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좋게 구한 작품입니다. 자유추리문고는 좋아하는 문고판입니다. 지금은 재출간과 전집출간으로 인해서 구하기 쉬운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당시의 리스트는 (지금까지도) 초역이 많았습니다. 비록 헌책이었지만, <주정꾼 탐정>, <새벽의 데드라인>을 자유추리문고를 통해서 봤을 때의 감동이란...그리고 딱 주머니사이즈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좋구요. 그리고 문공사처럼 번역이나 그림이 엉터리도 아니고 해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먼탐정 캐러더스>는 어니스트 브래머(Ernest Bramah)의 단편선집입니다. 이 작품 역시 예전에 읽은 <구석의 노인사건집>처럼 셜록 홈즈의 등장 이후에 나온 고전기 작품입니다. 사고로 인해서 눈이 먼 캐러더스가 충실한 하인 퍼킨슨과 친구인 사립탐정 캐러일과 함께, 아니 정확히는 그들과는 별 '상관없이' 사건을 해결합니다.

캐러더스는 장님입니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의 증조부 쯤 되는 셈이죠. 작품 자체를 떠나서 '시력'을 제거한 브레머의 통찰력은 높이 사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주인공은 거의 최초가 아닐까 싶은데요. 회색 뇌세포의 활동을 강조하기 위해서 탐정에게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주는 설정이 지금은 일반화되어있을지 몰라도 당시로는 신선한 발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브래머는 기존 작품들, 특히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충실히 분석하고 변용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시력'의 제거는 셜록 홈즈의 추리가 많은 부분 관찰에 의존하고 있음을 저자가 알지 았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또 캐러더스의 '눈' 역할을 하고 있는 퍼킨슨의 관찰에 대한 묘사는 상당부분 홈즈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또 셜록 홈즈의 영원한 클리세 중에 하나인 '~~에 대한 논문'이야기도 나오구요. 작품 자체보다는 홈즈의 흔적을 찾는 것이 더 재미있기도 합니다. 작품의 구조도 도일의 단편들과 비슷하지만, 이건 브래머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면, 캐러일이 무능한 사립탐정이고 캐러더스가 유능한 유한귀족인 것을 보면, 은근히 홈즈에 대한 경쟁심리나 우월감이 배어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구요. 셜록홈즈는 가난한 블루칼라 중산층이라면, 캐러더스는 교양있고 부유한 유한귀족이니까요. 캐러더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자기는 무보수에, 시력이 없어도 홈즈 만큼 하니까요. ^^ 

그렇지만 제가 읽은 작품들은 거기까지입니다. 작품이 재미가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등장인물 간의 화학작용이 거의 전무합니다. 홈즈-왓슨 콤비에 비하면, 이 둘은 재미없는 영국신사들의 사교활동을 보는 것 같아서 영 심심합니다. 게다가 잠깐잠간 등장하는 퍼킨슨도 기계적으로 관찰만 하는 충직한 하인일뿐 그 이상의 매력은 없습니다. 캐러일은 사건을 가지고 오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상의 일을 하지 않구요. 둘 다 개성이 없습니다. 홈즈를 비롯한 다양한 경쟁작들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느낌은 나는데, 자신만의 양념을 첨가하는데에는 실패한 느낌입니다. 좋은 레시피에 맛깔나는 재료가 있었지만, 요리사가 손맛을 낼 줄 모르고, 조미료가 없이 많들어진 요리 같습니다. 

또 주인공은 어떨까요? 캐러더스는 워낙 차분하면서도 뛰어난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서, 당시에는 오히려 선호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지금 보면 영 심심합니다. 그의 우정의 표현이라는 것이 친구를 위해 자기 일정을 뒤로 미루는 정도밖에 없죠. 교양인이지만, <구석의 노인>같은 주인공의 강렬한 맛이 없습니다. 특징은 있죠. 시각이 없다는 점. 아이디어 자체는 높이살만 합니다. 그렇지만 시력이 없어서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퍼킨슨이라는 충직한 관찰자가 늘 곁에 있다고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어려움이나 실수, 한계 등이 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관찰과 사고활동을 분리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인데, 문제는 이 작품에서는 그 둘을 분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이한 점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퍼킨슨이 아파서 캐러일과 사건을 해결하는데, 캐러일이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해서 실수를 한다던가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해들럼 고지 비밀>에서 캐러더스의 약한 모습이 일부 비춰지긴 하지만, 이 단편은 재미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애국적인 모습이 강조되어 있구요. (번역되지 않은 단편에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캐러더스가 취미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도 들 수 있습니다. 홈즈는 직업인입니다. 그래서 돈 앞에서도 비굴하기도 하고,-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 중에 하나가 <프라이어리 학교>인데 작품 말미의 홈즈의 태도는 읽으면서도 즐겁습니다. 천하의 홈즈도! 이러면서 말이죠.-고용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 홈즈라는 인물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만의 괴퍅한 개성은 누구나 인정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싱싱한 느낌이 캐러더스에게는 없습니다. 그저 그에게 추리란 '선의의 도락'일 뿐이지요. 그가 자신의 능력을 썩히지 않고 남들을 도와주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그 이상의 재미는 주지 못합니다. 캐러더스가 차라리 잰체라도 했다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브래머의 야심은 '고품격' 추리소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캐러더스의 활동은 올바른 감성과 뛰어난 이성을 가진 귀족이 벌이는 일종의 사회봉사같은 면이 있으니까요.

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건에 개별적으로 들어오는 작중인물들의 모습입니다. 이 단편집은 오히려 그 시대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는 풍속소설로서의 가치가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래스웨이트경의 간지>에 드러난 귀족들의 허세, <매싱검 장의 유령>에 드러나는 신사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가치관을 일정부분 반영하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당시 프로이드가 상당히 위력을 떨쳤다는 인상을 다시 한번 받는데,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작품은 <구두와 은그릇>, 그리고 <컬비 거리 범죄>였습니다. 특히 <구두와 은그릇>은 너무 노골적이지요. 하지만 엉성합니다;; 

트릭에 대해서라면...음 냉정하게 평가해서 미안하지만 눈에 띄는 트릭은 <매싱검 장의 유령>인데, 이 트릭은 일종의 밀실 트릭인데, 캐러더스의 설명을 들으면 상당히 과학적이고 신선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재미는 없습니다. --; 나머지 단편들은 초기의 일반적인 트릭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말 하면 좀 미안하지만, 제가 읽어본 최고의 작품은 <세계의 명탐정 44인>에 나왔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해당트릭이 캐러더스의 트릭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캐러더스의 개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듯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고전기의 경향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는 손색이 없습니다만, 수작과 태작이 교차하는 작품선집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선집임을 고려하면 다른 작품의 질이 우려도 되구요. 개인적으로는 <구석의 노인 사건집>보다도 재미없게 읽혔습니다. 

추신) 이 작품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분들께서 <브룩밴드 장의 비극(The Tragedy at Brookbend Cottage)>을 최고로 꼽으셨는데, 이 단편집에는 없네요. 혹시 어디에 수록되어 있는지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추신2) 이 작가는 중국인이 주인공인 Kai Lung 시리즈로 더 유명하다고 하더군요. 제국주의적 관점이나 오리엔탈리즘이 배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후에 재평가를 받는다고 하는데, 읽어볼 길이 없으니 답답할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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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2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이 <명탐정은 영원하다>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또 다른 단편집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안나네요.

상복의랑데뷰 2006-01-2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만두 2006-01-2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수는 죽어야 한다- 동서미스테리북스 안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1-30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 ^^
 
계간 미스터리 2005.겨울
한국추리작가협회 지음 / 산다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현재 유일하게 나오고 있는 미스터리 관련 잡지. 또한 내가 유일하게 사서 읽는 잡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읽고 있으면 착찹한 기분이 든다. 이 계간지의 모토는 바로, 한국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지 일단 '한국 유일의'에서 울컥하게 되고, '추리문학 전문지'에서 갸우뚱하게 된다. 

한국의 장르문학, 특히 추리문학이 출판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썩 좋지 않다. 시장의 크기도 크다고 할 수 없다. (과열로 보이는 연속되는 출간이 의아할 뿐이다.) SF나 환타지만큼 해당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도나 평론을 찾아 읽기도 힘들다. 극소수의 평론가나 고급독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나같은 초보독자들에 의해 이런 책 나왔다. 이런 책 샀다. 이런 책 읽었다. 수준의 기초적인 정보만 교환되고 있으며, 고급스러운 작품 감상, 작가에 대한 평론이나 비평은 고사하고 기초적인 작가 정보 내지는 출판 정보도 쉽사리 확인하기가 힘들다. 무협처럼 한국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이나 노력이 눈에 보일 정도도 아니고...이런 우울한 상황에서 추리소설도 아닌 추리문학에 대한 잡지를 낸다는 것은 시쳇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잡지는 나같은 추리문학 애독자들에게는 소중하다. 추리독자로써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계간지 구입뿐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평론이나 소설을 쓸 재주는 없으니...<다빈치 코드> 이후의 히트작을 기대해 보는 수 밖에. 그것도 우리나라 작가분의... 

그렇지만, 모토의 뒷부분. 추리문학 전문지로써의 전문성, 그 전에 잡지로써의 충실성에는 늘 의문을 표하게 된다.

이 계간지는 기본 편집이 충실하지 않다. 너그럽게 오타문제는 생략하고 싶지만, 이번 호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집어보자. 이번 겨울호에는 물음표가 많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편집상의 오류로 책 제목 부분에 자주 오류가 등장한다. 책 제목을 인용하는 과정에서의 실수다. ?Fire, Burn!? 류의 표기가 종종 등장한다. 또 표기의 일관성이 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사님의 명탐정 포와로의 경우, 서미애님의 글에서는 뽀와로라고 되어있고, 뒤의 2005년 <세계 추리문학상 현황>이라는 글에는 푸아로라고 되어 있다. 이런 부분은 좀 시정되었으면 좋겠다.

또, 은근히 이 계간지가 기본적인 정보전달에 불성실하다는 것도 불만스럽다. 저자의 약력도 어느 순간부터 슬금슬금 사라지고-지속적으로 투고하는 필진들이라 약력이 필요없다는 것인가?-, 심지어 어떤 글에는 저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토마스 태셔의 <먹이>는 역자의 이름이 없다.(정태원 선생님이 번역하신 느낌이 든다.) <2005년 세계 추리문학상 현황>에는 글의 저자의 이름이 없다. 해당 글의 오류 등의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무오류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는걸까? 이래저래 당혹스럽다. 그리고 해외추리소설란에만 책 갈피에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것도 좀 의아하다. 

그런 측면에서 가상인터뷰가 늘 거슬린다.(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기획이다.) 가상인터뷰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1. 인터뷰 대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스티븐 킹이나 딘 쿤츠, 에드 멕베인은 누구나 다 알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작가 전체에 대한 정보는 아니더라도 인터뷰 하는 내용에 등장하는 책이나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쯤은 각주나 미주로 넣어줬으면 좋겠다. 스티븐 킹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어떻게 된 건지, 에드멕베인의 87관서 시리즈 목록이 무엇인지를-국내에 어떤 작품이 출간되었는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알려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일례로 인터뷰 중에 '87관서 시리즈는 처음에 세 작품만 계약하기로 했다'라는 내용이 있다면, 그 세 작품의 이름 정도는 알려주면 좋겠다. 내가 과욕을 부리는 건가? 백 번 양보해서 가상인터뷰 속에서 일정 수준의 정보전달을 하고 있다고 넘어가보자.

하지만, 2. 저자가 어떤 1차문헌을 보고 가상인터뷰를 재구성했는지에 대한 문헌정보가 없다. 이 부분은 반드시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논문에 인용의 출처가 필수이듯이 가상인터뷰라면 저자가 인용한 참고문헌이 필수다. 일부 독자나 평자들에게 소설이라고까지 비판받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엄청난 문헌정보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논의가 약간 거칠어졌지만, 이러한 자잘한 실수는 편집진이 교정을 불성실하게 보았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든 ?Fire, Burn!?의 경우는 제목에 버젓이 오타를 낸 경우다. 무크지가 아닌 이상, 돈을 내고 보는 독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한다. 이 책의 가격은 9,000원이다. 결코 싼 값이 아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가격대, 아니 이 가격보다 저렴한 양질의 추리소설은 상당수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에도 이 책을 사는 소수의 독자들에게 '기회비용'을 더 보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물론 '그럼 너가 해봐라.' 내지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이 계간지를 내고 있는데.'라고 하시면 드릴 말씀은 없다. 그렇지만 이번 겨울호의 편집은 너그러이 봐주기에는 상당히 심각하다.

그리고 욕심을 내자면, 각 계간지 사이에 출간된 작품 정도는 소개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일부 출판사에서 홍보용 글이 실린 적이 있지만-그나마 이번 호에는 없다.-전체적인 출간 리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현재 출간 리스트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곳은 하우미스테리 한 곳 뿐이다.)

잡지의 외형적인 완성도에 대한 투덜거림은 그만두고 각 기획별로 들어가보자.(혹시라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 내용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호의 특집은 한국의 연쇄살인과 프로파일링이다. 네 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관련 전문가들이 쓴 글이고, 비교적 생경한 프로파일링에 대한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지난 번 특집보다 글의 수도 많았고. 특히 앞의 두 개의 글은 전문가의 식견을 적절한 필력으로 풀어낸 괜찮은 글이었다. 아쉽게도 해당 글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개론 수준이기는 하다. 그러나, 프로파일링 전문 잡지도 아니고, 개론 수준의 글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맨 마지막 글은 제목에서 주는 참신한 의도에 비해 글의 내용이 빈약하다. 셜록 홈즈가 왜 범죄프로파일링과 관련이 있는지는 여부는 짐작하겠는데, 실제 작품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부족해 보인다. 또 <과학수사연구소 다이어리>와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도 넓은 의미에서는 해당 특집에 해당하는 바, 같이 넣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긴 했다. 

더 욕심을 내자면, 프로파일링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이유 중에 하나인, C.S.I나 스카페타에 대한 리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이다혜님이 쓰신 <비밀의 백화점> 속의 리뷰도 좋고, 아니면 프로파일링 전문가의 관점에서 본 해당 시리즈의 허와 실이라던가, 프로파일링에 관심있는 추리독자들이 볼만한 서적의 리스트 정도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욕심이지 싶다.

여기서 가장 아이러니컬하면서도 우스웠던 한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나라에서의 많은 숫자의 연쇄살인사건이 나타난다면 이에 따르는 학문적인 연구도 크게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역설적인 모순을 가진다.'

다음에는 김종섭님의 만화가 등장한다. 잭 리치의 <킬러>가 원작인데, 단편작가 중에 최고급에 속하는 잭 리치의 단편답게 만화로 봐도 재미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추리만화가 단편을 소개하는 수단으로써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표현수단을 달리하여 소개한다면, 해당 매체만의 독특한 맛이 조금 더 났으면 한다. 국내에 번역된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해당 단편을 뒤에 싫어서 비교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 다음은 한국단편추리소설인데, 4편이 실려있다. 추리소설에 대한 평은 각자 갈릴 수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수광님의 <나는 구천을 헤매고 있다.>라는 단편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왜 실렸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추리단편으로 보려고 해도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추리의 요소가 없다. 그렇다고 단편으로써 재미있게 읽히는 것도 아니고, 펄프픽션에 너그러운 내가 봐도 기계적인 성애묘사 이후의 전개는 짜증스러웠다. 게다가 이 분이 추리소설을 지속적으로 내신 분이라면 더욱 실망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여름호에 실린 <롤리타>와 함께 최악의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선행학습>과 <나는 왓슨>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디어에 비해서 작가의 필력이나 구성이 약간 허술한 감은 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뫼비우스의 꿈>도 비슷한 느낌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지고, 결말부분의 힘이 약한 것 같다.

다음은 외국단편추리소설인데, 생경한 작가인 토마스 태셔의 <먹이>가 실렸다. 원제가 'prey'로 추측되는데,-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원제도 실려있지 않다.- 궁금하다. 내용은 요즘 독자가 읽기에는 짐작가능한 결말이라 약간 싱겨웠다. 평화로운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전환하는 과정이 평이했다. 평범한 단편.

다음은 과학수사연구소 다이어리. 이번에는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가 국과수에 계시던 분이라서 그런지 사건일지보다는 증거물에 대한 논란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전문적인 글을 써주시는 좋은 필자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가상인터뷰. 작년에 세상을 떠난 에드 멕베인을 다루고 있다. 나의 편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의 서두는 왜 삽입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뜬금없었으며, 중간 중간에 기출간 된 책은 국내 출간 제목을 달아 놓고, 어떤 책은 쓰지 않는 둥, 섬세한 일관성이 떨어지는 글이었다. 한이씨가 다룬 세 명 중에 그나마 내가 아는 작가라서 그런 탓인지, 가장 불만스러운 가상인터뷰였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김성종 선생같은 분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다음은 서미애님이 쓰신 <형사 콜롬보 vs. 후루하타 닌자부로> 미, 일 TV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를 설명하는 글. 둘 다 많이 보지 못한 나로써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음은 화요추리클럽의 회장이신, 장경현님이 쓰신 존 딕슨 카의 Fire, Burn!에 대한 리뷰. 개인적으로 권일영 선생님의 글과 함께 계간미스테리를 보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국내 미출간 소설에 대한 리뷰라는 점과 존 딕슨 카의 새로운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점이 돋보인 충실한 리뷰였다. '딕슨 카=밀실 트릭'이라는 공식에 의의를 제기하는 신선한 시각이 좋았다.  글 말미에는 존 딕슨 카의 역사 미스테리 목록은 보너스. 다만, 글 중에 '스코틀랜드야드'라는 표현은 런던경시청의 별칭으로 사용하신 것 같은데, '스코틀랜드야드'로 표기해야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런던경시청이라고 표기하거나 '스코틀랜드야드는 런던경시청의 별칭이다.'라는 설명정도는 필요하지 싶다.

딕슨 카의 많은 작품을 읽었거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비롯하여 딕슨 카의 다른 작품도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리뷰. 이것도 구성이 약간 의아하다. 장경현님이 쓰신 글도 넓은 의미의 리뷰인데, 그 글은 독립되어 있고, 밑의 두 글만 리뷰로 잡혀 있다. 권일영님의 작품도 국내에 소개가 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같이 묶어도 될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아니니 생략. 권일영님은 요즘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리뷰를 특유의 재미난 문체로 써주셨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작가라 이 작품도 조만간 출간되었으면 한다.  

그 다음은 조금 이상한 리뷰. 개구리 소년을 다룬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의 리뷰인데, 리뷰어가 저자다. 자기 글을 자기가 리뷰하다니! 책 소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책소개로 따로 분류하거나 아니면 맨 앞의 프로파일링 기획에 넣고, 장경현님과 권일영님의 글을 리뷰라는 카테고리로 빼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보인다.

그렇지만, 내용 자체는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과연 평범한 수준의 음모론일지, 아니면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사서 보고 싶다. 아, 그리고 왜 리뷰가 맨 뒤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추리문학 전문지에 리뷰가 앞으로 와야하지 않을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뒤에 있어도 큰 불만은 없다.

마지막은 2005년 세계 추리문학상 수상작. 참 상도 많다. 짧게나마 각 상들이 어떤 연유에서 생겼는지 소개해 줘서 좋았고, 수상작들을 옆에 이미지로 일부 보여줘서 좋았다. 몇몇 작품들의 이름이 자주 띄는 것을 보면, 좋은 작품들은 어디서나 인정을 받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시상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추어진다면 좋을텐데...한편으로는 예전에 poirot님이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의 추리소설 토양이 과거지향적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품은 고사하고 작가의 이름도 생소한것이 대부분이니...언젠가는 극복되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까탈스러운 초보독자인건지 솔직이 헷갈린다. 사실 써놓고 보니, 죄송스럽기도 하다. 음지에서 고생하시는 분들한테 몹쓸 소리만 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한국추리단편소설에 대한 평은 정말 조심스러워진다. 그렇지만, 추리문학이 자생력을 가지려면, 독자-평론가-작가와의 긴장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호는 나같은 초보독자의 눈에도 거슬리는 부분들이 많았다라는 핑계로 변명해본다.

다음 호에는 모 작가의 특집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좋은 기획과 좋은 글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나의 작은 소망이라면, 언젠가는 단순한 구입이 아니라 그 이상의 기여를 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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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6-01-0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엄청나고 정성들인 리뷰!

상복의랑데뷰 2006-01-0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만 들인 ^^;;;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닉네임을뭐라하지 2006-02-1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2-2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합니다. ^^ 답변이 늦었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어떻게 꿈을 이뤘을까
게오르그 포프 지음, 박의춘 옮김 / 좋은생각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박노자 교수가 지적했듯이, 서양 위인전을 보며 영웅주의의 세례를 받은 나이라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기억해보면, 내가 제알 처음으로 읽었던 책은-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모님의 기억으로는 4살때 읽은 전화번호부이다.--;;-소년소녀한국세계사였고, 그 뒤에는 수많은 위인전을 읽었기 때문이다.

기분전환을 위해서 잠시 헌책방에 들렸다가 산 책이다. 헌책방에서는 가끔 실수를 하는데, 급한 마음에 자세히 둘러보지 않고 나와서 책을 놓치는 경우와 책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사서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을 산 게 실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책표지가 너무 깨끗해서 샀는데, 깨끗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건 위대한 사람들은 '어떻게' 꿈을 이뤘을까였다. 결코 '위대한 사람'들은 어떻게 꿈을 이뤘을까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산산히 쪼개버렸다. 그 흔한 교양서적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예를 들어 훔볼트의 경우 '어떻게' 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딱 두 문장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훔볼트는 26세였으며, 역시 재능이 많았던 형 빌헬름과 함께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 덕분에 훔볼트는 전 인생을 자신의 소망대로 살 수 있었다.

으으..천재 아니 사람의 비밀을 캐어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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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의 노인 사건집 동서 미스터리 북스 63
에무스카 바로네스 오르치 지음, 이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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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치는 이 작품보다는 <빨강 별꽃> 시리즈로 더 유명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구석의 노인' 이라는 고전기의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한 것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어느 곳이나 '대박'이 터지면 '대박'을 모방하려는 아류작들이 등장하기 마련이죠. 스트랜드 매거진에 연재되었던, 저의 첫사랑 셜록 홈즈의 대성공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사잡지에서 독특한 캐릭터가 있는 추리단편을 내놓기 시작했고. <구석의 노인>도 그렇게 등장한 캐릭터 중의 한 명이지만, 독자적으로 살아남은 축에 속합니다. 

이 사건집을 읽으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쉽게 '추리'의 미덕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각 단편은 '퍼즐맞추기'의 즐거움을 느끼기 좋게 되어있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를 볼까요?

폴리 버튼이 나타납니다. 노인이 등장해서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을 설명합니다. 그리고는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추리를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는 경찰에 대해서 비꼬는 말투 한 마디를 던지고는 사라집니다. ^^

여기서 독자는 폴리 버튼과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구석의 노인이 초반부에 제공하는 제한된 정보를 통해서만, 범인과 살인방법을 추측해 내어야 합니다. 오로지 추리를 통해서 모든 것을 파악해내어야 하는 즐거움은 쏠쏠합니다.(저는 도입 부분만 읽고, 범인과 방법을 충분히 생각해 본 뒤에 뒷부분을 읽었습니다.) 게다가 정보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도, 구석의 노인은 FAIR합니다. 구석의 노인'만' 알고 있는 정보가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정당한 대결을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고전기의 작품인데다가 단편이기 때문에, 트릭들이 복잡하지도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구현됩니다. 물론 고전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지금의 경험많은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찌보면 단순하고 익숙한 트릭들이 나열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일부 트릭은 심하게 순진하더군요. 그 점에서 점수가 많이 깎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전형성을 만드는데 기여한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습니다. 천하의 셜록홈즈의 '모 아니면 도' 추리도 지금의 눈으로 보면, 상당히 허술하니까요. 너그럽게 읽는다면 좋은 트릭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작품을 가리켜 '안락의자형 탐정'의 전형이라는 평을 가끔 듣는데,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구석의 노인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분명히 안락의자형 탐정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순수한 이성적 활동의 결과물이지요. 하지만, 안락의자형 탐정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다른 모습도 일부 보여집니다. 이 노인은 미스 마플처럼 이야기만 듣고 범인을 맞추지는 않습니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재판에 갈 정도로 비교적(?)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인의 수사과정을 듣고 있으면, 불독같은 고참형사의 느낌도 날 때가 있습니다. 단지 사건의 발단부터 해결까지 노인의 입에서 나오다 보니, 안락의자형 탐정의 느낌이 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왓슨 역의 폴리 버튼이 극도로 수동적인 것도 한 몫하죠. 명색이 신문기자인데 사건에 대한 정보조차도 작품 속에서 언급하지도 못하죠. 숙제 않하고 수업듣는 학생처럼 사건의 도입부부터 해결까지 버튼씨가 하는 일이라고는 노인의 말씀듣기 뿐입니다. 특종감인데 받아적지도 않더군요. 신문기자라면, 노인에 대해서 개인적인 관심이라도 가질텐데 절대 관심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아마 노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은 구석의 노인의 마지막 사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 보니, 이런 폴리 버튼의 직업정신의 결여로 인해 거꾸로 이 작품에서는 홈즈-왓슨 콤비나 울프-아치가 빚어내는 화학작용조차 맛볼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문제해결'의 재미만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역설을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왓슨의 허약함이 이 단편집의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만, 그 약점으로 인해 구석의 노인 캐릭터가 더욱 효과적으로 구현되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상당히 캐릭터가 독특하죠. 신상명세가 없기 때문에 약간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합니다. 게다가 마지막 단편때문에 아우라가 강해지는 것도 같구요. 끈매듭과 같은 자잘한 장치들도 이 탐정의 모호함에 양념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명작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임에는 분명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고전의 가치는 빛이 바래질 수는 있어도 빛이 사라지지 않는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단편집은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구요. 처음 접하는 분들이 읽기도 쉽고, 적절한 트릭을 구사하는 초창기의 '수작' 단편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독의 가치는 있습니다.

추신) 이 책 때문에 '구석의 노인' 시리즈가 정식으로 소개될 가능성은 더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도도 낮은 캐릭터인데다가, 그나마 소개된 것조차 단편'선'집으로 출간되었으니, 그리도 DMB의 성격상 일본의 전문가들이 뽑은 단편위주로 선택했을테니 더더욱이나 소개되지 않은 단편의 수준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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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1
에릭 시걸 지음, 석은영 외 옮김 / 김영사 / 199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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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는 영화로 더 유명한 '러브 스토리'의 작가 에릭 시걸의 작품이다. 그 외의 유명한 책으로는 프라이즈, 하버드 동창생 등이 있다. 아쉽게도 나는 다 읽지 않았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중학생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읽었을 때의 느낌은 '참 재미있다 플러스 참 아름답다."였다. 재미있다는 느낌이야 읽어본 사람들이면 대강 공감을 할 것이고, 아름답다는 우습게도 주인공 로라와 바니의 일생에 걸친 우정(을 가장한 사랑)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런 인관관계를 동경했다.

내용은 한줄로 요약가능하다. '하버드 출신 의사들의 삶과 애환-로라와 바니를 중심으로' 머 더 이상 늘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시 읽으면서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했다.
제일 처음 느낀 것은 내가 머리 속에 늘 되새김질하는 유홍준씨의 명언. "아는 만큼 보인다." 닥터스는 일종의 성장소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미국의 시대배경이 삽화처럼 삽입되곤 하다. 심지어 베트남전과 같은 사건은 주인공과 그 주변사람들의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의학적인 발견도 적절하게 삽입이 된다. 추측컨데, 시대상에 맞추어서 구성을 한 것 같다.

또한 친절하게도 장의 서두나 말미 부분에 그 당시의 배경을 짧게 소개한다. 친절한 설명 덕분에 이 소설은 시대적인 배경을 몰라도 소설의 재미를 느끼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나서 다시 읽다 보니, 숨겨진 재미를 찾아내는 것도 쏠쏠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 바니와 로라가 사는 곳은 브루클린이다. 브루클린에는 예전에 브루클린 다져스가 있었다.(지금 LA 다져스의 전신이다.) 이 팀은 양키스와의 라이벌로 유명했는데, 매년 월드시리즈에서 번번히 졌다. 그래서 브루클린 사람들은 양키스에 대한 미움과 월드 챔프에 대한 욕망이 간절했다. 가장 예를 들기 적절한 팀은 우리나라의 빙그레 이글스인 것 같다. 닥터스에서도 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955년은 미국인들이 두 번씩이나 거리로 뛰쳐나와 춤을 춘 유쾌한 1년이었다. 브루클린을 빛낸 대사건도 그 중에 하나였다. 도저스가 뉴욕 양키스를 박살내고 월드시리즈의 승자가 되었으니!"

이 별뜻없는 문장 속에는 그 시대를 겪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게다.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대가 미국의 50~70년대다 보니, 그 시대에 대한 잡지식이 늘어났고, 이는 책을 더 맛깔스럽게 읽는데 도움이 된다. 제대로 읽으려면 영어판을 보거나, 더 알아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외국독자들을 생각해서인지, 닥터스는 시대적 배경에 깊이 기대고 있으면서도, 배경지식 없이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신기한 소설이다. 어쩌면, 우리가 의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고 에릭 시걸이 정말 스토리텔러로써의 테크닉이 뛰어나서 일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면 우리 모두는 미국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음으로 느꼈던 것은-이 글에서 서술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 하에-상식의 한계였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불과 몇 십년 전에, 심지어는 2~30년전까지도 통용되지 않았던 점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참 씁쓸해지곤 한다.

주인공 중에 베넷 랜스먼이라는 흑인이자 유태인인 인물이 있다. 그는 부유한 유태인의 양자이다. 그가 유태인의 양자가 된 것은 세계 제 2차세계대전때 군인이었던 친부가 수용소에 갖혀 있던 양부와 양모를 구해주고는 자신은 발진티푸스로 죽었기 때문이다.(양부모는 그 보답으로 베넷을 양자로 맞이했다.) 베넷은 어느 무리에도 어울리지 못한다. 흑인들에게는 돈많은 유태인이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돈많은 흑인일 뿐이다. 그는 여러 모로 훌륭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 중에서 제일 힘겨운 행보를 겪는다.(심지어 폭행으로 인해 의사를 그만두기까지 한다.) 이러한 험난한 행보에는 그가 '흑인'이라는 현실이 존재한다.

또한 야심만만한 '여자'인 로라 카스텔라노도 마찬가지이다. 여자기 때문에-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전공은 소아과이다.-그녀의 야심과 야심찬 행동은 늘 주위를 불안하게 만든다. 바니의 어머니가 그녀를 가리켜, '너무 똑똑하고, 너무 야심만만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녀가 전통적인 여성의 자리를 거부하기 때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 전체적으로 볼때 초반부의 로라의 압도적인 이미지는 후반부로 갈 수록 가정과 어머니라는 존재에 매몰되어간다. 특히 바니와 우정(을 가장한 사랑)이 깨지면서 그녀의 존재감은 '바니의 부인' 이상은 아니다. 두 명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는 거의 남자주인공의 역할감이 두드러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때문이다.(다른 이유로는 남자주인공이 정신과에 있다는 점을 들을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줌으로써 소설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게 한다.)

'모든 인간은 성별에 관계없이, 피부색깔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라는 상식은 과연 교과서 안에서만 존재하는 상식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아직까지 내 주위에서 직간접적으로 들리는 현실은 아직도 YES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컨데, 이 소설이 나에게 깊이 와닿았던 이유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아버지의 부재'때문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한 날이 적었던 나는 바니와 로라의 근원적인 고통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맨 뒤에는 역자 후기가 나와 있는데, 의학적인 오류를 위주로 수정했다는데, 난 별로 차이를 못느꼈다. 이것 역시 "모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번역이 약간 순화된 느낌이고, 몇몇 문장은 생략된 것 같다.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별 차이가 없다.

아, 그리고 하버드에서의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저정도는 해야할텐데 말이지--;;;

결론적으로 말해보자. 닥터스는 재미있는 소설이고, 그냥 읽고 치우기에는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소설이다. 다시 읽어도 재미있고, 이렇게 나름대로 긴 글을 쓰게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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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4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