쏘련'의 진가다.
홍- 이 곡을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다. 콘드라신도 좋고 로제스트벤스키도 좋지만 역시 이 므라빈스키의 도쿄 실황음반이 최고다. 한때는 구하기 정말 힘들었던 음반이기도..
공- 쇼스타코비치의 혁명이 가지는 긴장과 에너지를 잘 느끼게 하는 연주와 녹음. 비록 러시아계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아니지만 일사분란함과 표현력에 있어 최상의 기능을 보여주는 음반.
와...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요. -_-;; (그러고보니 겹친 음반은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길어서 다른 책 소개는 다음으로 미뤄야겠습니다. 비록 이번에는 음반 소개가 되었지만 다들 즐거운 이벤트로 이해해주시리라 믿어요. 예술분야야말로 책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_+
이 책을 구입하신 입문자들께는 쏠쏠한 도움을, 고수분들께는 비교의 즐거움을 드리고자 한번 해 봤습니다. 도움 주신 두 MD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주를 기약할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 행복한 한 해 되세요. ^^
p.s: 또다른 명반을 추천해주시면.. 음.. 제가 감동합니다.;
품절음반이 많네요 공MD님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