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05.겨울
한국추리작가협회 지음 / 산다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현재 유일하게 나오고 있는 미스터리 관련 잡지. 또한 내가 유일하게 사서 읽는 잡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읽고 있으면 착찹한 기분이 든다. 이 계간지의 모토는 바로, 한국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지 일단 '한국 유일의'에서 울컥하게 되고, '추리문학 전문지'에서 갸우뚱하게 된다. 

한국의 장르문학, 특히 추리문학이 출판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썩 좋지 않다. 시장의 크기도 크다고 할 수 없다. (과열로 보이는 연속되는 출간이 의아할 뿐이다.) SF나 환타지만큼 해당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도나 평론을 찾아 읽기도 힘들다. 극소수의 평론가나 고급독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나같은 초보독자들에 의해 이런 책 나왔다. 이런 책 샀다. 이런 책 읽었다. 수준의 기초적인 정보만 교환되고 있으며, 고급스러운 작품 감상, 작가에 대한 평론이나 비평은 고사하고 기초적인 작가 정보 내지는 출판 정보도 쉽사리 확인하기가 힘들다. 무협처럼 한국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이나 노력이 눈에 보일 정도도 아니고...이런 우울한 상황에서 추리소설도 아닌 추리문학에 대한 잡지를 낸다는 것은 시쳇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잡지는 나같은 추리문학 애독자들에게는 소중하다. 추리독자로써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계간지 구입뿐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평론이나 소설을 쓸 재주는 없으니...<다빈치 코드> 이후의 히트작을 기대해 보는 수 밖에. 그것도 우리나라 작가분의... 

그렇지만, 모토의 뒷부분. 추리문학 전문지로써의 전문성, 그 전에 잡지로써의 충실성에는 늘 의문을 표하게 된다.

이 계간지는 기본 편집이 충실하지 않다. 너그럽게 오타문제는 생략하고 싶지만, 이번 호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집어보자. 이번 겨울호에는 물음표가 많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편집상의 오류로 책 제목 부분에 자주 오류가 등장한다. 책 제목을 인용하는 과정에서의 실수다. ?Fire, Burn!? 류의 표기가 종종 등장한다. 또 표기의 일관성이 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사님의 명탐정 포와로의 경우, 서미애님의 글에서는 뽀와로라고 되어있고, 뒤의 2005년 <세계 추리문학상 현황>이라는 글에는 푸아로라고 되어 있다. 이런 부분은 좀 시정되었으면 좋겠다.

또, 은근히 이 계간지가 기본적인 정보전달에 불성실하다는 것도 불만스럽다. 저자의 약력도 어느 순간부터 슬금슬금 사라지고-지속적으로 투고하는 필진들이라 약력이 필요없다는 것인가?-, 심지어 어떤 글에는 저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토마스 태셔의 <먹이>는 역자의 이름이 없다.(정태원 선생님이 번역하신 느낌이 든다.) <2005년 세계 추리문학상 현황>에는 글의 저자의 이름이 없다. 해당 글의 오류 등의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무오류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는걸까? 이래저래 당혹스럽다. 그리고 해외추리소설란에만 책 갈피에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것도 좀 의아하다. 

그런 측면에서 가상인터뷰가 늘 거슬린다.(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기획이다.) 가상인터뷰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1. 인터뷰 대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스티븐 킹이나 딘 쿤츠, 에드 멕베인은 누구나 다 알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작가 전체에 대한 정보는 아니더라도 인터뷰 하는 내용에 등장하는 책이나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쯤은 각주나 미주로 넣어줬으면 좋겠다. 스티븐 킹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어떻게 된 건지, 에드멕베인의 87관서 시리즈 목록이 무엇인지를-국내에 어떤 작품이 출간되었는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알려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일례로 인터뷰 중에 '87관서 시리즈는 처음에 세 작품만 계약하기로 했다'라는 내용이 있다면, 그 세 작품의 이름 정도는 알려주면 좋겠다. 내가 과욕을 부리는 건가? 백 번 양보해서 가상인터뷰 속에서 일정 수준의 정보전달을 하고 있다고 넘어가보자.

하지만, 2. 저자가 어떤 1차문헌을 보고 가상인터뷰를 재구성했는지에 대한 문헌정보가 없다. 이 부분은 반드시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논문에 인용의 출처가 필수이듯이 가상인터뷰라면 저자가 인용한 참고문헌이 필수다. 일부 독자나 평자들에게 소설이라고까지 비판받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엄청난 문헌정보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논의가 약간 거칠어졌지만, 이러한 자잘한 실수는 편집진이 교정을 불성실하게 보았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든 ?Fire, Burn!?의 경우는 제목에 버젓이 오타를 낸 경우다. 무크지가 아닌 이상, 돈을 내고 보는 독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한다. 이 책의 가격은 9,000원이다. 결코 싼 값이 아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가격대, 아니 이 가격보다 저렴한 양질의 추리소설은 상당수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에도 이 책을 사는 소수의 독자들에게 '기회비용'을 더 보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물론 '그럼 너가 해봐라.' 내지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이 계간지를 내고 있는데.'라고 하시면 드릴 말씀은 없다. 그렇지만 이번 겨울호의 편집은 너그러이 봐주기에는 상당히 심각하다.

그리고 욕심을 내자면, 각 계간지 사이에 출간된 작품 정도는 소개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일부 출판사에서 홍보용 글이 실린 적이 있지만-그나마 이번 호에는 없다.-전체적인 출간 리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현재 출간 리스트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곳은 하우미스테리 한 곳 뿐이다.)

잡지의 외형적인 완성도에 대한 투덜거림은 그만두고 각 기획별로 들어가보자.(혹시라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 내용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호의 특집은 한국의 연쇄살인과 프로파일링이다. 네 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관련 전문가들이 쓴 글이고, 비교적 생경한 프로파일링에 대한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지난 번 특집보다 글의 수도 많았고. 특히 앞의 두 개의 글은 전문가의 식견을 적절한 필력으로 풀어낸 괜찮은 글이었다. 아쉽게도 해당 글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개론 수준이기는 하다. 그러나, 프로파일링 전문 잡지도 아니고, 개론 수준의 글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맨 마지막 글은 제목에서 주는 참신한 의도에 비해 글의 내용이 빈약하다. 셜록 홈즈가 왜 범죄프로파일링과 관련이 있는지는 여부는 짐작하겠는데, 실제 작품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부족해 보인다. 또 <과학수사연구소 다이어리>와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도 넓은 의미에서는 해당 특집에 해당하는 바, 같이 넣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긴 했다. 

더 욕심을 내자면, 프로파일링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이유 중에 하나인, C.S.I나 스카페타에 대한 리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이다혜님이 쓰신 <비밀의 백화점> 속의 리뷰도 좋고, 아니면 프로파일링 전문가의 관점에서 본 해당 시리즈의 허와 실이라던가, 프로파일링에 관심있는 추리독자들이 볼만한 서적의 리스트 정도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욕심이지 싶다.

여기서 가장 아이러니컬하면서도 우스웠던 한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나라에서의 많은 숫자의 연쇄살인사건이 나타난다면 이에 따르는 학문적인 연구도 크게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역설적인 모순을 가진다.'

다음에는 김종섭님의 만화가 등장한다. 잭 리치의 <킬러>가 원작인데, 단편작가 중에 최고급에 속하는 잭 리치의 단편답게 만화로 봐도 재미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추리만화가 단편을 소개하는 수단으로써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표현수단을 달리하여 소개한다면, 해당 매체만의 독특한 맛이 조금 더 났으면 한다. 국내에 번역된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해당 단편을 뒤에 싫어서 비교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 다음은 한국단편추리소설인데, 4편이 실려있다. 추리소설에 대한 평은 각자 갈릴 수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수광님의 <나는 구천을 헤매고 있다.>라는 단편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왜 실렸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추리단편으로 보려고 해도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추리의 요소가 없다. 그렇다고 단편으로써 재미있게 읽히는 것도 아니고, 펄프픽션에 너그러운 내가 봐도 기계적인 성애묘사 이후의 전개는 짜증스러웠다. 게다가 이 분이 추리소설을 지속적으로 내신 분이라면 더욱 실망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여름호에 실린 <롤리타>와 함께 최악의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선행학습>과 <나는 왓슨>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디어에 비해서 작가의 필력이나 구성이 약간 허술한 감은 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뫼비우스의 꿈>도 비슷한 느낌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지고, 결말부분의 힘이 약한 것 같다.

다음은 외국단편추리소설인데, 생경한 작가인 토마스 태셔의 <먹이>가 실렸다. 원제가 'prey'로 추측되는데,-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원제도 실려있지 않다.- 궁금하다. 내용은 요즘 독자가 읽기에는 짐작가능한 결말이라 약간 싱겨웠다. 평화로운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전환하는 과정이 평이했다. 평범한 단편.

다음은 과학수사연구소 다이어리. 이번에는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가 국과수에 계시던 분이라서 그런지 사건일지보다는 증거물에 대한 논란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전문적인 글을 써주시는 좋은 필자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가상인터뷰. 작년에 세상을 떠난 에드 멕베인을 다루고 있다. 나의 편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의 서두는 왜 삽입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뜬금없었으며, 중간 중간에 기출간 된 책은 국내 출간 제목을 달아 놓고, 어떤 책은 쓰지 않는 둥, 섬세한 일관성이 떨어지는 글이었다. 한이씨가 다룬 세 명 중에 그나마 내가 아는 작가라서 그런 탓인지, 가장 불만스러운 가상인터뷰였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김성종 선생같은 분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다음은 서미애님이 쓰신 <형사 콜롬보 vs. 후루하타 닌자부로> 미, 일 TV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를 설명하는 글. 둘 다 많이 보지 못한 나로써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음은 화요추리클럽의 회장이신, 장경현님이 쓰신 존 딕슨 카의 Fire, Burn!에 대한 리뷰. 개인적으로 권일영 선생님의 글과 함께 계간미스테리를 보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국내 미출간 소설에 대한 리뷰라는 점과 존 딕슨 카의 새로운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점이 돋보인 충실한 리뷰였다. '딕슨 카=밀실 트릭'이라는 공식에 의의를 제기하는 신선한 시각이 좋았다.  글 말미에는 존 딕슨 카의 역사 미스테리 목록은 보너스. 다만, 글 중에 '스코틀랜드야드'라는 표현은 런던경시청의 별칭으로 사용하신 것 같은데, '스코틀랜드야드'로 표기해야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런던경시청이라고 표기하거나 '스코틀랜드야드는 런던경시청의 별칭이다.'라는 설명정도는 필요하지 싶다.

딕슨 카의 많은 작품을 읽었거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비롯하여 딕슨 카의 다른 작품도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리뷰. 이것도 구성이 약간 의아하다. 장경현님이 쓰신 글도 넓은 의미의 리뷰인데, 그 글은 독립되어 있고, 밑의 두 글만 리뷰로 잡혀 있다. 권일영님의 작품도 국내에 소개가 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같이 묶어도 될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아니니 생략. 권일영님은 요즘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리뷰를 특유의 재미난 문체로 써주셨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작가라 이 작품도 조만간 출간되었으면 한다.  

그 다음은 조금 이상한 리뷰. 개구리 소년을 다룬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의 리뷰인데, 리뷰어가 저자다. 자기 글을 자기가 리뷰하다니! 책 소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책소개로 따로 분류하거나 아니면 맨 앞의 프로파일링 기획에 넣고, 장경현님과 권일영님의 글을 리뷰라는 카테고리로 빼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보인다.

그렇지만, 내용 자체는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과연 평범한 수준의 음모론일지, 아니면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사서 보고 싶다. 아, 그리고 왜 리뷰가 맨 뒤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추리문학 전문지에 리뷰가 앞으로 와야하지 않을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뒤에 있어도 큰 불만은 없다.

마지막은 2005년 세계 추리문학상 수상작. 참 상도 많다. 짧게나마 각 상들이 어떤 연유에서 생겼는지 소개해 줘서 좋았고, 수상작들을 옆에 이미지로 일부 보여줘서 좋았다. 몇몇 작품들의 이름이 자주 띄는 것을 보면, 좋은 작품들은 어디서나 인정을 받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시상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추어진다면 좋을텐데...한편으로는 예전에 poirot님이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의 추리소설 토양이 과거지향적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품은 고사하고 작가의 이름도 생소한것이 대부분이니...언젠가는 극복되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까탈스러운 초보독자인건지 솔직이 헷갈린다. 사실 써놓고 보니, 죄송스럽기도 하다. 음지에서 고생하시는 분들한테 몹쓸 소리만 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한국추리단편소설에 대한 평은 정말 조심스러워진다. 그렇지만, 추리문학이 자생력을 가지려면, 독자-평론가-작가와의 긴장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호는 나같은 초보독자의 눈에도 거슬리는 부분들이 많았다라는 핑계로 변명해본다.

다음 호에는 모 작가의 특집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좋은 기획과 좋은 글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나의 작은 소망이라면, 언젠가는 단순한 구입이 아니라 그 이상의 기여를 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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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6-01-0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엄청나고 정성들인 리뷰!

상복의랑데뷰 2006-01-0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만 들인 ^^;;;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닉네임을뭐라하지 2006-02-1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2-2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합니다. ^^ 답변이 늦었습니다~